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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야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서른 두 가지의 남다른 모습으로써
여래라고 미루어 볼 수 있겟는가?
수보리가 사뢰었읍니다/
예 그렇습니다. 서른 두 가지의 남다른 모습으로써 여래라고 미루어 볼 수는 있읍니다.
부처님계서 말씀하셨읍니다.
만약 서른두 가지의 남다른 모습으로써 여래라고 미루어 볼 수 있다면 전륜성왕도
곧 여래라 하겟구나.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읍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해하기에는
반드시 서른두 가지의 남다른 모습으로써 여래라고 미루어 볼 수 없겠읍니다.
그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셨읍니다.
만약 육신으로써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찾으려면 이 사람은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이다. 결코 여래는 볼 수 없으리라.
견해
대한민국 미남배우 남궁원과 미국 미남배우 존웨인 과 비교하면 두분다 아주
잘 생겼읍니다. 그런데 영국의 제임스본드로 출현한 배우가 또 등장한다면
전부 다 잘 생겼읍니다.
그것뿐이겠읍니다, 아랑드롱은 어떻게 하고 클라클케이블은 또 자기가 미남측에서
처진다며는 섭섭하겠지요..
아니 신영균은 지려고 하겠읍니까? 또한 좀 몬생긴 사람들은 괜히 꿀리는 것 같은데
좀 몬생겼다고 못난 사람입니까?
몬 생긴 사람들도 그들 보다 잘난것도 있는 것입니다.
비교되어지는 입장에 대면이 가능한 사이에서 드러난 얼굴하나가지고
무엇을 잘나고 못났다는 것을 논 하는 자체가 마음이라는 진정성으로
판단하는 자체가 착각이고 잘 못되었다는 것이고.
사람 마음 공덕이 자기 주어진 원반경 200 보 사이에 주어진 공간세계에
비대면해야 하는 불가피하게 상호적으로 섞인 생명무리가 다 나륾대로 여래이거늘,
빡빡하게 간극없이 주어져 있는데(포괄적인 구류생명무리)
이 모든 특정 불특정 존재들이 전부 간섭하여 어우러지는 그 어떤 압력점의
분위기에서 빛의 운동과 같은데 진공묘유로 공유되는 공성에 의해 같음을 행하는 감응점이
여래심이거늘 지 잘났다고 할 수 없고, 잘남으로 생각에 집착하면 그 상계점으로
0 으로 만들어주는 여래장에 의하여 머무를 수 없는 것임에불구하고 자연스레히 반연하여 못남으로 생각만틈 거꾸러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 이미 동시에 예매를 받아놓은 것과 같은
자만하는 생각을 모아 돌려주는 것이니, 여래를 형상으로 여래라 할 수 없다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남궁원 모습은 모습도 아닌 것입니다.
사람 사는 것이 무신 돼지 얼굴보고 잡아먹는 것 같은 이치는 일개 극소의 부분적 생각에도
미치지 못한 공정하지 않는 얼굴하나로 여래를 짐작조차 못한다는 것입니다.
잘 날때 잘해라 입니다..
'모든것을 평등함으로 주어진 여래의 입장으로 같음으로 행 하는 일부분이지
얼굴로서 어떤 진리를 표현한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서로가 꿀릴게 없다고 평등함을 작용하는 것을 여래심이라 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조금 잘났다고 하는 사람들 (예를 들어 저처럼 씰데엇이 무엇좀
아는 것처럼 행위하는 행위) 은 원래 평등한데 고렇게 여기지 못하니 남한테 그만 큼 욕을 얻어먹습니다.
모든 생명은 같음으로 행하여 반연하는 것이 양심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만큼 사물을 판단하고 자기를 판단하는 것이므로
생각넘어 생각줄을 잡은 빛이 빙둘러 그 반을 연결되어 상대적인 남이 자기보다 못 났다는 판단을 전제 했던 그 지점을 다시 돌려주어 상계 하여 재정세무회계 0 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못났다는 전체의 의지를 반대로 받아 팽 하고 돌아서 못 난자리를 수용하고 형성하는
과정을 가져야 합니다, 이 여래심은 공성으로 같음을 행하여 반연한다.
이를 윤회라 하기 때문에 고정된 잘남은 그 자리에 머무를 수가 없읍니다.
지금 조금 못 생겼다고 생각을 내는 사람은 이미 예전에 너무 잘 생겼다는 것
이미 예전에 다 해 본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잠재적으로 다 보고 아는 것입니다.
그 생각을 가졌던 집착이 윤회를 해서 지금이니 이러한 의미를 숙명통이라 하지요.
예를 들면 그렇다는것입니다.
시간공간 다 제껴 놓고 보면 남궁원 얼굴은 비할바도 아니고 옛날에 자기가
갖고 놀던 얼굴수준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것이지요.
그러므로 양심이란 중생심의 경우는 다 같음으로 그 커틀라인을 재는
현상을 말 합니다.
또한 예를 들어 목욕탕 이나 우물같은 저수지에 사람이 들어가면 빠지거나 가라앉읍니다.
그런데 해당 사람이 수심이 깊은 강물에 들어가면 조금 더 뜹니다.
강물 부피만큼 비중성의 더 많은 생명들의 운동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압력을 행사하여
물고 물려서 주어지는 인연이 더 커진 것이므로, 거기에 일개 자기몸을 던지면
부력점의 압력땜에 조금 압력과 유사한 저항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저수지 깜냥의 마음과 수심이 깊고 넓은 강물의 마음깜냥은
자기 무게에 대하여 비례하여 같음을 충족시켜 주려고 하기에 그러합니다.
이 사람이 바다에 들어가면 조금 더 가볍게 뜹니다. 주변 바다물의 같음이
너무 많이 형성되어있으므로 그 만큼 사람물질의 무게 마음깜냥에 비해
그 사람 물질을 붕 뜨게 하는 공허함의 위력이 더 주어지는 것입니다.
바다에 들어간 사람이 여기에다가 자기의지로 바다물의 부력을 이용하고 몸에 구명조끼 하나
부력감을 더 주는 장치를 하면 그 사람은 가라앉지 않읍니다.
이 부력의 구명조끼 하나 더 구하고자 하는 의지가 중생심이며 행복추구의
목적이 됩니다.그것밖에 생각을 몬 내고 바다자체가 자기의 원래 고향임을 모르는 것과
같읍니다, 그렇게 집착 해 보았자 얼매 못 견딥니다, 생노병사 바다의 과정을 다 겪어야 하지요.
우리들의 마음자리란 이처럼 부력의 의미만큼 평등함으로 균형을 잡게 하는
것을 마음이라 하고 마음깜냥이 공허하게 큰 공간을 마음속아지에
넣어놓으면 그 만큼 균형을 잡아주는 평등성지 성품을 여래 현상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공간에 큰 행성인 지구가 하나 떠 있읍니다.
그렇지요, 꼭 바다에 떠 있는 형국입니다.
공간의 매질이 주로 수소 이기 때문입니다.
지구의 무게만큼 공간의 부력은 떠 있을 만큼 여래의 이치를 행하여
평등성을 해 주는 만큼 일정하게 떠 있다는 것을 말 합니다.
그렇게 생명은 서로서로간에간섭하여 유지한다 입니다.
지구를 유지하는 존재의 원률 반경 200 키로 이내의 무한한 생명성의
존재들이 서로 밀고 당기는 간섭현상에 그만큼 압력이 크게 조성되어
지구의 균형을 같음으로 유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치가 그러하다," 그러므로 남궁원 얼굴이 여래 라고 할 수 는 없다 입니다.
좁쌀 같은 공간의 마음깜냥이라면 그렇게 반연하여 같음을 늘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고
세수대야의 물의 양만큼 마음을 지니면 고만큼 같음으로 부력을 유지하는
방아깨비 심성을 가진다는 것을 예를 들어 소개 해 봅니다.
누구이던지간에 9 류중생이 그렇게 살아감을 유지하려는 무게나 비중만큼
고만큼 의지를 부여하고 같음을 행하게 하는 불가분의 제공의 반응점.의 들락날락,되어지는
통일장을 행하는 그 무엇, 이를 여여하다 라고 합니다.
이를 여래라 하고 마음작용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작용의 體 는 우주공간처럼 무한하게 넓는것이 내 마음에 있고
아주 좁쌀만큼 보다 더 적은 마음공간도 내 마음을 작용하는 희한한 것이
있다 이렇게 이해 하면 됩니다. 이를 법신의 여래작용이라 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공간이라는 것은 질과 양의 사량분별을 할 수 없다입니다.
여래는 형상으로 본다함은 이미 거짓이다 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여래는 형상으로 볼 수 없는 것이며 물자체가 됩니다.
양상에 따라 우주만큼 넓고 작용하고 좁쌀만큼 작용하는 등 자유자재 하기
때문입니다.
그 자유자재하는 마음작용이 모든 생명성에는 전부 내재되고 공유되어져 있다.
스스로 행성이나 미미한 물적 존재로서 가치를 여기는 생명유지의
원율의반경만큼 생각되어지는 간섭현상으로서 같음을 행하는 것이 여래이며
통일장이다 라고 하는것을 말 합니다.
그러므로 이 우주공간의 모든 행성, 부유하는 생명체들, 미미하고터럭같은 눈에 보이지도
않은 총체적인 생명무리들은 서로간에 밀고당기고 팅겨나가고 획 돌면서 서로의 압력점을
발생시켜 유지하는 그 운동으로 진공성인 공을 유지하면서 생명유지하는 자리를 마음이라 하고
공간이라 하고 진공이라 이름합니다.
그러므로 공간이라는 것은 물질의 운동여부에 수축 확장의 균형의 평등성지를
늘 유지하게 동시적으로 작용하고 거리를 자연스럽게 간극점을 자연하여 개연하는
입장에서 생명운동에 제공하는무형적인 룰 입니다.
그러므로 중생계는 중생계의 마음깜냥으로 간섭되어지는 영향만큼 공성은
늘 자유자재로 변화한다, 이 변하를 보는 성품은 모두에게 통하고 가고 옴이
같은 거래를 하게 한다, 이를 여래라 하고 법신이라 합니다.
그 법신은 법신이라고 이름 할 수 밖에 없는 무형적인 물자체 입니다.
무한동력의 전자기장을 이용하여 빛을 연구해보면
예를 들어 자석 음과 양극을 서로같은 무게와 비중 의 밀고당기는 것을
서로 마주한다 합시다, 탁 붙겠지요.
그런데 서로 약간 엇 비슷하게 방향을 틀어서 마주하게 하면
서로 팅겨 나갑니다, 튕겨나갈때 주변에 큰 자석이 또한 영향을 주게되면
서로 간섭을 하는데 큰 자석에 의하여
핑그르 하고 회전하면서 대부분 45 도 방향으로 돌게 되면서 그 영향권을
빨려들어가거나 순간속도로 빠져나갑니다.
마음깜냥은 역시 큰 힘의 여래장의 공성반경 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같음으로 반연되는 리필을 계속 유지 하기 때문에 도통 모를 일입니다.
곁으로 스치면서 서로 마주하면 스치는 그 순간의 속력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읍니다.
그만큼 허용할 수 있는 공간의 모든 통괄한 법칙은 그만큼 응하게 하는 것을
여래 의 통일장이라고 하면 이해가 갈 것입니다.
우리는 바람이 불어대도 어디에서 가고 어디에서 오며 그 향방을 알 수가 없읍니다.
시간이 지나고 이를 사진으로 찍어 유추 해석하지만 이미 간 것을 잡고 있을 뿐이니
바람의 존재는 이미 지나간것이다, 여래장은 이를 허용할 수 가 없으며
여래 스스로 의지를내어서는 불가능한 법신의 원융한 체로 만 주어질 뿐입니다.
태풍도 눈이 있듯이 우주공간도 늘 눈이 있는 것입니다.
이 불랙홀 같은 검은 에너지의 진공묘유의 텅빈 자리는
탁 깨면 꿈이고 훤한 광명의 눈 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간이 모든 우주행성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간은 우주행성들의 의지와운동에 의하여 공간은 그렇게 만연하여
스스로 같은만큼의 간극으로 행을 반연 해 줄 뿐입니다.
모든 우주의 생명 현상들의 불특정한 이루 말할 수 없는 빽빽한 생명들이
서로 간섭질하고 밀고 당기고 서로 통일작용으로 압력점을 형성하는데
그 압력점에 대한 빛의 모든 것들이 발산하는 전자지장의 충돌 여부, 안고돌아가는 여부,
튕겨남 등과 오차 하나없이 그 운동만큼 공간은 이를 전부 같음으로 반연하여 작용해주므로서
같음을 행하게 합니다. 무게 비중 의 같음만큼 공간을 버려주고 밀착해주고
자유자재로 거리관계를 유지해준다 할 수 있읍니다. 이를 진공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늘 같은심정입니다. 같은 심정이 아니면 중생들을 헤아릴 수 가 없지요.
중생의 마음을 다 보고 다 아는 전제에 같음을 행 할 수 있기에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중생과도 같음심정으로 늘 자비심을 행하시는 것이며
사랑하심을 누누히 안타까운 마음으로 행한다 입니다.
길거나 짧지 않고 보이거나 보이지않거나 고정되지 않으며
옳고 그름의 간격만 잡고 행하는 만큼 돌려주는 것을 여래 라 이름할 뿐입니다.
그때 그때 마다 달라요 라는 광고가 맞읍니다.
이를 일 없다, 고요하다, 고요함에 정중동을 가지는데
이를 중도라 하고 깨끗하고 청정한 신심에서 주어진다 입니다.
인류의 최대의 목적은 행복입니다.
이 행복은 고요하다 입니다. 모든 일의 작용을 하지 않고 작용에 대하여
무응답하지도 않고 같음으로 반연하여 돌려주는 감응의 물자체로만
상주한다 라고 할 수 있읍니다. 우리는 빛이기 때문입니다.
빛은 이미상호성을 가진다. 그리고 전체의 공성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말 로서 비유할 수는 있읍니다.
이 상호성은 같음으로 그만큼 반연한다.
그러므로 빛이 큰빚 적은빛 퍼런빛 황홀찬란한 빛 따이는 모두가 같음으로 행할 뿐이지
차별 지지 않읍니다.
이것이 마음에 모든 생명에게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과 같읍니다.
이 간섭작용에 따라 생겨나는 것을 마음이라하고 공간이라 할 수 있읍니다.
미미한 생명성의 서로간에 간섭으로 그 빛은 휘어질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휘어지는 모순으로 의하여 돌아야 합니다,
이 물질의 발생은 언제나 그 만큼 공간을 팽창하게 하고 수축하게 하면서
행성들의 차이를 벌려가면서 지금도 팽창하는 것이므로 무한 합니다.
그러므로 공간은 있으면서 없는 것이고 없으면서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고요하게 깨어나 있을 뿐입니다.
바다의 물을 손바닥으로 뜰 수는 있지만
바다전체의 물에는 같은 물이지만 거대하므로 자기가 빠져들어가지
그 전체를 뜰 수 없는 것이 지각이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논 하는선지식인들은
내 마음은 한 순간에 바다물을 다 마시고도 부족한데
그 마음깜냥 의 산수로서 비유하지도 못할 정도로 미미하고 미진터럭같아서
부유하고 떠 다니는 부평초 같은 신세라 하는 것이 지각이 있고
감각적 요인에 의하여 생각의 경계점으로 한계에 묶이여 집착해서
중생이 된다라고 이를 두고 말 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聖仁 은 큰 대해의 바다같은 마음 壬 의 소리와 말을 다 듣고 있다 하여
聖(성) 을 사람 人 앞에 붙이는 것입니다. 듣기만 하고 말 없이 행하시기만 하는분을
성인이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공간은 물질계의 생명운동에 대하여 응하여 그만큼 평등하게
균형을 잡게 하면서 우주운동을 하게하는 물 자체가 됩니다.
이공간이 마음이다 라는 본체라 합니다.
주어진 물질의 흔적의 형성만큼 행위만큼 생각만큼 외부와 반응하여
그만큼만 보고 살아가는 것을 중생이라 이름합니다만
원래 여래심이 큰 우주공간만큼을 다 내재하고 그 소식을 보고 듣는 것입니다.
어두움에 가려져 있을 뿐입니다.
여래 의 모습 32 인 상으로 여래라고 여긴다면 큰 실수 한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예를 들어 바다처럼 넓은 마음자리를 가지게 되면
이 마음의 작용에 전급하는 모든 인연들에 대한 비중 무게 마음깜냥
운동방법을 다 균형있게 응해주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을
여래심이라 하는데
우주공간 전체의 이치를 보게되면 이것을 성불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소한 입자 의 미진한 생명이 여래심을 건드려도 그만큼 돌려주는
것을 반연으로 같음을 행한다는 12 인연법으로 통일작용을 시킨다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읍니다.
이를 역설하여 예수님께서는 6,6,6 표를 받은자라 하시는것입니다.
간단하게 이해를 돕자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심에 6 일이 걸리셨읍니다.
이 소식이 하나님의 하나의 이치인 O 의 입김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내재한 마음이라 하는 것과 몸은 이미 천지창조 6 일간의
과정을 전부 겪고 소소령령하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O 의 이치대로 같음으로 행 하시는 것을 불교적으로
이해를 접근비유하면 여래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온존하게 보라 하시는 것이지요.
여호아! 오 ! 같음이여.. 잘 궁구하시어 참된 자기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바람한점 불어도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알 수가 없읍니다.
우리의 인생이란 일엽편주로 망망대해에 나침판 없이 방황하는 것으로
비유하는 철학적 논지와 그러한 사유에 매달리지만
워낙에 거대한 이 공간의 성품에 대하여 서로의 간섭작용과 상대성의 상호작용,
크고 적음의 무게 비중 거리 등의 완극점으로 반연하는 법칙의 통일장의 진리에 대하여
그 실체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모르는 것도 같음으로 반연하므로
팔자소관만 논 하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모순만 같다 붙이기만 할 뿐입니다.
나의 인식점이 소멸하면
하늘이 어디있고 땅이 어디있으며 내 가족 인연이 다 어디에 있겠읍니까?
다 빛으로 서성이다가 어디론가 바람처럼 또 일어나고 멸 하고 한다는
천지창조의 대 우주변화에 법에 타야 하는 것을
법신은 상으로 볼 수없다가 됩니다.
이를 불성이라 하는데 모든 중생들 역시 똑같이 이러한 여래장이 알게 모르게 관계없이
동일하게 작용한다 입니다.
이를 나라는 아상으로 주어지는 생명운동을 하게 되면 원둘레 200 보 가량의
반경의 불특정한 같음의 빛 작용의 압력과 비중여부의 운동에 대한 영향을
받기 때문에 나 혼자 무엇을 판단하는 것이나 분별작용으로 무엇을 취하고
얻는 것은 불가능 한 것입니다.
서로가 각기 여래심을 오차없이 주고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질을 가진 나라는 존재의 생명운동은 운동성의 의지에 따라
공 은 팽창 수축운동 회전운동 팅겨나가버리는 운동으로 반연하여 제공한다.
이를 마음작용이라 하는 것이라고 이해해도 가 합니다.
나의 성립은 내 마음이 만든다, 그 마음은 머무른바 없이 행한다.
그 마음이 여래 이므로 형상이나 물질로서 볼 수가 없다 입니다.
물질과 마음의 상호관계는 그러므로 평등하다 입니다.
나라는 상을내며 얻거나 취하고 하지만
원 둘레 200 보 반경의 그 숱한 보이고 보이지 않은 생명은 똑 같이
같음으로 아상을 내어 서로 썩여 돌아가며 운동을 하기 때문에
내가 그들한테 200 만원어치 얻으려 하는마음작용을 하면
뺏어감과 동시에 그 불특정한 모든 생명류의 바운다리는
이를 다보 알면서 동시에 계산 뚜드린다, 그러므로 그 사이의
진공상태가 일어나고 진동하고 파동운동을 하면서 같음으로
회수하고 주고 받는 어떤 법칙을 여래 라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읍니다.
또한 200 보 안의 반경의 공덕에 대하여는 이 보다 더 큰 주변의
큰 덩어리의 여래심에 또 연결되어 작용반작용을 받기 때문에
같은 여래심이 또 작용한다 라고 할 수 있는 무한한 공의 의미를
여래심이라 하고 이 여래심의 반만보는 인간세계는
통일장의 36 여래장으로 다시 환원시켜 생명운동의 같음을 행한다 하는 것입니다.
(200 보 반경, 200키로 반경이란 음양의 짝의 섞음의 반경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여래심에 대하여 말로 하자며는 수천년을 종이에 써도
모자라지만, 수행하여 탁 한 눈에 보게 되면 조용하고 고요함으로서
동시적으로 훤하게 보는 법성을 보는 자리이므로
안심지경에 이른다 는 것을 "법신은 상이 아님을 말씀하시는 무상비상분이 됩니다.
다음에 금강경 27 단멸이 없음을 소개 하겠읍니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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