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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자무쉬 작품-깜짝상영2<데드맨>을 보고서...
의예과 4730429 이은비 2005년 5월 23일 오후..동성 아트홀에서 개최된 “시네필의 향연”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5월 답지 않은 강렬한 햇빛의 무더운 날씨였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 방아쇠를 당겨버린 뫼르소가 문득 떠올랐던 것을 왜였을까...어둠고 습한 분위기의 동성 아트홀 극장과 이러한 갑갑하고도 찌는듯한 날씨는 대치되는 듯 보였어도, 이날 감상한 <데드맨>의 전체적 느낌을 한껏 자아는데 미리 나에게 메시지를 던져 주었던 것 같다. “시네필의 향연”이라...오랜 기간 동안 관객들의 사랑을 받아온 영화사의 걸작들을 모아 상영하는 “시네필의 향연”! 팜플렛에 명시된 설명...‘향연이라....‘무언가 축제와도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그러면서도 우울한 느낌을 없지 않아 받으면서도 이 “향연”이란 말이 나의 머릿속을 맴 돌았다. 영화를 관람하기 전 그 팜플렛을 한 손에 꼭 잡아 쥔 채 어두운 상영관 안을 들어서게 되었다. 영화는 장중하고도 묘한 느낌의 음악과 함께 시작되었다. 흑백 영화...1995년 작품의 흑백 영화라..이는 분명 감독의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짐 자무쉬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흑백영상 처리를 하였을까? <데드맨>의 시작은 이렇게 배경음악과 흑백 영화라는 두 가지 점에서 의문을 품게 하고서 막을 올렸다. 주인공 윌리엄 블레이크-빌 블레이크-는 취직 통지서를 받고 서부로 향한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거칠고 황량한 들판을 달리는 기차 안의 빌 블레이크를 조명한다. 창 밖의 인디언들과 황폐한(?) 차창 밖의 풍경들, 그리고 아는지 모르는지 기차 안의 승객들과 안경을 낀 채 여기 저기를 둘러보는 빌 블레이크의 모습...그는 지금 앞으로 일어나게 될 그 커다란 사건을 까마득히 모르는채 순진무구한 모습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서부로 향하는 빌 블레이크.. 취직 통지서를 들고서 존 디킨스 사장에게로 갔으나 일자리는 다른사람에 의해 차지되어 실망을 안고 쓸쓸히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취직은커녕 되돌아갈 차비도 없이 서부를 배회하는 빌 블레이크는 우연히 꽃을 파는 아리따운 여성 텔을 만나게된다. 텔은 어느 한 남성에게서 길거리에 내동댕이 쳐지고, 곁에서 이를 목격하게된 블레이크는 그녀와 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하룻밤을 지내는 중, 갑자기 들이닥친 텔의 옛 애인 챨리의 등장. ㅡ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챨리는 조금 전 존 디킨스 사장의 아들이었다.ㅡ 챨리는 다짜고짜 블레이크를 향해 총을 난도질 하였고, 텔은 가슴에 총상을 입은채 사망하게 된다. 이에 당황한 블레이크는 총격전 끝에 자신도 모르게 - 실수라고 표현해 두겠다.-챨리를 죽이고만다. 총상을 입은채 황급히 마을을 빠져나온 블레이크는 숲속에서 의식을 잃고 만다. 아무 일도 없이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왔던 블레이크에게 너무나도 커다란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우연한 만남으로 알게된 여인과의 하룻밤,그로인해 벌어진 격렬한 총격전 끝에 살인마가 되어버린 그의 처지... 나에게 어떤 연민과 함께, 지금 나도 이렇게 무던한, 어쩌면 다분히 지긋지긋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러한 충격-일종의 쇼크-를 바라는 건 아닐까. 연민과 동경이라...씁쓸하지만...여하튼 우리의 주인공은 이제부터 운명의 굴레에 구속되게 된것이다.
총상을 입어 의식을 잃게 된 블레이크는 깨어나 “노바디”라는 인디언을 만나게 된다. ‘노바디’... 아무도 아니라는 뜻의 Nobody! 순간 감독의 의도를 다분히 엿볼 수 있는 인물의 이름이란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노바디는 블레이크를 간호하여 주었고, 그 둘은 동무가 되어 황량한 서부를 방황하게 된다. 한편, 챨리의 사망 소식을 들은 회사 사장 존 디킨스는 앙갚음을 하기 위해 블레이크를 수색하기 시작한다. 그는 마을의 악명높은 킬러 3명을 섭외하게 되는데, 이들 모두는 극악무도하기 짝이없었다. 부모를 죽이고 그 인육을 먹는 이, 말많은 명사수, 10대부터 청부 살인을 시작한 이...이 셋은 디킨스에게 고용되어 블레이크를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나는 이들 3킬러들의 행동에 주목을 하기시작하였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이들 세명은 영화를 감상하면서 점점 풍자스럽게.. 감독의 어떠한 의도를 위해 희화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총잡이들의 총뽑기 장면 등 짐 자무쉬는 코믹스러우면서도 온갖 상징적인 이야기들은 흑백 화면 속에 중첩 시켰다. 우리나라 고전 소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러한 악역을 희화화 시키는 작자의 의도.. 악한 사람도 일말의 선한 이미지를 불러 일으키게 하는 이러한 장치는 서양과 동양의 어떠한 합일을 나에게 안겨주는 듯 한 인상을 불러일으켰다. 괴이한 성격의 인디언-노바디와 함께 여정을 떠난 블레이크. 노바디는 환생을 믿고, 사후 세계를 눈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샤머니즘적 사상을 가지고 있는 인디언이다. 샤머니즘이라... 문득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자타인식”의 사고가 생각난다. 주제 밖의 이야기가 될 지는 모르겠으나, 인디언이라고 샤머니즘적 사고를 가진다는 서구인들의 생각에 나는 비소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잠시,짐 자무쉬의 사고에 무작정 비판을 하는-서구인들의 우월주의적인 사고에- 그런 편협한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하겠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분명 백인의 중년 신사와 낙후된 인디언 간의 보이지 않는, 그러나 확실한 벽을 보여주는 어떠한 메시지를 남기고 있었다. 나는 노바디와 블레이크가 담배를 사는 장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자기 이미지를 비추기 위해서는 거울,즉 타자가 필요하다. 여기서 내가 본 서구인들의 자타인식 사상은 대개 이러하다. 부정적 타자상의 내용을 통해서 긍정적인 자기상을 생산해낸다는 것이랄까. 부정적이고 배타적인 타자의 설정 - 즉, 인디언(노바디)- 그리고 그에 대치된 긍정적인 서구인 - 블레이크- 의 상이 비로소 성립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오리엔탈리즘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우리가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할 대상일것이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무의식적인 차별은 삼가고, 의식적 심상지리는 힘들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서구인들이 자기 우월주의는 분명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이고, 우리도 역시 자타인식에 빠져 들고있지는 않나, 우리 스스로를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노바디는 블레이크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이미 작고한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환생이라 믿게 된다. 블레이크는 노바디의 도움으로 힘겨운 도망을 치기 시작한다. 태양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서...수도 없이 나오는 총격전 끝의 살인장면, 몽환적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게하는 배경음악, 마지막 배에 몸을 실은 채, 노바디의 죽음을 그저 바라보며, 누워서 바다위를 떠가는 블레이크의 그 쓸쓸하고도 초점없는듯한 눈빛..많은 것들이 내 기억에 남긴 하지만, 가장 감상적이었던 부분은 바로 총상을 입어 죽은 사슴옆에 나란에 블레이크라 몸을 뉘였던 장면이다. 마치 동병상련의 정을 느끼는 것 처럼, 사슴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그의 얼굴에 칠하고 사슴과 나란히, 사슴과 거의 같은 자세로 바로 곁에 누워버리는 블레이크... 그는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아니, 짐 자무쉬가 이러한 장면의 연출을 어떤 의도로 내보였던 것일까. 나는 어떤 생명에 대한 신비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소름이 돋치면서도 말이다. 인간은 그들이 만들어낸 물질 문명의 이기인 총에 의해 단 몇초만에 사람이건 짐승이건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을 앗아가 버린다. 그러한 사슴을 가련히라도 여기는 듯 블레이크는 그 사슴을 감싸주게 된다. “총”이라는 것이 없었더라면 블레이크는 이러한 상황까지 내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이기로 인해 모든 것이 파괴되어 버렸고, 그는 일종의 배신감이랄까, 자기 모독감도 느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감독은 이러한 물리적이고도 구체적인 세계로부터 이탈된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평범한 청년이었던 블레이크, 우연한 계기로 인해 그의 인생의 꼬이기 시작했고, 점차 난폭하고 황량한 무법자로 변질되어 그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사슴의 죽음을 함께 느낌으로써, 어쩌면 그는 그의 영혼이 죽었다는 것을 생각하였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노바디의 말처럼 죽은자의 영혼을 보기 시작하였던 것이고... 영화 <데드맨>은 제목에서처럼 죽음의 문턱에서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드는 초현실적인 독특한 영상을 보인다. 샤머니즘이건 무엇이건 간에 의식와 무의식의 세계를 죽음과 연결시켜 다소 관념적이고도 상징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였다. 나에게 다시금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와 성철을 안겨준 영화였기도 하다. 몽환적 분위기의 연출과 함께 다소 따분했을지도 모르는 영화를 인물의 희화화와 함께 잘 배합시켜낸 짐 자무쉬의 뛰어난 재량에 다시 한번 갈채를 보낸다. 어두운 상영관을 나오면서, 지금까지도 나는 아직 그때 그 사슴 옆의 블레이크의 깊고도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듯한 눈빛이 내 머릿속을 떠나가지 않는다. 나에게 많은 생각과 회의와 고뇌와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의미를 남겨준 소중한 영화 한 편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짐 자무쉬의 또 다른 영화를 다시금 접해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