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닭 가공회사는 아마도 하림이라는 회사가 아닐까 하는데...
예전에는 양계장에서 닭을 기를 때 본인들이 병아리를 사와서 용도에 맞게 기른 닭을 닭 가공공장에 납품을 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니까 본인의 책임 아래 병아리를 구입 하여 길러서 납품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하림 같은 닭 가공공장에서 아예 병아리를 사서 양계장에 주어 기르게 하고 기른 수수료를 주는 방
식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전에는 양계장이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을 졌다면 지금은 단순히 수수료를 받고 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양계장이 자신의 돈으로 병아리를 사서 기르게 되면 그 닭의 소유권은 양계장에게 있다.
그러나 위탁을 받아 기르게 되면 그 닭의 소유권은 위탁한 닭 가공공장에 있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소유일 때는 마음대로 잡아 먹을 수도 있고 팔 수도 있었지만 위탁을 받아 기르는 경우는 자신의
소유가 아니기 때문에 잡아먹을 수도 없고 임의로 팔 수도 없다.
닭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어떤 사람들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사람 곧 어린아이의 교육의 방법에 관한 이야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가정에서나 학교 그리고 군대 같은 교육기관에서 체벌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가정에서도 부모는 자녀들에게 매를 들지 못하게 되어 있으며 학교에서도 그렇고 군대에서도 신체적인 체벌은 금
지되어 있다.
누구라도 다 아는 이야기를 왜 하는가 하면 사실 신체적 체벌금지가 우리나라에 정착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
는다.
그 말은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의 목적상 신체적인 체벌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 왔으며 체벌이 교육의 효과가
더 크고 오래 지속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담에도 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 든가 미운 넘에게는 떡
을 주고 이쁜 넘에게는 매를 준다든가 하는 속담들이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런 체벌이 없어지게 된 것은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서양식의 교육제도를 받아들이면서 그 영향으로 서구
와 같이 신체적인 체벌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서양에서는 아이들에게 신체적인 체벌을 하지 않는 이유는 서양의 종교인 기독교의 종교관에서 비롯된 가치관에
서 찾을 수 있게 되는데 서양의 신(神)인 하나님의 신성(神性)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한다.
완전무결하며 절대적이고 유일하고 선하며 영원불변이고 등등.... 온갖 미사여구가 총동원하여 신성함을 설명하
게 된다.
그리고 인간들 또한 그런 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로 신의 속성을 그대로 이어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신성을
그대로 물려받게 된다. 그런데 인간이 신과 같이 거룩하지 못한 것은 선악과를 따 먹고 타락했기 때문이라는 타락
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인간의 현재 상태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래야 신의 신성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이들에게 체벌을 하지 않는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서양에서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동양에서처럼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처럼 종적(縱的)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지만,
서양에서는 그렇게 보지 않고 부모와 자녀 부부 등 모든 인간관계는 목적을 두고 잠시 만났다가 흩어지는 개별적
인 관계로 본다.
따라서 부부가 같이 천국에 가서 같이 산다든가 자녀가 같이 천국에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 기독교의 교리에는 없
다. 그래서 어머니 본인은 천국을 가는데 자녀가 천국을 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기 때문에
동양의 어머니처럼 자리를 양보한다든가 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양육의 책임만 완성하면 그만으로 동양에서 부모자 자녀에게 하는 것처럼 무기한의 희
생은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자녀는 신 곧 하나님이 나에게 양육을 위탁한 것으로에 자녀는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리고 생각한다.
동양의 유교적인 가치관에서는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딸을 노름빚으로 팔아먹었어도 국가
에서 간섭을 하지 못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해방 후까지 이런 행태들이 있었다.
자녀의 의사와는 상관이 없이 부모가 마음대로 혼처를 정해서 강제로 결혼을 시킨다든가 하는 것들도 같은 맥락
이다.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자녀를 신 곧 하나님이 자신에게 양육을 위탁하였다고 보아서 성년이 될 때까지 양육을 하게 되고 그
기간이 끝나면 자신의 책임은 끝이 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의무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사랑의 감정을 가
지고 양육을 하지만 자식을 자신이 끝까지 책임져야 하는 자신의 소유물이나 창조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양에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신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신의 소유인 셈이며 인간도 신의 소유물이
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인간들도 창조주인 신에게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신에게서 태어난 자식이라고 하더라도 신이 창조하였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며 신이 자신에게 양육을
위탁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전에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아이들에게 신체적인 체벌을 하였지만, 지금은 하지 않게 된 것은 인권이 신장 되면서
아이들의 인권도 같이 신장 되었을 뿐 아니라, 위탁양육의 개념과 더불어 완전무결한 신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
은 아이들도 완전무결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체벌을 하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교육만 잘하면 저절로 완전한 인간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구태여 체벌을 하지 않더라도 참고 기다리면서 설득을 하면 완전한 인간이 될 것이기 때문에 체벌을 해서는 안 된
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은 하나님처럼 완전한 존재라는 이런 종교관은 이런 가치관을 낳게 되고 이런 가치관은 체벌을 해서는 안
된다는 오늘의 교육관을 가져오게 된 셈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신을 닮은 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신을 닮은 존재로 자라날 것이라는 것은 희망사항일 뿐 사실
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현재의 어른들도 그런 아이들이 성장하여 어른이 된 것으로 현재 어른의 모습이 아이들의 미래의 모습이다. 현재
의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 아이들이 신을 닯은 완전한 존재로 자라날 것이라는 가정(假定)은 사실 터무니 없는 것
이다.
체벌을 구태여 찬성을 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매가 필요한 자녀는 매가 필요하며 설득이 필요한 자녀에게는 설득
이 필요할 것으로 경우에 따라서 두 가지가 병행이 되어야 온전한 교육이 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유교적인 철학관에서는 인간은 완전하지 않은 존재로 성장하면서 절차탁마(切磋琢磨)를 거쳐서 완성되어 간다고
보기 때문에 때로는 회초리가 등장하기도 했던 것이다.
숙제를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어떤 체벌이 없이 말로만 해서는 소용이 없다.
꼭 이런 문제 때문은 아니겠지만 지금은 학교에서 가능한 숙제를 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 결과 통제가 되지 않는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아예 교육하기를 포기를 해버리고 마는데 통제를 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가 성장을 하면서 저절로 완전해기기는 고사하고 결국 가정과 사회의 문제아가 될 가능성이
크게 된다.
기독교적인 교육관을 따라 그대로 두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 아니면 체벌을 해서라도 올바른 길로
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될지는 확률적으로 보더라도 후자가 더 높을 것이다.
무작정 아이들에게 매를 드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만 매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매는 그 어떤 것보다 그 아이에게 필
요한 것이 분명하다.
우선 노는 것이 좋은 어린아이들에게 어떤 말로 설득을 할 것인가....
하물며 어른에게도 당근과 채찍이 필요한데 모든 것이 미성숙하여 판단력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설득만으로 가능
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터무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현실과 맞지 않는 교육방법을 선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잘못된 가정(假定)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신은
인간에게 생명을 위탁하여 양육을 부탁한 적도 없고, 완전무결하다는 신은 있지도 않으며, 따라서 인간도 신성을
닮아서 완전하다는 그 이론도 사실은 주장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이상(理想)에 불과한 이론에 입각하여 세워진 교육관이 현실이나 현장엣허 맞아 들어갈 리가 없게 되는 것
이다.
어떤 사상은 그 뿌리가 철학이 바탕이 되는데 그 철학에 의햇 인생관이나 가치관 교육관 등이 정립하게 된다.
그런데 그 철학의 뿌리가 되는 것이 종교이기 때문에 인생관이나 가치관 거기에서 파생되는 교육관 등은 종교의
교리, 곧 종교관에 기본이 되게 된다.
어떤 나라의 윤리관이나 가치관 인생관 그리고 교육관 등은 그 당시 어떤 종교를 믿고 있었는가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신라와 고려시대에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불교적인 윤리관과 가치관고 인생관과 교
육관으로 살아 왔다면, 조선시대에는 유교적인 윤리관과 가치관과 교육관으로 살아왔고 지금은 기독교적인 가치
관과 교육관의 영향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철학적 근거로 아이들에게 매를 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알지 못한 채 그런 줄 알고 살아 오
고 있는데 체벌을 아끼는 것에 대한 피해는 결국 체벌이 필요한 아이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전에는 말을 듣지 않거나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들을 선생님이 직접 체벌을 해서라도 바로 잡았지만, 지금은 아에
포기가 아니라 방기(放棄)를 해 버리는데 이는 잘못된 교육관이 빚은 결과이다.
국세청에서 정년 퇴직을 한지가 15년 정도가 되었는데 국세청에서는 어떤 가정을 해 놓고 행정을 해 나가는가 하
면 모든 납세자는 선량하기 때문에 탈세를 하지 않는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없다. ‘모든 납세자는 탈세를 하고 싶어 하며 기회만 있으면 탈세를 하려고 한다’ 가 현실적
으로 정상인 생각이다.
그래서 탈세를 하더라도 그것이 문제가 되어서 노출이 되지 않으면 국가에서 조사 같은 제재(制裁)를 할 수가 없
다. 그래서 국가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고 국민들에게 욕을 먹게 되는 것이다.
교육도 그런 것이 인간들은 선량하거나 완전한 것도 아닌데 모든 인간은 선량하고 완전하다는 가정을 하고 법을
만들기 때문에 이상에 치우친 법이 만들어지고 그로 인한 부작용이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말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알아서 크는 아이들이 있고, 잔소리를 해야 되는 아이들도 있고
매가 필요한 아이들도 있는데 아이들의 성향에 맞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아이들에게 매를 한 번도 들지 않고 키운 사람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나도 30 센치짜리 플라스틱자가 몇 번 등장
했었다), 자식이 어렸을 때 매를 한 번도 들지 않고 키운 사람은 대단한 자식을 두었거나 방치를 하였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체벌이 없어지면서 전체적으로 어린아이들의 인권은 좋아질지 모르지만 체벌이 없어지므로 제일
피해를 많이 보는 아이들도 있을 것인데 교육의 현장에서 포기되거나 방기되는 아이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은 아마도 대부분 가난한 집의 자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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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를 들자는 것은 아니지만 매가 왜 없어지게 되었는가에 대한 유래(由來)정도는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서.....
첫댓글 저는 한번도
매를 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자식들도
손주들에게도
그런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야단을 치고,
매를 들어도
고쳐지지않는
학생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바로 잡아 지겠지요.
사랑의 매?
스스로 깨닫고
고쳐지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해봅니다.
저의 경험이고,소견입니다.
아주 훌륭한 자손을 두는 것은 인생의 가장 큰 복 중의 하나이지요.
나도 남매를 두었는데 아들 넘은 중고등학교 때 잔소리가 좀 필요한 넘이었습니다.
자녀들을 보면
누가 머라고 하기 전에 스스로 하는 자녀가 있고,
누가 옆에서 잔소리를 해야 하는 자녀가 있고,
잔소리를 넘어저 재제를 가해야 되는 자녀가 있고
모든 것이 통하지 않는 자녀가 있지요.
우리가 중곻등학교를 다니던 60년대는 선생님의 체벌이 일상이었는데 체벌이 무서워서 숙제나 공부를 열심히 했었지요.
그런 아이들은 부모에게도 방치를 당하는 아이들이지요
시험 성적이 나쁘면 엎어 놓고 빳다를 맞기도 하고....
지나놓고 보면 빳다의 효과가 대단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은 방치를 해버리는데 그런 아이들의 비율이 상당하다고 하네요...
@뿅망치(신현준) 중.고교때 미군야전침대목으로 맞은
단체 기합은
분명 잘 되라고
맞은 것 같은데,
군 보병학교에서
같은 야전침대목으로
맞은 단체기합은 분명
화풀이의 대상
인 것 같습니다.
두 사람 다
별명이 미친 개.
후자는 월남에서
하사관들을
똑같이 대했다가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돌아왔지요.
아마도 전쟁터에서
전우애보다는
명령과 엄한군기로
대했기에
위험한 상태에
처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교에서건,
군에서건
지성으로
사랑으로
대하면
더욱 효과가
클 것 같습니다.
아주 긴 글이라 따라 가다가 중간에서그만 맥을 놓쳤습니다
아이들 교육에 대해서 깊게 생각한적이 없어 체벌 관련해서는 특별한 의견이 없지만
글에서 길게 언급한 서양인들의 자식에 대한 생각 -
(서양에서는 부모와 자녀 부부 등 모든 인간관계는 목적을 두고 잠시 만났다가 흩어지는 개별적인 관계로 본다)
이곳에서 25년정도 지내며 느낀점은
정도의 차이지만 동서양 확연히 구분 지을 만큼 그렇게 달라 보이지는 않더군요,
자식에 대한 집착은 어느곳에서나 비슷한듯 합니다
긴 글이지만
체벌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것이라 이해합니다.
문제는 그 체벌에 교육보단 감정이 개입된다는것이 문제 같습니다.
저는 엄니껜 늘 잔소리를 들었지만 맞을 일엔 아버지께서 개입하셨죠.
그러나 엄하신 아버지라서 늘 바르게 행동하려 했으니 맞을 일은 딱히 없었으나 성적표를 받아든 날 게을리공부한 표가 날땐 매를 드셨죠.
그러나 물어보십니다.
몇대 맞을래? 하구요.
저는 꽤를 부리죠. 한대는 양심상 그렇고 두대요.하구요. 그럼 손바닥을 두대 때리십니다. 하지만 믿었던 큰동생이 학원 갈 돈으로 놀러다니 걸 아시곤 몽둥이가 부러지도록 때리셨고 머리까지 밀어버리셨지요.
첨이자 마지막인 무서운 체벌로 동생은 중앙대학을 들어가었죠.
아마도 방치하셨다면 대학은 못 갔을거라 생각하는 동생입니다.
동생에겐 약이되는 체벌이었습니다.그만큼 아버지껜 네자녀 중 제일 사랑하는 장남이었으니요.
어쨋든 저도 기본적으론 체벌은 반대합니다만 학교 보단 가정에서 자녀를 책임저야한다는 생각입니다.
아침에 이 글을 읽고 하루 내내 도로를 달리며 체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성적이 떨어져서, 야간 자율수업을 땡땡이 쳐서, 공납금을 제때 못 내서, 수업 시간에 멍 때리다가... 등등의 많은 경우 체벌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대부분의 경우 저에게 큰 효과는 없었지만요.
저에게 체벌 중 가장 효과가 컸던 것은 전에 글에도 한번 썼는데 아버지가 저에게 딱 한번 체벌하셨던 딱밤 한 대 였습니다. 아버지는 우리 남매 누구에게도 매를 드신 적이 없지만 우리 모두 아버지를 어려워하는 엄부로서의 권위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매는 단기적 속성 교육의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그 후유증이 남기 쉬우므로 매를 드는 사람의 인격 수양 정도가 높아야 하고, 인격 수양이 높은 사람이라면 굳이 매를 들지 않고도 좋은 교육 효과를 얻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어릴때에는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체벌이 심했습니다
특히 군대 체벌은 너무 심했지요
지금은 세상이 많이 좋아져서 어디에서나 체벌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체벌을 완전히 없앨수 있으면 이상적인데?
그게 쉽지 않다는게 문제 일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