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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달빛의 약혼식]
1. 붉은 달빛의 약혼식
시골은 참으로 멋진 곳 이었다. 하지만 이 말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붙어야 했다. 부지런 하거나, 돈이 많거나 아니면 신경이 무디거나 라는 전제가 말이다. 물론 나는 세 번째에 해당되는 사람이었다. 지금 나는 눈앞에 펼쳐진 논과 밭 그리고 그 뒤에 우뚝 선 산들을 보며 한 잔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내 딸인 리아가 큰 소리로 날 부르기 전 까지는....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데 그렇게 큰 소리로 불러?”
“엄마도 참!! 준비 안 해요? 벌써 7시라고요!!”
“준비?”
“엄마!! 오늘 준이씨 집에서 약혼 파티가 있잖아요!! 벌써 까먹은 거예요?”
“아차차!! 서둘러야 겠구나.....호호호.....”
그렇게 나는 딸의 성화에 부리나케 준비하고 나왔다. 리아의 친구인 준이씨의 아버지인 한만수씨는 아까 내가 말한 사람들 중 두 번째에 들어가는, 이 마을에서 가장 큰 150평 정도에 3층이나 되는 집을 짓고 사는 이 마을의 유지인 사람이었다. 그는 의류 회사의 사장이었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져 일선에서 물러나 10년 전부터 천안에 있는 이 마을에 조그만(?) 집을 짓고 요양을 취하고 있었다. 내가 볼 때는 아직 힘깨나 쓸 그런 사람인데 말이다. 그런 그에게는 세 명의 자식이 있었다. 첫째 아들인 한민, 둘째 딸인 한진 그리고 막내아들인 한준이었다. 한민은 현재 아버지를 대신해 회사를 운영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고 한진은 피아니스트로, 막내아들인 한준은 내 딸과 함께 서울교대를 나와 내 딸처럼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진이언니가 결혼을 한다니....믿어지지가 않아요.”
“뭘 그리 호들갑이니? 벌써 서른둘인데....그나저나 너도 빨리 남자 하나 데리고 올 생각 없는 거니? 아직?”
“엄마!! 저 아직 스물일곱이라고요!!”
“농담이야 농담....호호호......”
“그런데 아빠는요?”
“이제 곧 오실거야....너도 알지? 박지은씨....사건....”
“아.....요즘 한창 언론에서 난리잖아요....”
그렇게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으며 걸어서 3분 거리인 한만수씨 댁에 도착하였다. 바로 오늘이 둘째 딸인 한진씨의 약혼식이었기 때문인지 만수씨의 집은 시끌벅적했다. 가든파티를 준비하는 요리사들과 가정부들이 부리나케 움직이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요!! 진세화 선생님!!“
“어머, 선생님은 무슨.....그냥 평범한 아줌마인걸요.”
“허허허 겸손도 하시지, 그렇게 말 하셔도 그 유명한 배우 진세화씨를 누가 평범하다고 하겠습니까? 하하하....”
“호호호.....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먼저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네, 그럼....”
나는 만수씨의 인사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2층에 있는 홀은 먼저 도착한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어머?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 한진씨!! 축하해요!! 옆에가?”
“네, 제 남편이 될 유혁진씨예요!! 종종 뵈었죠?”
나는 늘씬한 갈색머리의 미녀인 진이씨 옆에 있는 안경을 쓴 평범한 남자를 보았다. 쑥스러운 듯 보이는 그였다. 나는 웃으며 축하의 말을 건네었다.
“안녕하세요? 혁진씨!! 축하드려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는 그 한 쌍의 커플을 두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딸의 모습을 찾던 나는 준이씨와 이야기하는 딸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난 딸과 준이씨의 대화를 방해하지 못하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진세화씨!!”
“네, 이장님?!!”
“요즘 잘 지내시나요?”
“네, 그럼요. 호호호.......”
“그런데 남편 분은?”
“아하하.....지금 여기로 오고 있어요.”
“네, 요즘 언론에 떠들썩한 백화 그룹 사건을 맡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바쁘시죠?”
“말도마세요.......호호호”
“그럼 잘 되시기를 빌겠습니다.”
“네, 이장님....”
나는 겨우 이장님에게서 벗어났다. 이 마을의 이장인 박철영씨는 올해 50세로 동사무소에 근무하고 있었다. 인심이 좋아서 평판은 좋지만 그 오지랖이 넓은 것이 흠이었다. 덕분에 그의 부인되는 사람이 많이 고생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딸에게 가려던 차 다시 나의 발목을 잡혔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한 여류 소설가였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운 미소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신가요? 진세화 선생님?”
“아....네 안녕하세요? 류미화 선생님....”
“잘 지내시죠?”‘
“네, 그럼요. 요즘도 집필활동이 상당히 황발하신 것 같던데....”
“고마워요. 여전히 아름답군요. 선생님....그 명장면은 아직도 제 기억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답니다. 있잖아요. 강변에서의 그 독백장면......”
“아, 그 장면이요? 그때는 제 초기 작품이어서 많이 부족했을텐데....”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웃어주었다. 그녀의 선홍색 립스틱이 돋보였다.
“아니예요. 아니예요. 그건 최고의 장면이었지요, 그럼 전 이만....”
그렇게 류미화 선생님과 대화를 마치고 보니 딸의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후였다. 뿐만 아니라 준이씨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딸의 모습을 찾으려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머? 진세화 선생님 아니신가요?”
나는 고개를 돌려보았다. 만수씨의 부인이었다.
“아....단아씨?”
“네, 죄송해요....명색이 신부의 어머니인데 이렇게 늦어서....”
“아닙니다.”
“실은 회사에 약간 문제가 생겨서 민이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오느라 좀 늦어버렸답니다.”
“그나저나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좋은 날 맞이하게 되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니!! 어서 오세요!! 식이 시작 되려고 해요.”
“어머? 그래?....”
그녀는 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민이씨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네.”
그렇게 사람들과 인사하면서 시간은 흘러갔고 사회자인 듯 한 사람의 목소리에 그제야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었던 딸과 준이씨의 모습이 보였다.
“자, 그럼 유필단씨와 차승미씨의 장남인 유혁진군과 한만수씨와 김단아씨의 차녀인 한진양의 약혼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들의 약혼식을 지켜보면서 옆에 나란히 서 있는 유혁진씨의 부모들을 보았다. 두 사람 모두 만족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게 무사히 식은 끝나고 나는 약혼식 파티가 준비된 정원으로 나갔다.
“애, 정말 못 봐주겠다. 왜 그렇게 꼭 붙어 있는 거니?”
“네? 엄마?”
“아니, 너 혹시 준이씨 좋아하는거니?”
“네....네에? 엄마!!”
“아니면 됐지.... 왜 얼굴은 빨개지고 그러니?“
“모....몰라요!!”
나는 정원으로 나가면서 준이씨와 나란히 서 있는 딸의 옆구리를 찔러 내 곁에 오도록 했다. 그리고 슬슬 찔러보니 딸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이러한 반응은....
“여보!!”
“아? 왔어요?”
나는 익숙한 목소리에 뒤 돌아보았다. 남편이었다.
“응. 식은 끝났어?”
“어, 방금....”
“그렇구나....미안, 일찍 오려고 했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어서.”
“그랬군요. 아무튼 이렇게라도 와서 다행이야.”
“하하하.....그런데 리아는?”
“리나? 옆에....없네?....도대체 또 어디로 샌거야?!!”
“하하, 역시 핏줄은 못 속여....”
“뭐?!!”
“아..아니 아니...난 그저....그나저나 배고픈데 좀 먹지?”
“맘대로 골라먹어!!”
“하하, 사실은 사실인데 뭘....”
남편은 정말로 배가 고픈지 접시에 옆에 있는 음식을 담더니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난 옆에 있는 콜라가 든 잔을 집어주었다.
“여기, 좀 천천히 먹어!!”
“아....알았어. 고마워!!”
“어린애 같긴.....”
나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해하는 그의 얼굴에 방긋 웃음을 지어보였다. 뒤쪽에서는 악사들이 슈베르트의 ‘숭어’를 연주하고 있었다. 진이씨는 그 남편인 혁진씨와 하객들의 인사를 받으며 행복해 하고 있었다. 음식은 훌륭했고 음악은 아름다웠으며 보름달은 황홀했다. 흰색 도료를 칠한 건물은 달빛을 받아 분홍 진주를 가루로 만들어 뿌린 듯 아름다웠다. 리아는 준이씨와 정원 가운데 있는 분수를 등지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에 준이씨도 행복해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약혼식의 붉은 달빛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든파티가 진행되고 있었다.
2. 거울로 보이는 검은 손
단아는 약혼식이 끝나자마자 2층의 중간 문을 통해 3층의 자신의 방의 문을 열었다.
방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 나는 옷장을 열었다. 옷장 안에는 화려한 색의 옷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옷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텅 빈 칸에 단 한 벌 걸린 옷을 꺼내었다. 보랏빛에 붉은 자수정으로 장식이 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옷이었다. 나는 그 옷으로 갈아입고 화장대에 앉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화장대에서 화장을 하면서 생각하는 버릇은 고쳐야 하는데 잘 되지 않았다. 덕분에 화장하는 시간이 좀 길어지고 화장이 틀리거나 하는 것도 없잖아 있지만 이런 것에 꽤 익숙한 나의 손은 능숙하게 움직였다.
‘그렇게는 못 해!! 절대!!’
‘하지만....전....전....’
‘난 절대 허락 못해!!’
그렇게 남편은 반대했었다. 하지만 어제 그는 생각을 바꾸었는지 천천히 아주 느리게 말했었다. 마치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 볼 생각인 것처럼.
‘좋아, 허락하지....’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아니, 내가 미안한 일이지....정말 고마웠어.’
‘여보....’
‘대신 아이들에게는 비밀로....해야겠지?’
‘고마워요.’
오늘 약혼식에서 느꼈던 그 시선에 어쩐지 마음이 불안했다. 하지만 이제 일주일 후 우리 진이의 결혼식이 끝나고 나면 나는 미국에서 계속 음악을 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하지만 자꾸 민이와 진이의 얼굴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보면 볼수록 귀여운 준이도....요즘 보면 준이는 진세화 선생님의 딸인 리아를 마음에 두고 있는 듯 했다. 아까부터 계속 리아 하고만 붙어서 이야기를 하는 것 보면 말이다. 게다가 평소 잘 웃지 않는 준이가 그렇게 열심히 자연스럽게 웃어대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 딸깍
나는 파우더를 열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다. 거울에 비추어진 나의 모습에 거울속의 나는 입 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30년 전의 나의 얼굴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왕이면 빨리 나의 모든 의무를 끝내고 싶었다. 오늘 가든파티에서 준이와 리아의 결혼을 성사시키고 싶었다. 리아의 집안이 그리 떨어지는 집안도 아니었다. 리아의 아버지는 유명한 변호사인 임상준씨고 리아의 어머니는 유명한 배우인 진세화씨였다. 이정도면 훌륭한 편이었다. 게다가 리아가 얼마나 싹싹하고 솜씨가 좋은가....거울속의 내 얼굴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순간 나는 민이가 걱정이 되었다. 민이가 요즘 눈치 챈 것 같았다.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변한 것도 그렇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그렇고 정말 그 비밀을 들킬까 조마조마한 판에 내 가슴 한쪽으로 애틋함이 살아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 딸깍!!
- 탁!!
나는 파우더를 화장대 위에 올려놓고 와인 빛 립스틱을 집어 들었다. 나는 거울속의 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황급히 티슈를 집어 들어 눈물을 닦고 다시 파우더를 집어 들어 얼굴에 분을 칠하고 놓았던 립스틱을 다시 집었다.
- 똑똑
노크소리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대답했다.
“잠시만요!!”
나는 문으로 가서 문을 돌려 잠근 문을 열고 다시 화장대로 갔다. 그리고 난 화장대의 거울로 비치는 그 모습을 보았다.
“어머? 어떻게 당신이.....?”
나는 순식간에 내 목에 걸려지는 끈을 보았다. 순간 공포가 밀려오며 진작 결판을 내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숨이 막혔다. 나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언가에 나도 모르게 립스틱을 들고 있던 손이 움직였다. 분명 진세화씨라면 이 메시지를 알아차릴 것이었다. 하지만 이 메시지를 이 사람이 본다면 지울 것이 틀림없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의 손은 화장대 위에 가득 세워있는 화장품을 휘저었다. 화장품이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난 내 몸이 뒤로 넘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점점 아득해져만 갔다. 그리고 그 아득함 속에 민이와 진이의 얼굴과 준이와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3. 붉은 립스틱
나는 와인글라스에 루비와 같은 와인을 채워 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 어머니가 좀 늦네?”
“그러게....하지만 옷을 갈아입으신다고....”
“그래도 너무 늦으시는데?”
나는 옆에 있는 진이씨와 혁진씨, 그리고 민이씨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어 시간을 보았다. 밤 10시였다. 8시 30분에 약혼식을 시작했고 9시에 끝났으니 벌써 1 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아무리 옷을 늦게 입어도 지금은 나와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단아씨의 방이 있는 곳을 무의식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3층의 맨 오른쪽 방 이었다. 나는 무언가를 보았다. 창문이 열려져있는 베란다와 바람에 춤추는 커튼과 그 커튼 사이로 힐끔힐끔 보이는 발,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은 나는 옆에 있는 준이씨에게 물었다.
“저...저기가 준이씨 어머님의 방 인가요?”
“네, 그런데요....?”
“그럼 어서 준이씨 어머님의 방으로 안내해요!!”
“네...네에?”
“어서요!! 우물쭈물할 시간 없어요!!”
“네...네네....”
그렇게 나는 준이씨의 안내를 받아 단아씨의 방으로 달려갔다. 복도 전체가 붉은 양탄자가 깔려있어 발자국 소리는 크게 울리지 않았다. 단아씨의 방문을 노크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문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문이 너무도 쉽게 열리고 내 눈에는 공중에서 힘없이 바람과 춤추는 단아씨의 모습이 들어왔다.
“다....단아....씨?”
“어...어머니!!!”
그때 우리의 뒤를 따라 온 사람들이 소리쳤다.
“무슨 일이야?”
“준이야!! 무슨 일이니?”
“세상에......어머니!!”
“어...어머니......”
“단아씨.....”
나는 내 딸 리아의 목소리로 짐작되는 마지막 목소리를 들으며 말했다.
“리아, 어서 경찰과 구급차를 부르거라....아무래도....이상하구나....”
“네”
“그리고 여러분은 저 안에 들어가지 마세요.”
“왜죠? 선생님?, 자식들인 저희들이 어머님의 시신을 만질 권리도 없다는 건가요?”
난 앙칼지게 물어보는 진이씨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안하지만....아마도....이건 자살이 아닌....선생님은 살해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 사...살해요?”
“네, 그렇습니다.”
나는 천천히 단아씨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옷이 아까와 다른 것으로 보아 옷을 갈아입은 후 살해당한 것 같았다. 그리고 잘 말아 올린 머리가 심하게 헝클어진 것으로 아마 꽤 반항이 심했던 것으로 추측되었다. 머리에서는 약간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만약 자살이라면 그렇게 피가 흐를 리가 없었다. 게다가 단아씨의 발아래 발판이 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위를 바라보았다. 커튼은 기존의 레일식이 아닌 철봉식 커튼이었다. 철봉을 거는 고리는 제법 단단해 보였다. 그래서 단아씨의 체중을 견디어 낸 것이겠지만 난 주변을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장대를 보았을 때 내 눈은 거기에 멈추었다. 화장대의 화장품은 난장판으로 흩어져 있었고 의자는 쓰러져 있었다. 난 화장대로 가까이 가 보았다. 간단한 화장도구들 이었다. 파우더, 메이크업베이스, 파운데이션, 분홍빛 립스틱, 아이세도우, 아이라인, 마스카라, 마사지 팩, 스킨, 로션, 썬 그림, 핸드로션, 향수, 영양제, 매니큐어, 아세톤이 엉망으로 어질러진 화장대 위에 립스틱으로 무언가 써 있었다.
“이....이건 뭐지?....T.T ?"
그때 밖에서 요란한 싸이렌 소리가 들리면서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어서 오세요.”
내 인사에 한 형사가 대답했다. 내가 잘 알고 지내는 박조희 형사였다.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카리스마가 넘쳐흘렀다.
“네, 안녕하세요? 어머? 진세화 선생님 아니신가요?”
“호호호 안녕하신가요? 조희씨?”
“저야 뭐....보시다시피....그런데 이번 사건은?”
“이 집 한만수씨의 부인인 김단아씨가 살해당했습니다.”
“과연 그렇군요....”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살며시 다가가 속삭였다.
“다잉 메세지를 남겼어요. T.T라고....”
“네?”
“이건 우선 비밀로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수사가 진행되었고 이장인 박철영씨와 류미화씨 그리고 한만수씨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왜냐하면 정원에 설치한 방범용 CCTV로 확인한 결과 약혼식이 끝난 9시부터 10시 사이에 정원에는 이들 세 사람이 없었으며 단아씨의 방 즉, 가족들이 머무는 방이 있는 3층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약혼식장 이었던 2층의 중간 문을 거쳐서 가야 하지만 이 중간에 있는 문은 특이해서 밖에서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문인식기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 파티 중에 있던 사람들이 3층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약혼식이 끝난 후 약 5분 간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는 관리인의 말에 따라 우리는 범인이 약혼식이 끝난 직후 3층에 들어가서 단아씨를 살해하고 살해 된 단아씨를 발견한 우리들이 뛰어 들어 올 때 자연스럽게 섞이게 되었다는 가설을 세우게 되었다. 또한 가족들은 중간에 3층으로 갈 수 있지만 민이씨와 진이씨, 그리고 준이씨 및 다른 가정부와 관리인은 10분 이상 자리를 비운 적이 없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에 의해 배제되었다. 조희씨의 추측에 따르면 범행시간만 최소 15분 이상 이였기 때문이었다.
“자, 그럼 9시부터 10시까지 무엇을 했는지 말씀해 주시지요!!”
조희 형사의 말에 박영철씨와 류미화씨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때 류미화씨가 말했다.
“저....저는 9시부터 10시까지 밖에 있었습니다.”
“밖에요? 정원 말인가요?”
“아뇨, 저는 재빨리 정원에서 나왔습니다. 아예....그 집에서 뒷문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갔습니다. 머리에 떠오른 글감이 생각나서....”
“그래요? 그렇게 불편한 드레스를 그냥 입고요?”
나는 조희씨의 말에 그녀의 붉은 와인 빛 드레스를 보았다. 소매가 없지만 옷자락이 땅에 끌려 매혹적인 느낌을 주었다.
“네?!! 네....사실, 파티가 끝나기 전에 얼른 이곳으로 오려고 했습니다.”
“그걸 증명해 줄 사람은요?”
“없습니다.......”
“뒷문으로 나왔으니 CCTV에는 나오지 않았군요. 그럼 이곳에 다시 올 때도 뒷문으로 왔습니까?”
“네...........”
“그럼 몇 시쯤 이곳에 다시 왔죠?”
“한 9시 50분 쯤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인사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3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는데 2층의 중간 문이 잠겨서 할 수 없이 관리인을 부르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뛰어 오기에 저도 엉겁결에......”
“네, 알겠습니다. 아무튼 당신도 혐의가 있다는 말이군요. 당신의 말을 증명해 줄 사람이 없으니까요. ”
“네.”
그리고 우린 다시 박영철씨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박영철씨는 머뭇거리다 말했다.
“저....사실 저는..........”
“왜 그렇게 말을 얼버무리시죠?”
“저....”
“얼른 말씀해 보세요!! 박영철씨!!”
조희씨의 추궁에 박영철씨는 머뭇거리다 말했다.
“사실....저는 그때 누구를 좀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그게 누구죠? 만나기로 한 사람?”
“....”
“나요!! 형사 나으리!!”
그때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한만수씨였다.
“아....아버지?!!”
민이씨의 말에 만수씨는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조희씨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해서 말이야....”
만수씨의 말에 조희씨는 얼른 말을 이었다.
“그럼 당신과 한만수씨는 3층에 있었다는 것이군요.”
“그래요.”
“하지만 그것은 증언이 될 수 없습니다.”
“어째서요?!!”
“당신도 용의자이니까요. 아무튼 당신과 박영철씨가 유력한 용의자이군요.”
“이봐요!! 어떻게 내가 내 아내를 죽였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만수씨!!”
조희씨는 천천히 한만수씨에게 다가가 그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그리고 또박또박 그에게 말했다.
“당신에게는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저는 이것보다 훨씬 말이 안 되는 일이 말이 되는 일을 많이 보았습니다. 죄송하지만 협조해주시죠!!”
“아...알겠습니다.”
조희씨의 말에 질린 듯 만수씨는 옆에 있는 소파 위에 앉았다. 그는 품 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조희씨는 당당하게 서서 말했다.
“그럼 한만철씨와 박영철씨 그리고 류미화씨는 이 살인사건의 용의자입니다. 잠시 후 개별적으로 질문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서로 의논하는 일이 없도록 경찰관 두 명을 배치하도록 하죠!! 그럼 세 분은 아래 1층의 빈 방에 있도록 하죠. 그래도 되겠습니까?”
조희씨의 말에 진이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1층의 손님을 위한 방이 있으니 그곳을 사용하도록 하시죠....”
“감사합니다. 진이씨”
4. 완성된 퍼즐
그렇게 간단한 심문이 끝나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 2층에 머무르게 되었다. 아직 진범이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기에 잠시만 이 저택에 머물러 달라는 조희씨의 부탁이었다. 진이씨의 신랑될 사람의 부모님은 의자에 앉아 안절부절 못하며 고민하는 듯 했다. 나는 이 집의 가정부로 있는 분숙씨가 가져다준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차근차근 생각해 보았다. 처음 내가 공중에서 춤추는 그녀를 발견한 것은 10시였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다잉 메시지는 도대체 무슨 의미로 그렇게 T.T 라고 썼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범인을 가리키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나는 다시 한번 그 현장에 가고 싶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1층으로 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여보, 어디 가는 거야?”
“왜요?”
“박 형사가 여기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아하하, 당신의 그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니 이 사건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는 모양이군”
“맞아요. 난 원래 호기심이 생기면 나 스스로 그것을 억누르기 어려운 여자잖아요?”
“그럼 같이 가지....리아는 한준 군을 위로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내 말동무 해 달라고 말하기는 애초에 글러먹은 것 같으니까.”
“그럼 그렇게 해요....”
나는 손수건을 들고 준아씨의 옆에 붙어 위로해 주느라 정신없는 딸을 힐끗 보고는 1층으로 내려갔다. 역시 1층에는 많은 경찰들이 있었다. 난 장승처럼 우뚝 서서 경계를 하고 있는 경찰들 중 한 명에게 말을 걸었다.
“저, 죄송하지만 박조희 형사님은 어디에 계신가요?”
“네, 식당에 계십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 경찰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주고는 식당으로 발을 옮겼다.
“아, 저기 있군....그리고 당신이 잘 아는 친구도 있군.”
“그렇군요.”
나는 식당의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뒤적이는 조희씨와 그 옆에서 무언가를 설명해주는 한 젊은 남자를 보았다. 오형훈 형사였다. 단발머리의 카리스마 있어 보이는 조희씨와는 반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그는 엇듯 보기에는 친절한 이웃집 오빠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실버블렛’이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증거로 단번에 범인이 실토하게 하는 유능한 형사였다. 지금도 간혹 방향을 못 잡는 감이 있지만 사실, 4년 전 내 옆집에 살던 청년으로 종종 그의 고민상담도 해 주고 미궁에 빠진 문제에 대한 힌트를 주곤 했었다. 요즘 들어 연락이 좀 뜸해져서 무슨 일인가 궁금했지만 건강한 얼굴을 보니 적잖아 안심이 되었다. 내가 식당에 다가가자 그는 날 바라보더니 놀란 얼굴로 말했다.
“아....아니, 진세화 선생님 아니십니까?”
“그래요. 참으로 오랜만이군요. 그 동안 잘 지냈죠?”
“네, 저야 물론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되다니 정말 놀라운걸요? 그런데 이번에는 선생님의 지혜를 빌리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형훈군?”
“네, 이 사건의 범인은 바로 김단화씨의 남편인 한만수씨와 박영철씨의 공동범행이 틀림없습니다. 증거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는 내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넥타이핀이었다.
“넥타이핀이 아닌가요?”
“네, 그렇습니다. 한진씨에게 확인해 본 결과 이 넥타이핀은 한만수씨의 넥타이핀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이 넥타이핀은 피해자가 매달려 있던 배란다의 창 쪽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 외에 다른 사람이 단아씨에게 가까이 간 일이 없었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이것이야 말로 확실한 증거이지요.”
“그렇군요....”
나는 다시 한번 그 넥타이핀을 보았다. 금으로 도금이 된 넥타이핀은 루비와 다이아로 미세하게 세공이 되어있는 집계형의 핀이었다. 나는 손수건을 꺼내서 살짝 그 넥타이핀을 집어 살펴보았다. 흠집 하나 없이 깨끗해서 그 넥타이핀의 주인의 성격을 잘 나타내주고 있었다. 나는 그 넥타이핀을 다시 형훈군에게 건네어주고 그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시겠어요?”
“네? 무슨 말씀이신지....”
“내 지혜를 빌릴 필요가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네? 서....선생님....”
“나는 위 3층에 올라가서 사건 현장을 살펴보고 싶은데 괜찮나요? 조희씨?”
“아....네, 물론 안 되지만 선생님이시라면 기꺼이 허락해드리죠.”
“고마워요 조희씨”
난 그 말을 끝으로 3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 등을 돌렸다. 그때 형훈군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선생님!! 방금 제가 한 말은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니 조금만 힌트라도....”
나는 그의 말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말했다.
“형훈군, 추리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결정이 나는 것이랍니다. 인과 관계를 잘 생각해 보세요. 그것이 내가 주는 힌트입니다.”
그리고 난 남편과 함께 3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당당하게 문 앞을 지키고 있는 경찰들을 지나서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부터 베란다 까지 최고급 대리석으로 깔려있었다. 그 바닥에 나의 얼굴마저 비추어질 정도였다.
“정말 여긴 세 번이나 와 봤지만 올 때 마다 느끼는 건데 이 단아라는 여자의 취향은 참으로 고상해....”
나의 말에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바닥을 돌로 깔아놓아서 신발을 신고 방으로 들어가야 하는 게 고상하다는 거야? 아니면 이 바닥에 깔린 돌이 대리석이여서 고상하다는 거야?”
“둘 다....”
내 말에 남편은 입을 다물어 버렸지만 여전히 눈에는 웃음이 남아있었다. 난 그 웃음을 외면하며 어질러진 화장대를 보았다. 단아씨가 남긴 그 다잉 메시지는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 화장대 위에서 나는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무언가 빠진 듯한 그런 느낌에 나는 다시 한번 화장대 위를 살펴보았다. 나는 열심히 증거를 찾고 있는 감식반에게 물어보았다.
“저, 이 방에 있는 것 이대로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혹시....이 화장대 위에 있는 립스틱에서 피해자의 지문이 나왔나요?”
“당연히 나올테죠!! 그것은 피해자의 것이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나는 다시 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언가 빠진 듯 한 느낌은 강하게 남아있었다. 커튼의 봉에 매달려있던 단아씨는 이미 차디찬 대리석 바닥에 누워있었다. 난 가만히 그녀를 덮은 흰 천을 들추어 보았다. 얼굴은 목이 졸릴 때의 고통 때문인지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그녀의 머리부터 천천히 살펴보았다. 머리카락은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지만 그녀의 머리에는 푸른색 보석이 박힌 머리장식이 용케도 매달려있었다. 난 옆의 감식을 하는 사람에게 장갑을 빌려서 그 보석을 만져보았다.
“아, 그 보석은 다이아몬드입니다. 블루 다이아죠....그래서 머리에 피가 흐른 것 같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피해자가 뒤로 넘어갈 때 그 보석 때문에 머리에 약간의 상처를 입은 것 같습니다. 화장대 앞부분의 바닥에 넘어져서 생긴 것 같은 흠짐이 있었습니다. 비록 작은 흠짐이지만....”
“아, 고마워요.”
나는 다시 머리에서 넘어가 손을 보았다. 와인 빛의 립스틱이 왼손 손등과 오른손 손가락 그리고 장단지 부근의 보랏빛 드레스에 그어져 있는 립스틱 자국을 보았다. 아마도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다 습격을 받았고 그때 손에 쥐어져 있던 립스틱을 이용해서 메시지를 남기려다 옷과 손에 립스틱이 묻은 것 같았다. 나는 그녀를 다시 단정하게 천으로 덮어놓았다. 한때 미모의 하프리스트로 세계의 남성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그녀였지만 그녀의 죽음은 이렇듯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어? 이게 뭐지?”
“왜? 무슨 문제가 있어?”
“아....손에 붉은 무언가가 묻어서....”
“그래? 어디 봐봐....그게 뭐지?”
난 경찰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고 내 눈은 그들 중 한명의 손에 머물게 되었다. 경찰관의 손에 끼고 있는 흰 장갑에는 무언가 붉은 얼룩이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물어보았다.
“저....죄송하지만 그 손 좀 잠시만 보여주시겠어요?”
“아, 그러죠.”
나는 그 얼룩을 자세히 보았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저, 혹시 피해자를 저 위에서 내릴 때 함께 계셨나요?”
“네, 제가 이 친구와 피해자를 내렸습니다.”
“그럼 피해자의 아래쪽을 잡으셨나요?”
“네, 그랬습니다.”
“감사합니다. ”
나는 그에게서 물러나 단아씨의 옷자락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화장대 앞으로 가서 부딪힌 자리를 보았다. 역시 단단한 대리석이지만 그 대리석에 다이아몬드는 뚜렷한 자국을 남겼다. 그리고 그 대리석의 이음새 부분에서 나는 붉은 자국을 발견했다. 나는 다시 화장대를 보았다. 그리고 머릿속에서는 퍼즐이 짜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덧 완성된 퍼즐 속에는 범인의 모습과 행동 그리고 증거까지 나타나있었다. 분명 범인은 그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의 퍼즐이 잘 짜 맞추어 진 것 이라면 그 증거가 그녀에게 남아 있을 것 이었다. 분명히....그런데 그 다잉 메시지는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 인지 말 수가 없었다.
“여보, 뭘 그리 골몰히 생각을 해?”
“아....그냥....”
“그나저나 뭐 좀 알 것 같아?”
“그럭저럭....”
“참, 내가 말 못한 것이 있는데 이번 주 토요일에 모임이 있어.”
“모임이? 그런데 그걸 왜 지금 말해?”
“아하하....이따가는 까먹을 것 같아서....”
“아무튼 몇 시에 어딘데?”
“저녁 7시에 삼용동에 있는 박세훈 변호사네....알지?”
“그럼 알지!! 잠깐....삼용동?....”
“왜?”
“아....알겠어!!”
“뭘?”
“이제 다 알겠어!! 이제야 모든 의문점이 풀렸어....범인이 누군지 알겠어....”
나는 서둘러 1층으로 내려왔다.
“정말이야? 여보? 정말 누군지 알겠어?”
“정말이라니까!!”
나는 서둘러 내려가 리아를 찾았다. 리아는 아직까지 준이 씨의 옆에 붙어 위로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일부러 큰 소리로 딸을 불렀다.
“리아야!!”
“.....”
“리아야!!!”
내 목소리에 그녀는 마지못해 나에게 왔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왜요? 엄마....”
“그림이 아주 좋구나....그래, 아예 오늘 결혼날짜 잡을래?”
“엄마도!! 지금 상황에서 그런 말이 나와요?!!”
“농담이야!! 농담!!”
“정말 준이씨 안됐어요....이번까지 치면 벌써 어머니 장례식만 두 번이란 말이예요.”
“어? 두 번?”
“네....단아 아주머니는 만수 아저씨의 둘째 부인이래요....”
“그렇구나....정말 내 퍼즐이 맞다면 이 사건을 슬픈 사건일지도 모르겠구나 아무튼 사람들 보고 3층의 피해자의 방으로 모이게 해라. 그리고 경찰 아저씨께 부탁해서 크고 흰 종이 3장만 가져오라고 하렴.”
“이번 사건의 퍼즐을 다 맞추셨군요. 알겠어요. 엄마....”
5. 눈물의 퍼즐 한 조각
“정말인가요? 선생님?!! 정말 이 사건의 범인을 아셨다고요?”
조희씨와 함께 범인들을 대동하고 달려온 형훈군은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럼 어서 밝혀주세요!! 범인이 누군가요? 저 빨리 가서 글을 써야한다고요!!”
난 류미화씨의 재촉에 빙긋 웃음을 짓고 말했다.
“그럼 이제 시작하죠....우선 단아씨는 이 방에 약혼식이 끝나자마자 9시에 옷을 갈아입기 위해 이 방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단아씨가 들어가기 전 약 5분 간 중간 문이 열려있었다고 이 집의 하우스 키퍼인 단숙씨가 증언했습니다. 맞습니까? 단숙씨?”
“네, 맞습니다. 그때 잠시 문을 열어두고 나오는 분들과 인사를 하셨습니다.”
분숙씨는 정성껏 대답을 했고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때 피해자는 이 방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습니다. 그리고 화장대에 앉아 다시 화장을 고치기 시작합니다. 단아씨가 립스틱을 바르려고 할 때 누군가 문을 두드립니다. 입술에 립스틱이 반쪽만 묻어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하지만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단아씨는 가족들 중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것이라 생각을 하고 잠근 문을 열어줍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간문은 이 집의 가족들 아니면 관리인이나 단숙씨 만이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방에 들어 온 것은 가족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은 곧장 그녀의 목을 끈으로 조였고 그녀의 신음소리는 아름다운 음악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숨이 끊어지기 전에 화장대 위에 다잉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뒤로 쓰려졌고 그 충격으로 대리석 바닥에는 흠집이 생겼습니다. 범인은 그녀가 또 다른 무언가를 떨어트렸다는 것을 전혀 모른 채 그녀의 시신을 커튼의 봉에 매달았습니다. 그때 범인은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얼른 그것을 치우고 자신이 훔친 한만수씨의 넥타이핀을 베란다에 떨어트린 후 유유히 그 방을 빠져나갔습니다. 제 말이 맞습니까? 류미화씨?”
나의 말에 사람들의 이목은 류미화씨에게 집중되었다. 그녀는 앙칼지게 소리쳤다.
“난.......난 아니예요!! 내가 왜 그녀를 죽였겠어요!! 그리고 전 오늘 이 방에 들어가지도 않았다고요!! 아시겠어요?!!”
그때 발소리가 들리며 딸의 모습이 보였다. 딸은 하얀 2절지를 가지고 있었다.
“엄마!! 엄마가 부탁하신 것 가져왔어요!!”
“그래, 고맙다.”
나는 그 종이를 받아 한 장씩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세 명의 용의자들에게 말했다.
“그럼 그 종이 위를 그대로 걸어보세요. 그럼 모든 것이 분명해 질 것입니다.”
나의 말에 그들은 머뭇거리더니 당당하게 걷기 시작했다.
“자, 됐습니까?”
“이렇게 걸으면 되는 거요?”
“네, 감사합니다.”
“정말....이렇게 걸으면 되는 거죠? 이렇게 한다고 해서 발자국 따위가 남을 리 없잖아요!! 하이힐은 다 비슷하니까....”
“네, 수고하셨습니다. 하지만 류미화씨....”
나는 그녀를 보면서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보려고 한 것은 당신의 발자국이 아닌 당신의 옷자락의 끌린 곳에서 묻은 붉은 와인 빛 립스틱 자국이었습니다.”
“뭐....뭐라고요?!!”
류미화씨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하얀 종이 위에 선명하게 끌린 자국이 있었다. 붉은 와인 빛으로 조희씨는 그 자국을 보더니 말 했다.
“과연 이 색은 화장대의 그 다잉 메시지를 쓴 립스틱과 색이 같군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류미화씨는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단아씨가 떨어트린 립스틱을 보지 못하고 뭉개버렸다는 것을요.”
“그럼 류미화씨는 나중에야 그것을 발견하고 서둘러 바닥의 자국을 지우고 자신의 신발에 묻은 자국을 지웠다는 것이군요.”
“그래요. 조희씨....그리고 그 뭉개진 립스틱을 화장대에 던져놓을 수 없어서 자신이 챙겼을 거예요. 그리고 그 가방 안에 있을 거예요. 그리고 미처 다 지우지 못한 대리석의 이음새 부분의 립스틱....”
나의 말에 형훈군은 류미화씨의 가방 안을 살펴보더니 무언가를 손에 들었다. 립스틱이었다.
“네,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자국이 있군요....”
“그래요. 류미화씨는 자신의 신발과 바닥의 자국을 지우고 난 후 드레스 자락을 들고 이 방을 나갔을 거예요. 다른 것을 밟지 않도록 조심해서 말이죠. 하지만 복도의 양탄자가 붉은 색 이기에 몰랐을 거예요. 자신의 와인 빛 드레스 자락에 묻은 와인 및 립스틱을....”
나의 말에 만수씨는 그녀에게 소리를 질렀다.
“왜?!! 그녀를 왜 죽였어!! 왜!!!”
“후후후....”
류미화씨는 소름끼치는 미소를 지었다.
“그 이유가 궁금해? 그럼 말해 주지....그녀는 당신을 내게서 빼앗았거든....”
“무슨 소리야?”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 난 한만수 당신을 사랑했어!! 그래서 난 당신과 결혼하고 싶었지....하지만 당신이 첫째 부인과 살고 있었기에 난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좋았어....그렇게 시간은 흘러 그녀와 사별했고 그러한 당신을 위해 난 당신과 결혼할 생각으로 내 남편과 이혼했지....하지만 당신은 날 위해주는 척 하더니 그 잘난 계집애!! 그 김단아!! 그녀와 결혼해 버렸어!! 그때 얼마나 내가 비참한 기분이었는지 알아?!!”
“어리석군....”
“뭐라고?!! 내가....어리석다고?!!”
“당신이 내게 결혼하자고 단 한마디라도 했나?”
“그....그건....”
“그래, 하지만 난 당신이 결혼하자고 했어도 거절 했을거야. 내가 정말 사랑한 여자는 단아였거든....”
“단아....그 기집애가 그렇게 소중해?”
“소중하지....암....소중하고말고....내 첫 부인이자 민이와 진이의 엄마인걸....”
“뭐....? 뭐라고? ”
“네? 아....아버지?!!”
만수씨의 말에 만수씨는 느릿느릿 말을 이어갔다.
“사실....그녀는 나의 첫 번째 부인이었지.......그녀는 나와 너무 차이가 난다고 아버님은 반대하셨고........결국 나와 그녀는 이혼을 하게 되었지....속상해 하는 나에게 두 아이를 맡기며 그 아이들을 볼 때 마다 자신을 생각해 달라고 하더군....그리고 아버님에 의해 미국으로 쫓겨나는 그녀는 내게 꼭 성공해서 올 테니 그때는 반드시 아버님의 허락을 받아 다시 부부의 인연을 이어가자고 했고....내 둘째 부인인 연화가 사고로 죽고 2년 후 그녀는 정말 성공한 하프리스트로 날 찾아왔지....그 수많은 남자들의 구애를 다 거절하고....하지만 그녀는 얼마 전 미국으로 다시 가겠다고 했지....이혼을 해 달라고....물론 난 거절했지만 계속 거절 할 수 없었어....민이나 진이가 자신의 진짜 어머니가 누군지 눈치 챈 것 같은 불안감과 함께 자신의 안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했거든....하지만 그녀가 우려했던 일이 이렇게 벌어졌지만 말야....이럴 줄 알았으면 그녀가 눈물로 호소할 때 그냥 보내 줄 것을 내 욕심 때문에....”
만수씨의 말에 사람들 사이에 정적이 감돌았다. 나는 그 조용해 진 틈을 타 류미화씨에게 말했다.
“단아씨가 남겼던 다잉 메시지인 T.T 는 바로 천안 삼거리의(T) 나무(Tree)를 뜻하는 거 였습니다. 즉 버드나무....류 자를 성으로 사용하는 당신을 가리키는 것이죠. 하지만 이 T.T 에는 또 다른 뜻이 있습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많이 사용하죠....”
“눈물....이죠? 엄마?”
“그래요, 리아의 말처럼 눈물을 뜻합니다. 단아씨는 자신을 죽이려는 당신에게 이렇게 메시지를 남긴 것이죠....당신이 나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서 슬프다는....메시지를....”
그렇게 류미화씨는 경찰차에 태워지고 조희씨와 형훈군은 내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정말 이렇게 번번히 신세만 지니 죄송합니다.”
“아니예요. 조희씨, 경찰을 돕는 것은 훌륭한 시민의 자세인 걸요.”
“그런데 선생님....왜 제게 그 넥타이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신건가요?”
“아...생각을 해 보아요. 형훈군....그 넥타이핀 흠집 하나 없었죠?”
“네....그랬습니다.”
“그럼 이 가슴 높이에서 대리석 바닥으로 떨어진 넥타이핀이 그렇게 흠집 하나 없을 수 있을까요?”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맞아요. 범인은 그 넥타이핀을 떨어트리면 베란다에서 떨어져 자신이 만철씨에게 뒤집어
씌우려던 혐의가 사라질까 두려워 가만히 놔 둔 것이죠....”
“그렇군요....”
“그러니까 내가 항상 말하잖아요? 사소한 것이 추리의 기본이다. 그래서....”
“추리는 사소한 것으로 결정이 난다고 말이죠? 선생님.”
“그래요. 말로만 하지 말고 직접 움직여서!!”
“네, 선생님....”
그렇게 시골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은 붉은 빛을 머금고 있는 달이 보는 가운데 잘 해결되었다. 무심한 달은 여전히 그 저택을 붉은 진주 빛으로 칠하였다.
그렇게 이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가게 되었고 그 기억이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의 집은 점점 크기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신부의 어머니로 예식장 안에서 한만수씨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다만 내가 만수씨를 사돈이라고 부를 뿐 이었다.
첫댓글 제가 쓴 자작소설!! 좀 허접하지만 그래도 읽고 평가해 주세요!!
결말이 좀 거시기하지만 스토리는 잼있었3~
아하핳;;
아직 다 못 읽었는데 재미있을 것 같네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