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덥지근한 불볕 더위가 절정에 이른 듯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서 땀물 푝포가 흐른다.
시원한 계곡도 그립고, 바다도 좋지만, 일요일을 맞아 밭으로 향하였다.
별로 기대도 안하였던 아내도 같이 가자고 하며 저녁까지 도시락 4인분을 준비해서 챙긴다.
반송으로 경유하여 톱마트에서 이것저것을 준비하고, 밭에 가니 11시가 되었다.
대강 둘러 보니 고추도 여전히 주렁주렁이요,
일주일 전에 예초한 풀도 제법 자라 또 한번의 이발을 보름 후에는 해야 될 지경이다.
풀 사이로 큼직한 호박이 몇 개나 자라고 있으니 또 호박나물을 질리게 먹어야 할 지경이다.
간단히 둘러 보고 목을 축인 후에 예초기를 가동하였다.
만일에 대비하여 안면보호구와 정강이 보호대를 착용하였으니
데모대와 싸우는 전경의 모습이라고 아내가 웃는다.
연료를 7회 펌핑하고, 초크레버를 내리고 줄을 당기니 두 번만에 간단히 시동이 걸린다.
오늘은 개울 건너 아래편의 잡초를 베려고 하였다.
한번도 예초를 하지 않았더니 키가 무려 1.5미터씩이나 자라 호랑이가 나올 정도로 무성하기만 하다.
쑥대가 무성하긴하나 비교적 잘 넘어 가는데, 국수처럼 가느다란 풀이 많은 곳은 엉켜서 제대로 하기가 힘들다.
풀밭이 아니라 작은 나무숲을 베어 내는 느낌이다.
흐르는 땀을 닦아 가면서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작업하였더니 제법 많은 넓이를 베었나 보다.
힘들게 예초를 하는 이유는 보름 후에는 경운기로 갈고 이랑을 만들어 밭과 과수원의 모습을 갖추려 함이다.
아래밭이 1,100 평이 넘으니 꼬박하면 이틀이면 가능한데, 양손이 다 떨리고 저려 나머지는 점심 후에 하려고 하였다.
나중에 경운기로 갈고 다듬을 예정이기에 대충 잘랐습니다. 그냥 하면 경운기도 걸려서 움직이기 힘들기에.....
점심을 먹기 전에 아내가 등물을 쳐 준다. 아무도 보는 사람도 없으니 홀라당하여 목욕을 해도 좋으련만 또 땀에 젖을 것이라
간단히 등물만 하였어도 뼈속까지 시리다. 몸이 늙은 탓인가, 물이 차가운 것인가....
웃통을 벗고, 점심을 먹었다. 준비해 간 미역국과 풋고추를 현장에서 따고, 막장에 찍어 먹는 소찬이지만 별미가 아닐 수 없다.
점심과 반주를 곁들이어 먹고 나서 잠시 쉬는데 북서쪽 하늘이 흐리고 안개가 밀려 오는 듯하다.
일기예보는 영남에 비 온다는 소식이 없고 중부지방만 비가 온다던데....
아무래도 비가 올 것 같은 느낌이라 텐트하우스 옆의 빈터를 갈아 놓고 넣기로 하였다.
보름 뒤에 상추나 무우, 대파를 파종하려고 한다.
힘들게 경운기를 가동하였다.
지난 주에 혼자 경운기를 연습하다 언덕길에서 클러치를 잡아 방향을 잡으려다 오히려 반대로 돌아가서 곤욕을 치렀다.
경사길에서 경운기를 잘 처박는 이유는 속도가 빨라지고, 조향 클러치를 평지와 같이 잡았다가는 반대로 굴러 가기때문이다.
평지에서는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클러치를 잡으면 그 쪽 바퀴는동력이 끊기어 돌지 않고 반대쪽 바퀴가 움직여 회전이 되는데
언덕길에서는 끊긴 쪽 바퀴가 더 빨리 굴러 가기에 반대로 돌아 가는 것이다.
그 이유와 원리는 알면서도 순식간에 닥치니 브레이크 잡을 여가도 없이 옆 개천에 처박히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살금살금 아주 조심하여 브레이크를 미리 잡고 운전하였더니 다행히 사고는 나지 않았다.
그런데 6미터 정도를 대여섯번 전후진하여 로타리하여 놓고 창고에 안전하게 주차하고 나니 열쇠가 안 보인다.
시동모터식이라 일단 시동이 걸리고 나면 키가 필요가 없는데, 자동차처럼 키를 걸어 두고 운전하였는데, 중간에 떨어져 밭에 묻힌 모양이다.
키에는 차 열쇠와 창고, 아파트및 여러 열쇠가 뭉치로 되어 있어, 없으면 창고도 잠글 수 없고, 차도 몰고 가지 못할 형편이니 큰일이었다.
더구나 천둥번개가 요란하고 비도 강하게 쏟아진다.
무조건 찾아야 하기에 로타리 친 밭을 쇠스랑으로 일일이 긁어 보나 나오지를 않는다.
30분 동안 찾아도 나오지는 않고, 차량의 창문은 시원하라고 조금씩 열어 두었고...비는 천둥 번개와 함께 쏟아지고.....이를 어째야 하나
한참을 찾아도 찾지를 못하자 아내는 포기하고 집으로 가자고 한다.
집에 가려고 하여도 걸어서 한 시간을 가서 지나가는 버스나 차를 얻어 탈 수가 있더라도,
반송이나 기장으로 가서 집에 갔다가 다른 키를 가지고 오려면 왕복 몇 시간이 걸릴런지.....
차 키가 있어도 비포장 언덕길을 차가 잘 올라 갈 수가 있을런지....번민과 고뇌가 쌓인다.
10분을 그렇게 고민하다 더 찾아보기로 하였다. 이번에는 파라솔로 아내를 씌우고 호미로 하나하나 캐기로 하였다.
아무래도 떨어져서 바퀴에 깔려 깊히 묻힌 모양이라 그 방법밖에 없었다.
여름 폭우 속에 감자캐는 복녀가 되어 버린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 금할 길 없다.
그렇게 해서 15분 뒤, 중간쯤에서 드디어 열쇠를 캐었다. '찾았다' 하는 아내의 일성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그 부분도 쇠스랑으로 긁었는데 역시 깊이 묻힌 모양이었고, 키에는 로타리 칼날에 긁힌 흔적도 나 있다.
그런데 100미터 떨어진 곳에 주차해 놓은 차를 타려니 보통 일이 아니다.
천둥과 벼락 소리가 너무 요란하여 겁먹은 아내는 기다리자고 한다.
차문이 열려 있기에 빨리 가자는 나의 억지 고집으로 파라솔을 쓰고, 천둥속에서 기듯이 자세를 낮추어 가서 차에 올랐다.
십년은 감수했으니 나의 잔여 생애가 앞으로 몇 년이 되려나...
비포장 언덕길도 잘 운전하여 겨우 올라 가다가 생각하니 밭에 여러 가지 그릇과 농기구를 두고 온 것을 알았다.
돈으로 얼마 안되니 두고 가자는 아내를 차에 두고 나 혼자 또 내려 갔다 .역시 천둥과 번개는 요란하다.
오늘 잘하면 과부 하나 나오겠다는 느낌을 간직하며 기듯이 내려 오니 고추밭 그물문도 열려 있고, 삽도, 호미도 널려 있다.
샘터에 담가 둔 그릇과 통조림, 음료수와 술병 , 호박 두 개 등을 챙기고 올라 오니 온몸이 젖었고, 탈진한 듯 피로감이 몰려 온다.
10분쯤 되어 큰 길로 나오니 하늘이 개이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맑아 온다.
아내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 고생을 안하고 시원한 물줄기를 감상하고 느긋하게 즐기고 올 수 있었는데.....
지나가 봐야 소나기인지, 장마비인지 알 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위로해 본다.
마누라 말만 잘 들으면 떡이 생긴다는 아내의 평소 지론이 또 한번 펼쳐 지니 고집장이 나도 더 이상 큰 소리를 내지 못하고
맞다고 맞장구를 치며 흘러간 옛노래를 크게 틀었다.
천둥 번개 속의 감자 캐기와 빗속의 포복 자세....추억의 앨범에 담아 둔다.
빗속에 열쇠 찾는 사진이 없군요. 하기사 사진 찍을 정신도 없었습니다.
허전해서 위의 사진을 이용하여 합성으로 등물 하는 장소를 옮겨 보았습니다.
첫댓글 고생 엄청 많이 하셨네요. 그런데 두 분 모습이 한편의 드라마 같습니다. 아주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ㅎㅎㅎ
저의 고생이 어람님의 재미? ㅎㅎ 재미없다는 말보다야 훨씬 좋습니다. 어람님은 어제 집에만 계셨군요. 밭에 오셨으면 멋진(?) 추억이 되었을 텐데....
샘물님 오해하지 마세요. 어람네 가족은 엄청 고생한 일들을 돌아서면 리얼하고 재밌게 얘기 하는 버릇이 있어 샘물님도 즐겁게 생각하신 듯 하여 그렇습니다. ㅎㅎㅎ
오해라니요? 그냥 웃자고 한 말입니다. 그 정도로는 삐치지는 않습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 고생많이 하셨네요 서울지역도 대낮인데도 밤처럼 어두워지더니 천둥번개가 치면서 폭우가 내렸습니다 어제는 일하다말고 폭우를 만나서 짐챙겨서 오기 바빠서 사진도 못찍고 겨우 몸만 빠져나와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대자연의 힘에 비하면 인간은 아주 보잘것 없고 힘이 없는 존재인것 같습니다
집에 돌아 와서야 북한산에 낙뢰 사고를 알았습니다. 우리도 겁 내었는데 결국 인명사고가 크게 났더군요. 산과 들길을 3번이나 왕복했으니, 저도 통닭구이가 될 뻔했습니다.
등물 하는 사진이 압권입니다..ㅎㅎㅎ...근데 로터리 친곳에 열쇠를 찾아 내었다니... 모래사장서 바늘을 찾은듯합니다..ㅎㅎㅎ..고생 많았습니다 샘물님....
앞으로는 시동을 걸고 나면 열쇠는 빼서 별도로 보관하려 합니다. 시동만 걸리고 나면 열쇠는 필요가 없으니....이렇게 하나하나 경험이 축적되어 가면 차차 알게 되겠지요. 그래도 언덕길 운전은 자신이 없습니다.
전 어제 시원한 계곡찾아 (합천)해인사 갔다가 한 30여분도 지나지안아서 빗줄기가 쏟아져 챙겨서 돌아온다고 번거롭기만하고 입장료 8000원이 아까워 아쉬운김에 합천댐 드라이브로 마음을 달랬답니다,,돌아오는길에 밭에 들렀더니 페허가된 전쟁터 같은 모습에 기가 막혀서..ㅠㅠ 고구마밭이 흔적도 없이사라졌지뭡니까..땅을 깊게 파헤쳐놓고 난리도 아니었죠.커다란 짐승이 왔다갔나봅니다,아직도 모르는것이많은 남편 왈~ "누가 고구마를 다 캐갔노,,이럽니다.ㅎㅎ멧돼지를 사람으로 아는모양여유..~
대부분 고구마는 고라니짓인데...맷돼지까지 덤비나 보지요....
옆지기가 두분이시네요. 합성 실력도 대단하십니다. ㅋㅋㅋ
능력이 그것 밖에 안되어서 ㅎㅎㅎ
경운기에 예초기까지 동워하여 무더운날 많은 일을 하셨군요^^ 점점 농장의 모습이 체계를 잡아가는것 같습니다^^
한 쪽에 예초하고 돌아 서면 다른 쪽이 또 자라납니다. 예초하다가 1년이 지나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