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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차림 (8편) 과 도마복음 제35장》
음..
오늘도 수행 이야기부터 먼저 하고 본문 내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요즘에는 부처님이 하셨던 오정관(五停觀)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 있는데요.
앞전에 못 보신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눌러보시기 바랍니다.^^)
https://m.cafe.daum.net/119sh/_rec?boardTyp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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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오정관] 중에서 마지막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계분별관(界分別觀)과 일상생활과 수행에도 도움을 줄만한 [밥상 위의 그릇들..]에 대해서 설명을 드려보려고 하는데요.^^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오늘 내용 중에 분별(分別)이라는 단어가 나왔는데요.
여러분들은 혹시 분별(分別) 과 분별심(分别心)이 뭐가 다른지 아시나요?
한국 불교는 지금 한문으로 된 옛 어른들의 가르침들을 전혀 모르고 있답니다?
대표적인 것만 골라보아도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四聖諦) 같은 경우는 반대로 법문을 하고 계시는 분들도 많았고?
이 외에도 (色受想行識) (照見五蘊皆空) (眼耳鼻舌身意) 등을 어떻게 수행에 적용을 시키는지 등을 모르고 있답니다.
큰 스님들 법문도 마찬가지였답니다.
저는 지금 큰 스님들을 뭐라고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왜냐하면 이분들도 스승들에게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니까요.
왜냐하면 스승들도 이 글자가 당나라 당시에는 중국 사람들에게는 어떤 뜻으로 쓰이고 있고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등을 모르고 뜻풀이만 하다 보니까 이런 사단이 일어난 것일 텐데요?
저는 지금 제가 한문 신력이 좋다고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제 경우는 외우는 것은 딱 질색이라 한문을 많이 외우고 있지도 않고요.
다만 중국에서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한문 어순은 어떻고 한문이 어떤 식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기 때문에 이런 소리를 하는 거랍니다.
한문의 많은 특징 중 하나는 한 단어 앞뒤에 어떤 글자가 붙느냐에 따라 그 뜻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답니다.
분별(分別) 과 분별심(分别心)이라는 단어가 그렇다는 것이고요.
분별(分別) 뒤에 심(心) 자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그 뜻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특히 뒤에 [了] 자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그 뜻은 완전히 달라진답니다.
분별(分別) 과 분별심(分别心) 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뒤에 심(心) 자가 붙느냐 안 붙느냐에 따라서 그 뜻은 정 반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분별심(分别心) 은 지금처럼 법문하시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분별(分别) 은 정 반대로 법문을 하셔야 한답니다.
쉽게 말해 분별심(分别心) 은 지금처럼 "분별심을 내지 말라"는 법문이 맞답니다.
그러나 분별(分别)이라는 글자는 "분별을 하지 말라"라고 법문하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답니다.
왜냐하면 분별(分别)이라는 글자는 분리(分離) 해서 보라는 뜻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쉽게 말해
분별심(分别心) 은 이거냐 저거냐 하지 말라는 것이고
분별(分别)은 이거냐 저거냐 하라는 뜻이랍니다.
분별(分别)은 나누어서 보라는 뜻입니다.
특히 조견오온(照見五蘊) 같은 경우는 몸과 마음을 나누어서 돌이켜 보라는 뜻입니다.
지금 한국 불교는 한문을 잘 못 해석하고 공부하는 것이 너무 많답니다.
옛 어른들이 어순을 모르고 해석을 하다 보니까 거꾸로 해석한 것들이 너무 많답니다.
비유를 하면 "나는 학교에 간다" 해야 하는데 "학교는 나에게 간다"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지금이라도 빨리 중국어를 전공한 젊은 스님들이 한문 해석들을 제 정비하셔야 한답니다.
안 그러면 지금처럼 계속해서 헛발질만 하고 있을 수 박에 없답니다.
원하시면 제가 도울 수도 있고요.
이 외에도 잘못 해석을 하고 법문을 하고 계시는 것들이 너무 많답니다.
<근거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눌러보시기 바랍니다.^^)
① 分别心
핵심 의미: 외부적인 기준이나 개인적인 선호에 따라 사람이나 사물을 "좋다", "나쁘다", "옳다" 등으로 규정짓고, 이를 통해 호불호와 집착을 만들어내는 행위.
일반적인 행동 양상으로는 유리한 상황을 좋아하고 불리한 상황을 싫어하는 것,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것, 그리고 지위, 외모, 이익, 손실의 차이에 집착하는 것 등이 있습니다.
일상적인 차별과 일상적인 차별의 차이점: 일상적인 차별은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사실(예: 빨간불에 멈추는 것과 초록불에 출발하는 것)을 구분하는 반면, 차별은 주관적인 선호에서 비롯되는 문제와 갈등을 강조합니다.
삶의 교훈: 지나친 판단을 줄이고 차이점을 받아들이는 것은 내면의 평화와 더욱 객관적인 시각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 ● 바이두 백과사전
② 分别
서로 다른 명사, 차이점.
2. 동사: 헤어지다.
3. 부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구별되게.
4. 동사 식별.
5. 부사: 분리하다; 각각.
1. 차이점이나 구별을 나타낼 때: 두 가지가 같지 않다는 것을 설명할 때 사용되며, 예를 들어 "이 두 계획은 서로 다릅니다."와 같이 사용됩니다.
2. 이별 또는 헤어짐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일시적이거나 장기간 떨어져 있다는 뜻으로, "그들은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다"와 같이 사용됩니다.
3. 구별하다 또는 구분하다: 옳고 그름을 구별하거나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할 때 사용되며, 예를 들어 "좋고 나쁨을 구별하다"와 같이 쓰입니다.
4. 각 개인이나 사물이 독립적으로 행동함을 나타냅니다. 즉, 여러 개인이나 사물이 독립적으로 행동함을 의미합니다
(화면을 터치한 후 한 번 더 터치하세요.^^)
https://mr.baidu.com/r/23Vo5T3N6Zq?f=cp&rs=2366433277&ruk=zNqEvNeX3cpVFJFo6Owrxw&u=681703b74899e7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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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밥상 위의 그릇들..]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이것은 제가 중국에 있을 때 저보다 다섯 살 많은 (장지강)이라는 요령 대학교 교수 혐님이 저에게 종횡가(縱橫家)라는 학문을 수련해 보라고 해서 사업에 도음이 될까 싶어서 3년 정도 그때 익힌 것인데요.
종횡가는 상대의 마음을 다루는 기술이라면 수행이나 수도는 내 마음을 다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답니다.
둘 다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것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그러나 종횡가는 상대의 마음과 합(合)을 이루어서 종횡을 펼쳐서 목적을 달성하는 기술이라면
수행이나 수도는 반대로 내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기술을 말한답니다.
아무튼 [밥상 위의 그릇들..] 이야기는 사람들 마음에도 밥상 위의 그릇들처럼 여러 가지 모양과 크기의 마음 그릇들이 있다는 것인데요.
마치 밥상 위에는 여러 가지의 모양과 크기의 그릇들이 있듯이 우리들 마음에도 여러 가지의 모양과 크기의 마음 그릇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밥상 위에는 밥그릇이나 국그릇처럼 큰 그릇들도 있지만 반대로 찬그릇이나 간장 그릇처럼 작은 그릇들도 있듯이
마찬가지로 우리들 마음에도 여러 가지의 모양과 크기의 마음 그릇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수행이나 수도를 할 때에도 내가 어떤 마음 그릇이 크고 작은지를 알고 하면 좋다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밥상 위에 그릇들은 키우거나 줄일 수는 없지만 그러나 마음의 그릇들은 수행이나 수도를 통해 얼마든지 키우거나 줄어들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 비유를 마음이 클 때에는 우주보다도 넓지만 마음이 작을 때에는 바늘구멍도 안 들어간다 한답니다.
그래서 내 마음은 어떤 것이 크고 작은지를 알면 훨씬 더 알아차림을 하기 좋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음을 비우고 버리면 단박에 마음이 커지겠지만 그러기 전에는 제 경우처럼 각개전투로 해보라는 것입니다.
이 방법이 계분별관(界分別觀) 즉 경계(界)에 와닿는 것들을 구분해서(分別) 알아차림 해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수행의 집약체인 대념처경에서 항상 [몸과 마음]을 구분해서 보라고 하셨답니다.
이것이 계분별관(界分別觀)의 핵심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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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밥상 위에 그릇들도 큰 그릇 작은 그릇이 있듯이 우리들 마음 그릇들도 큰 것이 있고 작은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담아내는 마음 그릇은 크지만 즐거움이나 괴로움이나 고통 등을 담아내는 그릇들은 작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들은 괴로움이나 고통 등을 담아내는 마음 그릇들은 크지만 즐거움이나 화 등을 담아내는 그릇은 작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비유를 하면 화를 담아내는 그릇은 80인데 화가 들어오는 량은 90이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넘쳐서 폭발하지 않겠습니까?
마치 물 잔에 물이 넘치듯 말입니다.
그래서 화를 내거나 심하면 치고받거나 더 심하면 앙굴마라처럼 살인까지 하게 되는 것이고요.
이런 것들이 다 한쪽으로는 마음 그릇들이 작기 때문에 넘쳐서 폭발하는 거랍니다.
이해가 가셨나요?
즐거움이나 괴로움이나 고통 등을 담아내는 그릇들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는 왜 별것도 아닌데 그렇게 화를 내냐?"
고 합니다?
화를 내는 사람은 화를 담아내는 그릇이 작은 것뿐인데 그런 소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대신 자기는 그 사람보다 즐거움이나 괴로움이나 고통 등을 담아내는 그릇이 작다는 것이고요.
그러면 그 사람은 또 이런 소리를 한답니다.
"너는 왜 별것도 아니데 그런 일을 가지고 그렇게 즐거워하고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느냐?" 고요.
사람들마다 종류별로 마음 크기가 다른 것뿐인데 남들 보고 너의 마음은 왜 그러냐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자기 마음 그릇들도 작은 것이 많은데 상대방 마음 그릇만 작다고 뭐라 하지 않느냐 이겁니다?
저도 예전에는 그랬었고요.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 그릇들을 비교해 보지도 않고 큰일들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망하는 것이고요.
그렇지 않은가요?
무슨 일이든 그 일의 특성과 종류에 따라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 그릇이 맞아야 하는데..
자기 마음대로 친인척이나 동창이라고 해서 믿고 맡긴다면 그 일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를 들면 이 친구는 즐거움 등을 담아내는 그릇들은 좀 작지만 그 대신 화를 담아내는 그릇 등은 남들 보다 크기 때문에 이 일을 맡겨도 되겠구나 하는 것 정도는 검증을 해봐야 하지 않느냐 이겁니다?
수행이나 수도도 그렇고요.
수행이나 수도도 상대나 자신의 마음 그릇에 맞춰서 수행 종류도 정해야 하지 않느냐 이겁니다.?
지금처럼 눈먼 봉사들이 하라는 대로 무조건 할 것이 아니라 부처님처럼 이니다 싶으면 빨리 다른 방법으로 돌려야 하지 않느냐 이겁니다?
이런 수행자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사업도 처음에는 마음이 맞는 것 같아서 일을 벌였다가 중간에 마음이 안 맞아서 원수가 되는 그런 경우도 많잖아요?
수행이나 수도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각자의 마음 그릇들도 다르고 앞머리와 뒷머리가 돌아가는 것도 다르고 하고자 하는 의지력과 용기도 다른데 어떻게 한 가지 방법으로만 수행을 고집하느냐 이겁니다?
부처님은 방편으로 여러 가지 방법들을 많이 만들어 두셨는데 한 가지 방법으로만 하시면 어떻게 하느냐 이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부처님도 방편이라는 것을 많이 만드신 것이고요.
왜냐하면 각자의 마음 그릇에 따라 하고자 하는 의지에 따라 앞머리와 뒷머리가 돌아가는 정도에 따라 여러 가지 방편들을 부처님이 만들어 두지 않았느냐 이겁니다?
그런데 지금 수행자들은 미련하고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슨 종(種) 무슨 파(派) 하면서 미련들을 떨고 있다는 것입니다.
방편이란 것이 뭐겠습니까?
사람들마다 다 마음 그릇이나 특성들이 다르다 보니까 그 사람의 근기에 맞게 방편으로 만든 것이 방변법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오늘 배울 계분별관(界分別觀) 내용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분별(分別)이란 불별심(分別心) 할 때에 그 (分別)인데요.
(分別)이란 나누어서 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이 대념처경에서 늘 강조하셨던 [몸과 마음]을 구분해서 보라는 것입니다.
[대념처경]할때에 대념(大念)도 크게 생각하고 사유해 보라는 것이고요.
망상과 사유는 다른 것이랍니다.
대념처경(大念處經)의 뜻은?
지금 네가 처해진(處) 몸과 마음의 고통이 왜 그런지 그 원인을 대념(大念) 해 보라는 뜻이랍니다.
그런데 한국 불교는 지금 무조건 생각은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무기공에만 빠져있는 것이고요.
여러분들도 생각을 해보십시오?
어떻게 몸과 마음을 구분해서 사유해 보지 않는데 본래 마음을 찾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겠어요?
본래 마음을 찾고도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 않겠느냐 이겁니다?
아니 어떻게 몇십 년씩 수행을 하고도 본래 마음을 모를 수가 있습니까?
바보 등신인 주리반다가도 알아차리는 마음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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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이야기도 마찬가지랍니다.
장사를 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직장 생활을 할 때에도 좋든 싫든 모두가 마음이랍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전쟁을 하거나 정치를 하거나 외교를 하거나 종교 활동도 마찬가지로 모두가 마음이고요.
전쟁도 상대의 마음을 유인해서 몰살을 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고..
장사나 사업도 상대의 마음을 유인해서 물건을 팔거나 계약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입니다.
지금 종교들은 불교나 기독교나 사람들 마음을 못 잡고 있어서 쇠퇴해가고 있는 것이고요.
그래서 종횡가에서는 이것을 합(合)이라 하는 것뿐이고요.
뮌든지 합(合)이 안 되면 망할 수 박에 없다는 것입니다.
정치도 국민의 마음을 훔쳐서 합(合) 하는 것이고..
외교도 또한 상대의 마음과 합하지 못하고 불합(不合) 하면 전쟁으로 이어는 것이고요.
전쟁의 종류가 꼭 총칼만 있겠습니까?
돈을 버는 것도 마찬가지랍니다.
비유를 하면 내가 기계를 돌리는 공인이라면 그 기계가 나에게 월급을 주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월급을 주는 당사자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인데요.
일반 사람들이 큰 착각들을 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요?
뭐냐 하면 저 사람들은 머리가 좋아서 성공을 한다고 본답니다?
전쟁을 잘 하거나 사업을 잘하거나 장사를 잘 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머리가 좋다고 합니다?
아니랍니다.^^
큰 착각이랍니다.^^
머리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잘 파악하고 상대의 마음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전쟁도 잘하고 사업도 잘 하고 장사도 잘 하고 외교 등도 잘 할 줄 아는 거랍니다.
왜냐하면 이 모두는 상대의 마음을 다루는 직업들이라 그렇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잘 다루는 사람들 만이 영웅이 된답니다.
머리의 기능들은 그저 기억하고 기억한 것을 기억해 내고 기억한 것을 계산하고 분석하는 기능들 외에는 모두가 마음이 하는 거랍니다.
머리는 그저 마음을 보조해 주는 비서 역할을 하는 것뿐이고요.
그동안 기억해 둔 자료들 좀 가져오라고 하면 가져오는 그런 비서가 머리라는 것입니다.
알아차리고 결정을 내리고 하는 것은 마음이고요.
그래서 옛 어른들은
"여기로 이끈 한 물건을 무엇인고..?"
했던 것이고요.
경허선사도 어린 만공에게
"아야? 하는 놈이 무엇인고..?"
했던 것이고요.
여러분들도 그래서 몸과 마음을 구분해서 조견오온을 해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보는 계분별관(界分別觀)이라는 것입니다.
머리로 어떻게 "아야?" 할 수가 있겠습니까?
머리로 어떻게 용기를 낼 수가 있겠습니까?
머리로 어떻게 하고자 하는 의지를 낼 수가 있겠습니까?
머리로 어떻게 좋아하고 싫어하고 하는 감정이나 감성을 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도 그 마음을 찾으라고 하는 것이고요.
그 방법이 바로 [조견오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화선으로 할 때에도 조견오온을 같이 병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손가락으로 달(몸과 마음)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하는데 손가락(화두)만 보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수행자들은 어른들부터가 조견오온 방법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닫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이고요.
저도 깨달은 스님은 딱 한 분만 알고 있고요.
그 외에는 이름만 높았지 없었답니다.
어떻게 반대로 알아차림을 하고 있는데 깨닫는 사람들이 나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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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사유)도 몸(오온)의 기능 아닙니까?
여러분들도 직접 화가 일어나든, 생각이 일어나든, 두려움이 일어나든, 무엇에 쫓기고 있든..?
부처님 가르침처럼..
[몸(오온)과 마음]을 분리해서 관찰해 보시면 어느 놈이 범인이라는 것을 금방 아시게 될 겁니다.
이것이 바로 계분별관(界分別觀)의 핵심이랍니다.
하시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질문을 주셔야 하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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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것들은 물론 나에게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 또한 모두가 [몸과 마음]이랍니다.
엄밀히 말하면 몸이 범인인 것이고요.
이것을 찾아보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활용하는 것은 여러분들 능력에 달린 것이고요.
그것을 도력이라 하는 것이고요.
그 능력을 키우는 것이 내 마음 그릇들을 키우는 것이랍니다.
그러려면 내 마음이 비워져야 하는 것이고요.
내가 이것저것 마음에 들고 있는데 어떻게 마음 그릇이 커지겠습니까?
그 마음 그릇이 아무리 커도 그 그릇에는 이것저것이 잔뜩 들어있는데요?
누구나 다 본래 마음 그릇들은 우주보다도 더 크답니다.
그런데 그 큰 그릇에 이것저것 잔뜩 들어있는 것들이 많다 보니까 그 큰 그릇이 작게 보이는 것이지요.
항아리(마음)가 아무리 크면 뭐 하겠습니까?
항아리 안에는 쓸데없는 것들이 가득한데요.
그래서 항아리 밑창을 깨야 한답니다.
그래야 쓸데없는 것들이 빠져나가지요.
그래서 수행을 할 때에도 내 마음 그릇은 어떤 것이 크고 작은지를 알면 쉽게 마음으로 접근을 할 수가 있다는 것이고요.
밥상 위에 그릇들은 키우고 줄일 수는 없지만 우리들 마음 그릇들은 본래 우주보다도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얼마든지 키울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내 마음을 볼 줄 알아야 하는 것이고요.
물론 본래 마음은 늘어나거나 줄거나 하지는 않는답니다.
중생들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지요.
아무튼 마음을 안 보는데 어떻게 내 마음이 큰지 작은지를 알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이 방법도 방편이랍니다.
중요한 것은 불법이나 기독교의 율법은 모두가 마음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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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수행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오늘은 계분별관(界分別觀)에 대한 내용인데요.
위에서 상당 부분을 다 했는데요.^^
그래도 자세히 다시 설명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계(界)의 뜻은 세계(世界) 할 때에 그 계(界)인데요.
계(界)란 둘레의 가장 자리에 놓인 제일 끝이라는 뜻으로 경계(境界)라고도 합니다.
(이 내용을 잘 이해하셔야 함, 왜냐하면 경계 자리에서 본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경계선은 담장이고
나라의 경계선은 국경이고
지구가 속해 있는 경계는 태양계이고
이 외에도 은하계, 우주계 하는 식으로 있는데요.
쉽게 말해 계(界)라는 뜻은 어떤 공간이나 법위 등을 이르는 말이랍니다.
특히 수행에 있어서는 몸의 경계는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이 다섯 가지의 경계가 있답니다.
큰 스님들이 (眼耳鼻舌身意)에 대해 법문을 하실 때에도 보면 여섯 가지의 감각기관(육근, 六根)이라고 법문을 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이것은 틀린 얘기랍니다.
왜냐하면 앞에 다섯 기관들은 신체의 기관이 맞지만 뒤에 나오는 의(意)라는 글자는 신체 기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의(意)가 근(根)이 될 수 있겠습니까?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이지요?
누차 말씀 드리지만 의(意)의 뜻은 근(根)이 아니라 [안이비설신] 등의 오근을 통해 화나 감정이나 느낌 등이 일어난다는 (뜻)이랍니다.
그래서 앞으로 법문을 하실 때에는 육근(六根)이 아니라 안이비설신 오근(五根)을 통해 의(意)가 일어난다고 하셔야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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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불교에서 말하는 계(界)는 법계(法界)를 이르는 말인데요.
그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법계(法界) 안에는 온 우주를 담고 있답니다.
그래서 계분별관(界分別觀)은 그 범위가 매우 넓답니다.
작은 범위로 예로 들면 개인에게는 몸(오온)의 경계가 있고
조금 큰 범위로 예로 들면 불법이나 기독교는 율법이라는 계(界)가 있고
좀 더 큰 범위로 예로 들면 불교에서 말하는 사바세계인 국가나 지구라는 계(界)가 있고
좀 더 큰 범위로 예로 들면 태양계나 은하계나 우주계를 예로 들 수가 있답니다.
이 말은 곧 계분별관(界分別觀)은 깨닫기 전에 사람들이 하는 전 공부와 부처님처럼 깨닫고 나서 하는 후 공부를 모두 이르는 말이랍니다.
깨달은 사람들이 하는 후 공부에도 여러 가지 차등이 있는데요?
우리 같은 사람은 앉은 자리에서 세계관이나 우주관 같은 것은 아직 도력이 약해서 어렵답니다.
그래서 깨닫기 전에 사람들은 계분별관(界分別觀) 중에서 몸(오온)의 경계로 하는 수행 방법이나 간화선 같은 것으로 할 수 박에 없는 것인데요.
그래서 오늘은 몸(오온)의 경계로 하는 수행 방법을 설명드리고 수행 이야기는 마무리하겠습니다.^^
몸(오온)의 경계로 하는 수행 방법도 아주 다양한데요.
[조견오온]도 있고 [색수상미촉법]도 있고 [색수상행식]도 있고 [안이비설신의]도 있고 지금 생각나는 것 만 해도 이렇답니다.
예전에 다 설명드렸던 내용들인데요.
다음 주 이후로 다시 한번 차례대로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저도 아직은 세계관이나 우주관은 안 되는 경우라 아쉽게도 여기서는 설명을 드릴 능력이 안 된답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들은 설명을 드릴 수가 있는데요.
오늘은 [조견오온개공]에 대해서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조견오온]을 남방불교에서는 [위파사나]라고 하는데요.
이것은 오늘 주제인 [계분별관] 중에서 (몸의 경계)로 하는 수행 방법이기도 하답니다.
어떤 유명한 수행승은 조견오온개공을 설명하면서 수행을 할 때에는 "공의 자리를 보라"고 가르치는 분도 있었는데요?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가르침이랍니다.
대중들은 넋을 잃고 노트에 적으면서 듣고 있었고요.
왜냐하면 공의 자리를 깨닫기 위해서 수행을 하는 것인데 어떻게 깨닫지도 못한 사람들에게 공의 자리를 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야말로 여사미거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와 같은 가르침이지요?
이 스님뿐만이 아니라 간화선의 최고 어른들도 간화선을 모르고 가르치고 있답니다.
이 내용은 간화선을 설명할 때에 자세히 설명을 드려볼 것인데요.
아무튼 그만큼 한국 수행자들은 [조견오온]을 안 하고 있다는 증거랍니다.
조견오온을 꾸준히 해 봤어야 알지요?
이래서는 안 된답니다.
간화선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 말은 부처님 제자라고 하는 분들이 최소한 부처님이 하셨던 수행 방법 정도는 알고는 있아야 하지 않느냐 이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 한국 불교가 제대로 깨닫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이랍니다.
아무튼 이번 기회에 [조견오온] 방법을 잘 음미해 고시고 널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조견오온개공)이란 다들 알다시피 오온을 돌이켜보고 개공을 알면 그것이 깨달음이라는 뜻인데요.
여기서 말하는 조견오온이란 몸(오온)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돌이켜 보라는 뜻입니다.
아무 때나 보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서 뭔가가 일어났을 때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대념처경]에서 (몸과 마음)을 구분해서 관찰해 보라고 하셨던 거랍니다.
이 방법이 계분별관(界分別觀)의 하나라는 것이고요.
참고로 대념처경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유튜브에서 [대념처경] 하고 입력하시면?
[대념처경 18]
이라는 문구를 찾아서 보시면 동영상으로 자세히 나와있답니다.
쉽게 말해 예를 들면?
화가 마음에서 일어났잖아요?
또는
즐거움이나 괴로움이나 쫓기는 마음이나 아브라함처럼 두려운 마음 등이 일어나거나 했을 때 내 몸 안에서 같이 일어나고 있는 (곳)을 찾아서 돌이켜 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곳)이 대념처경(大念處經) 할 때에 처(處)라는 것이고요.
그러면 스스로 개공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 방법으로 자주 하고 있지만 이 방법은 마치 조리로 쌀과 모래를 분리해 내듯이 몸과 마음을 자동으로 불리해서 볼 수 있도록 꾸며진 방편이랍니다.
조리질을 하면 마치 쌀알과 모래가 분리되듯이 말입니다.
여기서 [조리질이 조견오온]이라면 [모래와 쌀은 몸(오온)과 마음]인 것이고요.
여러분들도 직접 해보십시오.😁👍🏻
오늘은 너무 길게 하면 헷갈려 하실 것 같아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삶과 수행에 도움을 줄만한 [꽃병과 강철] 이야기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수행 방법에 대해서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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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본문 내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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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허집(鏡虛集) (73) ]
20261005
칠십세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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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을 처음 접하시거나 초보자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 올리자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1849년에 태어나서 1912년에 돌아가신 분인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참선수행을 해서 깨달음으로 이르는 길을 다시 여신 분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동안 우리 불교가 조선이 들어서면서 무학대사를 이어 잠깐 서산대사와 사명대사를 기점으로 이후로는 거의 선지식인들의 법맥이 끊겨있다가 경허선사라는 분이 나와서 다시 그 선맥을 이으신 분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불자들은 경허선사를 모르시는 분들이 거의 없지만 카톡으로 이 글을 받아보시는 분들 대부분은 저의 지인들인 경우가 많고 불자들이 아닌 분들이 많아서 모르시는 분들도 계실 줄 아는데요.
쉽게 말하면 경허선사라는 분은 가요계에 이미자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저의 이 글은 대부분이 초보자분들을 위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요즘 표현으로 설명하려고 노력 중인데요.
그러다 보니 때로는 설명이 길어질 때가 많답니다.^^
아무쪼록 제 바람은 많은 일반 사람들이 이 법을 깨닫고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인데요.
경허선사 이후로 잠깐 그의 제자들이 선풍을 일으키긴 했지만 지금은 거의 그 맥이 다시 끊기고 있는 실정이랍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이 선맥이 일반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어 좀 더 고급스럽고 새롭게 태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저의 바람인데요.
아무쪼록 이것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니 꼭 열심히 따라 해 보셔서 모두가 이 맛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 같이 노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도 하고 있는 이것을 여러분들이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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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이 글은 경허선사의 제자 만공스님의 부탁으로 만해 한용운 스님이 경허선사의 글들을 옮겨 적으신 건데요. 옛 분들의 표현들이라 가급적이면 띄어쓰기나 받침 등이 지금과 다른 글자가 간혹 있는데요. 그러나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글을 옮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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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교의 가르침
《경허집 본문 내용》
(경허선사가 남기신 한문 원본)
上張上舍金石頭書
靜居道候伏想玄裕織禿一味作吟病頭陀而已奈何前月日附呈一札於實相藥水庵僧未知抵覽今有去龍門信便以數字儒云君子推已足乎已不待於外之謂德此是斯文常談然而參證於學佛者其理甚緊好蓋生死涅槃凡聖善惡等事以至禪誦祈念等行無非是外外已早不是動靜云爲自不覺藍沮牽惹於物如四郊之牛羊況生死禍福之際乎其不自由者必矣肇公云至人無已此亦教場芻狗却有味指故古德云照盡體無依通身合大道又云打破鏡來與子相見夫一點靈臺廓然淨盡絕廉纖勿痕縫於本有田地到其所到更不用支離塗糊於己之外與已矣其自由二字亦是閑言語年前南來之日見公學佛精苦因寒暄信筆及此不覺打煩蔓領情勿咎申企耳相去查隔臨紙惘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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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번역하신 글)
장상사(張上舍)와 김석두(金石頭)에게 보내는 글
<상사의 이름은 효영, 호는 정련거사. 석두의 이름은 병선, 석두는 호다. 함께 예천군 생천동에서 살다.>
조용히 지나며 도체(道體)가 현유(玄裕)한 줄로 생각하오. 이 중은 일미(一味)를 읊조리는 병두타(病頭陀)라 어찌 하리
지난 달에 서신 한 장을 실상사 약수암 스님편으로 부쳤는데 받아 보았는지요. 이제 용문사로 가는 인편이 있기에 두어 자 전하오.
유가글에 이르기를 "군자는 자기자신을 살펴 봐서 만족을 느껴 밖의 것을 기다리지 않음을 덕이라 한다." 하였으니 이 글은 영범한 이야기 같소.
그러나 불법을 배우는 이가 참고해 보건대 그 이치가 매우 긴요하고도 좋은 말입니다.
대개 생사와 열반 범부와 성인 선과 악 등의 일과 내지 참 선·주력·기도·염불 등의 수행이 밖의 것이 하나도 없다.
이미 밖에도 시끄럽고 고요하다고 할게 없는데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밖의 물질에 끄달림이 저 들판에 소나 염소와 같나니 하물며 생사와 재앙과 복을 따저 봄에 너무나 부자유스럽소.
조공(肇公)이 이르기를 "지극한 사람은 자기가 없다.” 하였는데 이것도 역시 교리 배우는 곳의 불필요한 말이나 도리어 맛이 있어서 지적했소.
그러므로 고덕이 이르되 "당체가 의지할 데가 없음을 비추어 다하면 온 몸이 대도에 합한다. "하였고 또 이르되
"거울을 쳐부수면 그대와 더불어 서로 보리라. "하였으니 대저 한 점 영대(靈臺)가 탁 트이어 깨끗이 한 티끌도 없고 꿰맨 흔적도 없는 본래 경지에 이르리라.
그 곳에 이르면 다시 지루하게 자기와 또 바깥 것에 장식할 것 이 없으리라. 그러나 그 자유라는 두 글자는 또한 부질없는 말이 외다.
연전에 내가 남쪽으로 오던 날 공들이 불법공부를 독실히 함을 보았기에 춥고 더움의 인사도 할 겸 소식을 묻느라고 서한을 쓰는데 너무 번거로웠으니 허물치 마십시요.
서로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기에 종이를 대하고 있으니 망연 할 뿐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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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님의 가르침
[도마복음 제35장]
1. 예수께서 가라사대, “누구든지 강한 자의 집에 쳐들어가, 그의 양손을 결박하지 않고서는, 그 집을 늑탈하지 못하리라.
2. 결박한 후에야 강한 자의 집을 샅샅이 약탈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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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
아무쪼록 모두들 건강관리 잘 하시고 가정에 늘 평안이 깃들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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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주로 수행(수도)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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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허집 내용은 장상사(張上舍)와 김석두(金石頭)에게 보내는 편지 내용인데요.
신기하게도 지금 경허선사는 오늘 우리가 위에서 했던 [조견오온] 내용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하시는 내용이 나와서 저도 깜짝 놀랐는데요.^^
바로 이 내용이랍니다.
[고덕이 이르되 "당체가 의지할 데가 없음을 비추어 다하면 온 몸이 대도에 합한다. "하였고 또 이르되 "거울을 쳐부수면 그대와 더불어 서로 보리라. "하였으니 대저 한 점 영대(靈臺)가 탁 트이어 깨끗이 한 티끌도 없고 꿰맨 흔적도 없는 본래 경지에 이르리라.]
다른 내용들은 그냥 읽어보시면 될 것 같고요.
오늘은 이 내용이 중요하니 이것부터 해석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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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덕이 이르되 "당체가 의지할 데가 없음을 비추어 다하면 온 몸이 대도에 합한다."하였고]
(해석: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도대체가 조견오온을 했을 때 몸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의지할 때가 없으면 이 몸은 대도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도 실제로 화가 나든 두려움 등이 일어나든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찾아서 사유하면서 보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이 의지할 곳을 읽고 소멸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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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르되 "거울을 쳐부수면 그대와 더불어 서로 보리라. "하였으니 대저 한 점 영대(靈臺)가 탁 트이어 깨끗이 한 티끌도 없고 꿰맨 흔적도 없는 본래 경지에 이르리라.]
(해석: 여기서 말하는 "거울을 쳐부순다"라는 뜻은 조견오온을 해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인데요.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거울은 마음을 비유한 것인데요.
예를 들어 내 마음에서 화가 일어났을 때 몸(오온)을 살펴보면 반듯이 몸(오온)에서 같이 일어나는 곳이 있답니다.
여기서 (곳)이 곧 (경계)인 것이고요.
아무튼 화가 나면 같이 몸에서도 화를 내고 있는 부분(경계)이 있는데 이것이 그대로 거울과 같은 마음에 비치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내 마음이 아파요, 내 마음이 괴로워요,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경허선사 말씀은 이렇게 거울과 같은 마음에 비치는 것들(몸/오온)을 쳐부수면 그 자리가 바로 보리(菩提) 즉 참다운 지혜인 깨달음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영대(靈臺) 즉 높은 망루에서 세상을 보면 탁 트이고 깨끗한 한치의 티끌도 없고 꿰맨 흔적도 없는 그런 본래면목의 경지에 이른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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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오늘도 예수님 가르침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예수님 말씀은 참으로 모든 수도사(修道士)들에게 정곡을 찌르고 있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구약성서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겁에 잔뜩 질려서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담대하게 싸워서 이기라는 마음 이야기와도 같은 내용이랍니다.
그리고 불교 쪽으로는 손오공 이야기와도 같은 내용이랍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오늘 예수님 말씀은 마음을 집으로 비유한 내용이랍니다.
불교로 하면 불타는 집을 비유로 한 화택 이야기와 같은 내용이고요.
다만 다른 점은
화택 이야기는 그 불타는 집에서 빨리 나오라는 것이고
지금 예수님 말씀은 너의 마음에 도적들과 싸워서 이기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은..
“누구든지 강한 자의 집에 쳐들어가, 그의 양손을 결박하지 않고서는, 그 집을 늑탈하지 못하리라."
하셨던 거랍니다.
쉽게 말해 빨리 빼앗긴 네 본래 마음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렇게 마음에 도적들을 결박한 후에야 강한 자의 집을 샅샅이 약탈할 수 있다는 것이고요.)
손오공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답니다.
손오공도 보면 중생으로 비유된 저팔계와 수행자로 비유한 사오정이 대궐 같은 집에서 예쁜 여자들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꼬시니까 그대로 끌려 들어가잖아요?
이 모양이 바로 우리들 마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대상만 다를 뿐 모든 사람들이 돈에 끌려다니고, 욕심에 끌려다니고, 욕망에 끌려다니고, 욕구에 끌려다니고 마치 그 자리가 죽을지 살지도 모르면서 마치 저팔계나 사오정처럼 이리 끌려다니고 저리 끌려다니면서 결국은 손발이 묶여서 그물에 매달리지 않던가요?
우리들도 지금 다들 마음들이 이런 것에 묶여 있잖아요?
그런데 깨달음을 뜻하는 손오공은 그들의 집의 요괴들과 싸워서 이기지 않던가요?
기독교는 시험을 하는 사탄과 싸워서 이긴다 하고요.
이런 것들이 모두 내 마음의 것들과 싸워서 이기라는 뜻입니다.
저도 그렇게 해서 쉽게 마음이 꺾인 것이고요.
저도 중국에 있을 때 조금도 거짓말이 아니라 10년 이상을 10가지 항목을 적어놓고 하루에 하나 잘못했을 때마다 인정사정 없이 제 얼굴을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때렸답니다.
어쩔 때는 잘못 때려서 코피도 여러 번 터졌었고요.
좀 무식하긴 했지만 효과는 최고였답니다.
이러한 과정들이 모두 내 마음과 싸우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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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들 열심히 하셔서 성불이든 성령이든 꼭 증득하시기 바랍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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