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윤·반일 넘어 미국 규탄으로 옮겨붙는 '굴욕외교'
[ 시민언론민들레 | 김성진 mindle1987@mindlenews.com ] 2023.03.12 01:23
강제동원 해법 발표 뒤 첫 집회…"대통령 해고해야"
이태원 참사 유족부터 노동자까지 각계각층서 모여
"역사정의·사법주권 부정한 굴욕적 백기투항" 비판
이재명 "강제동원 뒤에는 일본과 군사동맹 기다려"
시민들, 미 대사관 앞에서 "바이든, 양키 물러나라"
연합훈련 반대하다 체포된 대학생들 석방 촉구 시위
11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 동편에서 열린 ‘’에서 참가자들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3.11. 연합뉴스
윤석열 정권의 강제동원 해법 발표 뒤 맞은 첫 주말, 서울 도심에는 각계각층에서 수만 명의 시민들이 몰려나와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이 '무효'라고 외쳤다. 시민들은 윤석열 정부의 굴욕 외교에도 "강제동원은 없었다(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고 하는 일본 정부의 오만함에 분노했다. 윤 정부의 굴욕적 해법을 환영한 미국에 대해서도 "바이든은 물러나라"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아울러 강제동원 해법 발표 뒤 나온 정치인들의 '친일 발언'에 대해서도 규탄했다.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 중에 지금도 사죄나 배상하라고 악쓰는 나라가 한국 말고 어디 있나"라고 한 윤 대통령의 '40년 지기' 석동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기꺼이 친일파가 되겠다"고 말한 김영환 충북도지사 등을 향해 시민들은 "이 나라를 떠나라"고 외쳤다.
"역사정의와 사법주권 부정한 굴욕적 백기 투항"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6·15남측위)는 11일 오후 3시 30분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강제동원 해법 강행규탄 및 일본 사죄배상 촉구 2차 범국민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범국민대회에는 더불어민주당, 진보당, 정의당, 강제동원사죄 및 전범기업배상촉구 의원모임 등도 동참했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과 경찰 측 추산 1만 명이 모였다. 시민들은 시청광장에서 청계천 방면까지 늘어섰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노동자들도 서울역 앞에서 집회를 마친 뒤 행진해 시청광장에서 시민들과 합류했으며, 시청광장에 분향소를 마련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도 연대의 목소리를 냈다.
외신 기자들도 강제동원 해법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 현장을 취재했다. 시민들은 집회 시작 전부터 "윤석열 강제동원 해법 강행 규탄한다" "강제동원 굴욕해법 폐기하라" "윤석열 굴욕외교 심판하자" "일본은 식민지배 강제동원 사죄 배상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각계 각층의 발언도 이어졌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종철 대표는 "국가의 무능으로 인한 방치로 159명 희생자가 이태원에서 죽었다"면서 "강제동원 피해자 할머니들의 일본 사죄 요구에도 이 정권은 언제나 그랬듯이 사과는 없다는 뻔뻔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강제동원 해법에 대해 "어느 나라 정부의 결정이냐. 진심어린 사과와 피해자 명예회복을 원한다는 우리들의 목소리가, 그저 돈 달라고 떼쓰는 목소리로 들리냐"며 윤 대통령을 향해 "일본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강제동원 배상안을 철회하고 또다시 마음에 상처 입은 피해자에게 무릎끓고 사과하라"고 했다.
6·15 남측위 이홍정 상임대표의장은 "식민 범죄 사실을 부정하고 피해자 사죄·배상을 부정하는 전범 국가 일본에 대해, 피해 당사국인 대한민국 정부가 먼저 나서서 면죄부를 부여했다"며 "역사정의와 사법주권을 부정한 굴욕적인 백기 투항"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박진 외교부 장관은 컵에 물이 절반 이상 찼다고 말하면서 나머지 절반은 일본이 채워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발표 후 불과 3일 뒤에 일본 외무상은 강제동원과 강제동원 노동 사실 자체를 부정했다"면서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잘못은 반드시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11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 동편에서 열린 ‘강제동원 굴욕해법 무효 촉구 2차 범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3.11. 연합뉴스
그는 "신냉전 질서의 강화를 위한 기회를 매개하고 있는 윤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은 반평화적 해법으로, 철회되는 것이 마땅하다"며 "윤 정부의 굴욕외교는 한미일 3각 공조체제의 전방위적 강화를 통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축하려는 미국이 한일 역사 화해를 강제해 온 것에 대한 굴종적 응답"이라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조영선 회장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시작하는 헌법 전문을 언급하면서, 윤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에 대해 "헌법 정신을 짓밟은 위헌적 행위"라고 규탄했다.
조 회장은 "대법원은 이미 2018년 10월 30일 미츠비시, 신일본제철의 불법을 인정했다"며 "행정부는 사법부 판결을 존중해야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정면으로 짓밟고 권력분립을 훼손하고 있다"고 했다. 강제동원 해법의 핵심인 제3자 대위 변제에 대해선 "당사자 의사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조 회장은 "일본 정부와 기업에 바라는 것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잘못한 자가 사죄하고 배상하라는 것뿐"이라며 "윤 정부가 먼저 할 일은 일본으로 굴종하러 갈 게 아니라, 피해자와 영정 앞에 엎드려 사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일본이 우리와 관계를 정상화하고 싶다면 자신들의 과거를 무마시키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철저히 규명하고 사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강제징용 문제는 노동의 문제이고, 강제로 이를 시켰으면 그것은 범죄"라고 강조했다. 양 위원장은 "국민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권에게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면서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 자처하며 나라 팔아먹은 대통령을 국민과 노동자 힘으로 해고해야 한다. 민주노총은 노동자의 해고엔 동의하지 않지만, 이 해고는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혜선 세종여성회 공동대표는 세종시에서 벌어진 '일장기' 관련 사건들을 언급하며, 집회에 참석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제1야당은 당권을 걸고 나라의 국운을 걸고, 나라를 갖다바치려는 작자들에 대해 엄중하게 심판하고 나라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공동대표는 최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을 지적한 뒤, "다시는 남의 나라 군대가 진주하지 않는 자주독립 국가만이 우리가 지키고 원하는 우리의 미래"라면서 "윤 대통령과 그들의 무리는 그들이 말하는 미래와 함께 떠나라"고 외쳤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1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 동편에서 열린 ‘강제동원 굴욕해법 무효 촉구 2차 범국민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3.11. 연합뉴스
"강제동원 뒤엔 일본과 군사동맹 기다리고 있어"
정당 대표들도 윤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을 규탄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치욕적인 강제동원 배상안이 다시 일본에 머리 조아리는 굴욕적 모습을 만들어냈다. 사죄도 배상도 없고 전쟁범죄에 완전한 면죄부를 주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합의문조차 하나 없고, 우리만 일방적으로 일본 요구를, 요구하는 것 이상을 받아들였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국민들은 기가 막히는데, 대통령은 귀가 막힌 것 같다. (대통령은) 피해자들의 상처에 다시 난도질 하고, 국민들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았다"면서 "윤 대통령에게 묻겠다. 대통령 부부의 (정상회담) 초청장 말고 일본이 양보한 것이 대체 단 한 개라도 있냐"고 말했다.
이 대표는 "세계에 자랑할 대한민국이 일본에게는 '호갱'(호구+고객 합성 신조어)이 되고 말있다. 어떤 미사여구로 포장한다고 해도 현실은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며 "이번 강제동원 배상안은 일본에게는 최대의 승리이고 대한민국에게는 최대의 굴욕이 아니겠냐, 경술국치에 버금가는 2023년 계묘국치 아니겠냐"고 했다. 이 대표는 "곳곳에서 친일파들이 '커밍아웃'하고 있다. 대통령 40년 지기라는 사람(석동현)은 배상 안 한다고 악쓰는 나라가 한국 말고 어디있냐고 하고, 충북지사는 아예 대놓고 나는 기꺼이 친일파가 되겠다고 말한다"며 "참으로 기막힌 일이지만 바로 이런 망언이야말로 윤석열 정부의 인사들의 진짜 심정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 대표는 "굴욕적 강제동원 배상안이 강행되면 다음은 바로 한일 군수지원협정 체결이 기다리고 있고, 그 뒤에는 한미일 군사동맹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된다"며 "연합훈련을 핑계로 자위대의 군홧발이 다시 한반도를 더럽히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의 군사외교적 자율권이 제약된 상황에서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냐"며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번 강제동원 배상안을 절대로 그대로 넘어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당장 굴욕적인 강제동원 배상안을 철회하고 국민과 피해자에게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진보당 윤희숙 상임대표는 "국민들은 대통령이 대한민국 영업사원 1호라고 떠들고 다니더니 결국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분노하고 있다"면서 "이럴 거면 윤 대통령은 월급을 일본에서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직격했다. 윤 상임대표는 "올바른 과거사 청산을 하지 못한 것이야말로 윤석열 정부가 반성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일 아니겠나. 도대체 왜 정부는 빼앗긴 권리 되찾기 위해 싸우는 국민의 편에 서지 않는가"라며 "한일 정상회담과 미국 방문을 앞두고 피해자 권리와 국민 자존심을 조공으로 바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상임대표는 "일본은 3일 만에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어주고 뒤통수 맞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며 "국민과 이 나라의 주권을 지키지 못하는 동맹이 무슨 소용이냐. 대의도, 실리도 없는 맹목적인 한미일 동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외쳤다. 윤 상임대표는 "국민의 뜻을 거스르고 역사정의를 훼손한 권력이 그 임기를 다 마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분노한 국민들과 함께 반드시 강제동원 해법을 무효로 만들고 윤 정권을 심판하도록 싸우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11일 오후 서울시청 광장 동편에서 열린 ‘강제동원 굴욕해법 무효 촉구 2차 범국민대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관련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3.11. 연합뉴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일본을 향해 "식민지배는 합법적이었다고 오히려 큰소리를 떵떵 치고 있다. 때만 되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가고,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가 발언대에 오르자 시민들은 정의당이 당론으로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것에 대해 항의하며 "내려와" 내려와"를 연신 외쳤다. "너나 잘해라" "정의당 해체하라" 등 시민들의 격한 항의가 이어지면서, 현장에서는 이 대표의 발언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란이 일었다.
이날 집회에서는 소리꾼 김정은 씨와 가수 문진오 씨의 노래 공연, 충남홍성민예총 윤해경 지부장의 강제동원 진혼무 공연 등이 무대에 올랐다. 집회 말미에는 프로젝트팀 '잇다'가 '독립군가'와 영화 '레 미제라블' 주제가 '민중의 노래'를 불렀다.
미국 대사관 앞서 "바이든 물러나라, 양키 물러나라"
오후 5시부터 서울 지하철 시청역~숭례문 앞 대로에서는 '30차 촛불대행진'이 열렸다. 이날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5만 명이 참석했으며, 유튜브 등 온라인으로도 1만 6000명이 집회를 지켜봤다.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시민들 수천 명도 집회가 끝나자마자 촛불대행진으로 합류했다.
촛불시민들은 강제동원 해법을 규탄하는 의미에서 '친일역적 윤석열' '제2의 이완용 윤석열' '검찰독재 윤석열' '평화파괴 윤석열' 등이 적혀 있는 대형 현수막을 찢는 의식을 가졌다. 현수막에는 윤 대통령의 사진이 합성된 일장기와 욱일기 등이 그려져 있었다.
오후 6시 30분부터 서울도심 행진도 진행됐다. 시민들은 미국 대사관 앞에서 "매국적인 강제동원 해법 지금 당장 철회하라" "일본에 면죄부 준 윤석열 정권 물러가라" "제2의 이완용 윤석열을 몰아내자" "한미일 전쟁동맹 결사반대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민들은 "바이든은 물러가라" "양키는 물러가라"고 외치기도 했다.
일본 대사관 건너편에서는 함성을 외치며 "일본은 지금 당장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또 수만 명의 시민들이 윤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욱일기 종이를 찢는 '일본 대사관 항의 행동'을 했다. 욱일기를 찢은 뒤 시민들은 '독도는 우리 땅' 노래를 부르며 행진을 이어갔으며, 오후 8시 5분쯤 시청역 앞에서 해산했다.
11일 오후 서울 지하철 시청역~숭례문 앞 구간 대로에서 열린 '30차 촛불 대행진'에서 시민들이 '제2의 이완용 윤석열'이라고 적힌 대형 일장기를 찢고 있다. 2023.3.11 사진 이호 작가
한편 이날 오후 10시부터 서울 용산 경찰서 앞에서는 한미 연합훈련 반대 시위를 했다가 체포된 대학생들을 석방하라는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소속 학생들은 오후 10시 45분 현재 용산서 앞에서 "비인권적이고 강압적인 경찰의 행동을 규탄한다"며 경찰의 체포에 항의하고 있다.
앞서 대진연 소속 회원 18명은 전날 용산 한미연합사령부 게이트를 돌파해 사령부 건물 현관 앞에서 훈련 반대 시위를 하다가 체포됐다. 이들은 용산서를 비롯해 강서서, 마포서, 남대문서, 양천서 등에 분산 수용됐으며, 유치장에서 단식 투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