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학교] ['잠 안 자는 학교' 한가람高의 비밀] 직접 교재제작… 책상 배치 바꿔… 선생님들 열정에 수업 흥미 절로
<특별취재팀>
김상민 기자 심현정 기자 안준용 기자 입력 : 2010.09.10 03:04
지난 8일 오전 서울 양천구 목동 한가람고 2학년 영어 교실에선 창가 쪽과 복도 쪽 학생들이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가운데 자리 학생들은 교탁 쪽을 보고 있었다.
복도 쪽 맨 앞에서 수업을 듣던 장영지(17)양은 "선생님이 더 잘 보이고 토론 수업을 할 때는 친구들을 보며 얘기할 수 있어 좋다"며 "선생님이 책상을 옮겨주고 자리도 정해준다"고 했다. 15분쯤 지나자 창가 쪽 맨 앞에 앉아 있던 김성훈(17)군이 교실 뒤 '키 높이 책상'으로 나갔다. 김군은 "집중력이 떨어지면 여기 나와 수업을 듣는다"고 했다. 75분 수업시간 동안 잠을 자는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손윤진(29) 교사는 "우리는 교사 겸 디자이너"라며 "자리 배치는 물론 교실 장식까지 책임진다"고 말했다. 핼러윈날(10월 31일) 때는 해골 그림을 교실 벽에 붙이고, 크리스마스엔 트리로 교실을 꾸민다고 했다. 그는 "모두 아이들의 집중력과 흥미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에서만큼은 '공교육의 위기'라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교사는교재를 직접 제작하는 등 수요자인 학생 맞춤형 수업을 하고 학생들도 즐겁게 따른다. 수업 시간에 자는 학생은 찾기 어렵다. 2학년 김은주(17)양은 "사회 시간에는 모의재판을 하고, 미술 시간에는 컴퓨터 그래픽을 배운다"며 "학원보다 학교 수업이 더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학기마다 학생들이 교사를 평가하는 '수업만족도 조사'를 하고 있다. 1997년 개교이래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5점 만점에 2점대를 받은 교사는 교장을 만나 수업방식에 대해 면담을 한다.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백성호(47) 교감도 "학생들 평가를 받을 때면 지금도 긴장된다"고 했다.
교사들은 '권위'를 버린 대신 '자신감'을 얻었다. 학교는 지난 6월 26일부터 한 달 동안 교사 41명의 수업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교사들은 동료의 수업을 보며 좋은 교수법을 익혔다. 2학년 과학을 가르치는 김정오(33) 교사는 "내가 잘 가르친다고 자신했는데 동료 교사 몇 분의 수업을 보니 정말 '딱딱' 짚어주더라"며 "여름방학 때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고민 많이 했다"고 말했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1997년 개교하며 일부 과목에서 학생이 수업을 선택하고 교실을 옮기며 수업을 듣는 '교과 교실제'를 시행하자 교사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아이들 관리가 어렵다', '아이들도 교실을 옮기기 귀찮아한다'는 이유였다. 이옥식(52) 교장은 2006년 1월 교사 40여명을 데리고 미국에 갔다. 이 교장은 "교사들이 교과 교실제를 잘 운영하는 미국 명문고의 수업 모습을 보더니 탄성을 터뜨렸다"고 했다. 이듬해부터 이 학교는 모든 과목에 교과 교실제를 시행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퍼진 한가람고는 지난해 7월 '자율형 사립고'로 지정됐다. 첫 자율형 사립고 입학생을 모집한 지난해에는 일반전형 경쟁률이 9.1대1로 서울지역 13개 자율형 사립고 중 1위였다.
이 교장은 "'잠자는 학교'에는 다 이유가 있다"며 "교사들은 교육제도 탓, 학생 탓만 하지 말고 좀 더 절실한 심정으로 수업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