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백선엽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윤석열 정부
6.25 전쟁은 6.25 전쟁이고 친일은 친일이다.
조하준 기자 승인 2023.07.05 15:24
5일 중앙일보가 충격적인 단독 기사를 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故 백선엽 장군의 ‘친일반민족행위자’ 기재 사실을 삭제하려고 추진 중이란 것이다. 엄연히 만주국에서 간도특설대로 복무하며 독립군 토벌에 앞장선 친일파라는 것이 역사적 사실인데 윤석열 정부가 앞장서서 면죄부를 주려고 나서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역사 인식 부재 논란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지만 갈수록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백선엽 장군 서거 3주기 추모식’이 열린 5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국가보훈부와 국립 현충원 홈페이지에서 백 장군의 안장 기록을 검색하면 비고란에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문구가 같이 뜬다”며 “백 장군을 비롯한 12명의 현충원 영령이 그런 수모를 겪고 있다. 보훈부 차원에서 문구를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며 곧 결론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어 박 장관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세운 사람이라면, 백 장군은 국가 수립 이후 최대의 위기였던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존재”라며 “그런 분이 진영 갈등 탓에 역사의 험지에 남는 것을 그대로 둘 순 없다. 백 장군의 공적을 제대로 알려야 하는 게 보훈부의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박 장관이 삭제를 검토하겠다는 기록은 문재인 정부 시절 등재됐다. 2019년 3월 보훈처(당시 처장 피우진)는 보훈처ㆍ현충원 홈페이지의 안장자 기록에 ‘친일파’ 문구를 넣기로 결정했다. 친일파 여부는 노무현 정부 대통령 직속 기구로 설립된 ‘친일반민족 행위진상규명위원회’(반민규명위)가 정한 명단을 기준으로 삼았다.
백 장군의 안장 정보에 친일 기록이 등재된 건 안장식(2020년 7월 15일) 바로 다음 날부터였다. 보훈처는 백 장군 기록에 생년월일ㆍ묘역 위치 등 기본 정보와 함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했다는 정보를 올렸다. 백 장군은 과거 반민규명위로부터 “1941년부터 1945년 만주국군 장교로서 침략 전쟁에 협력했다” 등의 이유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되었다.
이를 근거로 당시 더불어민주당에선 “친일파 묘는 파묘(破墓)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파묘법까지 발의했다. 권칠승ㆍ김홍걸 의원 등은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국립묘지 안장을 금지하고, 유골이나 시신을 다른 장소로 이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냈다. 이들은 파묘법 공청회를 열어 “묘지법 개정이 나라를 나라다운 나라로 만드는 과정”(송영길 의원)이라고 주장했다.
국가보훈처 국립묘지 안장자 위치정보 검색 시스템 홈페이지에서 백선엽을 검색하면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출처 : 국가보훈처 홈페이지 갈무리/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현재 윤석열 정부는 백선엽이 6.25 전쟁 당시에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내 수세에 몰렸던 전세를 역전시키며 대한민국을 구해낸 영웅이라는 이유로 친일파 이력을 삭제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6.25 전쟁 때 공은 공이고 친일 행적은 친일 행적이다. 무엇보다 백선엽은 본인의 간도특설대 복무에 대해서 사죄한 적이 없다.
최소한 같은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서 친일파로 분류되었던 ‘참장군’ 이종찬 장군이나 김석원 장군 등은 젊은 시절의 과오에 대해 반성이라도 했고 홍사익의 경우는 죽음으로서 죄값을 치렀다. 하지만 백선엽은 100세 가까이 장수하면서 단 한 번도 친일 행적에 대해 반성과 사죄를 한 적이 없었다. 6.25 전쟁 때 공을 세웠다고 해서 친일파란 사실을 지워야 한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다.
박민식 장관이 정말로 백선엽의 공적을 제대로 알리고 싶다면 공과를 나란히 기재하는 것이 맞다. 과는 일방적으로 덮고 공만 기린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 왜곡이다. 북한 인민군을 상대로 공을 세운 것은 세운 것이고 일제에 부역한 것은 부역한 것이다. 이런 식의 잣대로 슬금슬금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백선엽이 속해 있었던 간도특설대는 정규 야전 부대가 아니라 특수부대여서 일부 대원들이 먼저 일반 농민으로 변장하고 독립군 활동 지역에 잠입하여 적극적인 정탐 활동을 벌였다. 이를 통해 독립군 거점이 파악되면 무장 본대가 투입되어 은신처와 협력 촌락을 급습해 토벌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독립군 협력자들을 잔인한 방식까지 동원해 색출 및 처단하면서 악명이 높아졌다. 1939년~1941년에 걸쳐 간도특설대가 가담한 이런 일련의 작전으로 동북항일연군 등 공산당 계열 항일 독립군들은 큰 타격을 입었고 김일성 등 한인 항일 독립군들은 연해주로 넘어가 사실상 간도성에서 소멸되었다.
백선엽의 자서전인 『군과 나』 일어판에는 자신이 간도특설대에 복무할 당시 독립군 토벌 사실을 인정하는 말을 남기면서 사죄는커녕 자기 변명에 가까운 말만 늘어놓았다.(출처 : 직썰 홈페이지 갈무리/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일부 백선엽 지지자들은 그가 독립군 토벌에 직접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반박하기도 하지만 그의 자서전인 『군과 나』 일어판에는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해도 한국인이 독립을 위해 싸우고 있었던 한국인을 토벌한 것이기 때문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내세운 일본의 책략에 완전히 빠져든 형국이었다.”고 하며 독립군 토벌 사실을 시인하며 일본의 책략에 말린 것이라고 자기 변명을 했다.
또 “그러나 우리가 전력을 다해 토벌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배반하고 오히려 게릴라가 되어 싸웠더라면 독립이 빨라졌다라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포에게 총을 겨눈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비판을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며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변명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이 내용은 오직 일어판에만 있을 뿐 한국어판에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안 그래도 잇단 친일 저자세 굴욕 외교로 인해 ‘친일파 정부’ 소리를 듣는 윤석열 정부인데 이젠 친일파에게까지 면죄부를 주려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을 벌이고 있다. 이러다가 매국노 이완용을 두고 ‘국제 정세를 냉철하게 판단하고 황실을 보존하기 위해 현명한 선택을 한 외교관’으로 포장하는 짓거리를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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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를 단죄해야 나라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