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사제 / 조용미
그는 침묵을 관장하는 사람이다 그의 일은 침묵을 세심하게 관리하기 쉽도록 분류해 두는 것이다 그는 침묵을 장악하지는 못하더라도 관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침묵의 분류 관리 통제는 그의 업무 전반에 걸친 일인데 모든 침묵이 간단하게 분류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는 침묵을 맡아 다루는 일에 심혈을 기울여 생의 후반부를 온전히 바쳐야만 했다
침묵은 명령할 수도 없고 강제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그의 사명감은 약간 헐거워졌다 침묵을 적절히 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그는 침묵이 점점 싫어졌다
그는 침묵을 규정하여 품목별로 분류하는 데 결국 실패했다 모든 침묵에는 무엇보다 그가 좋아하는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어 세부 관리의 효율성이 떨어졌다
침묵의 불합리와 모순은 그에게 크나큰 시련이었다 침묵은 입을 다물기보다 귀를 기울이기를 원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침묵을 관리하는 일은 무엇보다 완전한 침묵 속에서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침묵을 관리하는 일은 수많은 침묵의 소란을 견뎌 내는 일이었다
- 계간 <파란> 2021년 봄호
* 조용미 시인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서울예전 문창과 졸업.
1990년 『한길문학』 등단.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을 날아오르다』 『삼베옷을 입은 자화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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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란 무엇인가? 침묵이란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러나 침묵도 하나의 말이며, 무언의 의사표시이기도 한 것이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말을 하는 침묵을 둘러싸고 수많은 억측과 해석과 오해를 낳고 있는 것이 그것이며, 이상한 역설같지만, 침묵의 언어학(사회학)이 또하나의 학문으로 탄생하게될는지도 모른다. 말과 침묵, 웅변과 침묵은 상호 적대적인 경쟁관계이며, 이 피비린내 나는 투쟁을 통해서 말의 역사가 움직여 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말을 하는 침묵, 따라서 웅변보다는 이 침묵을 통해서 그 어떤 난제와 고통도 해결할 수 있는 최고급의 사상과 이론을 정립하고, 수많은 성자와 학자들, 즉, 전인류의 스승들이 탄생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너무나도 피곤하고 지쳐서 침묵하는 말, 수많은 잔소리와 넋두리와 쓸데없는 잡담들에 끼어들기 싫어서 침묵하는 말, 자기 자신과 친구들의 거짓을 은폐하고 처벌을 모면하기 위해서 침묵하는 말, 조직폭력배와 독재정권의 강요에 의해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침묵의 말, 불의에 항거를 하고 정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투표를 하지 않고 침묵하는 말, 설익은 진리와 가설을 전파하기보다는 사상과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침묵의 말 등----, 이 세상의 침묵의 유형은 너무나도 많고, 그 어떤 웅변보다도 더 웅변적인 말이라고 할 수가 있다. 침묵은 말이고 생명이며, 침묵은 연극배우이며, 이 세상의 삶과 그 모든 것을 주재하는 신이라고 할 수가 있다.
조용미 시인의 [침묵 사제]는 침묵을 관장하는 사제이며, 침묵의 언어학을 정립하는 시인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시는 말씀언言과 절사寺자로 되어 있으며, 시인은 언어의 사제라고 할 수가 있다. 시인은 침묵을 관장하는 사람이고, 침묵을 세심하게 관리하기 쉽도록 분류해 두는 것이 그의 임무이며, 그는 침묵을 장악하지는 못하더라도 너무나도 손쉽게 관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침묵을 분류하고 관리하며 통제하는 일은 그의 업무 전반에 걸친 일이었지만, 그러나 모든 침묵이 그렇게 간단하게 분류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는 침묵을 맡아 다루는 일에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생의 후반부를” 온전히 바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침묵은 명령할 수도 없고 강제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그의 사명감은 너무나도 헐거워졌고, 또한, “침묵을 적절히 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그는 침묵이 점점 더 싫어”졌던 것이다. 침묵을 명령할 수도, 강제할 수도 없다는 것은 침묵을 적절히 관리하고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하고, 바로 이 지점은 조용미 시인의 역사 철학적인 미성숙과 그 약점을 말해 준다. 따라서 그는 침묵을 규정하고 품목별로 분류하는 데 실패를 할 수밖에 없었고, “모든 침묵에는 무엇보다 그가 좋아하는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어” 그 어떤 일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침묵은 말이고 생명이며, 이 침묵은 사나운 비바람이나 넓고 넓은 바다의 물결과도 같다. 침묵의 불합리와 모순은 침묵의 본질 자체이며, 이 침묵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난제였던 것이다. 침묵은 입을 다물기 보다는 귀를 기울이기를 원했고, 침묵은 그 어떤 말보다 더욱더 다양하고 역동적인 웅변이었던 것이다. 침묵을 관리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완전한 침묵 속에서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더욱이 침묵을 관리하는 일은 수많은 침묵의 소란, 즉, 수많은 침묵의 말들을 견뎌내는 일이었던 것이다. 더없이 조용하고 다정다감한 침묵, 무언가 못 마땅하고 잔뜩 화가 나 있는 듯한 침묵, 누구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사랑의 말을 나누고 싶어하는 침묵, 학생회장이나 국회의원, 또는 대통령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듯한 침묵,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싸움과 전투를 선언할 듯한 침묵----. 침묵은 대자연이고, 만물의 터전이며, 우리 인간들의 존재의 원동력이자 생명 자체였던 것이다.
오늘날의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과연 인간의 이성과 인문주의의 극치란 말인가? 전인류의 스승인 알렉산더대왕과 나폴레옹황제 같았으면 벌써 인간수명제(인간70)를 실시하고, 이 지구촌을 더욱더 젊고 푸르게 가꾸었을 것이다. 노인만세세상은 인간멸종의 시대라고 할 수가 있다. 왜, 우리는 이러한 사실 앞에서 모두가 다같이 침묵을 하고 있단 말인가?
미국의 부자들은 엘로우스톤, 요세미티, 그랜드캐니언 등의 사유지를 다 사들이고 그것을 국가에 기부했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국립공원지역을 개인이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이것이 미국인의 정신인 것이다. 미국의 억만 장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겠다고 부유세를 신설해달라고 시위를 하고, 대부분의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죽으며, 수많은 젊은이들--, 즉, 빌 케이츠나 스티브 잡스나 저커버그 등이 세계적인 부자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해준다. 미국시민이 기초생활질서를 어기거나 삼성그룹처럼 분식회계를 하거나 우리 학자들처럼 표절을 한다면 그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세계제일의 미국의 정신이고 도덕철학인 것이다.
우리 대한민국의 제일급의 인사들은 대부분이 미국의 명문대 출신의 박사들이지만, 그러나 그들은 미국의 정신이나 미국의 도덕철학에는 모조리 침묵하는 영원한 낙제생들일 뿐이다. 그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미국으로 유학 가서 일본식 암기교육의 열광적인 찬양자가 되어 돌아오고, 늘, 항상 놀고 먹으며, 표절밥과 뇌물밥과 부패밥을 너무나도 좋아하고, 또, 좋아한다.
오오, 대한민국이여! 오오, 대한민국이여!
- 반경환(시인, 평론가) 명시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