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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어산 마애삼존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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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찬 |
| 추수가 끝난 텅 빈 들판. 벼 밑둥이 가지런하게 줄지어 선 들판 한가운데 마치 섬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은 야트막한 산들. 금세라도 푸른 물을 뚝뚝 떨굴 것만 같은 짙푸른 하늘. 그 하늘 사이를 낮게 날아다니며 깍깍거리는 까치. 까치둥지의 속까지 훤히 비출 것처럼 마른 가지만 앙상하게 드러낸 미루나무.
겨울의 모습은 어쩐지 쓸쓸하고 허전하다. 왜일까. 깡마른 바람이 들판 곳곳에 쌓아둔 짚더미를 간혹 풀썩이는 탓일까. 아니면 저 넓은 들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사람 그림자 하나 얼씬거리지 않는 탓일까. 그도 아니면 다랑이밭 한 귀퉁이 춥다 춥다 소리치며 몸을 도르르 말고 있는 겨울초의 적녹색 빛깔 때문일까.
빈 들판을 가로질러 꼬불꼬불 나 있는 2차선 길목 곳곳에는 '방어산 마애 삼존불' 이라고 새겨진 안내 표지판이 큼직하게 잘 설치되어 있다. 이윽고 검붉은 감이 두어 개 매달린 낙동마을 앞에 이르자 이내 자그마한 산장호수가 길을 막아선다. 옆으로 돌아서서 제 허리를 밟고 올라가라는 신호다.
방어산 중턱 쯤에 이르자 어디선가 요란한 굉음이 귀를 따갑게 울리기 시작한다. 이 깊은 산중에 웬 포크레인? 대체 무슨 공사를 그리도 크게 하기에 이리도 시끄럽단 말인가. 은근히 맑은 새소리와 은은한 목탁소리가 들리기를 기대했던 내 작은 소망마저도 굉음소리에 이내 무너져 내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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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삼존불로 올라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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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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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뜻 바라보면 마애삼존불의 윤곽이 잘 보이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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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찬 |
| "아니, 기왕 사찰을 지으려면 자연과 잘 어울리게 나무로 지어야지. 기둥까지 아예 시멘트를 부어 세우면 어쩌겠다는 거야."
"근데 이 깊은 산중에 무슨 절을 이리도 크게 짓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계곡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훨씬 좋겠구먼. 괜히 멀쩡한 계곡을 저렇게 막아가지고 무얼 어쩌자는 건지, 나 원 참."
방어산 중턱 마애삼존불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최근 새로 지은 듯한 여러 채의 요사채와 얼마 전 단청을 끝낸 듯한 화려한 색깔의 대웅전이 떡 버티고 서 있었다. 또 대웅전 주변에는 아직도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건물들도 서너 채 보였다. 혹시나 하고 둘러보았지만 오래된 건물은 단 한 채도 보이지 않았다.
근데 그곳에서부터 갑자기 마애삼존불로 가는 팻말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혹시 새로 지은 이 대웅전 안에 마애삼존불을 모셔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방어산 마애삼존불은 국가에서 보물 제159호로 지정한 문화재가 아닌가. 그렇다면 마애삼존불은 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이 쪽입니다. 여기 조그마한 간판이 있네요."
"쯧쯧쯧. 사람들 심뽀가 어찌 이래?"
기가 찰 노릇이었다. 화려하고 웅장하게 짓고 있는 그 사찰 한귀퉁이에 아주 초라하고 작은 간판이 하나 버려진 것처럼 간신히 붙어 있었다.
'방어산 마애삼존불 300m'.
문득 그 하찮은 간판과 그 간판을 깔아뭉개고 있는 듯한 사찰을 바라보자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하지만 어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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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풍화로 심하게 마멸이 된 마애삼존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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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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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삼존불 왼쪽 아래에 조성연대가 새겨져 있는 글씨가 있으나 희미하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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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찬 |
| "아니, 마애삼존불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지금까지 올라온 거리만 해도 300m가 아니라 500m도 훨씬 넘었겠다."
"글쎄 말입니다. 아마도 산꼭대기 어딘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랬다. 마애삼존불은 방어산 정상 근처에 있는 큰 바위에 선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풍화로 마멸이 되었는지 가까이 가서 자세히 바라보아야만 이 바위에 마애삼존불의 형상이 새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삼존불을 새긴 연대와 내력을 적어 놓았다는 문자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 문자는 처음 삼존불 왼쪽 아래에 세로 35cm, 가로 105cm의 너비로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인은 아무리 보아도 그게 무슨 글짜인지 모를 정도다. 다만, 자료에 의하면 "정원 10년 신사 3월 16일(貞元十年辛巳三月十六日)이라는 11자를 판독할 수 있다고 한다.
"협시보살(脇侍菩薩)은 어떤 보살을 말하는 겁니까?"
"말 그대로 부처의 왼쪽과 오른쪽에서 부처를 가까이 모시는 보살을 말하지. 이 삼존불은 신라 애장왕 2년, 그러니까 801년에 만들어진 신라 하대의 마애불이야. 1962년 1월 21일에 보물 제159호로 지정되었고."
경남 함안군 군북면 하림리 방어산 131번지에 위치한 마애삼존상은 암면을 깍아 새긴 마애약사불상과 그 협시보살상이다. 그러니까 가운데 새겨진 거구의 불상이 마애약사불이며 양쪽에 새겨진 보살상이 협시보살이다.
이 불상의 특징은 8세기 불교문화가 이상적 사실주의에서 현실적 사실주의로 변모하는 과정을 잘 보여줘 사료로도 아주 중요한 가치가 있는 마애불이라고 한다.
"희미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부처의 인상이 '천년의 미소'가 아니고 조금 우울해 보이네요. 그리고 신체 각 부위에도 경주에 있는 불상들에 비해 탄력감이 없고 밋밋한 것 같기만 하고."
"그게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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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하대 사실주의를 잘 보여준다는 마애삼존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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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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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애삼존불로 가는 등산로 곳곳에는 돌탑이 수두룩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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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이종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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