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첫 월드컵
94년 미국 월드컵. 당시 8살이었던 나는 국민학교(이 때까지는 국민학교라 불렸음) 1학년에 들어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애였고 노는 것도 어떻게 놀아야 할 지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는 참 바보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 때 TV에서 월드컵 하면서 떠들었다. 어린 나이라 축구라는 것도 모르고 월드컵이라는 것에 대한 호기심도 없었다. 공놀이가 왜 재미있는 지 몰랐던 그 때.
어쩌면 내가 지금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가 되었을지도 모를 위대한 사건. 월드컵 본선에서 보았던 수 많은 축구 선수들의 플레이. 당시 나에게 있어선 우리나라 대표팀의 성적보다 저들이 축구라는 스포츠에 내던지는 무한한 열정에 매료되었다. 공 하나에 움직이는 수 많은 필드 플레이어와 그 공을 막으려는 골키퍼. 그 모든 것이 새롭고 자극적이어서 한 동안 축구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반 친구들과 공을 차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우리팀과의 경기 외에도 루마니아, 불가리아, 스웨덴 등 돌풍을 일으킨 팀들의 경기를 참 재밌게 봤다. 루마니아의 게오르게 하지, 불가리아의 스토이치코프, 스웨덴의 라르손. 그 때는 유럽축구를 몰라서 저 선수들이 어디서 뛰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플레이 하나하나에 순수히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지금처럼 정보가 많은 상태에서 그 때 경기를 봤다면 국대에선 클럽과 이런 점이 다르다면서 분석하느라 정신이 없을텐데. 정말 이 때는 축구 자체를 순수하게 즐겼던 시절이다.
한국과의 경기를 집에서 보며 16강 가능성이 높다던 그 때의 말들이 기억난다. 그 때는 참 골이 왜 그렇게 나기 어려웠던가. 볼리비아 전에서의 안타까움은 동네 아저씨들이 분노하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그 날은 울분을 달래려 온 아저씨들 때문에 장사가 잘 되었다는 후문도 있다.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최종 성적은 2무 1패. 그래도 저번보단 훨씬 잘했다고 대부분 칭찬을 했다. 이처럼 나에겐 16강에 가는 건 우리에겐 꿈이라고만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98년.
2. 안타까웠던 98년
한창 IMF 사태로 시끄러웠던 98년이었다. 국가적 위기 때문에 뒤숭숭한 때라 월드컵에 거는 기대 또한 남달랐다. 역대 최약체라 불리며 본선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있었지만 드라마틱한 승부를 통해 본선에 당당히 진출했다. 그 때 친구들은 멕시코에 이기고 네덜란드에 지고 벨기에와 비기며 16강에 간다고 예측을 했다. 물론 이 성적을 내도 떨어질 가능성은 있긴 했지만.
멕시코 전에서 처음으로 선제골을 넣었을 때만 해도 기쁨에 젖어 이대로만 경기가 끝나길 바랬다. 물론 다들 알다시피 이 경기는 3:1로 우리가 패배했다. 그래서 지난 월드컵을 회상해 보았다. 아, 그 때처럼 가지 못하겠구나 하고 어린 마음에 생각해버렸다. 이런 내 마음과 정 반대로 흘러가길 바라긴 했지만 네덜란드에게 5:0 참패. 이 때 학교 숙제로 네덜란드전을 보고 난 감상을 적어오라고 했는데 5명 정도만 제 날에 제출을 했다. 그리고 제출된 숙제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던 건 16강이란 건 힘들다라는 것.
마지막 벨기에 전의 투혼을 보며 속으로는 '왜 우리는 투혼밖에 없을까'하고 스스로를 비웃었다. 결국 우리의 실력이 이 정도까지밖에 안 되는구나 하고 기대를 하지 않는 게 나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2002년 월드컵.
3. 환희의 2002년
이 때 당시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위성이나 케이블이 달린 친구들 집에서 유럽 축구를 볼 기회가 있었기에 나름 프리메라리가와 프리미어리그의 선수들의 정보를 꿰차고 있었다. 그 때 가장 좋아했던 팀은 뉴캐슬. 바비 롭슨 감독이 지휘하던 뉴캐슬에 매료되어 친구들과 함께 경기를 보며 서로 얘기를 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이 다가왔다. 그 때만 해도 유로 2000의 벨기에처럼 개최국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기에 바빴다. 물론 친선전에서 경기력이 좋기는 했지만 16강의 문턱은 너무나도 높기에 1승만 해도 의미가 깊을거라고 나 스스로 우리팀이 잘하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아니, 아예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게 맞겠지.
야자를 한창 하고 있던 때, 월드컵 때문에 공부에 방해가 되어 한국전 경기에만 집으로 돌려보낸다고 결정되었다. 폴란드 전을 앞두고 야자를 하기 싫은 아이들 및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뭉쳐 단합된 결과라고 회상한다. 어찌 됐든 집으로 가라는 데 갈 수 밖에 없지 않겠나. 평균적인 성적의 나는 그저 집으로 가서 축구나 보다가 자야겠다 하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내 예상을 뒤엎은 우리 팀의 경기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한국은 패스가 안 된다는 얘기가 우스울 정도로 매끄럽게 연결되는 패싱 플레이. 그리고 그 때 당시만 해도 한국에는 전혀 적용될 수 없을 것 같았던 압박. 94년이 축구에 의해 충격을 받았다면 2002년은 한국축구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이런 경기력이라면 홈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가슴이 뛰었다. 우리는 안 된다고 비아냥댔던 내 자신이 초라해졌지만 ,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집에서 TV를 보고, 그리고 거리응원을 가면서 한국축구를 응원했다.
4강에서 끝이 났지만 한국축구가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준 결과기에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마지막 3,4위전에서 K리그에서 다시 보자는 말은 내가 K리그에 눈을 돌리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대구에 프로팀도 생겼다. 월드컵이 나를 K리그로 이끌었던 중요한 계기. 이때부터 사커월드를 알게 되었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으니 2002년 월드컵은 참으로 의미가 깊다.
이렇게 성공한 다음 월드컵은 어떻게 될 지 궁금했다.
4. 아쉬움의 2006년
20살이 지나자 아르바이트 하느라 정신없떤 이 때. 월드컵 시즌이 되기도 전에 D- 몇일이라며 언론에서 떠들기 시작했다. 한참 대구FC 경기를 보며 K리그 팬이라 자처한 나에게 저들의 이야기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우리팀의 선전도 바라긴 했지만 거리응원을 자기들 마음대로 주무르려는 기업들의 행태에는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였다. 특히 유럽축구가 케이블을 통해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K리그는 수준이 낮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불쾌감이 극에 달했던 때였다.
예선을 치르고 본선에 가서도 이번엔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이동국의 십자인대파열과 급하게 데려온 아드보카트 감독. 무엇 하나 성공을 예감케 하는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다시 한 번 4강이라느니 떠들어댔다. 그래서 98년부터 보던 월드컵 특집 방송을 더 이상 보지 않았다. 단지 경기만 보고 응원하겠다고 다짐하고 첫 경기부터 보기 시작했다.
긴장감 때문에 선수들의 움직임이 2002년과는 다르다고 느꼈다. 마치 94년, 98년때처럼 자신들의 기량을 모두 다 보여주지 못한 그 때의 축구처럼. 하지만 기본적인 선수들의 능력이 올라와 있다는 걸 보고 떨리지 않고 관람했다. 우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지 조용히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결과는 1승 1무 1패. 승점 4점을 얻고도 탈락한 불운한 팀이라는 외신보도가 있었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 없었다. 결국 우리는 2라운드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결과만이 남았을 뿐. 애틀랜타 올림픽, 시드니 올림픽, 컨페더레이션스 컵 때도 승점을 충분히 얻었지만 결국 탈락했다는 기록만이 남았을 뿐이다.
어쩌면 아예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좋을텐데 본선에 진출하니 마음이 달라지니, 나란 사람도 참 간사하다. 이렇게 이때까지만 해도 16강은 정말 어렵다고 느꼈다. 언젠가는 16강에 갈 수 있겠지 하며 다음 월드컵은 정말 편안하게 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2010년, 심적으로 고통받는 이 시점에서 월드컵이 다가왔다.
5 지금 이 순간..
언제부터 우리가 16강이 당연한 국가가 되었을까? 내가 처음 봤던 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우리 선수들이 열심히 뛰는 것만 해도 좋았고 98년 때는 네덜란드 전에서 침묵했으며 2006년에는 아쉬웠다. 2라운드 진출을 한다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예전부터 느껴왔고 아시아 국가가 선전하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라며 되뇌었다.
이런 경기력으로 16강 올라가서 부끄럽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2002년을 빼고는 2라운드에 진출했던 적이 없다. 언제부터 1승이 당연했고 언제부터 16강이 당연한 국가가 되었던걸까? 경기력을 비판하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원하는 '완벽한 경기력에 이은 완벽한 승리'는 좀처럼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왜 모를까? 왜 16강을 간 게 '그건 당연한 것이다'라며 여기는걸까? 조가 수월했다, 선수빨이다라는 얘기는 듣고 싶지 않다. 나는 감히 선수 및 코칭 스태프의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말을 하고 싶다.
16강 상대는 남미에서도 껄끄럽다는 우루과이.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말처럼 그 날은 정말 경기를 즐겨보려 한다. 가슴 졸이면서 우리가 이기기를 바랬던 지난 시절의 간절함 대신 여유롭게 우리 선수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편안함.
지난 월드컵에서 움츠러들어서 제 기량을 보여주지도 못한 모습을 다음 경기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주길 바라는, 소박하다면 소박하고 거창하다면 거창한 바람을 담아 마무릴 하고자 한다.
덧1. 월드컵이 끝나도 한국축구는 계속됩니다.
덧2. 아르바이트 찾는 중이라서 심적으로 고통받는 중이라고 썼습니다.
덧3. 최후의 보루는 생산직.
덧4. 정모하면 갈 용의 있습니다.
덧5. 저는 뉴비입니다.
첫댓글 언제부터냐면요..
월드컵 4강의 맛을 보고 EPL인가 뭔가하는 문물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눈만 높아진 자칭 축구팬들에 의해서죠 ㅋㅋㅋㅋ
그러게요..
거리응원에서도 4년에 한번 축제처럼 즐기며 보시는 여성분들이 선수 욕은 더 많이 하시더군요.
김재성 선수가 교체되어나오자.. 잰 누구? ㅎㅎ;;
이것이 월드컵4강의 폐해라고 생각해야죠.
그리고 이렇게든 저렇게든 타국의 도움을 받아 올라간것도 아니고 절대 부끄럽지 않습니다.
세계유수의 언론에서도 아시아의 리더라고 하며 칭찬하는데 우리가 너무 칭찬에 인색하지 않나싶네요
2002년 월드컵 4강 이후부터입니다.
저도 정말 싫습니다. 16강은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환상을 쫓는 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비판을 하는 것은 '완벽한 경기력'을 원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어이없는 미스나 전략적 실책(적어도 우리 실력대로 예방할수 있는)을 최소화시키자는 것이지 아예 제거해서 완벽한 팀이 되자는 것은 아니거든요. 몰론 그게 쉬운일이겠습니까만은.
아쉬움이 있었던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지요. 어차피 비판은 늘 있을 수 있습니다. 너무 비이성적인 비판도 문제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는 것도 문제지요. 비판만 해도 문제, 칭찬만 해도 문제입니다. 흑 아니면 백이 아닌 흑백이 공존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야 발전도 있고요.
ㅎㅎ 다들 릴렉스하세요 ^^ 우린 우리 대표팀 선수들이 다음 라운드에 우리에게 줄 또다른 즐거움을 기다리면 됩니다.
참 웃긴게 울나라 사람들 칭찬에 넘 야박해요.... 16강 결정지어도 모가 그리 문제인지 ..... 참 .....^^
우리에게 큰 즐거움을 준 대표팀에게 누구도 돌던질 자격은 없다고 봅니다. 우린 그들이준 이큰 선물을 즐기면되는거구 또다른 선물을 기대하면 되겠죠 느긋하게...^^ 16강 갔습니다 칭찬해 주자고요 잘한건 잘한겁니다. 지나간일은 돌아오지 안찮아요.. 그저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대로 보고 행복해 하자구요 ~~~ 모두함께 다시한번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