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알아차림 (7편) 과 도마복음 제34장》
벌써 추석이 지나갔네요.😁
지금처럼 항상 보약처럼 건강하게 여생을 잘 보내다가 오는 길이 좋았던 것처럼 가는 길 또한 좋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알아차림도 열심히 하시면서 부자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음..
오늘도 수행 이야기부터 먼저 하고 본문 내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요즘에는 부처님이 하셨던 오정관(五停觀)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 있는데요.
앞전에 못 보신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눌러보시기 바랍니다.^^)
https://m.cafe.daum.net/119sh/_rec?boardType=M
,
오늘은 [오정관] 중에서 네 번째에 해당하는 수식관(數息觀)에 대해서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그리고 인생 살이와 수행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도 같이 끼어서 설명을 드리고 있는데요.
지난주에는 앞머리와 뒷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나가는 데에도 유리하고 이 법을 깨닫는 데에도 유리한 점이 있다고 말씀드렸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의지력(意志力)과 용기(勇氣)에 대해서 설명을 드려보려고 하는데요.
수행에도 하고자 하는 의지력과 용기가 매우 필요하다는 것인데요.
수행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그렇지요?
학교 공부도 강인한 의지력과 용기가 매우 필요하고
회사 생활도 강인한 의지력과 용기가 매우 필요하고
장사나 사업도 강인한 의지력과 용기가 매우 필요합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분심(憤心)이라고도 한답니다.
아무튼 세상을 살아가는데 의지력과 용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꼭 수행이나 수도를 떠나서 세상 살이 자체를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맞습니다.
부처님도 이 사바세계 자체가 괴로움과 고통이라고 하셨으니까요.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이법을 깨닫고 증득하기 전에는 괴로움과 고통에서 살아갈 수 박에요.
제 경우는 세상을 살아나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저는 당연히 의지력과 용기를 꼽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저는 이 두 가지의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그 어떤 상황 어떤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능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수행도 마찬가지라는 것이고요.
조금 해보고 힘이 드니까 의지력이 꺾이고 그로 인해 용기도 안 나고 하니까 하다가 포기를 하는 것인데요.
그래서 제 말은 무엇이든 한번 시작을 했으면 나 스스로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수행이나 삶에 도움을 주는 [밥상 위에 놓인 그릇들..]이라는 주제로 설명을 드려볼 것인데요.
밥상 위에 놓인 그릇들은 키우거나 줄일 수가 없잖아요?
그러나 우리들 마음 그릇들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의지력과 용기에 따라 얼마든지 키울 수도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경우는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고자 하는 의지력과 용기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다고 보고 있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의지력과 용기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도 꼭 필요한 것이고 수행이나 수도를 성공시키는 데에도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는 의지력과 용기에 대해서는 정주영 씨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데요.
한 강연회에서 정주영 씨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남들은 나보고 겁도 없이 많은 일들을 도전한다고 하는데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무슨 일을 하든 전쟁터에 나가서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요?
사업을 하다가 망해봐야 돈을 잃는 것이지 목숨을 잃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이겁니다.
맞는 말 아닌가요?
뭐든지 그렇잖아요?
지금도 목숨 걸고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아주 많이 있는데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는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그런데 무슨 일이든 목숨을 걸고 하는 일도 아닌데 하고자 하는 의지와 의욕이 없으면 거기다가 용기까지 잃는다면 뭔들 할 수가 있겠어요?
제 말은 수행뿐만이 아니라 세상 일도 하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수두룩한데 하고자 하는 의지와 용기가 없으면 어떻게 극복을 할 수가 있겠느냐 이겁니다?
수행이나 수도도 그렇다는 것이고요?
오죽하면 불교에서는 이것을 일대사(一大事)라고 했겠어요?
불성을 증득하든 성령을 영접하든 이것도 하나(一)의 큰(大) 일(事)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수행이나 수도만 큰일이겠어요?
세상살이도 큰일 아닌가요?
일반 사람들에게 세상 살이보다 더 큰일이 어디 있겠어요?
때로는 살다 보면 배가 고프면 내가 밥을 찾아서 퍼먹어야 할 때도 많이 있는데 언제까지 징징거리면서 밥상을 차려 줄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거냐 이겁니다?
인생 살이가 어떻게 편할 수만 있겠어요?
때로는 나 스스로가 나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줘야 할 때도 많이 있을 것 아니겠어요?
수행이나 수도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하기에 따라서는 사람 마음은 얼마든지 키울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고자 하는 의지력과 용기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크게 키울 수도 있고 나약하게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나 스스로가 하고자 하는 의지력과 용기는 서로 상호 작용을 시켜야 한다는 것인데요.
제 경우는 학교 다닐 때만 빼고는 인생 전체가 그랬던 것 같습니다.
자꾸 제 이야기를 해서 뭐 합니다만 남들은 저보고 겁이 없다고 하는데요?
아니랍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것저것 막 대들듯이 일을 크게 벌여서 하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겁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어요?
저도 겁은 나지만 용기를 내는 것이지요.
뭐든지 그렇잖아요?
저도 그랬다는 것인데요.
하고 싶은 의지는 있는데 용기가 없어서 못하는 경우도 많이 있고
반대로 용기는 있는데 하고 싶은 의지가 떨어질 때도 많이 있고요.
이럴 때 내 스스로가 힘을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스스로가 의지력이 떨어지면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반대로 내가 용기가 떨어져서 기가 죽어 있을 때에는 나 스스로가 의지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의지력과 용기는 서로가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나도 건강을 위해 높은 산에 올라가야 하겠다 하는 의지력을 내면서도 막상 올라갈 생각을 하면 용기가 나질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이 꼭 산에만 해당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산에 오르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산에 올라가서 죽자!"
하는 강한 의지력과 용기를 내가 나에게 불어넣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정주영 씨 말씀처럼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것도 아닌데 뭔들 못하겠습니까?
이런 것들이 모두 하고자 하는 의지력과 용기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제 주의에도 이런 사람들이 아주 많은데요.
하고 싶은 마음만 가지고 있지 의지력과 용기가 없답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그것 아세요?
무엇이든지 내가 하고 싶고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나에게 그럴만한 능력과 힘이 있다는 증거라는 거요?
앉은뱅이가 달리기 선수가 되고 싶지는 않을 것 아니겠어요?
벙어리가 웅변가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을 것이고요.
무엇이든지 내가 그것을 하고 싶고 이루고 싶다는 생각과 마음을 먹었다는 것은 나에게 그럴만한 힘과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고 그런 마음을 먹게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머지는 내가 그것을 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력과 용기에 달려있다는 것이고요.
그래서 제 경우는 평소에 ① 의지력과 ② 용기만 있으면 그 어떠한 힘든 일도 능히 해낼 수가 있다고 보고 있다는 것인데요.
그런데 희한한 것은 무엇이든 생각만 하고 마음만 먹고 하지는 않고 있다가 결국에는 포기를 하면 그다음도 또 그 다음도 쉬운 일도 포기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조금은 어려워 보이는 일이라도 해보고 성공을 맛보면 그다음도 또 그다음 일도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오기(분심)가 생깁니다.
물론하다 보면 실패를 할 때도 있고 심하면 하다가 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있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인간으로 한번 태어나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죽는 것도 뜻깊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때가 되면 다 죽는데요?
어린 나이에 죽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호강 아닙니까?
밥도 잘 먹고 있고, 똥도 잘 싸고 있고, 사지도 이만하면 그것 자체가 나에게는 좋은 밑천 아닙니까?
뭐가 걱정입니까?
나머지는 내가 내 마음만 잘 잡고 추진하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정주영 씨 말씀처럼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것도 아닌데요?
다 호강에 겨워서 편안하게만 살려고 하니까 겁도 나고 두렵고 하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요즘에는 예전처럼 누가 밥을 굶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아니면 옷을 헐벗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사지만 멀쩡하고 글만 읽을 줄 알면 어디 가든 일거리도 있겠다 꿈이 있고 야망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몇 년을 계획해서 열심히 돈을 모아 밑천을 만들어서 장사든 사업이든 얼마든지 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나머지는 다 자신의 의지력과 용기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의지력과 용기는 얼마든지 자신이 자신에게 불어 넣을 수가 있다는 것이고요.
제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저도 그랬다는 것인데요.
그런데 막상 부닥쳐 보면 별것 아니었다는 것이고요.
수행도 그렇다는 것이고요.
무엇이든지 그렇답니다.
처음에만 좀 두렵고 힘들고 하는 것이지 특히 사람은 적응이 매우 빠른 동물이기 때문에 조금만 버티고 적응을 하다 보면 다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그 어떤 누구도 단 한 사람도 삶 속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그 삶은 괴로움과 고통 그 자체라는 것이고요.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서도 우리들은 그나마 다른 사람들에 비해 편히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은 최소한 굶거나 헐벗지는 않지 않습니까?
여러분들 혹시 그것 아세요?
세계 인구 중에서 밥 굶지 않고 집에서 잠을 잘 수 있는 사람들이 몇 %나 되는지 혹시 아시나요?
2024년 UN SDGs 이행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인구 중 10% 정도만 빼고는 10% 정도는 심각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고 48%는 영양불량이고 나머지는 집도 절도 없어서 길거리에서 자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세계 실업률도 나라마다 다르지만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할 때가 없어서 굶주리는 사람들도 많고요.
제 경우는 중국에 있을 때 뒤에서 선교사들을 돕는 단체에도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 이야기를 이만갑이나 유미카 같은 채널 등을 통해 빼놓지 않고 보고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거기에 비하면 괜찮은 나라 아니냐 이겁니다?
일단은 밥 먹는 것 하나만큼은 해결이 됐잖아요?
나머지는 자기가 하기 나름이고요.
여기서 뭐를 더 바라겠습니까?
나머지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의지력과 용기에 달린 것이고요.
북한이나 중국처럼 우리들에게 정부에서 관여를 합니까 통제를 합니까?
얼마든지 의지력과 용기만 있으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든 하다가 실패를 보면 좌절하고 낙심하고 포기하고 심하면 우울증으로 목숨까지 끊는 경우도 있다는 것인데요.
세상 살이는 절대로 실패가 없을 수 없답니다.
이병철 씨나 정주영 씨는 더 했답니다.
수행이나 수도도 그렇답니다.
문제는 무슨 일을 하든 실패를 봤으면 빨리 마음을 추스르고 용기와 하고자 하는 의지력으로 다음 계획을 세우고 추진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바보처럼 낙담하고 후회하고 원망하고 하는 것은 내 인생에 조금도 도움을 주지 못한답니다.
수행도 그렇답니다.
이 방법이 아니다 싶으면 부처님처럼 빨리 다른 대책을 세우고 추진을 해야 한답니다.
수행뿐만이 아니라 뭐든지 그렇답니다.
바보처럼 눈먼 봉사가 가자는 데로 가지 마시고요.
부처님도 깨닫기 전에는 얼마나 많은 스승이 있었습니까?
부처님도 이것이 아니다 싶으면 다른 방법으로 하지 않았던가요?
,
그리고 의지력과 용기는 서로 상호 작용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제 경험으로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예를 들면 무엇을 하다가 100이라는 곳에서 실패를 봤다면 제 경우는 항상 다음 목표는 150~200을 잡고 다시 도전을 한다는 것인데요.
왜냐하면 내가 그동안 100까지 왔다는 것은 앞으로 200도 갈 수가 있다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내가 지금까지 100을 했는데 기왕 다시 도전하는 것에는 경험도 쌓였을 것인데 200은 못하겠어요?
다만 마음가짐이 문제이지요?
무슨 말이냐 하면 무엇을 하다가 의지력이 약해지려고 하면 나 자신이 나 자신에게 용기라는 것이 힘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무엇을 하든지 하다가 겁을 먹고 용기가 꺾이려고 하면 의지력이 힘을 내서 보충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고요.
둘 다 내 스스로가 나에게 힘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수행이나 수도를 하는데 있어서도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는 있는 것은 용기는 겁이 없는 사람들이 잘 한다고 여기고 있는데요?
아니랍니다.
용기란 겁도 나고 두렵지만 의지력으로 하는 것이 용기랍니다.
그리고 의지력과 용기는 내가 어떻게 내 마음에 불어 넣느냐에 따라 그 힘과 결과도 달라지는 것이고요.
무슨 말이냐 하면 의지력과 용기라는 것은 내가 내 마음에 얼마만큼 불어넣느냐에 따라 그 힘과 결과는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분심(憤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뿐이고요.
많은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은 용감한 사람이라고 여기잖아요?
아니랍니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답니다.
난중일기를 읽어보면 저는 이순신 장군만큼 겁이 많은 사람이 또 있었을까 하면서 보았는데요.
겁이 많다 보니까 조심하게 되는 것이고 두렵다 보니까 철저하게 준비하고 대비를 했던 거랍니다.
영화니까 그렇게 꾸민 것이지요.
그리고 싸울 때에는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라도 하고자 하는 분심과 의지력과 용기만 있으면 그 어떠한 일도 해낼 수가 있었던 것이고요.
여러분들도 난중일기를 한번 읽어보세요.
거의가 조심투성이이고 준비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고 하는 내용들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데요.
실제로 이순신 장군도 걱정되고 두렵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내용들도 나오고요.
그리고 이러한 분심과 의지력과 용기는 우리 민족들에게는 누구나 뼛속까지 뿌리박혀 있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는 평소에 이런 것들을 많이 관찰해 보는 경우인데요.
역자적으로 봐도 그렇답니다.
우리 민족은 전쟁이 처음 났을 때에는 다들 겁을 먹고 앞으로 잘나서지를 않는답니다.
그래서 전쟁 초기에는 대나무가 쪼개지듯 파죽지세로 밀리다가도
그러나 우리 민족의 근기는 내 가족이 적들에게 죽거나 친구가 죽거나 마을이 불타고 아녀자들이 거시기를 당하고 죽임을 당하거나 하면
우리 민족은 또 언제 그랬느냐는 듯 마음에서는 이미 불길이 타오르면서 나약하고 여렸던 마음들이 갑자기 불길이 불타오르면서 의지력과 용기가 치솟는 그런 민족이 우리 민족이라는 것인데요.
이 말은 곧 나약할 때는 한없이 나약하다는 뜻이고 한번 마음에 불이 타오르면 그 누가 붙잡더라도 걷잡을 수 없는 투지와 하고자 하는 의지력과 용기가 한꺼번에 치솟는 민족이 우리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그러한 근성과 근기를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요.
거기에 한번 불꽃을 지피기만 하면 누구나 걷잡을 수 없이 불타오른다는 것이고요.
다들 그렇지 않습니까?
나 말고 누가 내 마음에 불을 지피겠습니까?
그러니 무엇을 하든 스스로에게 불타는 마음을 불어 넣어 보라는 것입니다.
수행이나 수도도 그중에 하나라는 것이고요.
그래서 저는 우리 민족처럼 수행이나 수도에 적합한 민족이 없다고 저는 보고 있다는 것인데요.
그러나 문제는 우리 민족은 한번 나태함에 빠지면 한없이 헤어 나오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한번 내 마음에 불길이 번지면 걷잡을 수 없지만 반대로 한번 나태함에 빠지면 한없이 그곳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는 민족이 우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각자가 스스로 빠져나오셔야 한다는 것이고요.
사회생활이나 수행이나 수도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제 경우도 그랬고요.
여담으로 제 경우를 예로 들면 말도 마십시오?
제 경우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갈리는 그런 경우였는데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이전에는 그야말로 놀기만 좋아하다가 사회에 나오니까 장난이 아닌 겁니다?
공부를 못했으니 다른 친구들처럼 대학도 들어갈 수가 없었고 갈 때라곤 기껏해야 공사장이나 공장뿐이었는데요.
처음에는 얼마나 부끄럽고 쪽팔리던지 기가 꺾어서 모자는 푹 눌러쓰고 뒷골목으로만 다녔답니다.
혹시라도 여자 친구들이 보면 어쩌겠어요?
누구는 대학 가고 누구는 새벽에 일어나 공사장을 가자니 얼마나 쪽팔리고 부끄럽던지 저는 그랬답니다.
내가 공부를 안 했으니 할 말도 없고요.
혼자 학교 산이라는 곳에 올라가 울기도 참 많이 울었었답니다.
어쩔 때에는 집에 혼자 들어와서 등 돌리고 컥컥거리면서 어깨를 들먹이며 울고 있으면 어머니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제 손을 잡고 등을 두드려주기도 했고요.
그러면 더 성질이 나는 겁니다?
그래서 병신처럼 울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뛰쳐나가곤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왜냐하면 공장이나 공사장에 가기가 싫었으니까요.
물론 그때는 철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지만 그때는 저도
공장이나 공사장을 옮겨 다닐 때마다 걱정이 앞서고 강박감이 생기고 불안한 그런 마음 있잖아요?
물론 나이가 어리다 보니까 그렇다고는 하지만 저도 한없이 나약했다는 것인데요.
그러나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력과 용기만 있으면 그 무엇이든 능히 할 수가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답니다.
왜냐하면 뭐든지 하다 보면 처음에만 좀 힘들 뿐이지 별로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도 그때부터 시작을 한 것이고요.
제 경우는 저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답니다.
공부도 해보니까 되더라 이겁니다?
어릴 적 친구들도 이 글을 보고 있지만 저라는 놈은 처음 교과서를 받으면 처음 한두 장만 연필 자국이 있었지 공부 차체를 아예 안 했기 때문에 매일 교과서가 새 책이었는데요.
공책도 항상 새것이었고요.
연필도 깎은 적이 별로 없답니다.
숙제도 중학교 때부터는 거의 해간 적이 없으니 뭐든지 새것일 수 박에요?
왜냐하면 중학교 때는 이미 국민학교 때 밴드부를 같이 하던 친구도 이 글을 보고 있지만 빠따 맞는 것에는 이미 이골이 나 있었기 때문에 중고등학교에 가서도 숙제를 안 해가도 빠따로 때우면 됐었기 때문에 놀 시간이 많았던 것인데요.
매 맞는 것이 무서워서 노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밤늦게까지 놀다 보니까 매일 지각일 수박에 없었고 교문에 들어서면서부터 제 경우는 선도부 형들에게 빠따였는데요.
국민학교 동창이었던 철수라는 친구도 매일 같이 중간에 만나서 지각생이었는데요.
그 친구는 도시락도 힘든 친구였답니다.
그 친구는 매일 동생들 때문에 새벽부터 우유배달과 신문배달까지 하고 학교를 갔어야 했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둘이 만나면 담치기를 하다가 걸려서 더 맞기도 했었고요.
그래도 그 친구는 일이라도 하다가 지각을 한 것이지만
그런데 사회에 나가 보니까 차원이 다른 겁니다?
일단은 놀 수가 없는 겁니다?
일이 재미도 없었고요?
그리고 규율에 맞춰서 일을 해야 하고요?
거기다가 나이도 나와 비슷한 넘들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면서 반말을 하니까 나도 우당탕하게 된 것인데요.
그렇잖아요?
자기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반말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니까 열불이 날수 박에요?
그러다 보니까 우당탕하게 되는 것이고요.
그래도 그때마다 이종사촌 형님들이 교도소로 넘어가기 전에 유치장에서 빼줘서 그나마 다행이지 아니면 저도 빨간 줄이 몇 개는 있었을 것인데요.
그럴 때마다 부담감이 많이 갔었고 무엇보다 의지력과 용기가 많이 꺾이게 되더라는 것인데요.
그래서 직장을 여기저기 옮겨 다녔던 것이고요.
제 경우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에 나가다 보니까 다들 나보다 나이들도 많고 그 당시에는 왜들 술만 처먹으면 기숙사나 술집에서 서로 치고받고 하는지 저도 덩달아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는 것인데요.
같이 술 먹다가 나만 비겁하게 빠질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나중에는 "그래 아이 C8~! 될 대로 돼라" 하면서 나도 같이 뒤집어엎으면서 살게 되더라는 것인데요.
어쩌겠습니까? 미친 세상에서는 나도 미칠 수 박에요?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하면 뭐든지 처음에만 그렇지 해보면 별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수행도 그렇고요.
그래서 제 경우도 기왕이면 돈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곳에서 일을 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인데요.
그렇잖아요? 어차피 돈에 미치고 출세에 미친 세상인데 나도 같이 미쳐야 살 수 있잖아요?
그래서 사채업도 했던 것이고 중국에도 들어갔던 것이고요.
왜냐하면 80년대에는 사채시장에 가장 많은 돈들이 몰려있었기 때문이고 2000년 도에는 중국으로 돈이 가장 많이 몰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저도 중국으로 들어간 것인데요.
그렇잖아요?
기왕 돈을 벌려면 돈이 가장 많이 몰려있는 곳에서 벌어야 하잖아요?
아이고 여기서는 창피해서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중국으로 들어갈 때도 말도 마십시오?
제 경우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모두 포기하면서까지 들어갔었으니까요.
나는 정말로 자신이 있는데 단 한 사람도 "그래 한번 해보라" 하는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렇다고 하고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할 수는 없잖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제 인생에서 가장 잘 선택한 길이 있다면 저는 사채업과 중국 길을 꼽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제 경우는 사채 업종에서는 사회에서 필요한 모든 기술들을 배우고 익혔기 때문이고,
중국에 들어가서도 제가 한국에서는 도저히 경험해 보지 못할 많은 것들을 누려도 보았고 무엇보다 이런 마음까지 선물을 받았으니 뭐를 더 바라겠어요?
제 말은 여러분들도 의지와 용기를 내서 해보라는 것입니다.
저는 견성성불이 안되는 이유를 두 가지로 보고 있는데요.
하나는 수행을 잘못하고 있거나 또 하나는 한다고는 하지만 열심히 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유를 하면 부처님은 여기에 대해서 우물을 비유로 말씀하셨는데요.
우물을 파다 보면 그 흙의 물기를 보고 우물이 터질지 아닐지 알 수가 있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씨앗과 나무로 비유를 하셨고요.
물기가 없는 곳을 아무리 파봐야 물이 나오겠습니까?
방향을 제대로 잡고 파야 물이 나오지요?
수행이나 수도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생각을 해보십시오?
2~30 년씩 열심히 우물(수행/수도)을 팠는데도 물기가 없으면 그것은 벌써 어떤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잖아요?
눈먼 봉사가 자기도 그 길을 가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겠습니까?
그렇잖아요?
말이 30년인지 30년이면 반평생인데요?
그런데 많은 수행자나 수도사들이 그러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무슨 종(種) 무슨 파(派) 하면서 말이지요?
아니다 싶으면 부처님처럼 빨리 다른 방법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두 번째 부류는 입으로만 수행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바리새인으로 비유를 하셨고요.
제가 보는 기독교는 전 세계적으로 성령을 영접하려는 사람들은 수도사들 몇 명만 빼고는 없다고 보는데요.
무엇보다 하고자 하는 의지력도 용기도 전혀 없고요.
,
그러면 수식관(數息觀)에 대해서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수식관(數息觀)이란 글자를 풀이해 보면 중국 글은 어순이 (주어+동사+목적어)라고 했잖아요.
쉽게 말해 숨을 쉬는 것(息)을 숫자를 세면서(數) 보는 것(觀)이 수식관(數息觀)이라는 것입니다.
제 경우는 수식관을 할 때에 좌선을 하든 걷기 명상을 할 때에 숨을 들이마시거나 내쉬거나 할 때에 "하나.." "둘.." 하면서 숫자를 세면서 한답니다.
그리고 마음에 뭔가가 들어 있을 때에는 부처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몸(오온)과 마음]을 관찰하면서 무상을 사유하면서..?
숨을 내쉴 때에 내 마음의 것들도 같이 내보냅니다.(수식관 핵심)
이해가 가시나요?
누구나 숨을 쉴 때에는 마치 방아를 찌듯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하잖아요?
물레방아처럼 자동으로 "쿵 ~ 짝" "쿵 ~ 짝" 하면서 리듬을 맞추듯이 말입니다.
숨을 쉴 때에도 자동으로 리듬을 타듯이 숨이 들어가고 나가고 하잖아요?
그 리듬에 맞춰서 숨이 나갈 때 마음의 것들도 내보내듯이 해보라는 것입니다.
숫자를 세면서 하시면 너욱 효과가 좋다는 것이고요.
이 방법은 제대로 하면 최고라 할 수 있는데요.
그런데 지금 수행자들은 들숨 날숨으로 마음만 고요하게 만들려고 하지 마음의 것들을 근본적인 것을 해결하려고는 하지 않는답니다.
스스로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것은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간화선도 마찬가지이고요.
모든 수행은 (고→집→멸→도)랍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멸)이고요.
그런데 (멸)은 스스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랍니다.
내 스스로가 내려놓고 버리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근본적인 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다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모닥불도 마찬가지랍니다.
속에 든 불씨를 완전히 끄지 않고 불길만 덮는다고 그 불씨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랍니다.
마음의 불씨도 그렇다는 것이고요.
마음의 불씨도 완전히 뿌리부터 뽑지 않으면 옆에서 누가 조금만 뭐라고 해도 다시 불길이 옮겨붙어서 화를 내거나 하는 거랍니다.
그래서 경허선사도 지금 수행자들은 절반만 알고 절반은 모른다 하신 것이고요.
하시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을 주시고요.
그러면 오늘 본문 내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ㅡ♡
«1» 불교 쪽
[선문염송] 중에서.. (201편) 20260928
제목 : 법계(法界)
염관이 어떤 중에게 묻되 "어떤 경론을 익히었는고?" 중이 대답호대 "화엄경을 강의하였습니다" 선사가 다시 묻되 "경에는 몇 가지 법계가 있는고?" 중이 대답호대 "간단히 말하면 네 가지가 있고 널리 말하면 겹겹이 끝이 없습니다" 이에 선사가 불자를 세우면서 말호대 "이것은 몇째 법계에 속하는고?" 하니, 중이 양구하거늘, 선사가 말호대 "생각해서 알고 궁리해서 터득하는 것은 귀신 굴 속에 서 살림을 하는 짓이다. 햇빛 아래 등불이니 과연 광채를 잃을 것이니라 나가거라" 하였다.
[보복이 듣고 말호대 "절을 한다면 화상의 방망이를 맞는 것입니다" 하고, 화산 이 대신 말호대 "제가 화상을 괴롭히지 않겠으니 괴이히 여기지 마소서" 하고, 법안을 대신 손뼉을 세 번 쳤다.]
,
(한문 원본)
法界
鹽官 問僧 蘊何經論 儈云 講華嚴經 師云經中 有幾種法界 僧云 略說四種 廣說則重重無盡 師豎起拂子云 者箇 是第幾種法界中收 僧 良久 師云 思而知慮而解는 是鬼窟裡活計 日下孤燈 果然失照 出去 (保福 聞云若禮拜 卽喫和尙棒 禾山代云 某甲 不煩和尙 莫怪 法眼 代 拊掌三下)
♥~~♥
«2» 기독교 쪽
제목 : 도마복음 제34장
(아래 하단 숫자 :19:07/54:36)
https://m.youtube.com/watch?v=8fLKlrmCvGI&pp=iggCQAE%3D
,
1. 예수께서 가라사대,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
.
ㅡ♡♡
.
.
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오늘은 지면 공간이 적어서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ㅡ♡
(본문 해설)
오늘 내용은 한마디로 말하면?
불자는 즉 본성(불성/성령)은 잡을 수도, 셀 수도, 숫자도, 순서도 없다는 뜻입니다.
본성(불성/성령)은 그냥 순간적으로 보고 깨닫는 것이지 어떤 생각이나 궁리를 해서 터득하는 그런 것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것입니다.
비유를 하면 직접 남대문도 안 가본 사람들이 사진이나 말만 듣고 이것은 저렇고 저것은 이렇다 하는 것은 모두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것입니다.
,
전체 내용을 살펴보면 이런 내용이랍니다.^^
염관이 하루는 어떤 중에게 묻기를..
"어떤 경론을 익히었는고?"
했다는 것인데요?
이 말은 수행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는냐는 것입니다.
본성(불성/성령)을 깨달았느냐는 뜻으로 묻는 거랍니다.
그랬더니 그 중이 대답하기를..
"화엄경을 강의하였습니다"
했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다시 염관 선사가 다시 묻기를..
"경에는 몇 가지 법계가 있는고?"
라고 하니까 그 중이 말하길..
"간단히 말하면 네 가지가 있고 널리 말하면 겹겹이 끝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을 하니까 염관 선사가 불자를 세우면서 말하길..
"이것은 몇째 법계에 속하는고?"
했다는 것인데요.
바로 여기서는 [불자를 세우니]가 선문이랍니다.
선문답을 할 때에는 항상 대화 중에 [선문]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해야 한답니다.
안 그러면 선사들과의 대화에서는 똥오줌도 못 가리고 내려올 수박에 없답니다.
왜냐하면 대화 자체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서는 화엄경에는 무슨 내용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지금 이 중은 이런저런 것들이 있다고 대답을 했잖아요?
그랬더니 염관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불자를 세우면서 그러면 이 불자는 몇째 법계에 속하는지를 물었고요?
여기서 불자를 세우면서 이것은 몇 번째에 속하는 법계인지를 묻는 것이 선문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대가 법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여러 가지 법계 중에 이 불자는 몇 번째에 속하냐고 묻는 것이고요.
여기서 말하는 불자가 바로 본성(불성/성령)을 묻고 있는 거랍니다.
쉽게 말해 네가 지금 법계는 여러 가지로 겹겹이 끝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는데 그러면 본성(불성/성령)은 그중에서 몇 번째에 속하는지를 묻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중이 생각을 하고 있더랍니다?^^
그래서 염관 선사가 말하기를..
이것은 생각을 해서 알려고 하고 궁리하고 연구를 해서 터득하려고 하는 것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보복이라는 선승이 이 말을 듣고
["절을 한다면 화상의 방망이를 맞는 것입니다" 하고, 화산 이 대신 말호대 "제가 화상을 괴롭히지 않겠으니 괴이히 여기지 마소서" 하고, 법안을 대신 손뼉을 세 번 쳤다.]
라고 한마디 했다는 것인데요.
여기서 손뼉을 세 번 쳤다는 뜻은?
본성(불성/성령)은 모양도 형체도 없다는 뜻입니다.
소리에 무슨 모양이 있고 형체가 있고 잡을 수도, 셀 수도, 숫자도, 순서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냥 공(空)이고 무(無)인데요.
그래서 염관은 그중에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던 거랍니다.
<불자에 대한 참고 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눌러보시기 바랍니다.^^)
https://m.search.daum.net/search?w=img&q=%EB%B6%88%EC%9E%90+%EC%82%AC%EC%A7%84&DA=IIM&vimg=68yvUUHoP4rlfvOMue
(보충 설명)
본성(불성/성령)은 생각을 해서 알고 궁리나 연구를 해서 터득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는 내용이 있어서 보충 설명을 드려보는 것인데요.
실제로 본성(불성/성령)을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여러 가지 신기한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오늘 염관 선사가 말하는 생각과 궁리 같은 것들이 떨어져 나가게 된다는 것인데요.
실제로 그렇답니다.
저도 처음에(2016년 여름) 가장 신기했던 것은 본성(불성/성령)을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생각이나 몸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이 현격히 줄어든다는 점인데요.
이것이 그대로 마음에 비추어지다 보니까 마음도 엄청 고요해 보이는 것이고요.
아무튼 본성(불성/성령)을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생각이나 몸에서 일어나 현상들은 거의 없어지게 되는데요.
그 대신 마음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지혜라는 것이 일어나게 된답니다.
그렇다고 생각을 아예 안 하거나 몸에서 아예 안 일어난다는 것은 아니고요.
생각은 하되 그 생각을 오래 들고 있지를 않게 된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서 일어나는 알아차림이라는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그저 마음의 알아차림을 보충해 주는 형식이고요.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마음(본성/불성/성령)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오늘 이 중처럼 생각이나 분별이나 강구 등을 통해서 머리로 연구하면서 살아가다 보니까 항상 실수도 많고 괴로움과 고통 속으로 빠지게 되는 거랍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이 실제로 그렇답니다.
실제로 본성(불성/성령)을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그런 것들이 있답니다.
그래서 선사들은 머리가 아닌 마음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그런 것들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오늘 염관 선사도 불자를 세웠던 거랍니다.
그러면 이 불자(본성/불성/성령)는 뭐냐? 이거지요.^^
그래서 불교에서는 이것을 비유로 신기하고 신비롭고 묘하다고 해서 묘법연화(妙法蓮華)라 했던 거랍니다.
그만큼 더럽고 어지러운 진흙 속에서도 이 법(法)은 묘(妙) 하게 연꽃(蓮)처럼 스스로 피어난다(華)는 뜻으로 하는 말이랍니다.
이것이 바로 묘법연화(妙法蓮華)랍니다.
왜냐하면 진흙처럼 아주 척박하고 어두운 환경에서도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묘하게 마치 연꽃처럼 지혜의 연꽃이 피어오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님 외에도 모세는 물론 수많은 선지자(선지식인)들이 여기에 속한답니다.(진실)
제 자랑 같아서 뭐 합니다만 저도 오늘 내용은 엄청 많이 느끼고 있는 그런 내용인데요.
이런 글을 쓸 때도 남들은 저보고 불교 공부를 엄청 많이 했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전혀 아니랍니다.(진실)
다만 저는 불경이나 이런 내용들이 올라오면 즉석에서 제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옮겨 적는 것뿐이랍니다.(진실)
깨닫게 되면 안 배워도 다 알게 된답니다.
,
그러면 도마복음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오늘은 도마복음 제34장 내용인데요.
함께 감상해 보겠습니다.😁🙏🏻
★
[1. 예수께서 가라사대,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해설 : 참으로 기가 막힌 내용이 나왔습니다.😁👍🏻
불교 쪽 수행자분들은 지금 예수님 말씀을 누구나 다 알고 계실 건데요.
그렇지 않나요?^^
아마 모르긴 해도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 것인데요.^^
그 만금 지금 예수님 말씀은 부처님 말씀과 일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오늘 말씀은 이런 거랍니다.
단 한 마디로 말하면?
성령(불성)을 깨닫고 증득하지 못한 눈먼 봉사는 눈먼 봉사들을 성령(불성)의 자리로 인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당연한 말씀 아닙니까?
어떻게 눈먼 봉사가 눈먼 봉사들을 그것도 처음 가는 길을 제대로 안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랬다간 당연히 둘 다 구덩이에 빠지고 마는 것이지요.
구덩이에만 빠지면 다행이게요?
낭떠러지에 빠져서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어떻게 성령(불성)을 모르는데 성령(불성)의 길로 이끌 수가 있겠어요?
그런 내용이랍니다.😁🙏🏻
끝🤗
.
.
ㅡ♡♡
.
.
(2) 법에 대한 내용, 질문이 있는 경우 질문 내용
이 란은 우리들의 란인데요.
질문이나 세상살이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란이랍니다.
그리고 내용 끝에 (진실)이라는 표시는 제가 체험한 내용들과 마음에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한 [동의] 표시랍니다.
ㅡ♡
지면이 작아서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
그동안 나누었던 질문답 내용들이 많이 밀려있는데요.^^
너무 많아서 다 올리지 못해 좀 송구하지만 가급적이면 여러분들에게 유익한 내용부터 골라서 올려드리고 있답니다.^^
,
제 경우는 요즘 틈만 나면 기독교 쪽으로 종파를 가리지 않고 이 법(율법/불법)을 전하고 있는데요.
의외로 많은 크리스천(Christian) 형제 분들이 적극적으로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계시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꼭 크리스천(Christian) 형제자매들에게 예수님이 전해 주고자 했던 성령 영접을 단 한 사람이라도 전해주고 싶은 마음뿐인데요.
오늘 내용은 2025년 12월 04일 한 기독교 형제가 보내온 내용 중 하나랍니다.
(질문)
김 선생님
안녕하세요
전에 ??카페에서 만난 증인입니다.
날씨가 추운데 잘 계시는지요.
혹 이번 주 일요일날 오후에 시간되시나요? 찾아뵙고 싶습니다.
아니면 오전에도 가능합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답장)
아 네 안녕하세요.
그렇잖아도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이번 주말에는 파주 금촌에 가야 해서요.
괜찮으시면 평일 내일이나 모래 오후쯤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재 질문)
내일 4시 이후부터 가능합니다
(재 답장)
네 알겠습니다.
참고로 제가 매주 월요일에 보내 드리는 글인데요.
한번 보내봐 드리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마침 이번 달부터는 기독교 쪽 형제들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글을 쓰기로 했는데 잘 되었습니다.
그렇잖아도 그동안 증인 쪽 분들도 많이 만났었거든요.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는 같은 형제니까요.
https://m.cafe.daum.net/119sh/XASd/338?
(1)
http://ynculture.kr/m/content/view.html?§ion=107&no=2279&category=222
(2)
https://m.blog.naver.com/trueyears/222115732726
(재 질문)
안녕하세요?
곧 뵙겠습니다
원활한 대화를 위해 주제를 정하고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혹 논하고 싶은 주제가 있으신지요?
1~3개 정도 정하시면 어떨까요?
(재 답장)
네 좋지요.^^
저는 성령 영접에 대해 이야기 드리고 싶습니다.
다른 것은 별 관심이 없답니다.^^
(재 질문)
네
저는 왕국 주제를 추천합니다
이 주제로도 토론하시죠
(재 답장)
왕국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선생님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 자식인데 왜 다른 곳에서 왕국을 찾으려 하는지요?
선생님 안에 성령도 있고 왕국도 있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주(主) 안에 있다는 것이고요.
그 왕국을 찾는 방법도 제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만나면 좋다고 한 것이고요.(진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눌러보시기 바랍니다.^^)
과거로 가도 말이 통할까? – 한국어의 변화 - https://youtube.com/watch?v=uGDDyMWHJtg&si=eYkkWLnTi5t8LC7e
예수님 말씀도 2500년 전 언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답니다.
.
.
ㅡ♡♡
.
.
(3) 선문답(禪問答)
중국 글은 뜻글자랍니다.
선문답에서는 본성(성령)을 뜻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키포인트랍니다.
모든 선문답은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알아보는 것이랍니다.
깨닫고 증득한 것과는 크게 상관은 없답니다.
왜냐하면 우주보다 크고 넓은 불성(성령)의 세계를 몇 글자의 글과 말로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깨닫고 증득한 기준점은 글이나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성(성령)의 마음에서 오는 언행(言行)이 그 기준점이랍니다.
아무리 선문답을 잘 풀고 경전에 막힘이 없다 하더라도 불성(성령)의 마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선문답 같은 곳에 너무 집착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문답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보는 것이랍니다.
,
지난주 선문(禪問)입니다.
忠國師因僧問敎中 有情作佛 不見無情受記 且 賢劫千佛 孰是無情佛耶 師云 如皇太子未受位時 唯一身耳 受位之後 國土 盡屬於王 寧有國土別受位乎 今但有情受記作佛之時 十方國土 悉是遮那佛身 那得更有無情受記耶
(충 국사에게 어떤 중이 "경전에는 유정이 부처 된다는 말만 있고, 무정이 수기 받았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현겁의 천 부처님 가운데 누가 무정의 부처입니까? 하니 국사가 대답호대 "마치 황태자가 왕위를 물려받기 전에는 한 몸뿐이었는데, 왕위를 받은 뒤에는 온 국토가 모두 왕에 속함과 같다. 어찌 국토가 따로 왕위를 받는 일이 있으랴, 지금 유정만이 수기를 받아 부처가 될 때면 십방 세계의 국토가 모두 비로자나의 몸이 되거늘 어찌 따로 무정이 수기를 받겠는가?" 하였다.) 44
ㅡ
(선답)
오늘 내용도 본성(불성/성령/마음)을 표현한 내용인데요.^^
만약에 어떤 중이 저에게도
"경전에는 유정이 부처 된다는 말만 있고, 무정이 수기 받았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현겁의 천 부처님 가운데 누가 무정의 부처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저는 바로?
"무정이 곧 유정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해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방금 전 충 국사의 답변처럼
★ 마치 황태자가 왕위를 물려받기 전에는 한 몸 즉 유정뿐이었는데,
★ 왕위를 물려받은 뒤에는 즉 불성(성령)을 증득하고 난 후로는
★ 온 국토가 모두 왕에 속함과 같은데 즉 온 국토가 모두 불성(성령) 하나에 속해 있는 것과 같은데
★ 어찌 국토가 따로 왕위를 받는 일이 있으랴? 즉 이미 증득한 불성(성령)을 어찌 따로 증득을 받는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 지금 유정만이 수기를 받아 부처가 될 때면 즉 지금 불성(성령)을 증득하고 부처가 되면?
★ 십방 세계의 국토가 모두 비로자나의 몸이 되거늘 어찌 따로 무정이 수기를 받겠는가? 즉 불성(성령)만 증득을 하게 되면 십방 팔방이 모두 불국토(기독교는 하나님의 왕국)이거늘 어찌 따로 무정이 수기를 받는 일이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저는
"무정이 곧 유정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을 할 거라는 것입니다.
~♡~
다음 주 선문(禪問)입니다.
(한문 원본)
忠國師因僧問 如何是佛法大意 師曰 文殊堂裏萬菩薩 僧云 學人不會 師曰 大悲千手眼
(충 국사에게 어떤 중이 묻되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하니 국사가 대답호대 "문수당 안에 만 보살이니라" 하였다. 중이 다시 말호대 "학인이 잘 모르겠습니다." 하니, 국사가 대답호대 "대비 보살은 천 개의 눈과 손이니라" 하였다.)45
,
이번에도 이 내용에 맞는 합당한 답변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
.
ㅡ♡
.
.
(4) 다음 주 선문염송
[선문염송] 중에서.. (202편) 202601019
제목 : 불성(佛性)
염관 화상이 수시할 때에 말호대 "일제 중생이 본래 불성을 가지고 있느니라" 하니, 위산이 이 말을 전해 듣고 말호대 "일체 중생은 본래 불성이 없느니라" 하였다. 선사가 두 신객으로 하여금 위산을 참문케 했는데 그 기회에 앙산을 보고 말호대 "적사리여, 불법이 퍽이나 어려우니, 잘 배워야 됩니다" 하니, 양산이 동 그라미 하나를 그려 등 너머로 던지고 다시 손을 벌려 찾는 시늉을 하였다. 이에 두 중이 말이 없으니, 앙산이 말호대 "불법이 퍽이나 어려우니 잘 배워야 된다" 하고는 소매를 뿌리치고 자리를 떴다.
,
(한문 원본)
佛性
鹽官和尙 垂示云一切衆生 本有佛性 潙山 聞此語 却云一切衆生 本無佛性 師令二禪客으로 來參潙山 因見仰山 遂云寂闍梨 佛法 也大難 須是參學 始得 仰山 畫一圓相 拋向背後 却展手索 二禪客 無語 仰山云 佛法 也大難 須是參學 始得 便拂袖而行
,
오늘도 자신의 마음자리를 비추어보시고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혹시 개인별로 답을 주시거나 질문이 있으시면 메일로 주셔도 됩니다.^^
e-mail : 119e@daum.net
또는
다음 검색 창
[119 수행 선원]
.
.
ㅡ♡♡
.
.
(6) 법문 동영상
아래의 동영상을 보시고 여러분들도 한번 사유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OgafLXUTxY8?si=btBGnD5TpFbm3SWE
.
.
ㅡ♡♡
.
.
(7)《음악과 함께 수행을.. 》
"지금 음악을 듣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안으로 의식을 돌려보는 것입니다.^^
,
제목 : Paul Anka Diana (Official Video) HD 1080P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98Q0fuBwt-g?si=OJBVcBzr_KiwYOcN
.
.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