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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달은 생애 꿈같은 나날입니다. 예주를 온전히 독점하며 산지 18일째입니다. 잠자는 시간 빼놓고 온종일 공주 생각만 하고 살았어요. 예주는 아내의 장점을 많이 닮은 것 같아요. 옆 사람을 성가시게 하지 않고 감정 기복이 대체로 많지 않아요. 계획대로 일을 진행시키는 편이라서 복병이 생기지 않고요. 설마 연애 스타일도 지 엄마 그대로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걸 예주가 알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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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 건 부조리는 존재합니다. 카뮈와 샤르트르는'부조리'를 까는 구라쟁이 들입니다. 사르트르는 들뢰즈와 함께 프랑스 출신 철학자로 알고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타자는 지옥이다"는 말을 사르트르가 했어요. 타자는 예전의 내 모습을 고정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항상 변화하고 있는 나를 사물처럼 정적인 것으로 대상화해 내 자유를 부정시키기에 타인은 지옥이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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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한편 내 안의 타자(대자존재)가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집착하게 만들고 이는 불안을 만들어 내기에 타자는 지옥이다고 하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에예공! 타인의 시선 따위에 매몰되는 우리가 아니지. kim's 패밀리 가즈아! 예나 지금이나 먹물들이 공부 하는 척하면서 연애질 한 놈들도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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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프랑스 최고의 엘리트 들 만이 가는 파리 고등 사범 학교를 졸업한 사르트르는 철학 교수 자격 시험을 1등으로 합격했대요. 2등은 소르본 대학을 졸업한 시몬 드 보부아르라는 여인이었는데 둘은 그 시험을 계기로 사랑에 빠졌어요. 그런데 두 사람은 2년간 계약 결혼을 하되, 다른 이성을 사랑할 권리를 인정하기로 하는 뜻밖의 결의를 했다는 구만. 흠, 백년 전에 계약 결혼이라. 상당히 세련된 커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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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둘의 관계는 사르트르가 죽기까지 50년이나 이어졌으니 사랑은 제대로 했어요. 성남 상대원 사는 간호원과 1년 이상 사귄 기억이 있는데 만약 내가 그녀와 잘 됐다면 최소한 홀아비 신세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 얘기는 여기까지.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은 아무 이유 없이 부조리하게 세상에 내던져졌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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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인간의 본질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거야. 정해진 게 없기에 오히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게지. 인간은 자유로운 삶 속에서 자기 스스로 존재와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실존주의는 주체적이며 또한 휴머니즘이라고 사르트르가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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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편으론 스스로 늘 선택해야 하고 또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에 불안하기도 할 겁니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그렇다고 자유 자체를 포기하려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사람입니다. 존재-실존-본질 알쏭달쏭 한 단어 해석이 필요합니다 '본질'이란 한 사물을 다른 사물과 구별시켜 주는 '그것만의 성질'을 말하고 '존재'와 '실존'은 비슷하지만 같은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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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은 본질에 앞선 '현실 존재'란 뜻 같아요.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 '존재'란 실존이 본질을 갖추고 있을 때를 말합니다. 즉,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본질'이 있어야만 해요. 사르트르는 인간이 만든 물건에는 모두 본질이 있지만, 이 본질은 존재보다 앞서 있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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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물도 존재 이전에 본질이 있는데 다만 누군가가 의도한 것이 아니고 그 자체에 본질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과 씨에는 사과나무의 본질이 들어 있듯이 말입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본질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자유롭다고 했어요. 인간은 미래의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 간다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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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사르트르는 "인간 존재는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고 한 것 같아요.사르트르가 말한 1. 왜 세상에 던져졌는가? 2. 불안 그리고 인간의 현존 3번째는 '죽음'입니다. 죽음에 대해 극렬한 불안과 공포를 느낀 적은 없는가?
무심코 채널에서 올가미에 목이 걸린 안 중근의 최후를 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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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역사를 차치하고라도 죽음, 그 섬뜩함 속에서 내가 집착해 온 가치들의 의미를 일거에 말소시키는 강한 힘이 엄습하더이다. 이것이 ‘무(Nichts)입니다. 그것은 익숙했던 주변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어두운 심연을 드러내어 나를 공허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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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명예, 가족, 국가, 권력 등 모든 가치가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린 ‘무아’의 순간, 비로소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고 합디다. 죽음은 근본적인 결단을 촉구합니다. 두려움 속에 회피함으로써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지, 아님 기만적인 가치로부터 스스로를 해방하고, 조용히 말 걸어 오는 존재를 인수할지는 본인의 태도에 달려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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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사멸할 뿐인 다른 존재자들과 달리, 오직 인간만이 진정 ‘죽을’ 존재입니다. 하이데거는 ‘지시 연관’ 속에서 각 존재자가 고유한 존재로 거듭나는 하나의 ‘지평’, 즉 존재 개시 성이 열려 있는 지평을 ‘근원적 시간’이라 했습니다. 지금까지 있어 온 '본래 적 과거'와 '본래적 미래'가 만나, 자신의 진정성을 깨닫는 '본래 적 현재'가 탈 자 적으로 통일을 이루고 있는 ‘하나의 시간 지평’ 이러한 기반 위에서 인간은, ‘존재자를 존재의 다양함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뜻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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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나는 사회가 덧씌운 비본질적 삶을 살고 있을 수 있어요. 존재가 망각 되는 퇴락으로부터, 어떻게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을까? 죽음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고독한 ‘단독자’가 되지만, 혼자가 아닌 다양한 존재자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내 존재’의 현주소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어찌하면 상실감이 낳은 크나큰 고통이, 존재의 충만함으로 치유되는 사건, 존재의 진리가 존재자의 존재 안에서 일어 나는 생기의 사건으로 뒤바꿀 수 있을까요?
2.
"4.20.sat.7도 개추움"
"강아지 벌써 일어난 거야? 부지런도 하셔라. 군대에서는 이런 경우 야외 활동 취소하고 실내 활동으로 대처 해요. 충성!(나)"
"어제 일찍 들어가서 푹 쉬었고 오늘은 실내 활동하렵니다."
"괜찮겠어요? 비너스 죽여주더만. 모나리자 같은 건 한국 전 올 때 봐도 되니까 패스해도 괜찮아요.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면 나는 왜 지금 이곳에 있는가?(나)"
"괜찮아요. 쉬면서 보고 있어요. 모나리자가 한국에 올까요? 우리나라 못 믿어서 안 보낼 걸요ㅎ ㅎ"
"아부진 한국 전 때 보았어요.(나)"
'헉 언제이 었어요 그게. 나 태어난 후인가"
"기억이 가물가물 해서 미안. 샤갈, 마티스, 르노아르, 폼페이까지 셀 수 없이 다 갔어요.(나)"
"호오, 진짜요? 멋지다."
"너의 나와바리 홍대는 여전히 핫플레스구나(나)"
"ㅎㅎ지금 인가요? 비가 와도 사람이 많네 거긴 원래 비올 때가 더 난리에요. 오늘 토요일이구나. 손님 내려주러 갔어요?"
"ㅇㅋ 향수병 달래시라(나)"
" 넌 꿈을 이미 반 쯤 이루었구나. 에고 예쁜 내 새끼(나)"
"허허 그러네요. 내가 프랑스 좋아 했었지"
2024.4.20.sat.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