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기 홈런
이초아
“투아웃이니까 공치고 나면 무조건 뛰어!”
우리 팀 주장인 정빈이가 내게 말했다. 나는 긴장돼서 대답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무섭게 날아오는 소프트볼을 맞힐 자신도 없는데 시합은 9회 말이었다. 게다가 점수는 8대 7로 지고 있었다. 내가 아웃되면 5학년 1반에게 지게 된다.
지난주부터 체육 시간에 5학년 6개 반이 반별로 소프트볼 경기 중이다. 소프트볼 경기는 야구와 규칙이 거의 같은데 야구공보다 몰랑몰랑한 소프트볼로 시합을 하는 차이가 있다. 3반인 우리 반은 1반만 이기면 5학년 전반을 모두 이기게 된다. 즉 우리 반이 1등이 되는 거다. 지난주부터 연거푸 이어진 승리에 반 아이들 모두 경기에 열렬히 빠져있었다.
시합 초반에는 우리 반이 1반보다 4점을 먼저 따며 이겼다. 그런데 1반의 에이스가 때린 홈런 한 방과 연이어 홈런을 친 숨은 에이스의 등장으로 점수가 뒤집어졌다. 그때부터 엎치락뒤치락 하던 경기가 결국 내 순서에 이르러 9회말이 된 거다.
“은호야, 집중해!”
“아웃 되면 끝이야.”
옆에서 응원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때, 상대편 투수가 공을 던졌다. 낮은 포물선을 그리면서 공이 정확하게 포수를 향해 날아왔다. 나는 숨을 멈추고 날아오는 공에 집중했다.
‘공을 놓치면 안 돼! 바로 내 앞에 왔을 때 방망이를 휘둘러야해. 아…지…지금이야.’
지금이라고 순간했던 그 순간, 공을 쳤어야 했다. 온힘을 다해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이미 공은 포수 글로브 속에 있었고 나는 헛스윙 후 몸을 휘청거렸다.
‘망했다!’라는 생각과 “스트라이크!”를 외치는 소리가 동시에 이어졌다.
“에이, 헛스윙이 뭐야.”
“무승부까진 갈 수 있었는데 너무 억울해.”
아이들이 투덜거리면서 원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고개는 점점 더 아래로 떨구어졌다.
“은호야, 괜찮아.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뭘.”
정빈이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 사실 우리 반에서 제일 속상해야 할 사람은 정빈이었다. 정빈이가 5학년 중에서 소프트볼을 제일 잘하기도 했고 시합 내내 제일 신경 썼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슈퍼 에이스인 정빈이 때문에 우리 반은 시합에서 엄청 유리했다. 물론 시합이란 게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아무리 공을 잘 쳐도 잡은 공을 신속하게 패스해서 상대편을 맞혀야 하고, 짧은 순간에 공을 어디로 패스할지 판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감독이 필요하고 감독의 역할이 엄청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반에서 그런 감독 역할까지 해내는 친구가 바로 정빈이었다.
그날 이후부터였다. 나는 정빈이와 절친이 됐다. 3월초 정빈이와 같은 반이 되고 두 달이 지나 5월이 된 지금까지, 나는 정빈이를 공부와 담 쌓고 지내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엄마가 이런 정빈이를 안다면 절대 어울리지 못하게 할 거다. 항상 하루 할 일을(특히 공부를) 꼬박꼬박 체크하는 엄마는 내가 정빈이에게 물들까봐 걱정할테니까 말이다.
“할 일을 다 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큰일을 하는 사람이 되겠니? 습관이라 건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거야.”
중학교 교사인 엄마가 내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어릴 때부터 들어온 말 덕분에 나는 습관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돈’이 떠오르는 부작용이 있다.
나와 정빈이는 단짝이 되었지만 여전히 정반대의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항상 10분씩 지각하는 정빈이와 일찍 학교 오는 나, 숙제는 절대 해오는 법이 없는 정빈이와 숙제를 꼬박꼬박 해오는 나, 수업 마치면 무조건 놀기만 하는 정빈이와 수업 쭉 이어진 학원 스케줄로 가득 찬 나. 정말 우리는 정반대였다.
이런 정빈이와 내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은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 점심 먹고 남은 짜투리 시간이 전부였다.
“야구공이 눈앞에 왔다고 느끼는 순간에 공을 치면 이미 늦었어. 투수가 소프트볼을 던진 그 순간부터 야구방망이가 공을 마중 간다고 생각해. 방망이로 아래로 반원을 그리면서 아주 조금씩 내려 가야해.”
정빈이는 내게 좋은 코치였다. 그때부터 나는 야구를 엄청 좋아하게 됐다.
“선생님, 오늘 머리가 아파서 엄마가 하루 쉬라고 했어요.”
처음으로 영어 학원에 전화를 해서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정빈이와 함께 학교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야구장에 걸어서 갔다.
“입장료 내야 들어갈 수 있지 않아?”
“지난 달부터 3개월간은 7회 말부터 무료 입장 이벤트를 하고 있어.”
정빈이는 내가 모르는 정보를 많이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야구장까지 걸어가는 30분 동안에도 나는 한 번도 못 가본 골목 구석구석을 지나갔다.
“넌 어떻게 이렇게 길을 잘 아니?”
나는 정빈이의 빠른 걸음을 따라가느라 숨이 차서 헥헥 대며 물었다.
“많이 쏘다니다 보니까 저절로 알게 됐어.”
야구장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야구장 안에 들어갔다. 전광판에 타자의 얼굴이 뜨면서 응원가가 흘러나왔다. 관중들과 함께 정빈이가 박자에 맞춰 양팔을 위로 폈다 접으며 응원가를 힘차게 따라 불렀다. 처음 듣는 노래였지만 나도 덩달아 신나서 흥얼거렸다. 갑자기 머릿속에 환해지고 가슴 속 깊이 시원한 바람이 일었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정빈이와 함께 야구장을 찾는 일을 서너 번쯤 반복했다. 그때마다 학원에는 거짓말을 했다. 그러다 결국 오늘 엄마한테 전화를 받았다.
“너 지금 어디야?”
나를 위치를 묻는 엄마의 날이 선 목소리가 스마트폰 너머로 전해졌다.
“지금 영어…학원….”
어색한 거짓말에 말을 더듬거렸다.
“방금 영어 학원 원장님하고 통화했거든. 당장 집으로 와!”
엄마의 화난 목소리에 나는 어쩔 줄 몰라 시간이 멈춘 듯 멍해졌다.
“왜? 무슨 일 있어?”
정빈이가 그런 나를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엄마한테 학원 빠진 거 걸렸어.”
정빈이의 질문에 답을 하면서 비로소 맥박이 빨라지고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는 나를 보며 정빈이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발걸음 보다 더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가는 길에 정빈이가 너무 부러웠다.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거실에서 엄마의 전화 통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빈이 엄마가 안 계셨군요. 그래서 관리가 안 되나 보네요. 어쨌든 방금 은호랑 통화했고 지금 집으로 온다고 했어요. 귀찮게 전화 드려서 죄송해요. 선생님.”
엄마가 끝말에 붙인 선생님이라는 호칭에 담임선생님 얼굴이 떠올랐다. 이내 엄마가 말한 긴 문장 중에서 정빈이 엄마가 없다는 말만 기억에 남았다.
나는 쭈뼛쭈뼛 어색한 발걸음으로 거실로 들어섰다. 엄마는 예상대로 엄청난 잔소리를 퍼부었다.
다음 날부터 엄마는 예전보다 더 촘촘해진 레이더망으로 나를 살폈다. 당연히 방과 후 정빈이와 예전처럼 야구장을 찾는다거나 골목길을 누빌 수 없었다. 정빈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거리감이 생겼다.
“엄마가 없다고 나쁘다는 게 아니야. 아무래도 엄마가 관리를 하지 않으니까 잘못된 행동을 할 가능성이 많다는 뜻이야. 엄마가 중학교에 있으면서 문제 학생들을 살펴보면 문제 학생에게는 문제 부모가 있었으니까.”
엄마는 지속적으로 내게 정빈이와 어울리지 않도록 당부했다. “정빈이와 놀지 마.”라고 직접적인 말을 하지 않았지만 빙빙 돌려서 말했다.
예전처럼 학교 수업을 마치고 곧장 짜인 일정대로 학원을 가고 집으로 갔다. 영어 학원에서 시험을 칠 때, 수학 학원에서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 때, 태권도장에서 승급 심사를 받을 때, 가슴이 답답한 순간마다 정빈이랑 함께 골목길을 달려 야구장에 갔던 장면이 떠올랐다. 야구장 높은 곳에 서서 아래에 있는 경기장을 내려다보며 느꼈던 상쾨함. 그때 그 느낌이 그리웠다.
태권도 학원 수업을 마친 어느 날 저녁이었다. 집으로 가기 싫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가슴 곳이 꽉 막힌 듯 답답했다. 무작정 혼자서 야구장까지 걸어가 보고 싶었다. 저녁 일곱 시가 되어가니 어느새 해가 뉘엿 지고 있었다. 정빈이를 따라갔던 좁은 골목길로 향했다. 몇 번 따라가서 익숙한 골목이기도 했지만 해질 무렵의 어스름한 풍경 때문인지 골목도 낯설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좁은 골목을 걸어 여러 갈래로 나눠진 골목길을 걷고 또 걸었다. 10분 쯤 걸었을까? 정빈이와 함께 갔을 때는 짧게 느껴졌던 골목길이 미로처럼 복잡했다. 야구장으로 이어진 길이 어디인지 헷갈렸다. 당황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거기 너! 이야기 좀 하자.”
중학생 쯤 보이는 형 두 명이 나를 보고 손짓을 했다. 그 중 한 명이 침을 바닥으로 퉤하고 뱉으며 나를 노려봤다. 순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를 돌아보며 도와줄 누군가가 있는지 살폈다.
“뭘 보냐? 거기 너 밖에 없으니까 빨리 이리 와라. 우리가 가까이 가면 맞는다.”
형들 말대로 좁은 골목길 끝에는 구원의 손길이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몰래 담배를 피던 나쁜 형들에게 나는 제 발로 찾아든 좋은 먹잇감이었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너 도망치면 그땐 엄청 맞는다고 경고했다.”
한 명이 선전포고하듯 말하고 다른 한 명이 다섯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가방 속에 넣어둔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엄마 전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가방 속에 있는 핸드폰을 꺼낼 수가 없었다.
다다다다닥.
다섯까지 헤아리던 형이 먼저 나를 향해 뛰어왔다. 나도 엉겁결에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위옹 위옹 위옹 위옹.
내가 달려가는 방향 쪽에서 요란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나는 구세주를 만난 듯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계속 달렸다. 나를 뒤쫓던 발걸음 소리가 후다닥 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계속 달렸다.
어느새 사이렌 소리가 멈추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내 발걸음도 멈췄다. 전력을 다해 뛰었더니 토할 듯 속이 메스꺼워서 고개를 아래로 숙인 채 숨을 헐떡 댔다.
“야, 괜찮아?”
익숙한 목소리가 머리맡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들었다. 정빈이었다.
“정빈아? 아까 사이렌 소리는?”
“아 그건 내 스마트폰 앱에서 나온 거야.”
“사이렌 소리를 낸 거라고?”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되물었다.
“네가 급하게 도망치는 것보고 바로 켰지. 예전에 혼자서 나쁜 형들한테 걸려서 돈을 빼앗긴 적이 있거든. 그때 일로 스마트폰에 사이렌 소리 앱을 깔았어. 위험한 순간에 쓰려고 말이야.”
정빈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디 가는 길이야?”
정빈이를 보며 물었다.
“집으로 가던 길이야. 넌 어디 가는데?”
“난 그냥 답답해서…너랑 함께 갔던 야구장으로 가려고….”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
“그래? 그럼 나한테 말하지. 같이 가면 되잖아.”
“그냥. 너한테 미안해서. 우리 엄마가 너한테 뭐라고 할까봐 신경도 쓰이고.”
나는 정빈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뭐 그깟 일로 그러냐? 안 그래도 담임한테 들었어. 너희 엄마가 내가 너랑 어울리는 것 때문에 걱정하신다고. 나 때문이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우리 아빠가 그랬거든.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은 환경에서 살 수는 없다고 말이야. 아빠랑 엄마는 내가 태어나고 얼마 안 돼서 헤어졌어. 그래서 엄마 얼굴도 몰라. 엄마가 없어서 속상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좋은 아빠가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너도 너무 마음 쓰지 마.”
정빈이의 어른스러운 말이 내 마음 속 깊이 스며들었다. 미안했던 마음은 어느새 정빈이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으로 바뀌고 있었다. 주변을 탓하지 않고 씩씩하게 말하는 정빈이가 멋지게 느껴졌다.
“우리 야구장까지 달려갈까?”
정빈이가 물었다.
“나쁜 형들이 잡으러 오면 어떻게?”
“괜찮아. 사이렌 소리에 놀라서 벌써 줄행랑 쳤을 거야. 그리고 근처 지구대에 신고하면 다시는 얼씬 거리지 못할 테니까 걱정 마. 지금 앱으로 바로 신고할게. 그럼 달릴 준비 됐니?”
정빈이가 싱긋 웃으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정빈이가 달리고 내가 그 뒤를 따랐다.
우리가 야구장 근처에 도착했을 때였다. 경기장 안에서 스피커로 사회자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9회 말 끝내기 홈런입니다. 우리 팀의 승리입니다.”
홈 경기장에서 승리를 알리는 멘트였다.
내게는 그 말이 다르게 들렸다.
‘우리 엄마의 편견을 뒤엎은 박정빈 학생의 승리입니다.’
경기장 밖에서 정빈이가 만세를 외쳤다.
나도 정빈이와 함께 한호성을 질렀다.
(원고지 34매)
더운데 작품 쓰시누라 수고 많았습니다.
이번에 성의껏 작품 합평을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쉼달을 쓸까도 생각했는데 글벗 샘들 잊을까봐 작품을 올렸습니다.
8월 방학 좋은 작품 많이 낳고 9월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