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들의
황제 대관식
글 김광한
자기손으로 왕관 쓴 보카사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노틀담 성당)
우리나라의 경우 왕정 시대에 임금이 즉위시 임금의 정장인 곤룡포를 입고 머리에 쓰는 것을 면류관이라고 했다.면류관은 스스로 머리에 얹는 것이 아니라 신하들이 쒸워주는 것으로서 임금의 체통을 유지시켜주었다.성리학(性理學)이나라의 질서의 근간이던 우리나라의 경우 체통을 중요시해서 절차에 맞게 썼지 스스로 면류관을 머리에 얹은 왕은 없었다.삼국지에 등장하는 위나라의 조조가 어느정도 나라의 기틀이 잡히자.왕을 뛰어넘어 황제(皇帝)가 되기 위해 마음이 급했다.이를 눈치챈 신하가 조조에게 "황제가 되시기 전에 세번 사양을 해야지 체통이 선다"고 했다.조조는 마음은 급했지만 신하의 말도 일리가 있어서 황제로 즉위하라는 권유를 세번이나 물리치고 네번째 가서야 이를수락,문무백관이 모인 어전에서 황제의 관(冠)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 황제로 노틀담 성당에서 대관식을 가진 나폴레옹은 당시 비오 7세 교황을 면전에 내 세우고 비오 7세가 나폴레옹의 머리에 얹으려는 황제의 관을 얼른 뺏아서스스로 머리에 얹었다.교황이 자리에 있어야 정통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다.지금 루브르 박물관과 베르사이유 궁에 전시되고 있는 나폴레옹의 대관식 그림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장면이 그려져있다.우리가 보는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황제 대관식 관례에 따라 교황이 나폴레옹에게 황제의 홀을 건넨 뒤 왕관을 씌우려 할 때, 나폴레옹은 갑자기 교황이 든 관을 빼앗아 자신이 직접 대관을 해버린다. 그리고 곧바로 부인인 조세핀에게 다가가 황후의 관을 씌웠다. 모두들 아연실색하고 경악했지만, 이 엄청난 사건 앞에 항의할 수 있는 사람은아무도 없었다. ‘모든 권한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이 행사를 주관하다 관을 빼앗긴 교황은 망연자실하여 스스로 자리에 물러나 앉았다. 훗날 그 모습을 스케치한 다비드의 그림을 본 나폴레옹이 “교황이 그냥 의자에서 쉬려고 멀리서 왔겠느냐?”며 다비드를 다그쳐 오른손을들어 강복(降福)하는 장면으로 바뀐 것이다.
중앙 아프리카의 독재자 보카사는 한때 불란서로 유학을 다녀와서 자신도 옛날 불란서 황제처럼 황제의 관을 쓰고 싶었지만 황제란 직제가 현대에와서 거의 없자 대통령에 취임해서 대통령관(冠)을 만들어 쓰고 싶었다. 그래서 불란서정부에 부탁을 해서 대통령관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그런데 대통령 취임식이 다 되어도 맞춘 대통령관이 오지 않자 밑의 부하를 불러다가 호통을치곤 했다.
"이놈들아 뭣들 하는 거야!"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고 합니다"
보카사는 대통령 취임식 이틀전에 도착한 대통령을 위한 특별한 관을 자기 손으로 얼른 얹고 부하들 앞을 팬티만 입고 자랑스럽게 뛰어다녔다고한다.14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보카사는 교복착용에 대해 불평하는 어린힉생 2백여명을 학살하고 도둑질한 사람들을 잔인하게 처벌하는등 잔혹한 학살행위를 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심지어는 인육을 먹었다는 소문도 자자했다.또한 17명의 부인에게서 55명의 자녀를 두었다.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었다.
어느 신흥종교의 교주는 조선조 시대에나 어울릴 면류관을 직접 쓰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금도금으로 번쩍번쩍하는 면류관을 쓴채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교주의 모습을 보면 한심하기도 하고 머리가 돈 사람같이 느끼기도 한데 놀라운 것은 그가 수많은 신도를 거느렸었다는 사실이다.신도들 가운데 대학교수도 있고 장성(똥별)도 있고 연예인도 있었다.그 신도들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인지.미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