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 이탈리아의 볼타가 배터리를 만든 이후 세상에 처음 등장한 자동차는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였다. 당시까지는 석탄을 태워 사용하는 증기 기관이 유일한 엔진이었기에 이 큰 증기 기관으로는 작은 자동차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뒤에 미국의 포드가 배터리 대신 석유를 사용하는 내연 기관을 자동차에 도입하면서 전기차는 세상에서 한동안 사라졌다. 그런데 그렇게 사라진 전기차가 최근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지금 등장한 전기차는 납 축전지라는 배터리를 사용한 초기 전기차와 달리 리튬 이차 전지라는 배터리를 사용한다. 전기차에 들어가는 이 리튬 배터리 기술은 현재 우리나라가 가장 앞서 있다. 물론 수량으로는 중국이 가장 많이 생산하지만 그것은 저렴한 가격과 중국 국내용 소비 때문이다.
리튬 배터리는 리튬이라는 원소가 양극과 음극 사이를 오가면서 전기를 저장하고 또 전기를 내놓는 원리로 작동한다. 리튬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금속이다. 무게가 종이를 만드는 탄소의 절반밖에 안 된다. 종이보다 가벼운 금속인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100여 개의 원자 중에서 수소와 헬륨에 이어 세 번째로 가볍다. 그러니 가벼운 배터리를 만드는 데 리튬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 리튬은 물이나 공기를 만나면 엄청난 열을 내면서 폭발적으로 반응한다는 데 있다. 이런 이유로 처음에는 배터리로 사용하기 어렵다고 여겼으나 리튬을 금속이 아닌 이온 형태로 넣는 기술을 개발함으로써 안전을 확보하고 상업화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리튬 배터리를 더 정확하게는 리튬 이온 배터리라 부른다. 이 리튬 이온 배터리는 2019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인류의 삶을 바꾼 중요한 기술이 되었다.
본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 위한 자료 이미지 입니다.
1990년대 후반 상업화된 리튬 배터리 덕분에 인류는 21세기 들어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사용하는 이동형 전자 기기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전자 기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자 기기에서 성공 이후 리튬 배터리는 단시간에 더욱 큰 배터리 용량을 요구하는 전기차에까지 적용되기에 이르렀다. 전기차에는 휴대폰의 4-5천 배나 되는 분량(혹은 개수)의 배터리가 들어 있다. 이론적으로는 안전한 기술이라 하지만, 수천 개의 배터리 중 하나만 잘못되어도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여전히 리튬이라는 물질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기차에는 BMS(battery management system)라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을 넣어 각 배터리를 모니터링하고 문제가 되는 배터리의 작동을 차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리튬 배터리를 사용한 전기차 기술은 여전히 초기 단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실제 전기차에서 일어나는 배터리로 인한 화재의 원인을 아직은 잘 모른다. 이번 인천 전기차 화재도 차량이 전소돼 버리는 바람에 정확한 원인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신기술이 시장에 나올 때는 기존의 기술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다행히 전기차는 기후 위기와 환경 이슈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각국 정부의 전폭적인 재정적, 제도적 지원을 받으며 시작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친환경을 강조하여 좋은 점만 지나치게 부각시킨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급하게 전기차 도입 목표 달성에만 신경을 쓰느라 다양한 검증과 안전 규정 등을 간과한 점들도 있어 보인다. 여기에 글로벌 자동차 회사끼리 전기차 브랜드의 조기 선점을 위해 더 저렴한 전기차를 생산하기 위한 경쟁이 극심하다. 신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사활을 건 싸움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로 인해 더 싼 배터리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다 보니, 최근 들어 안전이나 다른 차세대 기술 등에 대한 관심은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결국 리튬 배터리 전기차가 여전히 초기 기술이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다들 사활을 걸고 앞으로만 내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모든 기술은 초창기에 심각한 문제점들을 노출한다. 언제나 그래 왔다. 이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갈 것인가의 과제가 기술 선진국으로 가려는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초기 기술이라 외국 사례를 가져올 곳도 없다. 단기적 대책뿐 아니라 장기적 대책들마저도 이제 우리 힘으로 고민하고 직접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전기차 화재는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점들을 많이 제공해 준다. 돌이켜 보면 산업계나 학계나 일반 소비자나 전기차 등장과 함께 신산업으로서의 배터리에 너무 큰 기대를 한 점이 있다. 그 결과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가 배터리나 전기차 회사들의 주가에만 관심을 기울이면서 자연스럽고 당연한 기술적 검증과 과정을 간과한 점이 있다. 경제 성장과 경제적 이익에만 몰두한 것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라도 다시 차분히 이 기술의 장단점을 논하고 문제점을 해결할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배터리 전기차는 화석 연료의 지나친 사용을 막기 위해 인류가 개발한 소중한 기술이다. 지금까지는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라는 말을 사용해서 지구의 기후 위기를 설명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지구가 펄펄 끓는다는 글로벌 보일링(global boil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 기후 위기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올여름 우리가 겪었던 설명하기 어려운 이 무더위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화석 연료의 사용을 대체할 전기차가 이 기후 위기를 어느 정도 늦춰 줄 좋은 대안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경제적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무조건 밀고 나가서는 안 된다. 차분히 그리고 충분히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고 거기서 더 발전시켜 나갈 시간과 지혜가 필요하다. 길을 잃으면 잠깐 멈추고 오던 길을 되짚어 봐야 한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