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달 초아흐레, 블날.
스웨덴 작가인 욘 A. 린드크비스트가 쓴 소설
『렛미인』을 읽을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먼저 말한 것처럼 영미권 소설이나,
프랑스, 일본, 또는 러시아 소설들을 주로 읽었는데
근래에 읽은 남미 쪽 소설에 이어
얼마 전에 읽은 터키의 소설
그리고 최근에 읽은 인도 소설을 읽으면서
그동안 읽던 세계와 다른 세계의 문학에 대한
관심이 생긴 까닭이었습니다.
물론 소설을 읽는 것은
무거운 책을 읽다가 머리를 식히는 것이 주 목적이긴 한데
아무튼 이 소설은 읽기 시작할 때
약간은 맥이 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드라큐라나 뱀파이어라고 하는 흡혈존재에 대해서는
그것이 철저한 공상에 의한 허구라고 생각해 왔고
그래서 어렸을 때 말고는 이에 관한 책을 읽은 일도 없고
그런 것이 나오는 영화에 대해서도
눈꼽만큼의 관심을 보인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의 소재가 바로 뱀파이어라는 것에서
약간의 실망이 꿈틀거린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기왕 읽기 시작했으니 끝까지 보자는 생각을 했고,
그러는 사이에 바로 앞에 읽은 『사회학 입문』에서 본
‘집합행동’이라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어느 정도 자발적으로 동일한 일에 초점을 맞추며
서로의 행위에 대해 반작용하는 사람들의
상대적으로 일시적이며 비구조화된 집단의 행위”라고 말하는
집합행동이라는 개념은
구조적인 요인과 돌발적인 사건,
좌절된 사회적 관심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합니다.
좌절된 사회적 관심, 예기치 않았던 사건,
내재되어 있는 불안정성의 원천 등이
첨예한 탈지향성을 만들어 낸다는 건데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기존의 통로가 부적절한 듯이 보일 때
사람들이 보이는 의식적 · 무의식적으로 자신들의 불안을 드러내고자 하고,
무엇이 벌어지고 있으며,
누구 또는 무엇에 그 책임이 있고,
자신들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려 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럴 경우 집합을 이룬 군중들은
일상적인 상황에서라면 받아들여질 수 없는
특이한 방식의 행위를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다양한 집합행동들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인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그러한 집합행동이 집합인식을 낳게 되고
그 집합인식이라고 하는 것은 실재와 비실재를 넘나든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헤아릴 수 있게 되는데,
뱀파이어나 드라큘라로 지칭되는 흡혈존재는
과학적이나 역사적으로 볼 때에는 철저한 비실재이지만
사회문화적으로 접근해 보면 그것이 구체적 실재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보면 우리가 어렸을 때 실재라고 알고 있던
도깨비불이나 귀신의 존재
또는 서구 사회에서 말하는 요정이나 천사, 또는 악마와 같은 것들도
이 차원에서 보면 사회문화적 실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집합행동’의 개념이나 그 이론에는
여러 가지 한계도 있고, 사회를 읽는 도구로는
문제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물 건너 저들의 사회에 통용되고 있는 이 현상을
단지 무시하고 지나칠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들면서
책을 계속해서 읽어 볼 필요는 있다는 결론에 이른 겁니다.
두 권짜리 소설 한 권을 거의 다 읽어 가는데
아직은 이 소설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는 모르겠고
어쨌든 소설이 지니고 있는 보통의 흐름과 다름없이
읽는 이의 흥미와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까지는
느끼며 읽어가는 중입니다.
아침나절 잠시 참여연대 사무실에 들러
지난 번 김배철 선생 보낸 이들을 위로하고
나와서 책 조금 읽는 사이
먼저 세상을 떠난 고 조관호 군의 유품을 정리하느라
사람들이 모였다는 전화를 받고
거기 잠시 들러 인사 나눈 다음 돌아왔습니다.
다시 책을 읽으려 하던 차에 아내가 방광염이 도졌다고
병원에 가야 한다고 하여
나가서 병원에 다녀오고
저녁때는 명상을 다녀오는 것으로 마감된 하루,
오늘은 그렇게 집합행동에 대한 정리를 하고
거기서 집합인식이라고 하는 사회적 현상을 이해하게 되었으니
또 얻은 것이 작지 않았다는 데 기뻐하며
닫히는 하루를 가만히 지켜봅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키작은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