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옥희 씨의 분수를 아는 지혜라는 글에 다음과 같이 댓글을 답니다. 참고로 정옥희 씨의 글에는 전혀 손대지 않았습니다. ***
옥희 -> 사람 사는 세상에는 ‘도’라는 것이 있다. 이 도를 지키는 일은 아주 중요한 일인데 요사이 우리나라의 축구 열기는 한도를 벗어나고 있다. 한창 경기 도중의 거족적인 응원을 말하는 게 아니다. 나도 울면서 응원을 했으니까. 대회 끝마무리가 한도를 벗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한도를 벗어난 일이 비단 월드컵 경기 뿐 만이겠는가.
나 -> 사람 사는 세상에는 ‘썰’이라는 것이 있다. 흔히 말 잘하는 것들을 ‘썰 잘 푼다’고 하는데, 요사이 썰로 잘난 척 하는 것 들의 열기는 한도를 벗어나고 있다. 그냥 건설적 비판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비판은 좋아하니까. 대회가 끝나면서 열기가 서서히 식을 때면 기다렸다는 듯이 썰을 푸는 것 들이 있다는 것이다. 남들 먹는 밥에 재 뿌리면서 혼자 유식한 척하며 한마디 거창하게 하는 것들이 있단 말이다. 이런 것들이 비단 옥희 뿐이겠는가.
옥희 -> 나이도 지긋하고 글줄이나 읽을 줄 아는 우리 한인들은 얼마 전 재미교포 청년 유승준이 자기가 태어난 조국에 들어가려다 쫓겨오고만 사건을 보고 적잖은 불쾌감과 섭섭함을 느꼈다. 신문내용인 즉은 그가 군대에 입대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해 놓고 미 시민권을 취득하고 입국했다는 이유였다고 했다. 그는 대중 앞에서 거짓말을 한 것이다.
나 -> 나이가 지긋해서 군사정권 시절에 한자리 하고, 쉬운 말도 한자로 써서 잘난척 하고 싶어하는 무리들은 유승준이 한국에서 쫓겨난 것을 보고 적잖이 불쾌했다고 한다. 이유인 즉슨 유승준이가 한국 국민들에게 군대 간다고 개뻥 치고, 전국60만 젊은 장병들이 국가방위를 할 때, 편안하게 한국에 잘 살다가, 자기 차례가 오자 미국 성조기 앞에 충성을 맹세하며 태평양 건너 튀었다가, 미국인 신분으로 한국에서 더 돈 벌려고 입국한 것을 국민들이 쫓아내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의 힘에 기대어 한국 국민들을 유린하였다.
옥희 -> 거짓말을 한 것은 도의적으로 지탄을 받을 일이지 그가 미 시민권자로 조국에 들어가는 일이 하등에 위법이 될 수는 없다. 그의 생명선인 무대에 서는 일을 금지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조국의 현관에서 내쫓아야 할 일은 아니다. 경솔한 짓이다. 쫓겨 온 청년보다 쫓아버린 쪽이 한참 더 경솔하다.
나 -> 개뻥 친 것만 지탄 받을 일이 아니라, 청소년의 우상으로서 많은 청소년들이 따라 행동하는 역할모델이자, 공익광고에까지 나온 새끼가 군대 가기 싫어서 국적 바꾸는 짓을 한 것이 어찌 지탄 받지 않을 일인가. 이회창이 아들보다 못한 놈아! 앞으로 한국 국민이, 과거에 당했던 것처럼 다른 나라들의 통치 하에서 국민들은 개 취급도 못 받았던 더러운 꼴을 다시는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국방의 의무를 우습게 아는 놈은 광화문 이순신 동상 발 앞에 매달아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입에서 피똥을 토하도록 후려쳐도 누가 경솔하다 하리요.
옥희 -> 동계올림픽 때의 김동성 선수 문제도 그렇다. 그는 불리한 판정을 받았을 때 우리의 소중한 태극기를 일제치하 36년 간 목숨처럼 소중히 간직한 민족의 태극기를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내동댕이쳤다. “그런 몹쓸 짓을” 했는데 본국에서는 그에게 가짜 금메달을 걸어주고 수레에 태워서 영웅으로 만들고 급기야는 반미 감정으로 치닫게 까지 만들었다.
나 -> 동계올림픽 때의 김동성 선수 문제도 그렇다. 그는 불리한 판정을 받았을 때, 항의의 표시로 팔을 휘두르다가 그만 태극기가 스케이트 날에 끼어서 떨어졌다. 곧바로 김동성은 국기를 다시 주웠지만, 외국 방송사는 의도적으로 다시 줍는 장면을 삭제하여 방송하였고, 국내 조선일보 같은 신문들은, 강대국에 유린당한 우리네 선수를 감싸주지 못하고 오히려 돌을 던졌다. 일제치하 36년간 목숨처럼 일본 천왕을 받들어 극존칭을 붙이며 찬양하던 조선일보라 그런지, 시대가 바뀐 요즘엔 미국에 붙어 그 짓을 또 하고 있다. 그런 몹쓸 짓을 했는데도 아직도 옥희는 조선일보를 구독 하고 있다.
옥희 -> 미국선수 오노를 왜 비아냥거리는가. 그가 할리웃 제스처를 했다고들 욕을 하는데 이 시합에서 오노가 앞으로 들어오는 김 선수의 몸에 조금이라도 손을 대면 반칙이 되므로 자기의 몸을 사린 것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끝까지 따져야 할 상대는 오노 선수가 아니고 당시의 심판들이어야 했다.
나 -> 자칭 수필가 옥희를 왜 비아냥거리는가. 옥희는 오노가 ‘김동성의 몸에 손이 닿는 반칙을 하지 않으려고 손을 든 것 뿐이다’라며 오노도 한 적 없는 말을 지어내면서까지 오노의 품안에 안기보려 사족을 쓰는데, 우리가 끝까지 따져야 할 상대는 강대국의 사주를 받은 심판이 아니라, 바로 그 강대국이어야 한다.
옥희 -> 우리 축구선수들이 16강에서 이기고 나오며 스케이트 시늉을 한 것도 경망한 짓이다. 가짜금메달을 달아주기 전에 왜 금메달을 놓쳤는가를 철저히 검증하고 따질 것은 따져 찾아야 할 것은 끝까지 찾았어야 했다. 가짜는 어디까지나 가짜일 뿐이다.
나 -> 우리 축구 선수들은 스케이트 시늉을 한 것은 16강전도 아니고, 이기며 나오며 한 것도 아니다. 조 예선전에서 미국에게 동점 골을 넣으며 쇼트트랙 시늉을 낸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사실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썰을 풀려는 어처구니 없는 옥희야 말로 정말 슬픈 여인이다. 빈 머리는 어디까지나 비었을 뿐이다.
옥희 -> ‘계영배’의 뜻을 새삼 들지 않더라도 무엇이든지 그득 차면 넘치는 법이다. 월드컵 4강 진출 자축연이 한계를 많이 넘어섰다. 게임은 게임이다. 축구경기가 국방을 대신할 수는 없지 아니한가. 자축연에 취해있을 때 북한은 연평바다에서 대포로 금싸라기 해병의 목숨을 앗았고 다치게 했다. 노부모가, 애 띤 아내가 통곡을 하는 마당에 아직도 얼굴에 도깨비를 그리고 미치듯 날뛰는 광화문 네거리의 군상들이 역겨워 TV를 껐다. 전사자나 그 유족이 가엾기도 하려니와 그보다도 한심한 조국의 무경위와 도를 모르는 무지함이 더 슬퍼 소리를 내며 주먹으로 눈물을 닦았다.
나 -> ‘계영배’ – 잔의 70%를 채우면 술이 넘치게 만든 잔 – 의 뜻을 새삼 들지 않더라도 자기 능력을 넘는 글을 쓰려다가는 망신만 당한다.(참고로.. ‘계영배’ 뜻 찾느라 인터넷 검색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참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잘난척 하느라 쉬운 말을 괜히 한자로 쓰는 사람들과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을 단어를 아무런 주석도 없이 글에 넣어서 단어 하나 가지고 어떻게 잘난척 좀 해볼까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괜히 어려운 글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글이 별 내용 없는 허무맹랑한 글임을 감추려 한다.) 이번에 서해서 해군장병 4명이 조국의 바다를 지키다 전사하였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고, 하루 빨리 분단조국이 하나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광화문에 모인 수십만 인파도 그 젊은이들의 넋을 기리며 묵념을 하였다. 그런데 이 마당에 ‘거봐라~ 북한은 죽여야 할 영원한 적이다!’ 하며 미치듯 기뻐 날뛰는 조선일보와 이회창 그 군상들이 역겨워 모니터를 껐다. 정권 잡기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이 정치하는 현실도 슬프지만, 얕은 지식으로 인해 슬픔에 빠진 옥희가 가여워 더 슬퍼 소리를 내며 주먹으로 눈물을 닦았다.
옥희 -> 히딩크 감독을 조용하게 보낼 때가 되었다. 고려가요의 ‘가시리’란 노래에 “가시리 가시리잇가/날 바리고 가시리잇가/날라는 엇디 살라하고/나를 바리고 가시리잇가/잡사와 두어리마나는 선하면 아니 올세라 보내옴나니/가시는 듯 도셔 오셔서” 가야할 사람을 너무 붙잡으면 지겨워 하실까 놓아드리니 선 듯 가셨듯 곧 돌아오시라는 애교스러운 이치를 선인들은 아는데 요사이 사람들은 왜 모를까.
나 -> 히딩크 감독도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다들 아쉬운 마음에 가지 말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그런데 괜히 전혀 상관 없는 고려가요 가져와서(학창시절 배웠던 가시리와 가사가 조금 달라 인터넷서 찾아봤더니, 역시 옥희는 가사도 틀렸구려) 요사이 사람들이 우매하다고 떠드니, 계영배의 이치를 선인들은 아는데 옥희는 왜 모를까.
옥희 -> 도를 지켜야 한다. “아서라, 이제는 그만들 해라. 4등이 뭐 그리 잘했다고 야단이냐” 어른들이 끼어 묻혀서 흔들리지 말고 사회를, 나라를 바로 잡아 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나 -> 패배에 익숙해져 있다고 해서, 승리를 두려워 해서는 안 된다. “그래. 승리를 단맛을 즐겨라. 비록 우리는 가슴에 한을 품고 있지만, 젊은 너희는 가슴에 자부심을 가져라.” 오랜 시절 강자에 기대어 살아야만 했던 어른들도 이제는 스스로 우리의 운명의 주인이 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