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남자들
황진이
본명은 황진(黃眞, 1511~1551), 기명(妓名)은 명월(明月) 그녀가 남긴 시조가 한국 문학사에 커다란 족적이 될 정도로 뛰어났던, 조선 중종 때의 시인이자 시대를 풍미한 명기(名妓)이며, 화담 서경덕, 박연폭포와 함께 송도 삼절로 불리었다. 송도(개성)의 양반 황진사의 서녀로 태어나 우여곡절 끝에 기생이 되었다. 타고난 절색에 명창이었으며 시재(詩才)에도 능해 당대 최고의 명기로 여러가지 일화를 남겼다.한다
1번째 남자
첫 번째 옆집 總角(총각)입니다. 황진이를 짝사랑하여 상사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황진이의 어머니는 그 총각을 절대로 만날 수 없게 하여서 총각은 상사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상여가 황진이의 집 앞을 지나가다 땅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진이가 속저고리 를 상여에 덮어주었더니 움직였다고 합니다. 황진이는 왜 그 남자가 죽었을까 생각하며 妓生(기생)이 됐다는 말이 있습니다.
2번째 남자
두 번째 남자는 개성 유수 송공입니다. 대부인 연회석에 황진이를 초대하였는데 그때 여러 사람들이 황진이의 빼어난 모습을 보고 반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황진이가 유명해지게 되는데요, 황진이는 송공과 그 전부터 함께 지낸 사이라고 합니다.
세번 째남자
세 번째 남자는 선전관 이사종입니다. 사신으로 송도를 지나가다 천사원 냇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가 아주 출중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진이가 그 노래에 빠져 들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황진이가 "개성에 이사종이라는 사람이
노래를 잘 부른다는데 그 사람인가 보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알아보게 하였는데 정말 이사종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진이가 찾아가 서로 마음속에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는 이사종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여러 밤을 함께 지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마음에 들었는지 이사종에게 "내 마땅히
당신과 6년을 살아야 겠소"라고 말하고는 이사종의 집에 3년 동안 먹고 살 돈을 가져가서 살고 3년 후 이사종을 자신의 집으로 대려와 살았으며 6년이 지난 후에는 깨끗이 헤어졌다고 합니다. 이걸 보면 황진이가 얼마나 자존심이 강했으며
당당한 여자인지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보면
계약결혼의 시초이네요.
네번쨰남자
네 번째 남자는 양곡 소세양입니다. 그 남자는 "남자가 여색에 혹함은 남자가아니다!" 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내가 황진이와 30일을 지내고 깨끗이 끝내겠다. 라고 큰소리 쳤다고 합니다. 황진이와 30일을 지낸 후 황진이가 송별 소양곡을 불렀는데요, 그걸 듣고 소세양은 나는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하고 황진이와 함께 며칠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다섰번쨰남자
다섯 번째 남자는 왕족 벽계수입니다. 벽계수는 황진이가 명사가 아니면 만나주질 않아 고민하다가 친구인 이달에게 물어 꾀를 내어 황진이 집근처 정자에서 노래 한곡을 크게 부르고 황진이가 따라와서 돌아보지 말고 앞만보고 갔다고 합니다. 그때 황진이가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오니 명월이 망공산 할제 쉬어간들 어떠리"라고 읊었다고 합니다. 그 소리를 듣고
벽계수가 뒤돌아보다가
말에서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진이가 명사가 아니라 풍유랑이라 말하고돌아가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노래는 벽계수 '낙마곡'으로도 유명합니다.
여섯번쨰남자
여섯 번째 남자는 이생입니다. 황진이가 말년에 금강산 유랑을 하고 싶어 하여 동행을 청해서 함께 금강산을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갈 때 이생이 먹을 것을 짊어지고 갔는데 여행도중 다 떨어져서 곳곳의 절을 돌아다니며
황진이가 몸을 팔아
음식을 얻었다고 합니다. 여행이 끝나고 미련도 없이 헤어졌다고 합니다.
일곱번쨰남자
일곱 번째 남자는 지족선사입니다. 그는 면벽수련 30년으로 유명했는데요,
그래서 황진이가 지족선사를 찾아가 유혹했다고 하는데 얼마나 용모가 빼어났던지
면벽수련 30년을 깨고 파계승이 되어 버렸다고 합니다.
여덥번쨰남자
여덟 번째는서경덕 입니다
황진이가 정말로 사랑한
사람은 바로 서경덕인데요, 황진이는 서경덕의 학문이 높음을 듣고
서경덕에게 가서 유혹하였으나 넘어오질 않았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고 함께 오랜 시절을 비냈으나 서경덕은 의연하였다고 합니다.
황진이는 서경덕의 학문을 알어보기위하여 출제를하였다합니다
점하나에- 한일자에 -두이자에 =입구자에 =우두불출이라한 출제를 내어는데
서경덕은 그뜻을알고는 황진이에게 속힌치마를 펴게하여 문제를 쓰니
허럭허자였습니다 황진이가 서경덕을 큰방아래묵에 모시고
큰절을 하고는 서방님으로 모신다하여 3년간을 같이살었다 합니다
서경덕은-황진이와 3년을살고는 바람처럼 떠나버려다 합니다
서경덕이돌아오기를 3년을기다려도 돌아오지않자==황진이는 서경덕을찾어나섰다
3년간을찾어허매다가 어느 산간절에 있다는 소식을듣고 찾어가서 만나게되었답니다
절에서 3년간을 같이살고는 서경덕이 술과 고기를먹고싶다하여
황진이는 술과고기를사려 마을로내려와 구입하여 올라가보니
서경덕은또다시 바람처럼 떠나버려다합니다
황진이는 서경덕을찾어 3년간을 허매다가 개성 어느길가에서 죽게되면서
길가운데다 뭍어달라하여 조선의 남정네들이 밟고다니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합니다
그래서 황진이가 감탄하여 "지족선사는 30년 면벽수련에도 내 앞에 무릎을 꿇었는데 서경덕은 함께 오랜 시절을 지냈으나 끝까지 나에게 이르지 않았으니진정 성인이다."라고 말하고 서경덕에게 제자로 받아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제자가 되었고 '서경덕, 황진이, 박연폭포' 이 세사람을 송도삼절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편집인-소암 조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