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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耽羅)와 제주(濟州)는, 같은 땅(地)을 말하는 걸까?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로 본 제주목(濟州牧) 토산물(土産物)
2022년 04월 25일
○ 한반도(韓半島) 남(南)쪽 끝인 목포(木浦)에서 141km 떨어져 있는 해중【海中 : 바다 가운데】에 있는 제주도(濟州島)는, 그 면적(面積)이 1,845.88㎢, 해안선(海岸線) 길이 253㎞에 이르며, 우뚝 솟아있는 한라산(漢拏山)은, 그 높이가 1,950[1,947]m에 이른다고 한다.
어떤 경우를 가정(假定)하더라도 이 ‘제주도(濟州島)’는 한반도(韓半島)의 남해(南海)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것이지, 서해(西海)에 있는 섬(島)이 아니다.
정서(正西)는, 강소성(江蘇省) 땅이고,
정동(正東)은, 구주(九州)의 후쿠오카(福岡) 땅이며,
정북(正北)은, 목포(木浦) 땅이며,
정남(正南)은, 유구(琉球) 나하(那覇) 앞 바다이다.
제주도(濟州島)는 :「‘제주도(濟州島)·탐라(耽羅)·탐모라(耽牟羅)·탐모라(耽毛羅)·섭라(涉羅)·담라(儋羅)·탁라(乇羅)’등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전(傳)해지고 있는데, 삼국(三國) 때의 백제(百濟) 이전(以前)의 기록(記錄)은 전해지지 않으며, ‘탐라(耽羅)·섭라(涉羅)’라고 하였다.
문제(問題)는, ‘제주도(濟州島)와 탐라(耽羅)’는,
➊ 같은 땅, “제주(濟州)=탐라(耽羅)”를 말하는 것인가?
➋ 제주(濟州)는, 제주(濟州)일 뿐, 탐라(耽羅)는 탐라(耽羅)일 뿐, 전혀 다른 땅인가?
➌ 이러한 문제(問題) 제기(提起)는, 현(現) 제주도(濟州島)의 자연환경(自然環境)과 옛 역사서(歷史書)나 지리지(地理志) 또는 풍토기(風土記)등에서 말하는 자연환경(自然環境)적 요소(要素)가 너무 다른 이질적(異質的)인 것들이 많고, 또한 가능(可能)하지 않은[不可能] 토산물(土産物)등이 기록(記錄)되어 있기 때문이다.
옛 “탐라(耽羅)”는 어디에 있었으며, 후대(後代)에 등장(登場)하는 “제주(濟州)”와는 어떤 연관성(聯關性)이 있을까? 두 땅(地)은, 같은 곳을 다르게 부르는 이름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땅(地)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제주(濟州)”란 지명(地名)은, 지금도 여러 곳【중원(中原) 대륙(大陸)에도 제주(濟州)란 지명이 여러 곳에 존재(存在)한다.】에 지명(地名)으로 남아 있으나, “탐라(耽羅)”란 지명(地名)은, 고전(古典)에만 존재(存在)하고 있을 뿐이다.
혹자(或者)들은, ‘주호국(州胡國)’을 오늘날의 제주도(濟州島)라고 주장(主張)하는데, 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이는 ‘백제(百濟)가 반도(半島) 서남(西南)쪽에 있었다’고 하는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 논자(論者)들의 왜곡(歪曲)된 주장(主張)일 뿐이다.
또 본시(本是) ‘백제(百濟)의 서(西)쪽에 주호국(州胡國)이 있다’고 했지, 남(南)쪽에 있었다는 기록(記錄)은 전무(全無)하다. 설마하니 서(西)쪽과 남(南)쪽도 구분(區分)하지 못할까?
우리 카페(Cafe)에서는, 전회(前回), 여러 차례에 걸쳐 제주도(濟州島)와 그 외(外) 특산물(特産物), 토산물(土産物)등에 대해 논거(論據)와 함께 설명(說明)한 바 있다.
오늘은 17세기(世紀) 실학(實學)의 개조(開祖)로 불리는,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 편찬(編纂)한 지리지(地理志)인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편속의 “제주목(濟州牧)”의 토산물(土産物)에 대한 기록(記錄)을 살펴보고자 함이다.
● 소위(所謂) 역사서(歷史書)라고 하는 많은 기록(記錄)이 존재(存在)하고 있으나, ‘탐라(耽羅)’를 ‘열전(列傳)’편으로 두고 있는 사서(史書)는 ‘원사(元史)’이다. 특이(特異)하게도 원사(元史)에서는, 열전(列傳)에 “탐라(耽羅)”편을 별도(別途)로 두고 있다. 즉(卽),
➊ 元史 列傳 :〈耽羅,高麗與國也.世祖既臣服高麗,以耽羅為南宋,日本衝要,亦注意焉. : 탐라(耽羅), 고려(高麗) 여국【與國 : 屬國을 뜻한다.】이다. 세조(世祖)때에 고려(高麗)가 신복(臣服)하였다. 탐라(耽羅)는 남송(南宋)과 일본(日本)이 맞부딪치는 요지로, 크게 마음에 새겨두고 조심해야 한다.〉고 서두(序頭 : 첫머리)에 기록(記錄)을 남겨 놓고 있다.
➋ 또 하나의 기록(記錄)은, 남송(南宋)이 아닌 「“여송(呂宋)과 일본(日本)의 요충지(要衝地) 사이”에 있었다.」고 한 점이다. 즉(卽) ‘속통전(續通典)’에서는,
欽定四庫全書 / 欽定續通典卷一百四十七 / 邊防 朝鮮 / 耽羅 :《耽羅髙麗屬國也元世祖既臣服髙麗以耽羅為吕宋日本衝要乃遣將平之即其地立耽羅國招討司後改為軍民安撫司其貢賦嵗進毛施布百匹後髙麗以為言遂復𨽻髙麗. : 탐라(耽羅) : 탐라(耽羅)는 고려(高麗)의 속국(屬國)이다. 고려(高麗)가 원(元)나라 세조(世祖)의 신하(臣下)가 되어 복종하였는데, “고려의 탐라(耽羅)는 ‘여송(呂宋)【루손(Luzon)섬. 필리핀(Philippines)군도의 북부(北部)에 있는 가장 큰 섬】과 일본(日本)’의 중요한 지점(地點)에 있어, 이에 군사를 보내어 토평하여 곧 그 땅에 탐라국(耽羅國)을 세우고, 초토사를 두었으나 뒤에 군민안무사로 고쳤다.” 그곳의 공부(貢賦)는 해마다 모시포(毛施布) 백필(百匹)이다. 뒤에 고려(高麗)가 요구해와 다시 고려(高麗)에 예속되었다.〉라고 하였다.
즉(卽) 〈탐라(耽羅)는, ‘여송(呂宋) 곧 필리핀(Philippines)의 루손(Luzon)섬과 일본(日本)’사이의 중요(重要)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 네이버중국어사전 /吕宋 [Lǚsòng] 1. [명사][지명][음역어] 루손(Luzon) 섬. [필리핀 군도의 북부에 있는 가장 큰 섬]
續通典 / 吕宋 : 《吕宋居東南海中在臺灣鳯山沙馬﨑之東南 : 여송(呂宋) : 여송(呂宋)은 동남(東南) 해중(海中)에 살고 있는데, 대만(臺灣) 봉산사마(鳳山沙馬) 험한 곳의 동남에 있다.》고 하였다. 또 기록(記錄)하기를 : 《佛郎機强與吕宋互市久之築室其地竟乘其無備襲殺其王而據其國名仍吕宋實佛郎機也 : 불랑기(佛朗機)가 강해져 여송(呂宋)과 호시(互市)를 위해 그 땅에 집을 지었다. 방비가 없어(방비하지 못해) 마침내 그 왕(王)을 습격(襲擊)하여 살해(殺害)하고 의거하였는데, 그 나라 이름이 여송(呂宋)이었으나 실(實)은 불랑기(佛朗機)다.》라고 하였다.
➤ 이러한 예(例)에 따른다면 : 옛 ‘제주(濟州) 또는 탐라(耽羅)’는, 한반도(韓半島)의 제주도(濟州島)와는 일면식(一面識)도 없는, ‘다른 곳’에 있는, ‘다른 땅’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역사통설(歷史通說)【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논자(論者)들의 조선사(朝鮮史) 해설(解說)은, 「특정집단(特定集團)의 특정인(特定人)들에 의해, 고의적(故意的)인 편집과정(編輯過程)을 거친 왜곡(歪曲), 조작(造作)된 역사(歷史)임이 확실시(確實視)된다.」
이건 누구도 부인(否認)할 수 없는 명백(明白)한 증거(證據)들이다.
➌ 사실(事實) 재야(在野)쪽에서도, 제주도(濟州島)가 옛 탐라(耽羅)인가?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하는 문제(問題)에 있어 설왕설래(說往說來)할 뿐으로, 정확(正確)한 곳은, 아직도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특히“탐라(耽羅)와 제주(濟州)가 같은 곳을 지칭(指稱)하고 있는가?” 부터 해결(解決)되어야 할 문제라고 본다.
➍ 문제(問題) 제기(提起)는, 「제주(濟州)와 탐라(耽羅)는 본시(本是) 서로 다른 땅이었으나, 사가(史家)들에 의해 한 곳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즉(卽) 토산물(土産物)로 보면,
▷ ‘동정귤(洞庭橘)’로 대표(代表)되는 내륙(內陸)의 제주(濟州) 동정호(洞庭湖) 주변(周邊)을 말하며,
▷ ‘대모(玳瑁)·앵무라(鸚鵡螺)’로 대표(代表)되는 탐라(耽羅)는, 여송(呂宋)【Luzon】땅이 아니었을까?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는, 조선(朝鮮) 후기 실학의 개조(開祖)로 불리는 유형원(柳馨遠, 1622~1673)이 편찬한 지리지로, 최초로 개인이 저술한 전국적(全國的)인 지리지(地理志)라는 면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저자(著者)가 35세 되던 1656년 《동국여지지》의 편찬이 완료된 것으로 기술하였다고 하였는데, 여러 번에 걸쳐 손질한 흔적(痕迹)이 남아있다고 한다. 중략(中略). [출처(出處) : 고전번역원DB]
○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柳馨遠(1622~1673) 5卷 上 / 全羅道 / 濟州牧 : 土産
《馬,元至元中,以耽羅爲房星照應之地,置牧場,放大宛種,以爲畜牧。○ 本朝鄭以吾記:“馬畜之所孶猶晉之屈産,非諸州之所可擬也。”牧場本州凡七所,旌義三所,大靜一所。牛,黑、黃、斑數種。角甚美,可爲觥。家家畜牧,至數百爲群。麂,鹿,皮細靭甚好。獐,猪,海獺,出大、小化奪島。地獺,蠙珠,高麗忠烈時,元遣使採珠不得,乃取民所藏百餘枚以還。玳瑁,貝,鸚鵡螺,已上三物竝出牛島及大靜蓋波島。螺,香鼠,體極小,其臭酷似麝香。鰒,黃蛤,玉頭魚,銀口魚,烏賊魚,鮫魚,俗謂鯊魚,有大小兩種。皮堪楷木如木賊。刀魚,古刀魚,行魚,文魚,品最劣。望魚,異於諸魚,胎化不卵育。鹽,海濱皆是礁嶼,斥鹵之地甚少。本土又不産水鐵,有釜者無多,故鹽極貴。藿,牛毛,木衣,香蕈,柚,柑,有黃柑、乳柑數種。橘,有金橘、山橘、洞庭橘、倭橘、靑橘五種。靑橘則結子經冬逢春乃熟,至夏甚佳,時過還酸。橙子,榧子,梔子,栗,有赤栗、加時栗數種。○已上柚、柑以下諸果出果園,園皆築垣。凡二十二處,旌義八處,大靜六處。菩提實,有兩種。一種大如蓮子,秋結實,至春熟。瀛洲實,生漢挐山。實小黑而甘。鹿角實,樹如紫檀。實小而丹,味甘可食。竹,竹箭,出飛楊島。無灰木,出牛島。在海中柔脆,隨波上下,出水乃堅硬。山柚子,二年木,櫨木,有腦香氣。蔓香木,生漢挐山。形如紫檀。靑楊,樹如楊,葉如眞松而細嫩。弓幹木,金銅木,粘木,皮似厚朴,取汁着物,則粘合如膠。安息香,練根,練實,卽金鈴子。海桐皮,八角,厚朴,蓽澄茄,土人不知覓採,又不知蓽澄茄之向陽者爲胡椒。石斛,蜀椒,杜沖,出楸子島。天門冬,麥門冬,出牛島者肥大。無患子,一名木槵子。零陵香,香附子,蔓荊子,半夏,白蠟,石鍾乳,出財巖穴中。枳殼,陳皮,卽山橘皮。靑皮,卽靑橘皮。茴香,五味子,實黑而大,品味最佳。燕覆子,卽木通實。實大如木瓜,皮丹黑。剖之,子如林下夫人,而子差大,味差濃,蓋林下婦人之類而差異耳。松寄生。生漢挐山。》라고 하였다.
위의 원문(原文)중에서 관심(關心)을 끄는 대목을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1) 〈馬,元至元中,以耽羅爲房星照應之地,置牧場,放大宛種,以爲畜牧. : 말(馬)은, 원(元) 지원(至元)간에, 탐라(耽羅)가 방성조응(房星照應)【이십팔수의 넷째별로, 말(馬)의 수호신(守護神)으로 불리는데, 서로 알맞게 일치한다는 뜻이다.】땅(之地)으로써, 목장(牧場)을 두었는데, 대완종(大宛種)을 방목(放牧), 축목(畜牧)하였다.〉
“대완(大宛) 종(種)”이라고 하면 : 「대완(大宛)의 준마(駿馬)인 한혈마(汗血馬)」를 말하는 것이다. ‘대완(大宛)’은 한(漢) 때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의 ‘페르가나’에 있던 옛 나라를 말하는 것이고, 대완(大宛)은, 한혈마(汗血馬)라는 명마(名馬)의 산지(産地)로도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제주도(濟州島)’에서 키워지고 있고 있는 말(馬)들은, 이때의 ‘한혈마(汗血馬)의 후예(後裔)들’이라는 건가? 이건 진짜 코메디(Comedy) 극(劇)이다.
(2) 〈牛,黑、黃、斑數種。角甚美,可爲觥。家家畜牧,至數百爲群. : 소(牛) 【흑우(黑牛), 황우(黃牛), 반우(斑牛)등 여러 종류가 있었다. 뿔은 매우 아름답고, 그 뿔로 뿔잔(굉:觥)을 만들 수 있다. 집집마다 목축(牧畜)하였는데, 수백(數百)의 떼로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즉(卽) ‘여러 종류(種類)’의 많은 소(牛)들을 축목(畜牧)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형편(形便)이다 보니,
高麗史節要 23권 / 충선왕(忠宣王) 기유 원년(1309), 원(元) 지대 2년 :《元,遣宦者李三眞,來罷獻耽羅牛肉。: 원(元)나라에서 환자(宦者) 이삼진(李三眞)을 보내 와서 탐라(耽羅)의 쇠고기 바치는 일을 폐지하였다. 》
탐라(耽羅)의 특산(特産) : 수유(酥油)와 우육(牛肉) : 소(牛)나 양(羊)등의 젖으로 만든 것으로 차(茶)와 함께 마시는데 이를 수유차(酥油茶)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토산물(土産物)을 보면, 함경도(咸鏡道)·평안도(平安道)·강원도(江原道)·경상도(慶尙道)· 황해도(黃海道) 및 탐라(耽羅)등지에서 수유(酥油)가 생산(生産)된다고 하였음을 보면, 이들 지방에 유목민(遊牧民) 또는 대규모(大規模) 목장(牧場)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유적(遺跡)이나 흔적(痕迹)들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냐?
또 탐라(耽羅)의 특산(特産)으로 맛있는 소고기(牛肉)가 있다고 하여, 몽고(蒙古)인들조차 그 맛을 잊지 못해 요구(要求)했다고 전해진다. 반도(半島) 땅,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탐라(耽羅) 땅에 많은 소(牛)들이 길러졌다는 것이 진실(眞實)일까?” 그 유적(遺跡)이나 흔적(痕迹)들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냐?
제주도(濟州島)에서 기르는 돼지(豚)중에서 흑돈(黑豚)의 맛이 유명(有名)하다는 것은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얘기다. 그럼 제주도(濟州島) 소고기(牛肉) 맛은 왜 유명(有名)하지 않을까?
➤ 생각해 보면 : 지금도 각 지방(地方)에서는 ‘임금님 수라상(水刺床)에 올랐다’는 음식(飮食)들을 선보이며, 요란스럽게 홍보(弘報)하고 있는 실정(實情)이지만, 이걸 무엇으로 증거(證據)할 수 있느냐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問題)다. 이 땅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 〈麂,鹿,皮細靭甚好。: 큰 노루(麂), 사슴(鹿), 가죽이 가늘고 질기어 잘 끊어지지 않아 매우 좋아한다.〉고 하였다.
(4) 〈地獺,蠙珠,高麗忠烈時,元遣使採珠不得,乃取民所藏百餘枚以還。:
빈주(蠙珠 : 珍珠), 고려 충렬왕(忠烈王)때에, 원(元)에서 사신을 보내어 진주(珍珠)를 캐려하였으나 얻지 못하자, 이에 백성(百姓)들이 소장(所藏)하고 있던 백여(百餘) 매(枚)를 가지고 돌아갔다.〉진주(珍珠)를 말한다.
(5) 〈玳瑁,貝,鸚鵡螺,已上三物竝出牛島及大靜蓋波島。: 대모(玳瑁), 조개(貝), 앵무라(鸚鵡螺), 이상의 품질이 높은 세 가지 물건은, 나란히 우도(牛島)와 대정(大靜)의 개파도(蓋波島)에서 나온다.〉
➊ 대모(玳瑁) : 바다거북과에 딸린 거북의 하나. 인도양(印度洋)ㆍ태평양(太平洋)ㆍ대서양(大西洋)의 열대(熱帶)와 아열대(亞熱帶)에 분포(分布)함. 등딱지를 대모(玳瑁) 또는 대모갑(玳瑁甲) 이라고 하며 공예품(工藝品)ㆍ장식품(裝飾品) 따위에 귀중(貴重)하게 씀. 특히 ‘필리핀’ 근해(近海)에서 많이 서식(棲息)한다고 한다.
➋ 앵무라(鸚鵡螺) : ‘앵무(鸚鵡) 소라(螺)’를 말하는 것으로, 이 껍데기로 술잔을 만든다고 한다.
➤ 이미지 출처 : 옛이야기 속 고마운 생물들 ⓒ 서자경 / 그 자체로 오롯이 예술품이 되는 조개 앵무라 :
문헌 속 ‘앵무라’가 정말 ‘앵무조개’라면 가장 유력한 종은 ‘황제앵무조개’입니다. 그런데 이 종은 「적도 지방을 중심으로 주로 남태평양에 분포하고, ‘필리핀 근해’가 이 종(種)의 가장 북쪽 분포지입니다.」 그러니 한반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종입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그 자체로 오롯이 예술품이 되는 조개 앵무라 (옛이야기 속 고마운 생물들, 2017. 10. 정종우)
(6) 〈鹽,海濱皆是礁嶼,斥鹵之地甚少. : 소금(鹽), 바닷가 모두의 암초 및 작은 섬에서 나오며, 염분이 많은 땅은 매우 적다.〉
(7) 〈本土又不産水鐵,有釜者無多,故鹽極貴。: 본토(本土) 또 무쇠(水鐵)는 산출되지 않는다. 가마(釜)는 있으나 많이는 없고, 염(鹽)은 극히 귀(貴)하다.〉
(8) 〈 柑,有黃柑、乳柑數種。: 감(柑), 황감(黃柑)【홍귤(紅橘)】이 있고, 유감(乳柑)은 수(數) 종류(種類)가 있다.〉
➊ 황감(黃柑)은, 잘 익어서 빛깔이 누르게 된 감자(柑子) 즉(卽) 홍귤(紅橘)을 말한다고 한다.
➋ 유감(乳柑)은, 운향과(芸香科)에 딸린 나무로, 열매는 밀감(蜜柑)과 비슷하나 약간 쉬다고 하는데, 물론(勿論) 식용(食用)이다. 몇 종류(數種)가 있다고 하였다.
(9) 〈橘,有金橘、山橘、洞庭橘、倭橘、靑橘五種。靑橘則結子經冬逢春乃熟,至夏甚佳,時過還酸。 귤(橘), 금귤(金橘), 동정귤(洞庭橘), 왜귤(倭橘), 청귤(靑橘)등의 5종이 있다.〉
➤ 즉(卽) 당시(當時)의 제주목(濟州牧)은, ‘귤(橘) 천지(天地)였다’는 말과 같다. 황감(黃柑)도 있고, 유감(乳柑)도 있고, 5 종류나 되는 귤(橘)이 생산(生産)되는 하늘이 내려 준 땅(天惠之地)이었다는 뜻이다.
(10) 〈橙子,榧子,梔子,栗,有赤栗、加時栗數種。。: 등자(橙子), 비자(榧子), 치자(梔子), 밤(栗), 또한 밤(栗)나무가 있는데, 몇 종류가 있었다.〉
➊ 등자(橙子) : 식물 운향과의 상록 활엽 교목. 높이는 3미터 정도이고 가시가 있으며, 잎은 두껍고 귤나무의 잎보다 크다. 첫여름에 흰 오판화(五瓣花)가 총상(總狀) 화서로 잎겨드랑이에서 피고 열매는 둥근 장과(漿果)로 겨울에 노랗게 익는다. 열매는 발한제, 건위제, 조미료, 향료로 쓴다. 인도가 원산지로 따뜻한 지방에서 자란다.
➋ 비자(榧子) : 나무 크기가 8~15m, 직경이 50~120cm로 수령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대략 300년에서 500년쯤으로 추정된다. 비자나무 목재는 향기가 나고 탄력이 있어서 귀하게 쓰이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둑판이다. 값이 비싼 최고의 명반이며, 습기에도 잘 견디어 관재 또는 배의 중요한 부분을 만드는 재료로 쓰는 목재다. 『조선왕조실록』이나 『동국여지승람』에 원(元)나라 궁궐 축조에 우리나라에서 목재를 세공으로 바쳤다는 기록도 있다.
영조 39년에는 제주도(濟州島)에서 조정에 바치는 비자나무 목재량이 많기 때문에 백성들이 너무 힘들어하니 그것을 줄여 달라는 기록도 있다. 비자나무의 잎은 납작하고 끝이 침처럼 날카로워서 ‘개비자나무’의 부드러운 것과 구분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자나무 (우리 생활 속의 나무, 2008. 3. 25. 정헌관)
➌ 치자(梔子) : 종소명의 'jasminoides'는 '재스민과 향이 비슷하다'에서 유래됨. 꼭두서니과에 속하는 상록성 관목이다. 남부지방에서 재배하는 관상식물로 일본 오키나와, 대만, 중국에 분포한다. 이 열매를 옛날부터 황색 염색에 많이 이용하였다. 우리나라에는 1500년경 중국에서 도입하여 주로 남부지방에서 많이 재배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치자나무 [Gardenia fruit, 梔子] (경기도농업기술원, 손에 잡히는 생태수목도감, 조경식물소재도감)
그렇다면 1500년, 그 이전(以前)의 치자(梔子)에 대해서는 설명(說明)이 불가능(不可能)하다는 뜻이다. 또 1500년 경(頃)에 처음으로 수입(輸入)되었다고 했을 때, 과연(果然) 제주(濟州) 땅에는 언제 쯤 들어와 토착화(土着化)되었을까?
(11) 〈已上柚、柑以下諸果出果園,園皆築垣。凡二十二處,旌義八處,大靜六處. 이상의 유자(柚子)나무, 감(柑)나무등의 이하(以下) 여러 과일이 나오는 곳은 과원(果園)인데, 과원(果園)은 모두 담(垣)을 만들어 놓고 있고, 무릇 22개소인데, 정의(㫌義)에 8개소, 대정(大靜)에 6개소가 있다.〉
위의 설명(說明)은, “조선조정(朝鮮朝廷)에서 국가적(國家的)으로 과원(果園)을 관리하여, 과실(果實)을 올려보내도록 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반도(半島) 땅 제주도(濟州島)에 이러한 흔적(痕迹)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홍귤(紅橘)이니 동정귤(洞庭橘)이니, 왜귤(倭橘)이니 하는 귤(橘)의 종류(種類)는, ‘반도(半島) 제주도(濟州島)’와는 어떤 관계(關係)도 없다. 이런 종류(種類)는 산출(産出)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제주도(濟州島)의 귤(橘) 산업(産業)에 대해서는, “일제(日帝)시대(時代)에 일본(日本)으로부터 귤(橘) 묘목(苗木)이 들어와 재배(栽培)되었다.”는 것이 정설(定說)이다.
(12) 〈無灰木,出牛島。在海中柔脆,隨波上下,出水乃堅硬。: 무회목(無灰木) : 우도(牛島)에서 나온다. 바닷속에서는 연하고 무름지만(柔脆), 물결치는 대로 아래위로 하면서, 물위로 나오면 굳고 단단해진다.〉
무회목(無灰木) : 불회목(不灰木)의 별칭이다. 석면(石棉)처럼 불에 견디는 광물의 한 종류이다. 《本草綱目 金石3 不灰木》
➊ 五洲衍文長箋散稿(오주연문장전산고) : 人事篇 ○ 器用類 : 燈燭 : 油燭耐點辨證說 : ’무회목(無灰木)=불회목(不灰木)‘ : 萬年火把。一名不灰木。燃之徹夜不成灰者。其理或然。而此不可易得者也。【其說。不灰木。一名萬年火把。不灰木有木、石二種。石類者。其體堅重。或以紙裹蘸石腦油然燈。徹夜不灰。人多作小刀靶。《太平寰宇記》。不灰木。俗多爲鋌子燒之。成炭而不灰。其葉如蒲草。今人束以爲燎。謂之萬年火把。按不灰木之石類者。卽滑石根。不灰木。我東濟州牛島海中出。無灰木。黑硬似角。燃之臭如燒角。亦無灰。海帶根。如黑角。如硬角。燒之亦石。故不無灰。未知與時珍《本草》不灰相似否。大抵滑石根。不灰以石。故不易燼。不灰木。雖曰木類。體堅如石。故然之不灰也。不灰之木、石兩種。和油蠟爲燈燭。似有耐久不易耗之理也。此或可試。】
➋ 오주연문장전산고 萬物篇 ○草木類 樹木 / 無灰木辨證說
凡物有理外之理。莫可窮究。然其理外之理。卽理也。試言之。浮石。石也而能浮。沈香。木也而能沈。【《抱朴子》。水沫爲浮石。方中通曰。土中靑石燒成石灰。其不成灰者燒之。其汁如油。油盡則石枯。可以浮之水上。沈香木。至輕也。以水沈之沈。故名沈水香也。】 龍鞭雖輕而能沈。强木雖重而能浮。【龍鞭木産北關。李芝峯《類說》。出北道海中。稱龍鞭草云。出江界府者。俗名筯木。又呼唐强木。理白如骨。爲箸爲筆管。則甚佳。投之水中。便沈。如金石骨角。而或言關西深峽多生。非徒江界云。《池北偶談》。門人南陽李鴻。嘗贈予印章。色類栴檀。質如玉。上作龜紐。甚精。云是木晶。海外産。我王考注之曰。似是龍鞭。施愚山閏章《學餘集》。强木方一寸。重百觔。不沈木也。以巨石縋之。終不沒。可代弱水。是何理也。有不可解者也。】 《本草綱目》。有不灰木。滑石根也。體堅重。色白如爛木。燒之不燃。以紙裹蘸石腦油燃燈。徹夜不成灰。或作小刀靶。要成灰。則以牛乳煮了黃牛糞。令成灰。旣爲滑石根。則稱以不灰木。無乃名實俱爽者乎。《太平寰宇記》。不灰木。俗多爲鋌子。燒之成炭而不灰。其葉如蒲草。今束以爲燎。謂之萬年火把。一夜僅燒一二寸。物理書。火山有不灰木。徐無有無燼樹。然此是書中所見事在影響間者也。我東耽羅牛島海中。有一種無灰木。其狀似木非木。似角非角。復如石而非石。其在海中柔脆。隨波上下。出水卽爲堅硬。或罥網而出。予得數條細看。則如枯木丫枝。色淡黑如水牛角。【今黑角】 其成岐者。驀見若鹿角然。體重則石也。其理則角也。其性則硬中微脆。括而投火則臭。燥如角。煆髮成灰無燼。故稱以無灰。或曰海帶根。【海帶。俗名多士麻。】 《和漢三才圖會》。海帶 【俗名甘藿】 有株堅實。乾作小刀欛云。我東海中亦有之。名以無灰。故耽羅無灰木相混也。以此物作刀柄及釦子、䯻簪與雜物。紺黑如瑿。俗稱能辟邪鬼神。故行祀不得帶身云。海帶根株。亦堪作玩好。其紋或有細黃點。名曰金砂。濟州人泅海者云。無灰在海中。其樹成抱。枝條柔軟。宛如鹿角。菜珊瑚槎牙。演漾爲風濤所蕩折。或流出海澨。始曝風晹。而凝堅如石。然不可易得者也。其言不誣。當補博物、物理、本草諸書者也。
➌ 현종(개수실록) 13년 임자(1672) 2월 12일(무자) / 동래 부사 이하가 하직 인사를 하다 : 此外如白蠟、無灰木, 亦是島中之弊, 而無灰木元非本島所産, 乃拾得於海濤浮來者, 故尤極稀貴矣。: 이 밖에 백납(白蠟)ㆍ무회목(無灰木) 따위들도 도중(島中)의 폐가 되고 있는데, 무회목은 애당초 본도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바닷물결에 떠내려오는 것을 주은 것이므로 더욱 몹시 희귀합니다.”
➤ 우도(牛島)의 바닷곡에서 산출된다고 하였는데, 그 우도(牛島)가 어디에 있었던 섬(島)인가? 하는 문제(問題)다.
(13) 安息香,練根,練實,卽金鈴子。
안식향(安息香) : 안식향이라는 명칭은 향기가 높고 모든 사악한 기운을 쫓아낸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산지(産地)는 ‘자바·수마트라·베트남·타이’ 등지이다.
(14) 海桐皮,八角,厚朴,蓽澄茄,土人不知覓採,又不知蓽澄茄之向陽者爲胡椒。
➊ 팔각(八角) : 팔각(八角)이라는 이름에서도 쉽게 알 수 있듯이, 팔각(八角)은 외관상으로 가장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향신료다. 8개의 꼭짓점이 있는 별 모양으로 맛은 아니스와 비슷하다. 원산지가 서인도인 상록수로, 마그놀리아라는 목련과나무의 열매다. 유럽에는 16C에 전해졌고, 중국에서는 3천 년 전부터 사용했다. 현재 중국에서 대량으로 재배되고 있는데 대표적인 효능으로는 배뇨촉진과 식욕증진을 들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팔각 [Star Anise] (셰프가 추천하는 54가지 향신료 수첩, 2011. 3. 30. 최수근, 최혜진)
➋ 필징가(蓽澄茄) : [土人不知覓採,又不知蓽澄茄之向陽者爲胡椒 : 토인(土人)들은 찾아 채집하는 것을 모른다. 또 필징가(蓽澄茄)가 햇빛을 향해 자라고 있는 것들이 ‘호초(胡椒)’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즉(卽) ‘필징가’(蓽澄茄)가 ‘호초(胡椒)’라는 사실(事實)이다.
호초(胡椒) : 후추의 껍질이다. 후추나무의 열매. 후추나무는 후추과에 속하는 상록덩굴식물. 인도(印度) 남부가 원산지이다. 일찍부터 향신료로 이용하여 왔는데 성숙하기 전의 열매를 건조시킨 것을 검은 후추라 하고, 성숙한 열매의 껍질을 벗겨서 건조시킨 것을 흰 후추라 한다. 주로 가루 내어 이용하며, 통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호초 [胡椒] (한의학대사전, 2001. 6. 15. 한의학대사전 편찬위원회)
(15) 零陵香,香附子,蔓荊子,半夏,白蠟,石鍾乳,出財巖穴中。
➊ 영릉향(零陵香) : 太宗實錄 太宗 6년 12월 22일[1406년 명 영락(永樂) 4년] : 동불을 바친 대가로 명나라에서 서적·약재 등의 물품을 보내오다
丁未 / 朝廷內史韓帖木兒ㆍ楊寧等來。 上以時服, 率百官出迎于盤松亭, 結山棚, 百戲前導, 至昌德宮。 帖木兒宣勑, 賜王珊瑚間茄藍香帽珠一串、紵絲三十匹、熟絹三十匹、象牙二隻、犀角二箇、《通鑑綱目》、《漢準》、《四書衍義》、《大學衍義》各一部、片腦ㆍ沈香ㆍ束香ㆍ檀香ㆍ蘇合油ㆍ白花蛇ㆍ朱砂ㆍ麝香ㆍ附子ㆍ金櫻子ㆍ肉蓯蓉ㆍ巴戟ㆍ當歸ㆍ乳香ㆍ沒藥ㆍ藿香ㆍ零陵香ㆍ甘松香等藥材十八味。 帝喜我進銅佛, 故有是賜。: 조정(朝廷)의 내사(內史) 한첩목아(韓帖木兒)·양영(楊寧) 등이 오니, 임금이 시복(時服) 차림으로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반송정(盤松亭)에 나가서 맞이하였다. 산붕(山棚)을 베풀고, 백희(百戲)로 전도(前導)하여 창덕궁(昌德宮)에 이르렀다. 첩목아(帖木兒)가 조칙을 선포하고, 임금에게 산호간가람향모주(珊瑚間茄藍香帽珠) 1관(串), 저사(紵絲) 30필, 숙견(熟絹) 30필, 상아(象牙) 2척(隻), 서각(犀角) 2개, 《통감강목(通鑑綱目)》·《한준사서연의(漢準四書衍義)》·《대학연의(大學衍義)》 각 1부(部), 편뇌(片腦)·침향(沈香)·속향(束香)·단향(檀香)·소합유(蘇合油)·백화사(白花蛇)·주사(朱砂)·사향(麝香)·부자(附子)·금앵자(金櫻子)·육종용(肉蓯蓉)·파극(巴戟)·당귀(當歸)·유향(乳香)·몰약(沒藥)·곽향(藿香)·영릉향(零陵香)·감송향(甘松香) 등의 약재(藥材) 18종[味]을 하사하였다. 이것은 황제가 우리 나라에서 동불(銅佛)을 바친 것을 기뻐하여 하사한 것이었다.
➋ 世宗實錄 世宗 20년 5월 21일 갑진 [1438년 명 정통(正統) 3년] : 황자후가 제주의 영릉향 간조를 위한 의원파견을 상언하다 : 甲辰/典醫提調黃子厚上言 : 濟州所産零陵香乾正之法, 恐有未盡, 乞當七月遣良醫, 依法乾正, 則不求中朝, 而用之無窮。: 전의 제조(典醫提調) 황자후(黃子厚)가 상언(上言)하기를, "제주(濟州)에서 나는 영릉향(零陵香)을 간조시키는 법이 아마도 미진한 것 같사오니, 비옵건대, 7월이 되거든 훌륭한 의원을 파견하여 법에 의하여 간조하오면 중국에 구하지 않고도 무궁무진하게 쓸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16) 茴香,五味子,實黑而大,品味最佳。
회향(茴香) : 회향(茴香)【펜넬(Fennel, 茴香)】: 지중해 원산으로 전국에 심어 기르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고대 이집트의 무덤에서 발견된 파피루스의 의서에도 기록되어 있는 오랜 역사를 가진 약초이다. 추출물은 진통제(鎭痛劑)로 이용이 되고, 위통에도 효과가 있다. [출처] 펜넬(Fennel, 茴香)|작성자 kyoungahn]
회향(茴香)의 주산지(主産地)는, ‘인도(印度), 중국(中國), 이집트’라고 전해진다.
○ 「토산물(土産物)로 보는 ‘제주(濟州)=탐라(耽羅)’」에 대한 우리 카페[Cafe]의 게재(揭載) 글은 아주 많은 편이다.
중요(重要)한 것은, ‘탐라(耽羅)와 제주(濟州)’는 같은 땅인가? 전혀 다른 곳에 있는 다른 땅을 말하는 것인가? 하는 것조차 정립(正立)되어 있지 않다. 토산물(土産物)을 보면 그곳의 자연환경(自然環境)을 알 수 있고, 이것을 안다면 ‘탐라(耽羅), 제주(濟州)’의 그 지리적(地理的) 위치(位置)를 비정(批正)할 수 있지 않을까?
2022년 04월 25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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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레시아"님!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원사 원전을 하나 하나 검토해 보니, [詔議取耽羅及濟州. : 조서를 내려 탐라(耽羅)와 제주(濟州)를 취하는 것을 의논하게 하였다.] 라는 구절이 있다. 元史 本紀7 世祖4 至元 9年 조 기록]
이 말에 따르면, "탐라와 제주는 서로 다른 땅이다"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데, 또 다른 원전의 기록을 찾아나섰으나,아직까지는 소득이 없다. 여러 차레에 걸쳐 "탐라=제주"에 대한 토산물과 관계되는 원전을 찾아 그 설명과 함께 우리 카페에 게재하였으나, 결과적으로 "탐라와 제주"는 같은 땅인가? 서로 관계없는 다른 땅인가? 하는 문제제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토산물과 자연환경 중에서 기후와는 떼래애 뗄 수 없는 관계일 수밖에 없으며, 이는 그 토산물의 산출지와 연결된다.
'제주와 탐라'의 토산물관계에서 '제주=탐라'라는 공식이 성립되려면, 토산물과 기후 역시 같아야 되는 것인 바, 토산믈과는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어 문제가 되고, 두 개의 전혀 다른 땅에 있던 것을 한 곳으로 재편집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다.
이는 원사에서 말해주고 있는데, 또 다른 원전의 기록을 찾아 상호 어울리는 고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조선사는 왜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졌는가?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이 지구상에서 어느 나라 역사가 이렇게 복잡하고, 이치에 맞지 않고 불합리한 내용으로 만들어져 있는가?
조선사가 유일무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