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이 책은 2008년 10월부터 3회에 걸쳐 북한을 방문한 유미리의 자전 에세이이다. 지금까지 나온 여러 북한 기행 책들과는 달리 이 책은 그녀의 다른 작품들처럼 가족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경남 밀양이 부모님의 고향인 그녀는 우리말 우리글을 모른다. 자신의 국적은 대한민국이고 아들의 국적은 일본이다. 조부는 해방 후 공산주의자 혐의를 뒤집어쓰고 투옥당했으며, 조부의 남동생은 좌익운동 혐의로 남한 군인들에게 사살당했다. 이러한 가족내력은 오늘날 재일교포들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2008년 1차 방북에서 그녀는 신천박물관, 판문점 등을 방문하면서 분단의 비애를 느낀다. 더불어 북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보면서 진한 향수를 느낀다. 특히 10일간 함께한 안내인들에게 가족과 같은 혈육의 정을 느끼게 된다. 개인주의가 심한 일본사회에서 그녀는 인간관계를 거의 차단하고 살았지만 북한체류기간동안에는 마음의 셔터를 올리고 타인과 교류할 수 있었던 자신을 발견한다.
일본으로 돌아온 후 집필작업 과정에서 심한 정신적 질환이 재발하여 요양원 입원을 권유받지만 그녀는 고심끝에 입원 대신 2차 방북을 결정한다. 2010년 4월 2차 방북에서는 태양절 행사, 마라톤대회, 대집단체조 <아리랑> 등을 관람한 이야기가 담담하게 전개된다. 특히나 대동강변을 산책하는 시민들을 보며 자신도 아들을 데리고 와서 꼭 함께 산책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같은 해 10월, 드디어 아들과 동거남과 함께 3차 방북을 한다. 그토록 바랬던 아들과의 대동강변 산책, 개선청년공원에서 유희, 판문점 방문 그리고 백두산 등반까지 가족과 함께 한 평양의 여름휴가를 지낸다. 자신의 아들을 친아들처럼 대해주는 안내원과 훌륭한 선생님 역할을 해준 통역사에게 진한 가족애를 느끼며 그들과의 이별이 슬픔에 혼이 빠져버릴 것 같은 마음을 느낀다. 그 마음은 곧 통일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진다.
<목차>
[제1장 첫 방문 - 내가 본 환상의 조국 2008년 10월]
어머니와 남동생에게 거짓말을 하고 출국하다 / 받아든 일정표 내용 / 침묵하는 안내원들 / 호텔에서 보인 빛 / 아들 꿈 / 지하호의 어둠 속에 압축된 아픔 / ‘만약의 사태’를 상의하다 / 버드나무 밑을 오가는 사람들 / 할머니가 부른 노래가사의 의미 / 취한 머리로 생각한 재방문 / 묘향산과 14년전의 기억 / 내아이와 헤어지게 된다는 것 / 백인남성에게 묻고 싶었던 것은...... / 조선인민군중좌와의 대화 / 자매가 재회해서 나눈 첫마디 / 담배를 피우려고 하자 안내인은...... / 재방문을 약속하고
[제2장 마음이 조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조선은 안개의 나라였다 2009년 1월 ]
[제3장 태양절과 국제 마라톤대회―2010년 4월]
2년만에 재회한 나는 / 마라톤대회에 참가할 작정이 / 십년 후 히가시유타카의 기일에 / 조선과 일본의 천사백년 / 김일성 탄생 98주년<태양절 축하자리> / 사람무리의 일원으로서 / 고 사기사와 메구무의 목소리 / 나그네 그리고 개나리 / 런닝웨어로 갈아입고 / ‘피’와 ‘비’
[제4장 가족과 고향―아들을 데리고 간 방북 2010년 8월]
아들의 국적선택 기회를 빼앗다 / 나의 조국? / 아들의 여름방학에 방북하다 / 나의 ‘가출’-그와 아들은 / 평양공항에서 전자사전을 움켜쥐고 / 비마중 / 환영회 자리에서 아들과 그는 / 평양의 정전 / 8월 15일과 매미소리 / 시민들은 ‘사쿠라’일까 / 해방기념일과 ‘아웃사이더’ / 매미가 날아갔다 / 원도 직선도 아닌 시간 / 꽃동네는 애처로운 걸까 / 아들과 본 매미의 탈피 / 나와 조선학교 / 아리랑은 아들에게는 ‘자극’이었을까 / 푸에블로호 앞에서 생각한 것 / 조선의 발전소 / 유원지의 절규머신 / JSA로 향하다 / 이옥기씨와 ‘한’ / 히가시 유타카·나·다케하루 / 한겨울의 평양 / 아들 손이 만나게 해준 것 / 조선대학교 학생들 / 해발2천백십미터 산에 / 학생들과 기념촬영 / 천지 앞에서 / 나의 일상과 ‘여행’ / 검거된 방북 목사 / 조선대생들의 노래 / 울면 안된다
<추천사-임헌영 문학평론가>
한 재일동포 작가의 조국 찾기
유미리의 <<평양의 여름휴가―내가 본 북조선>>에 부쳐
냉전 시절에 읽었던 북한 방문기 중 가장 충격적인 글은 윌프레드 버체트(Wilfred Graham Burchett, 1911-1983) 기자의 <<또 다시 북한에서(Again Korea, ふたたび朝鮮で)>> 였다. 독학으로 익힌 서툰 일어판으로 읽었던 게 오히려 더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오스트레일리아 빈민 출신의 버체트는 제2차대전 중 프랑스의 친독 괴뢰 비시정권(Régime de Vichy)을 비판하면서 기자생활을 시작, 중국, 버마를 거쳐 원폭 투하의 히로시마 르포로 주목을 받았는데, <<히로시마의 그늘>>(표완수 옮김, 창작과 비평)이 바로 당시의 산물이다.
세계 분쟁지역의 민감한 영역을 넘나들며 냉전체제 아래서 침략행위의 진상을 폭로하는데 앞장섰던 그는 1951년 프랑스의 <<위마니테>> 기자 신분으로 중국으로 달려가 관련 저서(<<China's Feet Unbound>>)를 남기고는 이내 한국전쟁 문제에 집착, 그는 기자들의 여론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했다. 한국전쟁 휴전 이후 그는 다음 전쟁터였던 베트남으로 가서 <<17도의 북쪽>> 등을 썼다.
버체트의 한국전쟁 르포가 충격을 줬던 이유는 판문점에만 머물지 않고 당시의 북한을 밀착 취재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 방문기로 두 번째 읽었던 건 루이제 린저(Luise Rinser, 1911-2002)의 <<또 하나의 조국>>(1988년 한국어 번역)이었다. 기자가 아닌 작가로서의 르포인지라 비교적으로 자유롭게 궁금증을 풀어나가는 형식의 글이 흥미를 끌었다.
재일 동포여류작가 유미리의 <<북한 기행>>은 그 시대적 배경과 세계사적인 환경이 앞의 두 르포와는 확연히 다른 21세기의 북한 방문기라서 무척 궁금증을 유발한다. 일본이란 특이한 천황제 이데올로기가 아직도 상존하는 섬나라의 일부 폐쇄성 극우 반공적 정서의 소유자들은 남북한 전체에 대하여 식민지 시대의 차별감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그들로부터 유미리는 수시로 갖은 협박과 야유와 멸시와 비난을 당했기에 ‘조국’이란 술어가 주는 느낌은 남다를 것이다. 한국과는 잦은 내왕으로 친근감이 느껴지겠지만 북한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작가 자신의 인식에 앞서 우선 일본의 보수적인 상당수가 강한 반북적 정서인지라 유미리 작가로서도 북한 방문이란 그리 쉬운 결단이 아니었을 것이다.
제1장 첫 방문(2008년 10월)에서 유미리는 “내가 본 환상의 조국”이란 표현을 쓴다. 왜 ‘환상’일까. 그녀에게 조국이란 삶의 실체이기 보다는 일본에서 동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제2장(두번째 방문, 2009년 1월)에서는 바로 “마음이 조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고쳐 썼고, 제3장(세번째 방문, 2010년 4월)에서는 “태양절과 국제마라톤대회”란 제목을 붙인다.
작가는 첫 방문 때의 여행 이유를 ‘조국방문’이라고 쓴데 대하여 이렇게 해명해준다.
“유미리 씨는 북한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으나, 나의 국적은 대한민국이다. 그럼 왜, 조국방문으로 적었는가 하면, 조부가 일본으로 건너왔던 당시, 그 때 조선반도는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지 않았고, 장거리 주자로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하고 있던 조부가 달리는 걸 그만두고 조국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사건(해방 후, 조부는 공산주의자 혐의를 뒤집어쓰고 투옥당했다. 인민군이 남하하면 인민군에 가담할 게 뻔하다며 유치장을 통째로 불태우려고, 가솔린을 뿌리고 수류탄으로 폭파하려고 했으나 조부는 그 직전에 탈옥했다. 조부의 남동생도 장거리 주자로 남로당 청년조직인 민주애국청년동맹의 간부가 되어,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남한 군인들에게 사살당했다)을 생각하면, 조부의 남동생이 죽음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형제가 모두 북으로 갔을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좋은 느낌으로 와 닿는 아름다운 국명―, 내게는 환상의 조국이다.
3차의 북한 여행기에는 이런 절절한 작가의 심경이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작가는 북한의 현실적인 여러 정황에 대하여 구태여 이해하고자 하지 않은 채 그냥 냉철하게 객관적으로 사실 그대로를 르포화 한다. 독자들이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려하기 보다는 일본사회에서 자란 자유주의자답게 자신의 생각과 판단을 그대로 담아낸다. 이런 점이 오늘의 북한 상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제1장에서는 북한의 현대사를 일별할 수 있도록 중요한 관광지를 두루 돌며 한국전쟁 이후의 북한주민 생활사와 역시의식이 소박하고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다. 북한에 웬만큼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다 아는 내용들이지만 그런 사실을 재일 동포 인기 여류작가의 시선으로 재확인한다는 점이 의의 있게 다가선다.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직접 들어보자.
납치문제 이후, 일본의 텔레비전과 신문과 잡지에서는 국민의 감정적 편견에 영합한 편중된 정보로 인해, 지금은 모두가 한 목소리로 <범죄국가 ∙ 북조선>에 대한 제재를 외치는 최악의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일본이야말로 안개의 나라다.
정보라는 농무가 자욱이 끼어 있는 이 나라에서도, 자신의 축을 가지고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머리로 생각하려는 사람들이 적잖이 존재하며, 나도 글쟁이에 속하는 한 사람으로서, 안개 속에서 ‘누구의 것도 아닌 정의’를 찾으려고 한다.
일본이 국익을 위하여 얼마나 허위와 날조에 능한가는 아마 한국인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이런 땅에서 자란 유미리 작가에게 남북한의 의미는 재일동포들이 가진 민족의식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을 찾으면(그녀는 남한에 열 번 이상 왕래했다) 기자회견 때마다 “왜 우리 말을 배우지 않습니까”고 묻는 데 곤혹스러워할 수 밖에 없는 분단된 조국. 이 질문에 대한 유미리의 답변은 이렇다.
“나는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닙니다. 일본어에도 한국어에도 위화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위화감, 말에 대한 과잉된 의식이야말로,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끔 합니다.” 라고 말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자기 나라 말을 타국어처럼 배워야 하는 굴욕감을 맛보고 싶지 않아서 자존심이라는 단단한 껍질을 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껍질은, 2008년 10월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했을 때, 아주 쉽게 깨져버렸다.
일본에 돌아온 나는, 한국어 개인지도를 해 줄 선생님을 찾았고, 주 1회 간격으로 선생님 집에 다니고 있다.
북한에서 생각을 바꾸어놓은 어떤 큰 계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북한 사람들과 통역 없이 이야기하고 싶다, 대동강 맥주를 마시고, 명태를 씹어 먹으면서, 우리말로 밤새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이에 대하여 작가는 이렇게 해명한다. “조국, 우리나라―, 서울에 프로모션으로 가거나, <8월의 저편>의 취재로, 어머니가 태어난 고향인 경상남도 밀양을 걷고 있을 때는 느끼지 않았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방문하니 심한 노스텔지어에 싸였다.”
“나 자신은 태어나면서부터 데라시네(뿌리 없는 풀)였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이야기하곤 했다. 뿌리내릴 장소를 자진해서 포기하고, 앞날에 다가올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긍정적인 자세만은 잃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북한에서 돌아오니 마음을 조국에 남겨 두고, 몸만 일본에 돌아온 듯한 공허함에서 한동안 벗어날 수가 없었다.”
마음이 조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민족의식에 기인하는 감정은 아니었다.
논리와 정서를 뛰어넘는 작가적 감각으로 본 겨레 인식이다. “최초로 북한을 방문하고 나서부터 2년간, 나는 아들과 손을 잡고 대동강 강변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것은, 혈육을 나눈 아들에게 조국의 역사를 알려주고 싶은 엄마로서의 마음이기도 했지만, 나와 아들의 개인사를 조국에 대면시키고 싶은 마음이 더 강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조국이란 경제가 발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력이 강력하다는 것만으로도 뽐낼 수 없는 이런 미묘한 개개인의 정서가 스며있는 조상부터 후대에 걸친 무의식적인 공동체적 공감대가 아닐까.
유미리를 통하여 문득 저 한국전쟁 전후를 밝혀줬던 버체트부터 그 이후의 루이제 린저가 증언해 주었던 북한의 실체가 ‘분단의 렌즈’가 아닌 ‘통일과 민족의 실체’로 새삼 다가온다. 유미리 작가의 용기와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