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빈곤
모 방송 뉴스시간에 한 기자가 나와 요즈음 초등학교 자녀를 둔 엄마들이 비행기표를 예약하느라 법석이라는 소식을 전하며 그 이면에 ‘출석빈곤’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처음 듣는 단어인지라 무슨 이야기를 하나 들어보았다. 그리고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초등학교에서 유행하는 말이라고 하여도 초등학생들이 만들어낸 단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혹 과시하기 좋아하는 부모들이 지어내어 아이들이 듣는데서 이야기를 나눈 게 아이들 사이에 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는 모르겠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도 선진국에서 행하는 것처럼 일정기간 부모와 여행 혹은 다른 활동을 위하여 학교에 나오지 않더라도 결석으로 간주하지 않는 제도가 있다고 한다. 부모와의 활동에서 얻는 것이 학교의 가르침과 부합된다는 취지에서 만든 좋은 제도라 생각된다. 아이들과 부모가 같이 여행이라도 하려면 혹은 다른 이유로 같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아이들의 학교 결석문제 때문에 부모들의 직장휴가도 아이들의 방학에 맞추어 갖다보니 우리의 휴가문화는 오롯이 여름이나 겨울 방학 철에 거의 모두 이루어져 휴가밀집 현상이 계속되어 왔다. 따라서 이런 제도는 직장인들의 휴가를 분산시키는 효과도 이룰 수 있는 제도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런 제도에 ‘출석빈곤’이라는 유식한 단어가 부착된 것이다.
‘출석빈곤’이란 아이들이 부모와 여행을 하지 못하여 오롯이 100% 출석하는 경우를 빗대는 신조어라고 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어떤 삐닥이가 유식한척 내뱉은 ‘빈곤포르노’라는 단어가 떠오르며 ‘출석포르노’라 흉내 내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우리의 주된 휴가는 아이들 방학기간 중에, 특히 여름철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고는 하지만 토요일이 휴무이고 다른 국경일이 이어지면 3일 정도 연휴는 자주 오는 편이어서 굳이 주중에 아이들이 결석을 하지 않고도 국내여행은 제주도를 간다 하더라도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기간은 충분하리라 생각되며 해외여행이라 할지라도 계획을 잘 세우면 일본까지는 능히 다녀올 수 있는 시간은 되리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괴상한 말이 유행이라는 것은 비행기를 타고 해외에 다녀온다는 것을 은근히 내세우려는 어른들의 추한 과시욕이라 느껴진다.
여행은 비행기를 타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국내를 돌아보든 해외에 나가든 어디에 가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느냐가 중요하다. 아이들을 동반하는 경우에는 가고자 하는 장소에 따라 아이들과 같이 계획을 세우고 아이들로 하여금 그곳에 대한 여행 정보를 수집하고 아이들로 하여금 여행을 주도하게 하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학교를 결석하면서까지 부모와 동행하는 여행인데 아이들에게 학교의 가르침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절반정도의 소득은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가 아닐까. 물론 여행사 상품을 통해 여행을 떠나는 경우에는 아이나 부모 모두에게 자유로운 활동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행사에서 주어지는 정보에 더하여 아이들이 좀 더 구체적인 자료를 수집하고 스크랩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부모의 할 일이라고 생각된다. 다른 나라에 갈 때는 그 나라의 역사나 문화를 터득하게 하여 이해를 시키는 것도 요새 유행하는 ‘아이를 국제적’으로 키우는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출석빈곤’에 대하여 좀 더 일고 싶어 인터넷 창에 검색어를 입력시켰다. 그러나 관련 자료는 나오지 않았다. 단어조차도 검색되지 않고 있다. 기자의 말대로 이 말이 지금 학교에서 유행하는 것이라면 검색되지 않을 리가 없을 터, 그렇다면 기자가 한 번쯤 어디에서 누군가로부터 한 마디 귀동냥 한 것을 소설화 한 것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특히나 ‘엄마들이 비행기표를 예약하느라 법석’이라는 이야기가 기사의 첫 어귀에 나오고 보니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단어이기 보다는 빈곤포르노 같은 단어라는 어감이 앞선다. 출석빈곤? 초등학교, 중학교 손주들에게 물으니 내 얼굴만 쳐다봤다. 손주들에게 공연한 것을 물은 게 후회되었다.
2023년 5월 17일
하늘빛
음악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mkW8Jon_ia4 링크
Bridge Over Troubled Water Simon & Garfunkel Ulrika A. Rosén, pia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