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발달
인간 성격의 발달에 관한 펄스의 견해의 기본적 원리는 환경에의 의존으로부터 자기 의존에로의 변화이다.
태어나기 전에 우리는 자궁이라는 환경에 완전히 의지한다. 태아는 아무 것도 자급(自給)하지 못한다. 유아가 혼자 호흡해야 하는 바로 그 출생의 순간부터 이것은 변화된다. 태어날 때 잠깐 동안 우리는 중요한 게슈탈트 치료법의 개념인 곤경(impasse)의 첫 징후를 경험한다. 환경에 더 이상은 의지할 수 없는데 자기 자신에게도 역시 아직 의지할 수 없는 고비를 맞게 되는 곤경을 당한다. 이 때 갓난 아기는 혼자 힘으로 숨쉬는 것을 배우거나 아니면 죽어야 한다.
유아가 자라날 때에도 환경적 보좌는 계속 요구된다. 그러나 아동이 그 스스로 하는 것을 보다 많이 배우게 될수록 환경의 보좌는 점차 감소된다. 기어다니고 말하고 걷기를 배우며 자기의 내적 자원, 그 잠재력이 점차 발달하는 것이다. 아동은 타인들에게 덜 의존하게 되고 자아로부터의 원조가 점차 증가하게 된다. 신체적인 면에서 자연스럽게 환경에의 의존으로부터 자유로와지게 되며 그것은 또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러나 심리적 사회적인 의미에서 환경에의 의존으로부터 자유로와지려면 많은 문제가 생기게 되어 인간 실존의 "근본적 갈등"이 생기게 된다.
이 갈등은 우리의 실체로 타인이 원하는 우리들 사이에서 싹트는 것이다. 펄스는 모든 살아있는 유기체 - 식물, 동물, 사람 - 는 본능적 목표가 있는데 그것은 자신의 본질에 일치하도록 자아를 실제의 모습으로 실현시키는 것이다. 펄스는 장미는 캥거루로서가 아니라 장미로서 그 자신을 실현하고 코끼리는 새로서가 아닌 코끼리로서의 그 자신을 실현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독특한 잠재력을 완전히 누리며 살게 됨으로써 또 다른 어떤 것이 아닌 우리 자신이 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우리의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다.
갈등은 우리 실체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 되기를 우리에게 기대하는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일어난다. 사회는 그 대리자(부모, 교사, 그 밖의 것들)의 형태로 펄스가 "진정한 성장(authentic growth)"이라고 말한 본질적이고 자발적이며 완전한 자아의 실현을 방해할 수도 있다. 그들은 집착(stick)과 최면(hypnosis)이라는 강력한 두 가지 도구를 사용하여 우리의 존재를 "위조(falsify)" 할 수도 있다.
집착은 사회가 원하는 것보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면 우리에게 떨어질 재앙을 의미하는 파멸적 기대(catastrophic expectation)의 원칙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자기가 좋은 대로 행동하면("실제로 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그들에게 말해야겠다.") 그 결과는 불쾌할 것("그들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될 것이다.")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된다.
최면은 교실, 설교 연단이나 광고 같은 데서처럼 선전이나 설득을 할 때 필요한, 어떠한 것을 믿으라는 호소가 들어 있다. 펄스는 한 강연에서 그 과정을 선명하게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바로 지금… 내가 말하는 것을 믿으라고 당신에게 최면을 걸고 있다. 나는 내가 말한 것을 소화하고 동화하고 음미할 기회를 주지 않겠다. 당신에게 주문(呪文)을 던지고 당신이 동화되거나 토하거나 계산기 속으로 집어넣고서 흥미로운 개념이군요 라고 말할 때까지 나의 지혜를 당신 창자 속에 밀어 넣는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집착을 통해서든 최면을 통해서든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환경에 더 의존하여 뒷받침을 받고 잠재력의 완전한 표현은 억제된다. 아동이 자라면서 그들은 두 상황 중의 하나, 즉 응석받이가 되거나 좌절을 극복하는 것에 직면하게 된다. 아동들은 쉽게 응석받이가 되어버릴 수 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스스로 답을 찾게 하는 것보다 아이들의 모든 질문에 대답을 해주어 버린다. 또한 그들은 아동이 원하는 모든 것을 줄 수 있고 따라서 아동을 좌절시키는 데는 실패한다. 펄스는 좌절은 자라나는 아동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좌절이 없으면 아동에게는 능력을 발달시켜 스스로 어떤 것을 할 수 있는 전율적 쾌감을 찾아야 할 이유가 없다.
펄스는 아동들이 응석받이가 되었거나 충분한 좌절 경험이 없을 때 "고착(stuck)"된다고 믿었다. 이런 아동들은 성장과 발달을 하는 데에 독특한 잠재력을 활용하는 대신에 환경, 특히 부모를 조절하는 데에 사용한다. 그들은 추진력을 부모의 원조를 얻기 위하여, 부모를 교묘히 조종하는 데 사용한다. 다시 한 번, 그들은 자기보다는 환경에 의존한다.
아동이 효과적인 조종의 수단을 배울 때 특성(character)을 획득하게 된다. 그리고 고정된 특성을 가질수록 우리 행동이 굳어지고 예측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독특한 잠재력의 표현이 줄어든다.
아동이 발달시켜야 할 여러 가지 특성이 있다. 그들은 타인으로부터의 "지시적 원조"를 구하면서 결과적으로 이런 말을 하게 된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요. 엄마, 아빠, 어떻게 할까요?"라고. 그들은 부모를 조정하기 위하여 울기도 하고 성질을 부리기도 하며 부모의 자존감에 호소하여 아양을 떨기도 한다. 그래서 그 댓가로 부모는 무엇인가를 줄 것이라고 기대해보는 것이다. 또 다른 특성은 자기가 무력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인데 그 결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엄마 아빠는 확실히 저를 도와줄 수 있을 거예요. 당신들은 매우 현명하니까요." 이러한 행동은 성인이 되어서도 벌이는 의존 게임(games of dependency)으로 연결된다.
우리가 끊임없이 칭찬, 사랑, 혹은 타인의 격려를 필요로 할 때 그들이 지배자가 된다. 우리는 자아에게 의지하고 있지도 않고 통제력을 갖고 있지도 않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감명시키는 데만 계속 관심이 있다. 우리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의견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우리는 더 이상 자발적으로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없다.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주는 효과에 대해 민감하게 말하고 행동할 모든 것을 계획하고 연습해야 한다. 계속적인 반복을 통하여 이 역할들은 연관이 된다. 지지를 받기 위해 연기를 통하여 환경을 조정하는 것은 신경증과 미성숙의 한 증상이다. 이 조종에 투자되어야 했던 기력은 이미 자신의 발달에 적용할 여유가 없다. 우리는 자기가 자신에게 줄 수 없는 것을 타인에게서 받으려고 하는 노예가 된다.
환경에의 의지에 대신할 수 있는 다른 건강한 방법은 자기 스스로에 의지하는 것이다. 이 과업은 인간 성격 발달의 궁극적 목표이다. 우리는 타인을 위해 벌이는 연기를 그만두어야 하고 우리의 내적인 본질을 진실하게 반영하는 방식으로 행동함으로써 우리가 가진 잠재력을 실현시켜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했을 때에는 펄스가 말하는 심리적 건강의 최고 상태에 이미 도달한 것이다. 펄스는 이 상태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것을 "여기 그리고 지금"의 사람이라고 부를 것이다.
ㅡ게슈탈트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