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
류 근 만
지난 삼월 셋째 주 주말, 이른 아침에 어줍게 농장엘 갔다. 마음이 선 듯 내키지 않아서다. 무슨 죄라도 진양 자꾸만 두리번거렸다. 혹시라도 날 지켜보는 이는 없는지? 이른 아침이지만 빨간 완장을 찬 감시자나 깃발을 꽂은 오토바이가 들이닥칠 것만 같았다. 보통 사람은 죄짓고는 못 산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 것인가 보다.
나는 창고 안에서 조심스레 화덕을 꺼냈다.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만든 물건이다. 앞면은 불을 지필 수 있는 아궁이가 있고, 뒤쪽은 연기가 빠지고 바람이 잘 통하라고 구멍을 뚫었다. 서둘러 화덕 안으로 소각할 부산물을 쑤셔 넣었다. 꼭꼭 숨으라고 속으론 당부도 잊지 않았다. 가마솥은 아니지만 육중한 양은솥을 화덕 위에 올렸다. 지하수를 퍼내어 가득 채웠다. 신문지를 욱여넣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검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는다.
나는 마음이 초조하다 못해 이마에 진땀이 난다. 아궁이가 성난 듯 해 보였다. 바싹 마른 잡초며 부산물이 세상을 만나듯 훨훨 타오른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온기가 온몸을 감싼다. 써늘한 아침이지만 온기가 느껴진다. 가슴은 여전히 콩닥거린다. 금방이라도 사이렌 소리를 내면서 날 잡으러 오는 것만 같았다.
봄 불은 여수 불이라고 했던가, 산 근처나 농경지에서 부산물을 소각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기간이다. 적발되면 강력한 처벌을 받는다.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단속이 뜸한 주말, 그것도 이른 아침에 얄팍한 위장술을 자행하는 것은 확실히 범죄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왜 범행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요즈음 산불이 워낙 극성을 부린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모든 홍보 매체가 온통 산불 예방을 호소한다. 올해 3월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은 우리나라 역대 최악의 산불 피해다. 특히 한번 발화된 불은 이상기후로 도깨비불처럼 펄펄 날아다닌다. 불길이 솟으면 걷잡을 수가 없다. 설령 불길이 잡혔다가도 되살아나는 사례가 허다했다.
다행히 내가 지른 아궁이 불길이 잡혔다. 무슨 도둑질이라도 한 것처럼 몸이 후들거린다.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 성난 불길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하다. 흔적만 남긴 아궁이를 보니 옛 생각이 떠 올랐다. 옆에 누구라도 있으면 수수께끼라도 하자고 덤비고 싶다.
“이산 저산 다 긁어먹고 입을 딱 벌리고 있는 게 뭐게”
어렸을 적에 많이 써먹던 놀이다. 아마도 아궁이의 위력을 말하는 것 같다. 아궁이는 아주 오랜 옛적부터 우리 생활과 밀접하다. 한겨울 구들장을 뜨끈뜨끈하게 덮였다. 늙으신 부모님들 허리를 지진 아랫목, 밥을 짓고 목욕물도 데웠다. 안방 아궁이는 어머니나 새색시가 주인이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무엇이 떨어진다.’라는 속설까지 생겼으니 아마도 금남의 구역인지 모른다. 사랑방이나 문간채 부엌은 주로 남성들의 영역이다. 쇠죽을 끓이거나 군불 또는 사랑방에 모이는 ‘마실꾼’들을 위한 시설이다. 새벽까지 온돌이 식지 말라고 아궁이 깊숙이 땔감을 밀어 넣었다.
아궁이 마다 땔감의 용도도 달랐다. 안방 아궁이는 주인처럼 곱고 부드럽다. 솔가루, 낙엽, 농산부산물, 잘게 팬 장작 등 고급스럽다. 반면에 사랑방 아궁이는 군불을 지피는 대형 가마솥이다. 위풍도 당당하다. 땔감도 고주박이, 청솔가지, 억센 가시나무, 통나무 장작 등 거칠다.
머슴이 산에 가서 땔 나무를 구할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마님이나 새색시가 아궁이에 불 지필 때 쌍욕이 나오면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눈칫밥 먹는다.
사랑방 아궁이는 하마 입처럼 딱 벌리고 무엇이든 가리지 않는다. 고운 그것보다는 억센 것, 거칠어도 덩치가 크고 오래 타는 것이 대접을 받는다. 아궁이의 위력은 대단했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대체 연료가 없으니 애꿎은 안산 뒷산 나무들만 홍역을 치렀다. 전 국토의 70%인 산림을 발가벗겼다. 비만 오면 황토물에 휩쓸려 나간 피해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도로나 교량, 열악한 농경지의 시설이 비만 오면 둑이 터지고 다리가 물에 잠기고 온통 물바다가 됐다.
나도 장마 때면 학교를 가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동천포 내가 넘치면 제방에 선생님들이 늘어서서 ‘학교 오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 하시면서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셨다. 주범은 아궁이였다. 60~70년대는 헐벗은 산에 옷을 입히는 운동이 불꽃처럼 번졌다. 초등생들도 참여했다. 싸리나무 오리나무 아카시아 씨앗을 숙제 물로 가져가야만 했다. 나라의 지도자를 잘 만나서 산림녹화 실천이 오늘날의 금수강산으로 변했다. 철 따라 갈아입는 알록달록 산천이 얼마나 가슴 설레는지 모른다. 아궁이로 발가벗겨진 산림(山林), 산림녹화 사업으로 이룩한 금수강산, 불조심으로 기리 보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첫댓글 류근만 수필가님의 수필 <아궁이>를 읽고 갑니다.
작가의 아궁이 단상 잘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들어와서 죄송합니다
류근만 수필가님의
수필을 읽으며
어린시절에
전북 익산 이모님댁에서 잠깐 살며 보았던
아궁이가 주마등처럼 기억을 끄집어 내며 아궁이의
환상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민둥산- 사소한 불씨 하나가 어린시절 추억을
송두리째 파괴하며
농사를 짓던 소박한 농민의 삶터를 짓밟고 우리나라 경제를
우리나라 살림 전체를
힘들게 합니다
모두 각성 해야겠습니다
불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