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805 주일낮설교 / 충만교회 민창근 목사
요 6:60-71 /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3)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근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2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64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65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 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7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71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
*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말씀(비유 중심)을 드리고 있다(12번째).
* 이 말씀은 예수님의 7대 표적 중 4번째인 오병이어 표적과 연결되는 말씀이며, 가버나움 회당에서 하신 말씀이다.
가버나움이라는 도시는 예수님의 많은 기적에도 불구하고 불신앙적인 요소가 있어 책망받은 도시였다.
갈릴리의 사람들은(특히 유대인들) 오병이어 표적을 통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메시아 오기 전의 선지자로 보고, 정치적 임금으로 세우려고 하고, 표적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동물이 먹이나 사료를 만족하게 먹는 수준밖에는 예수님에 대하여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예수님은 그들의 문제를 지적하시면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인치신 자이며, 하나님의 보내신 자라는 것을 정확하게 말씀해주셨다.
지난주에는 잘못된 신앙 4가지도 말씀드렸다. - ① 이론적 신앙 ② 기복신앙 ③ 심리적, 일시적, 감정적 신앙 ④ 종교적, 습관적 신앙
-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일은 단수로, 복잡한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믿는 것이 중요함을 말씀하였다.
율법적 고정관념은 뭔가 많이 해야 할 것처럼 생각되지만, 구원의 역사에서는 많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 하나면 된다.
따라서 ; "오직 믿음", "오직 예수"
결국 중요한 말씀은 두 가지였다.
35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40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 1) 영생을 얻고자 하면 예수님께 와야 한다(35절).
2) 영생을 얻고자 하면 예수님을 보고 믿어야 한다(40절).
* 오늘 말씀
기독교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가는 것이다.
참 믿음은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다.
거짓 믿음은 우리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 우리의 생각이나 판단을 따라가는 것이다.
거짓 믿음은 예수가 아니라 목사를 따라가거나, 다른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외, 성경에서 말하는 문제가 있는 믿음 - ① 헛된 믿음(고전 15:14,17) ② 일시적 믿음(눅 8:13) ③ 연약한 믿음(롬 14:1) ④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약 2장) ⑤ 적은 믿음(마 6:30) ⑥ 분열의 믿음이다. (예,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 고전1장)....
....짝퉁시대인데, 가짜 믿음도 있을 것이다.
*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가슴아픈 모습과 아름다운 모습, 두 가지를 보게 된다.
1. 가슴아픈 모습
오병이어 표적 후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하니까 예수님이 그들을 피해 숨으셨고(15절), 정작 예수님이 말씀으로 올바른 의미를 말해주니까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못하였다.
더군다나 큰 의미에서의 제자들 중에서도 이 말씀을 "어렵다"고 판단하여 예수님을 떠나갔다는 사실이다.
- '어렵다'(헬, 스클레로스)는 '스켈로'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딱딱하다, 거칠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말씀은 구약에서 하갈을 내보내라는 사라의 요구에 대해 '깊이 근심이 되었'던 아브라함의 마음에 쓰였다.
사라의 학대로 인해 도망쳐 나갔던 하갈을 집으로 돌려보낸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갈을 데리고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사라의 말을 따라 하갈을 내보내어야 하는가?
이 어려운 문제 때문에 아브라함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님은 하갈을 내보내라고 허락해주심으로 아브라함의 고민을 덜어주셨다.
→ 오늘도 하나님이 여러분의 고민을 덜어주시길 바랍니다!
넓은 의미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고민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60절)
- 듣다는 것은 구약적 말(히브리어)로는 "쉐마"이며, 헬라어로는 '아쿠오'인데, 쉐마와 마찬가지로 '듣다'라는 뜻과 '순종하다', '깨닫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일반적인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믿음을 올바로 가지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 말씀이 고민되게 하는 것이다.
의사를 믿으면 의사가 하라는 대로 따른다. 치료받는 과정과 치료처방까지 하라는 대로 한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는다면 그분의 모든 것을 믿고 따르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안 따르게 될 것이다.
결국 예수가 생명의 떡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자들은 수군거리다가 떠나가고 말았다.
61절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 이 말씀은 영어성경에서는 "이것이 너희에게 화나게 하느냐?"고 번역을 했고, 헬라어('스칸달리조')적으로 말하면 '새나 짐승을 잡기 위해 파놓은 함정과 올무'를 가리킨다.
전체적으로 이 말씀은 예수님이 그들을 '어려움에 빠지게 하거나, 죄를 짓게 하거나, 유혹하거나, 분노하게 하는 것이냐?'고 묻고 있다.
예수님이 그럴 분이신가요?
62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땅 위에 내려오시기 전에 하늘에 계셨음을 말씀하시면서 자신의 신적 권위를 말씀하셨다.
오병이어 사건에 대하여 믿음의 눈을 가지면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능히 깨달을 수 있는데, 그런 눈이 없기에 이런 말씀까지 하셨다.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 랍비들은 율법만이 생명을 주는 것으로 믿었지만, 율법은 완전히 지킬 수 있는 자들에게 생명을 보장한다. 하지만, 인간은 연약하여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기에 외부로부터 생명을 받아야만 영적으로 살수가 있다.
이 생명을 주시는 분이 예수라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이른 말은 '레마'로 '생명력있고 창조적인 말씀'이며, 내가 체험한 말씀이다. 즉 예수님은 생명력있고 창조적인 말씀의 근본이며, 직접 체험하신 생명의 말씀을 그들에게 전해주었다. ⇒ 믿으라는 것이다.
~ 하지만 유대인들과 넓은 의미의 제자들은 결국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떠나갔다. 그 이유는
1) 물질주의적인 동기만을 추구하였다.
표적을 구하면서도, 막상 표적을 보여주고 그 의미를 해석주니까 그것은 받아들이지 않고, 또다시 표적을 보여달라고 하고, 오직 물질적인 떡(빵)만을 요구하였다.
- 물질적인 것만을 보고 추구하는 사람은 동물적인 사람이다. 어리석은 사람이다.
어떤 이의 묘비 "정치는 신기루같고, 물질은 아지랑이 같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물질적인 동기만을 가지고 하나님을 따르면 안된다.
(예) 동기의 순수함
두 수도자가 어떤 개울을 건너게 되었다. 그런데 개울가에는 누군가가 자신을 건네주기를 바라는 한 젊은 여인이 서 있었다.
한 수도자는 여인을 못 본체하고 개울을 건너가 버렸고 다른 수도자는 여인에게 등을 들이밀며 말했다.
"업히시지요. 건네 드리겠습니다."하고는 여인을 업고 시내 저쪽에 내려 주었다.
두 수도자는 길을 재촉했는데 좀 전에 여인을 업지 않았던 수도자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게 수도하는 몸으로 여인의 몸에 손을 대다니 자네는 부끄럽지도 않은가?"
여인은 업었던 수도자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러자 다른 수도자는 더욱 화가 나서 동료 수도사를 나무랐다.
"자네는 단순히 그 여인이 개울을 건널 수 있게 도왔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겠지, 하지만 여인을 가까이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의 신성한 계율임을 잊었는가?"
그 수도자는 계속해서 질책을 퍼부었다.
한참후에.. 여인을 업었던 수도자는 계속하여 질책을 하고 있는 다른 수도자를 향하여 비로소 입을 열었다.
"이 사람아 나는 벌써 두어 시간 전에 그 여인을 개울가에 내려놓고 왔는데 자네는 아직도 업고있군 그래"
그 말을 들을 동료 수도자는 자신의 생각이 얕았음을 알고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 한 사람은 욕심없이 좋은 일을 함. / 다른 사람은 욕심을 숨기고 말만 함.
(예) 영원한 것
이탈리아의 밀라노 성당에는 아름다운 세 개의 아치문이 있다.
한 문에는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장미가 조각되어 있으며, 그 밑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기쁘게 해주는 그 모든 것들은 잠시뿐이다."
또 다른 문에는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데 그 밑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그 모든 것들도 잠시뿐이다."
그러나 마지막 한 문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오직 영원한 것만이 중요할 뿐이다."
- 조개껍질이 아름다워도 진정으로 아름답지는 않다. 왜?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생명이 없는 물질, 생명과 연관되지 않는 물질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2)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의 일에 사람들이 책임져야할 부분이 있다고 믿는 율법주의적인 그릇된 신앙 때문에 오직 예수에게 오고, 예수를 보고 믿으라는 말을 믿지 못했다.
그들은 그들의 율법적 신앙, 그들의 고정된 메시아관이란 틀에 예수를 짜맞추려 했다. 예수를 찾기 위해 많은 수고를 하고, 열정을 갖고 방문을 하였지만 표적의 의미를 정확히 말해주시는 예수님을 결국 오해함으로써 떠나갔다.
(예) 신뢰
운동을 좋아하는 신사분이 아침운동을 끝내고 목욕탕엘 갔다. 이른 시간이라 딴 손님도 없고 해서 목욕탕을 전세 낸 기분으로 콧노래를 부르면서 비누칠을 하고 샤워를 하는데 한 사람이 옷장 옆에서 유난히 꾸물대더라는 것이다.
'아니, 저 사람이 왜 옷장 옆에서 저렇게 꾸물대나. 내 옷장 속에 시계가 있는데...'
잠시 후에 그 사람이 탕으로 들어오자 슬그머니 확인하고 샘은 생각이 나서 샤워하다 말고 옷장으로 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탕으로 들어온 사람이 보니까 목욕하던 사람이 갑자기 비누칠을 하다 말고 옷장으로 나가 옷장문을 덜거덕거리는 것이다. 김이 서린 창문이라 똑똑히 보이지 않지만 슬그머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가만 있자, 내 옷 속에는 지금 4,500원이 들어 있는데...'
마음을 조이는데 그 사람이 들어왔다.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다가 인사가 통해서 서로 자기소개를 하게 되었다.
"전 이 동네 교회 목사외다." "아, 그래요? 전 시내에 있는 모 대학의 학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두 사람의 어처구니없는 웃음소리가 목욕탕 천정을 때렸다는 얘기였다.
→ 오해하면서 들으면 그리스도의 이야기도 이상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참고 ; 오해하면서 들으면 '축구감독'의 선수기용과 작전, 판단도 이상한 것이 된다. 또는 심형래 감독의 "디워" - 불교강조한 것이라 기독교가 욕한다고 하는 것들...)
3) 떠나가진 않았으나 남아있으면서 오히려 예수를 믿지 않는 자도 있었다. 바로 가룟유다이다.
가룟유다는 올바른 동기도 아니고, 오해를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다녔다. 그는 돈에 욕심이 있었고, 자기의 생각과 삶을 바꾸지 않았다. 잘못된 믿음을 바꾸지 않았다. 그렇기에 많은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배반하는 제자가 된다.
→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 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예) 영원한 스승
1997년 이야기이다. 사교육비 ‘위험수위’[7]
촌지는 사(邪)교육비
“선생님은 돈에 무관심했고 제자들 보살피는 데만 열중했습니다.”
지난 6월 5일 미국 뉴욕타임스지는 ‘한 교사의 죽음’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사흘 전 자신의 아파트에서 피살당한 뉴욕시 대표적인 빈민가인 브롱스의 태프트 공립고등학교 영어교사 조너선 레빈(31)의 죽음(1997년 6월2일)을 애도했다.
언론재벌 타임워너사 사주 제럴드 레빈의 아들이었지만, 그는 가족들과 떨어져 허름한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면서 하도 총기사고가 많아 금속탐지기를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는 학교에 다니는 가난한 청소년들의 삶을 개조하는 데 헌신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그가 돈에 무관심하고 제자들 보살피기에 온몸을 바쳤다는 한 학생의 말을 인용한 뒤 이보다 더한 찬사가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 대재벌 타임 워너사의 아들이란 신분을 숨긴 채 뉴욕 할렘가의 태프트 고등학교에서 영어의 시작법을 가르치다가 돈을 탐낸 제자에 의해 살해된 조너선 레빈씨(31)가 그 주인공. 돈에 대한 욕심없이 검소하게 살면서 헌신적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던 조너선의 바램과는 달리 '코리 아서'라는 제자는 돈에 눈이 멀어 선생님을 죽이고,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다가 cctv에 잡히는 바람에 잡혔다.
조너선 레빈 선생님은 봉급을 털어 문제아들과 뉴욕 양키스의 야구 경기를 함께 즐기기도 했고, 고급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 음식을 사주며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성적이 오른 학생에게는 옷이나 책을 사주었고 성적이 부진한 학생은 점심시간을 쪼개 특별지도를 한 다정다감한 선생이었다.
학생이 결석하면 집에 전화를 걸었고, 문제학생에게는 "무슨 일이 있으면 상의하자"며 집 전화 번호를 알려주었다. 범인도 그런 문제학생의 하나였고, 몇 푼 안되는 현금이 범행 동기였기에 더욱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한다.
그 사랑과 그 헌신, 그 검소함과 열정을 모두 몇 푼의 현금에 대한 욕심으로 날려버린 제자의 모습. - 이러면 안되겠다.
2. 아름다운 모습
가슴아프게 많은 이들이 깨닫지 못하고, 오해하며, 믿음을 버리고 공개적으로 떠나갔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도 가려느냐"(67절) - 이 말씀은 "너희도 역시 떠나가려는 것은 아니겠지?"라고 묻는 것이다.
이때 베드로는 놀라운 고백을 하였다.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
- 베드로는 예수께서 영이요 생명으로 하신 말씀(레마)을 믿고 예수님을 영생의 말씀(레마)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베드로를 포함한 12제자는 오병이어 사건을 경험한 이후에 갈릴리 호수를 건너오면서 풍랑속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5번째 표적)을 보았다. 이때 베드로는 물위를 직접 걸어보는 체험을 하였고, 예수님이 배에 타시니 바람과 풍랑이 잠잠해는 것을 보면서 모든 제자들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고 고백하였다(마 14:22-33).
내가 직접 체험한 주님의 능력이 있었기에 확신을 가지고 베드로는 놀라운 고백을 한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내가 체험한 말씀이 살아 있었다.
(예) 얼음위의 신앙
남부 지방에 사는 어느 청년이 한겨울에 북쪽의 와이오밍에 사는 자기 친구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날씨가 영상 5도 가량 올라간 어느 날 오후에 둘은 차를 타고 시골길을 가게 되었다. 꽁꽁 언 호수를 보고 그들은 차를 세워놓고 호수를 구경하기로 했다.
와이오밍에 사는 친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호수 한가운데로 뛰어 들어갔으나. 남부에서 온 친구는 조심스럽게 얼음 위를 걸으면서 호수 가운데로는 가지 않고 호숫가에서만 있었다. 그것도 발끝을 세우고 조심스럽게 걸어다녔다.
그때 커다란 차소리에 그 친구가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니 그 지방의 농부가 커다란 트랙터를 몰고 호수 한가운데로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 순간 그는 발끝을 세우고 서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농부가 트랙터를 타고 있는 그 똑같은 얼음판 위에 자신은 발끝으로 서 있다니.
무엇 때문에 이런 차이가 생겼는가. 그것은 그 지방의 농부는 호수의 얼음을 알고 있었고 그 남부 청년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같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의지할 만한 분이신지 모르기 때문에 그와의 관계를 발끝으로만 맺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하나님과 만나는 정규적인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그의 말씀을 연구하면서. 하루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말하고 그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며. 그를 아는 지식을 늘려가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30분 동안 경건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매우 애를 썼다. 그리고 이 매일 30분의 시간이 나의 영적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도전이 온다 해도 그의 말씀을 연구하며 시간을 보낼 때 나의 신앙은 더욱 자란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신실하심을 확신하게 되어 두려움 없는 모험을 하는 것이다.
⇒ 오늘 우리는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생명의 떡, 영생의 말씀으로 믿고 따라야 한다.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 가지신 영원한 생명과 연합하여 교제하는 자, 예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고 순종과 충성하는 자, 예수님을 올바로 고백하고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