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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樂soccer 원문보기 글쓴이: Underdog
스페인 3대 유력매체인 <EL PAÍS>의 헤드라인
방탄소년단 리더 RM:
"70년 전 한국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라였고, 그렇기에 우리 한국인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한국의 래퍼, 스페인에서 첫 솔로 앨범을 홍보하며 케이팝의 성공 비결, 자국의 역사, 미술품 수집에
대해 반추하다.
(인터뷰 전문/장문 주의)
기자: Patricia Gosalvez
며칠 전 빌바오에서 한 무리의 팬들이
그를 알아본 것에 대해 김남준(서울, 28세)은
진심으로 놀란 듯했다.
"어쩌면 지구 반대편의 작은 마을에서는 나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라고 정신없이 바빴던 지난 10년간,
전 세계(빌바오를 포함하여) 음악 산업계의
모든 기록들을 깬 K팝 보이밴드 BTS의
리더로서 더 유명한 래퍼 RM이 말했다.
지난여름, 7명의 멤버들은 솔로 프로젝트와
한국의 병역 의무를 위해 활동을
잠시 중단한다고 발표했었다.
12월에 발매됐던 그의 솔로 앨범 <Indigo>
홍보차 스페인을 방문한 그는 앨범 홍보와 함께
구겐하임, 티센, 프라도 미술관과 바르셀로나에
있는 피카소 미술관 등도 돌아 보았다.
"저는 수많은 고야를 보았고,
엘 그레코의 눈에 사로잡혔지만,
라스 메니나스를 더 좋아해요"라며
래퍼는 말했다.
이 아마추어 수집가의 앨범의 첫 번째 곡은
추상화가 윤형근을 기리기 위해
<Yun>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그는 "우리는 그를 아시아의 로스코라고
부릅니다."라며 "그는 일본의 침략과 전쟁을
겪었고 정부의 고문을 받았지만
결코 굴복하지 않았어요.
그의 작품들에서 저는 분노, 슬픔, 복잡성,
아름다움을 봐요."라고 말했다.
인스타그램에서만 7200만 명에 달하는
그들의 팬 아미들은 재결합 시기로
발표된 2025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RM은 자신도 그러하다고 우리에게 확언했다.
Q:곡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작하죠?
"Fuck the trendsetter(유행을 앞서가는 사람들 따윈 엿 먹으라고 그래)/ I'ma turn back
the time(난 시간을 과거로 되돌릴 거야)
/Back the time, far to when I was nine
(내가 아홉살이었던 그 시절로)
/차라리 그때가 더 인간이었던 듯해".
케이팝 가장 높은 성층권에서의 성공이
아티스트를 비인간적으로 만드나요?
RM: 커리어의 시작이 매우 어린 나이에
시작되고, 또 그룹의 일원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고유한 개인이 될 시간은 많지 않지만,
바로 그 점이 케이팝을 빛나게 만드는 것이죠.
아주 어린 사람들, 동시에 너무나 열심히
노력하는 그 사람들...
우리는 20대에만 있을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안무와 영상들, 음악 그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이루어내기 위해 밤 낮으로
고군분투합니다.
그리고 폭발하는 거죠, 빅뱅이 일어나는 겁니다.
20대부터 30대까지 저희의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모두 BTS에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성공과 사랑, 영향력을 얻었죠,
그다음은?
그 모든 것의 근원이 되었던 그 무언가는
아직 남아 있어요.
그건 바로 "음악"이죠...
아 근데, 질문이 뭐였죠?
Q: 비인간적인 시스템이냐는 질문이었어요.
RM: 회사는 이 질문에 대한 제 답을
좋아하지 않아요.
왜냐면
제가 부분적으로 그런 점을 인정하고 나면
기자들은 바로 그냥
"케이팝은 끔찍한 시스템이고, 젊은이들을
파괴하는 시스템이다!"라며
맥락 없이 말하거든요.
그러나, 그런 부분은 이 산업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계약 조건이나, 금전적인 것이나,
교육적인 측면 등의 모든 부분에서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어요.
지금은 시스템 안에 전문 선생님, 심리학자도
포함되어 있죠.
Q: 한국의 기획사들은 수년간 그들의
아티스트들을 훈련시키는데요, 당신은
2013년에 BTS로 데뷔하기 전부터
16살부터 19살까지 동료들과 함께 살았었죠.
그때 당신의 부모님의 반응은 어떠셨는지요?
RM: 어머니는 장장 2년 동안 이러셨죠.
"다시 공부를 해, 넌 정말 공부를 잘했었잖아,
네 길을 가, 대학부터 가고, 음악은 취미로 해!"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었어요.
Q: 연습생 시절에 가장 많이 배운 게 있다면?
RM: 춤이요. 전 정말 재능이 없었거든요.
Q: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잃은 게 있다면?
RM: 대학 생활이요.
Q: 케이팝 산업에는 젊음과 완벽성,
과도한 훈련에 대한 숭배가 있는데요.
그것들은 한국의 문화적 특성인가요?
RM: 서양인들은 그냥 이해하지 못하는 건데요,
한국은 침략 당하고, 파괴됐고,
둘로 갈라진 나라입니다.
70년 전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어요.
우리는 국제통화기금과 유엔으로부터
원조를 받던 나라였죠.
하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고,
어떻게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한국인들이
자신의 발전을 위해
조오온나 열심히 일했기 때문입니다!
수 세기 동안 다른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아 온
프랑스, 영국과 같은 나라에 제가 체류할 때
제게 다가와 "어머, 당신은 스스로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주네요. 한국에서의
삶은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요!"라고
당신들은 말합니다.
그래요,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성취해 낼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은 케이팝을 매우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의 일부이고요.
물론 그림자가 있기는 하죠,
하지만 매우 빠르고 강렬하게 일어나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부작용을
가지고 있는 법입니다.
Q: 케이팝에 대한 가장 큰 편견은 무엇일까요?
RM: "케이팝은 공장형 조립식으로 만들어진다"
라고 말하는 거요.
Q: 만약 당신이 다른 방법으로
또는 다른 나라에서 당신의 커리어를
쌓았다면 지금의 당신의 커리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RM: 저는 종종 다중 우주에 대해 생각하는데요.
닥터 스트레인지의 교훈은 항상 같습니다.
현재 당신의 우주 버전이 최고,
최선의 버전이다.
다른 우주에 대해 생각하지 말라.
BTS의 멤버가 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Q: 현재의 당신의 버전을 상상하셨었나요?
RM: 전혀요. 제 꿈은 케이팝 아이돌이
되는 것이 아니었어요.
저는 래퍼가 되고 싶었고,
그전에는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Q: 당신에게 영향을 끼쳤던 아티스트로
나스, 에미넴 같은 래퍼들, 라디오헤드나
포티스헤드 같은 그룹들을 언급하셨지만,
보이 밴드를 꼽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RM: 비틀즈 또한 보이 밴드라고 불렸습니다.
우리를 비틀즈와 비교하는 게 아니고요,
저는 그들이 모든 것을 창조한 이들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당신이 말하는 보이밴드는
엔싱크나 뉴키즈 온 더 블록을 의미하는 거죠?
비록 제가 열렬한 팬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좋아했던 팝 밴드들이죠.
제가 보이밴드를 언급하지 않았던 건
단지 저를 사로잡았던 것이 랩이기 때문이에요.
랩이 가지고 있는 리듬과 시..
Q: 당신이 존경하는 인물들에 대해
질투를 느낀다고 말했었는데요,
예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RM: 켄드릭 라마.. 항상 질투가 나요.
그리고 퍼렐 윌리엄스도.. 그분은
살아있는 역사이고,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미래에 언젠가는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그림을 그리지 않는 거예요.
피카소나 모네를 질투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니까요.
Q: 작품들을 수집하시는데요,
무엇을 수집할지 어떻게 고르나요?
RM: 수집한 지 4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요,
그 4년 동안 전 계속 변했어요.
지금 저의 초점은 20세기 한국 미술입니다.
하지만 저는 게티라든지..
(**번역주: 미국의 석유 사업가이자
대부호인 폴 게티는 미국에서 10억 달러의
부를 축적한 최초의 인물이며, 포브스가 선정한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한 75인 중 한 명.
미 캘리포니아에 있는 게티 미술관과
게티재단을 만든 사람)
혹은
록펠러가 아니에요.
(**번역주: 미국의 석유왕으로
불리는 대부호. 대공황 시절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시카고 대학교와
록펠러 대학교의 설립자)
Q:투자하기 위해 수집하는 것이 아니군요.
RM: 제가 보장하는데요,
만약 제가 투자의 목적으로 그러는 것이라면,
흑인 예술가나, 여성, 인도네시아의
신흥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사 모았을 거예요.
한국의 유산을 존중하고 동시에 젊은 취향을
가진 전시 공간이 필요하다 생각하기 때문에
10년 정도 뒤에 작은 전시 공간을 여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로니 혼이나, 안토니 곰리, 모란디 같은 분들도
모시고 싶고요.
Q: 항상 미술품 수집가가 되고 싶었나요?
RM: 전 장난감이나 자동차 모델들,
무라카미 타카시의 피규어들을 수집했었고,
그다음에는 빈티지 의류들을, 그러고는
가구들을 수집했어요.
저는 샤를로테 페리앙과
(**번역주: 20세기 프랑스 가구와
인테리어 디자인의 모더니즘을 주도한
여성 파워 CHARLOTTE PERRIAND.
20세기 모던 디자인의 선구자 중 1인)
피에르 잔느를
(**번역주: 진보적 건축 철학으로 유명한
스위스의 건축가/디자이너.
현대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의 사촌이기도 하다.)
사랑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조지 나카시마입니다.
Q: 당신의 앨범에는 매우 다른 장르의
노래들이 있습니다.
어떤 비평가들은 그것이 모순이고, 또 누구는
당신이 다재다능하다고 말합니다.
RM: 저는 장르라는 단어가 몇 십 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R&B, 하이퍼팝,
저지클럽, 영국드릴, 시카고드릴, 케이팝!
장르들은 아무 의미가 없어요.
음악은 사람들을 특정한 기분으로 만드는
주파수의 축적이니까요.
Q: "케이~"라는 수식어에 질렸나요?
RM: 스포티파이에서 저희 모두를
케이팝이라고 묶어 부르는 것에
질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장르화한 것이
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프리미엄 상표죠. 우리 조상들이
이루어내기 위해 싸웠던 <품질 보장>을
의미하는 상표요.
Q: 앤더슨 팩, (체리필터의)조유진, 그리고
타 아티스트들과 콜랍하지 않기로 유명한
에리카 바두가 당신의 앨범에 참여했는데요.
어떻게 그녀를 설득할 수 있었던 거죠?
RM: 그녀의 딸이 저희의 팬이었기 때문에
BTS를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죠.
저는 그녀를 설득해야 했어요.
그래서 왜 그 구절에
"현명한 여왕의 목소리"가 필요한지에
대해 설명하며 윤형근 화백의 삶에 대해
문자를 써 보냈습니다.
Q:당신은 가끔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가사를 쓰는데요.
어떤 언어를 쓸지 어떻게 결정하는지요?
RM: 각각의 언어와 단어들은
모두 다른 질감을 가지고 있죠.
다른 필체로 쓰인 같은 메시지인 거예요.
어떤 언어로 쓸지 그냥 자연스럽게 떠오르죠.
저는 악기를 연주할 줄 모르기 때문에,
제 목소리로 작곡하고 멜로디를 만듭니다.
제 목소리가 악기인 셈이죠.
그리고 제 노래의 대부분은 단어로 시작합니다.
Q:당신은 10대 래퍼 때는 "런치란다"로,
또 BTS에서는 "랩몬스터"로, 이후로는
"RM" (Real Me, '진정한 나'의 약자로써 RM)
이라는 다양한 자아를 거쳤는데요.
실명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RM: [웃음] 누구에게나 흑역사는 존재한다고
한국에서는 말한답니다.
롤 플레잉 비디오 게임에서의 제 닉넴이
Runch Randa였어요.
그 후 저는 "랩 몬스터"가 되고 싶었고요.
그리고 저는 점차 성숙해졌죠.
가능한 한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제 이름을 아는 것을 선호합니다.
저는 '존 레논'이나 '폴 매카트니'가 아니거든요.
저는 호텔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체크인 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전 그게 좋고요.
Q:옷 입는 스타일도 많이 변하셨어요.
RM: XXL 사이즈의 티셔츠와 야구 모자들로
가득 찼던 스타일을 지나왔죠.
그 후 럭셔리 브랜드들을 입기 시작했습니다.
랩몬스터처럼 저는 하얀색이나 검은색
옷들에만 푹 빠져 있었어요.
[그는 눈을 위로 굴리어 어깨를 으쓱거렸다]
지금의 저는 시대를 초월하는 것들에
관심이 있고, 유행하고 있는 것들 속에서
빈티지 청바지, 면 티셔츠와 같은,
"야, 나 여기 있어!"라고 대놓고 말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것들을 찾고 있습니다.
Q: 밀라노의 보테가 베네타에 초청을 받아
참석했었지요? 그들과 협업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한데요..
RM: 그러고 싶어요.
비록 제가 브랜드들, 패션위크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올해의 팬톤색표에 대한 흥미를
잃었지만...
보테가는 달라요. 로고를 사용하지 않죠.
또 그들은 직물과 가죽에 대한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요. 인스타그램도 없고,
보테가는 그저 단순한 패션 트렌드에
묻어가는 그런 브랜드가 아니거든요.
Q: 어마어마한 숫자의 팬들을 이끄는
수장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큰 무게감으로
다가오는지요?
RM: 제가 대상이 되어 그들의 기준에 의해
평가받지 않고, 누군가 알아보지 못하고
걸을 수 있는 곳은 한곳도 없어요.
하지만 그에 대해
"오, 나는 그냥 평범해지고 싶어!"라며
스스로를 불쌍히 여기면 안 되고요.
어른으로서 대처해야 해요.
유명세가 자신을 짓누르는 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빌어먹을 돌이 되는 거죠.
하지만 제게 유명세라는 것은 제가 찾고 있던
것들을 제게 선사했습니다.
차트 걱정 없이 제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자유, 재정적인 자유를 얻었어요.
제가 아직 100% 그 자유를 만끽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외부의 소음이 아닌,
제 내면의 소음에 집중하려 노력해요.
Q: 어떻게 당신의 30대를 맞이하고 있나요?
RM: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간을
경험한 적이 없어요. 제가 10년 동안
BTS의 리더를 맡았는데, 매우 안정적이고
재미있는 10년이었어요.
늘 항상 위로 올라가는...
모든 걸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2023년에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막 서른을 앞둔 지금, 20대 때의 저 자신보다
지금의 제가 더 좋아요.
이제 전 모든 한국 남성들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군대에서의 1년 반을
보낼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또 다른 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해요. 바라건대, 지금보다 더 낫고
현명한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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