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1월 21일 토요일 정오부터 오후 1시 10분까지 약 70분 동안 서대문독립공원에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이하 '유족회')가 주최하고 서울시가 후원한 '해방 전후 항일 통일 민주 애국 민간인학살 진혼제'가 열렸다.
이날 진혼제에는 유족회 회원 등 약 20여명이 참석하여 요구사항인 ‘과거사기본법 개정’, ‘진실 규명’, ‘평화협정 체결’, ‘국보법 철폐’, ‘한미소파(SOFA) 개정’, ‘친일 잔재청산’, ‘독재 잔재청산’ 등이 적힌 손 팻말 등을 들고 1960년 선배유족들이 불렀던 유족회가(遺族會歌)인 ‘맹세하는 깃발’을 이혜규 민중가수가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 배우고 함께 불렀다. 또, 불교인권위원회 위원장 진관 스님이 위령독경을 낭송했다.
특히, 경남 거창에서 상경한 한대수 아시아 1인극 협회 한국본부 대표가 진혼굿을 공연하여 원혼들을 위로했다. ‘너희들도 그렇게 죽으리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진혼굿(무대감독 송훈상 극단 춘추 대표)은 단순한 1인 춤도 아니었고 해원무(解冤舞)도 아니었다. 단순한 1인 퍼포먼스도 아니었다.
음악과 판소리, 연설과 시낭송, 춤과 연극, 무대구성과 소품설치 등이 어우러져 동작 하나하나가 또 표정 하나하나가 깊은 의미를 내포한 1인 뮤지컬 드라마이자 구천에 떠도는 망자(亡者)와 이승에 머물고 있는 유족 등을 하나로 이어주는 한풀이 굿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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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유족회를 대표하여 윤호상 상임의장이 헌작(獻酌)하고 배례(拜禮)했다.
이날 진혼제 '여는 말씀'에서 윤호상 상임의장은 “다음날 12월 10일부터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가동된다. 이번에는 용두사미로 끝난 제1기 위원회가 범한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고, 민간인학살 등 과거사 관련 진실이 철저하게 규명되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모든 분들의 명예가 반드시 회복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원혼과 유족들이 품었던 한이 조금이나마 풀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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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상임의장은 추모사에서 “4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선친께서 광복 이후 열린 해방공간에서 자신의 정치적 소신에 따라 활동하시다 불행하게 돌아가셨다. 두 분 삼촌과 고모께서도 그 여파로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당사자로서 만감이 교차하여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면서 말을 잇지 못해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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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운 추모연대 전(前) 의장은 추모사에서 “오늘 진혼제에서는 한국전쟁 전후에 학살당한 분들이 항일, 통일, 민주를 염원했던 애국자이기에 죽임을 당하셨다는 우리의 주장을 제목에 담았다. 제2기 위원회는 그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를 포함하여 제대로 된 진실규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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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희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부의장은 추모사에서 “1905년 태프트-가쓰라 밀약이 체결된 이후 지금 이 순간까지 일본뿐만 아니라 미국이 우리 민족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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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부터 자주독립을 쟁취하고 남북이 통일되지 않는 한 민간인 학살과 같은 비극과 불행은 언제든지 재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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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운학 촛불계승연대천만행동 상임대표는 추도사에서 “민간인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집단학살을 당했든 서대문 등 전국감옥에서 사형집행을 당했든 병사(病死)했든 옥사(獄死)했든 원혼이기는 마찬가지다. 또, 일제강점기였든 해방 이후 독재시기였든 원통해서 두 눈을 감지 못하고 구천지하를 떠돌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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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 이들 원혼과 함께 슬퍼하고 이들 모두를 그리워하며 함께 울면서 더불어 위로받고자 이 자리에 모였다. 그리하여 이러한 비극과 불행에 종지부를 찍자는 결의를 모아내고자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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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송운학 상임대표는 서대문 감옥에서 사형을 당했거나 모진 옥고를 겪었던 몇몇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면서 일제강점기부터 권위주의정권 시기까지 이어진 무수하게 많은 반인권적 만행을 규탄했다. 예컨대, 서대문 옥사에서 최초로 사형집행을 당하면서 ‘죽은들 어떻게 눈을 감으랴’는 유언시(遺言詩)를 남긴 의병장 허위 선생, 3.1운동과 관련하여 약 3년간 옥고를 겪으면서 ‘무쇠처럼 찬 이불 속에서 재와 같은 꿈을 꾸네.’라고 탄식했던 한용운 대선사(大禪師), 1932년과 1937년 두 차례 수감되었다가 각종 질병으로 ‘피골이 상접하여 저승나라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목숨이 경각에 달려 병보석으로 가석방되었지만 끝내 두세 달도 더 버티지 못하고 이승을 떠난 도산 안창호 선생, 사형집행을 당한 1960년대 조봉암 선생과 조용수 선생 및 1975년 하재완 선생 등 이른바 제2차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 민주인사 8인 등에 관한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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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송운학 상임대표는 독립투사와 민주인사에게 가해진 차별정책과 탄압정책의 핵심골자를 야만적인 고문자행 및 음식물 차등배급 등을 통한 고통과 공포감 강화 그리고 배고픔과 굶주림 및 추위 등 강제 그리고 이로 인한 변비와 동상 등 각종 질병유발과 심신건강 약화 및 투항심리 강화라고 설명한 후 “항일투사와 민주인사의 포한(抱恨)을 풀어드리고 비극을 끝장내려면, 최고법률이자 법률 중의 법률이기도 한 우리 헌법에서 한반도와 부속도서 전체를 영토로 규정하는 조항 등을 먼저 고쳐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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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각종 유족요구를 현실화시켜 적대적인 남북관계를 청산하고 한반도에 평화시대를 꽃 피우려면, 각각 상대방을 독립국가로 상호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로 전환하는 것이 선결과제이거나 또는 적어도 평화협정 체결과 국보법 폐지 등과 동시에 추구해야만 하는 중대과제”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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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진혼제에 참석하기로 약속한 김원웅 광복회장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불참하고 추모화환을 보내 추모사를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