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전쟁사에서 가장 긴 전쟁은 십자군전쟁(Crusades, 1096~1270)일 것이다. 200년 가까이 계속된 싸움이었다. 프랑스·독일·영국 등 서방 기독교 세력이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고자 셀주크 튀르크, 쿠르드 등 중동 이슬람 세력과 싸웠다.
십자군의 태동
십자군이 수천㎞나 떨어진 낯선 땅으로 가서 이슬람 교도들과 싸운 원동력은 신앙심이다. 1095년, 교황 우르바노 2세가 프랑스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십자군을 제창한 것이 시발점이다. 세속 군주보다 영향력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고 판단한 우르바노 교황이 독일과 이탈리아보다 상대적으로 황제의 영향력이 작은 프랑스에서 십자군 원정을 제창한 것이다.
십자군의 태동은 종교적 요인만은 아니었다. 봉건 영주와 하급 기사들은 새로운 영토 지배의 야망에서, 상인들은 더 많은 경제적 이익 때문에, 농민들은 봉건사회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희망에서 원정에 나섰다.
1차 십자군 원정(1096)은 기독교에 대한 신앙심으로 3년 만에 예루살렘을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 덕분에 십자군은 소아시아와 이스라엘에 이르는 넓은 땅에 네 개의 십자군 왕국을 세웠다.
하지만 이슬람교도 다시 세력을 모아 예루살렘을 위협했다. 이에 유럽 나라들은 1147년 2차 십자군으로 맞섰으나 이슬람 군대에 패했다. 이후 이슬람 새 지도자 살라딘이 등장해 지하드(이슬람교의 성스러운 전쟁)를 선언하고 하틴 전투(The Battle of Hattin)에서 기 드 루지앙의 십자군을 크게 이겨 1187년 예루살렘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1184년 2차 십자군 전쟁 배경
영화 ‘킹덤 오브 헤븐’은 1184년 2차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프랑스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다. 아내를 잃고 깊은 슬픔에 잠겨있는 대장장이 발리안(올랜도 블룸)에게 부상한 십자군 기사 고프리(리엄 니슨)가 찾아온다. 그는 바로 발리안의 아버지. 발리안은 부친을 따라 십자군 원정에 나선다. 가던 도중 고프리의 죽음으로 작위를 받아 정식 기사가 된 발리안은 예루살렘에 도착해 나병에 걸린 국왕에게 충성을 서약한다. 그 후 발리안은 왕의 여동생 시빌라(에바 그린)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국왕은 죽는다. 이 틈에 호전적인 교회 기사단의 우두머리 기 드 루지앙이 왕위에 오른다. 기 드 루지앙은 이슬람의 살라딘 군대와 전투(하틴 전투)를 벌이지만 살라딘에게 체포된다.
이어 살라딘은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 성으로 진격해 온다. 남은 병력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발리안은 살라딘 대군에 맞서 싸울 것을 결의한다. 하지만 발리안과 백성들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성벽은 무너지고, 돌연 살라딘이 협상을 요청하자 발리안은 이에 응하며 화해한다.
충차·낙뢰 등 전쟁 스팩터클 선사
영화의 주요 인물인 시빌라, 기 드 루지앙, 살라딘 등은 역사에 이름이 나오는 사람들이다. 명장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들 역사적인 인물에 가상 인물 발리안을 더해 ‘하늘의 왕국은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아닌 백성의 왕국’이란 메시지를 전한다. 발리안이 감독의 메시지인 셈이다. 전쟁으로 아내를 잃은 대장장이 출신 발리안은 줄곧 백성과 병사들 편에서 이슬람교와 화해하려 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한다. 그는 말수가 적고 사려 깊은 인물로 나오는데, 살라딘과 벌이는 전투의 목적은 ‘끝까지 버텨 협상을 유도하는 것’이다.
영화는 살라딘과 전쟁하는 것을 거부하고 예루살렘을 떠나는 영주 티베리아스(제러미 아이언스)의 “예루살렘은 나의 전부였다. 하지만 깨달았다. 신은 핑계였고 목적은 영토와 재물이었다”라는 말을 통해 십자군을 비판한다.
영화는 당시에 쓰였던 칼과 활, 석궁, 장갑으로 둘러싼 공성탑인 충차(衝車), 병사들의 방패와 갑옷 등으로 전쟁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특히 충차로 낙뢰를 퍼붓는 모습이 압권이다.
‘하늘의 왕국은 백성의 왕국’ 메시지 전해
영화는 1189년, 영국의 리처드 1세가 3차 십자군 원정을 나서는 장면에서 마무리된다. 영국의 리처드 1세, 프랑스의 필리프 2세,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가 직접 원정에 참가하는 최강의 기독교 군대가 조직된 것이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1세의 죽음과 필리프 2세의 이탈로 리처드 1세는 전쟁을 그만두기로 하고 살라딘에게 협상을 요청, 3차 십자군 원정이 끝난다. 이후 1270년까지 십자군 원정은 다섯 차례 더 있었다. 하지만 예루살렘을 찾겠다는 본래의 목적은 잊고 왕과 기사, 교황이 서로 권력과 경제적 이익만을 얻으려 했다. 결국 200여 년에 걸친 십자군 원정은 제1차 원정만 빼고 모두 실패했다. 그 후 예루살렘은 이슬람교도들이 지배하게 됐다.
영화의 엔딩 부분, 전장의 한복판에서 발리안은 살라딘에게 묻는다. “예루살렘이 무엇인가?(What is Jerusalem Worth?)”
살라딘은 답한다. “아무것도 아니다(Nothing). 하지만 모든 것이기도 하다(Everyting).” 신을 위해, 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지금까지도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전쟁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