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8일(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 요셉 성인 하느님은 요셉 성인을 구세주의 아버지가 되게 하셔서 성가정을 보호하셨다. 요셉 성인이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마리아님은 예수님을 낳기도 전에 죽임을 당하셨을지 모른다. 설령 어렵게 출산했더라도 또래 아이들과 함께 난폭한 임금 헤로데에게 죽임을 당했을 거다. 요셉 성인이 천사의 말대로 임신한 마리아님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꿈에서 깨자마자 그 즉시 그날 밤에 아내와 갓난아기를 데리고 베들레헴에서 이집트로 피신했다. 나자렛에서 베들레헴으로, 다시 이집트로 계획에 없던 이주를 계속해야 했다. 그런 요셉 성인 덕분에 구세주 예수님은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실 수 있었고, 지금 여기에 있는 나 그리고 앞으로 세상 끝나는 날까지 생겨날 그리스도인들이 희망을 갖게 됐다.
요셉 성인은 그 옛날 야곱의 열두 아들 중 그의 큰 사랑을 받았던 요셉을 기억나게 한다. 그는 형들의 시기로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 갔지만, 거기서 제상이 된 요셉을 통해서 야곱의 온 가족은 살인적인 가뭄을 피해 살 수 있었다. 하느님은 야곱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셨는데, 그 이름이 이스라엘이다(창세 32,29). 하느님은 요셉을 통해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보호하셨듯이, 요셉 성인을 통해서 구세주를 그리고 지금 여기 나와 그 이후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지켜주신다. 요셉이란 이름은 ‘하느님이 더해 주신다. 또는 늘려주신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천사를 통해 요셉 성인의 의로움을 율법적 차원을 넘어가게 하셨던 거처럼 지금 여기 사는 우리는 성인의 도움으로 믿음을 더해간다.
하느님을 믿는다고 모든 일이 다 잘 되고 삶이 평안한 게 아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성공하고 편하게 살려면 불의한 세력과 권력에 빌붙어 그들처럼 살아야 한다. 예수님 말씀처럼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건 이리떼 가운데 있는 양들처럼 참으로 어렵고 위험하기까지 한 거다. 실제로 많은 그리스도인이 믿음을 지키려고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해야 한다(마태 10,16). 깨끗한 양심을 지키고 소외된 이들 편에 서려면 고통과 박해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소위 ‘남태령 대첩’이라고 불리는 엊그제 그 사건을 겪으면서 홀로 어렵게 외치고 투쟁하는 이들과 연대하는 시민들이 폭발적으로 많아졌다고 한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지금은 그 과정이라서 혼란스럽고 불안한 게 당연하다. 하지만 하느님은 반드시 당신 뜻을 이루신다.
그리스도인은 빛이고 소금이다. 하느님은 빛이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이다(1요한 1,5-6). 죄짓지 말아야 한다. 등잔 밑은 어둡지만 하느님은 빛 자체이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어둠이 있을 수 없다. 그분을 향해 있고, 그분과 친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양심을 더 깨끗하고 섬세하게 하고 나아가 때로는 세상의 도덕과 윤리까지 넘어가는 이들이 우리 그리스도인이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천사를 보내시고, 또 다른 요셉을 보내주신다. 내가 믿는 건 진리다. 믿음은 참되지만 내 안에는 거짓이 여전히 있어서 흔들리고 불안하고 넘어진다. 구세주 예수님이 죄인을 위한 영원한 십자가 희생을 완성하신 이유다. 믿는 우리는 언제나 용서받는다. 그래서 희망을 갖고 다시 일어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예수님, 지금 저희는 매우 혼란스럽고 불안합니다. 더 좋은 세상이 되려고 이런다고 믿으면서도 혹시 아니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합니다. 주님, 천사를 보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시고 요셉 성인에게 저희를 도와주라고 해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 품에 달려든 어린 예수님을 안고 계시듯이 저희를 그렇게 해주시고 주님의 길로 인도해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