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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예수님을 중심으로 말씀을 높임
“엘리야”의 예언-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4:5,6) (Mar 22.1) “요한”이 그리스도의 초림을 위한 길을 예비하기 위해, “엘리야”의 정신으로 온 것처럼,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길을 예비해야 하는 사람들도, 성실한 “엘리야”로 묘사되었다.(Mar 22.2)
침례“요한”의 사업과, 말세에 사람들을 그들의 무관심에서 일깨우기 위해 “엘리야”의 정신과 능력을 가지고 앞으로 나가는 사람들의 사업은 많은 관점에서 동일하다. 그 사업은 이 시대 안에 성취 되어야 할 사업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을 의(義:창조주의 율법과 사랑의 공의)안에서 심판하러 두 번째로 오실 것이다.(Mar 22.3)
하나님께서 특별히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는, 의로운 사람들에게 필요 되는 극기와 겸손 그리고, 절제는 그들과 대조적으로 이 타락한 시대에 살면서 방종하고, 건강을 해치는 습관에 젖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손이 육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듯이, 건강개혁도 셋째천사의 기별과 그런 관계를 맺어야 함을 나타내셨다(Mar 22.5)
침례“요한”이 그들의 관심을 “십계명”으로 끌었던 것처럼, 우리도 뚜렷한 음성으로 다음과 같은 기별을 전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계14:7). 우리는 선지자 “엘리야”의 침례“요한”의 특성을, 이루었던 열심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한 길을, 예비하기 위해 분투노력해야 한다.(Mar 22.6)
예수님을 중심으로 높임-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도다.”(계22:16). (Mar 23.1) 마지막 시대의 위험들이 우리에게 임해 있으니, 우리는 우리의 사업을 행하면서 사람들이 처해 있는, 위험을 그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예언이 나타낸 장엄한 광경들이, 언급되지 않은 채 남아 있지 않도록 하라.
만일 우리의 신자들이 반쯤만이라도 깨닫는다면, 우리교회 안에는 개혁이 이루어질 것이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기별을 믿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논쟁적인, 태도를 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잠잠히 서서 하나님의 구원을, 보아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다니엘서”가 말하고 “계시록”이 말하도록 하여 진리가 제시되든지, 예수님을 모든 소망의 중심으로,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계22:16)로 높이도록 하라.(Mar 23.2)
하나님께서 특별히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는, 의로운 사람들에게 필요 되는 극기와 겸손 그리고, 절제는 그들과 대조적으로 이 타락한 시대에 살면서, 방종하고 건강을 해치는 습관에 젖은 사람들에게, 나타나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손이 육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듯이, 건강개혁도 셋째천사의 기별과 그런 관계를 맺어야 함을 나타내셨다(Mar 22.5)
복음전도-이미 밝혀진 예언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시대를 위한 섭리를 이해하기를 바라신다. 지루한 토론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미 밝혀주신 예언들에 관하여, 새로운 교리를 내세워서도 안 된다. 현재 한 순간도 등한시해서는 안 될 중대한 사업은, 하나님의 목전에서 우리의 개인적 안전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는 일이다.
우리는 과연 영원한 반석 위에, 발을 디디고 있는가? 우리는 유일한 피난처에, 우리 자신을 숨기고 있는가? 폭풍은 다가오고 있으며, 폭풍에 대한 준비는 갖추고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하늘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는, 주님과 하나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과연 “하나님의 후사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롬8:17)인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역자로서 일하고 있는가?(Ev 199.1)
그리스도의 교훈들을 가르치라— 사도“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모든 목사에게, 엄숙한 책임을 제시해 주었다. 사도는 하나님 앞과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말씀을 전파해야 할, 책임을 열거해 주었으며, 목사들은 단순히 예언문제나 성경의 논쟁적인 부분만을, 편벽(偏僻:한 쪽으로 치우침)되이 가르쳐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주신 가장 위대하고 가장 중대한 교훈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주신 것들이다.(Ev 199.2)
진리를 흐리게 하지 않고 자제해서 가르침- 아기에게 가장 딱딱한 음식을 주어서는 안 됨—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진리를 가르쳐야 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이해하기 쉬운 말로 말하라. 예수님의 온유하심과 사랑의 정신으로 증거 한, 성경의 진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유력한 감화력을 끼치게 될 것이다.(Ev 199.3)
많은 영혼들은 생명의 떡에 굶주리고 있다. 저들은 “나에게 떡을 달라. 돌을 주지 말라. 내가 원하는 것은 떡이다”고 외친다. 이처럼 굶주려 멸망해 가는 영혼들에게 꼴을 먹이라. 우리 목사들은 우리가 믿고 있는 것처럼 진리의 기초적인 원칙들을 알지 못하는 아기들에게 가장 딱딱한 음식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기별을 가지고 계셨다. 그와 같이 우리들도 이 시대의, 사람들을 위하여 기별을 가지고 있다. 비록 우리에게 전할 기별이 많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이, 그 당장에 모든 기별들을 소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므로, 한 동안 어떤 문제들은 부득이 보류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Ev 200.1)
씨를 뿌리기 전에 밭을 갈라— 새 지방에서 전도할 때에 우리는,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이므로 제 칠일이 안식일인 것을 믿으며, 또 영혼 불멸설을 부정한다는 것을, 먼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여야 한다고 생각지 말라. 이로 인하여 사역자와 인도하고자 하는 사람 사이에, 큰 장벽이 놓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회가 있거든 먼저 합의할 수 있는 교리를 이야기하고, 실제적인 믿음을 소유하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라.
그대가 평화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인 것과,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고 있음을 나타내 보이라. 그들로 하여금 그대가 양심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도록 하라. 그리하면 그들의 신임을 얻게 될 것이며, 따라서 교리를 가르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먼저 환심을 사고 밭을 간[믿음의 씨를 뿌릴 수 있도록 준비한] 후에,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를 사랑으로 소개하라.(Ev 200.2)
청중의 귀를 막지 않도록 조심하라— 나는 어젯밤 잠자는 시간에 한 계시를 보았는데, 나의 형제들과 함께 어떤 집회에 참석해 있는 듯하였으며, 그곳에서 권세 있는 분처럼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주님께서는 “이 집회에 많은 영혼들이 참석할 것인데 저들은, 장차 저들이 듣게 될 진리에 대하여 전혀 무지한 자들이다.
저들은 기별을 듣고 관심을 갖게 될 것인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저들을 이끄시기 때문이다. 진리는 성령에 기초를 두었으므로 저들이 들은 것이, 참되다는 것을 양심이 일러줄 것이다. 이러한 영혼들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 지극히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v 200.3) 처음부터 사람들에게 우리가 믿는 교리 중에서, 가장 까다로운 문제들을 내세우지 말 것이다. 그렇게 할 때에 저들에게는 그것이 마치 새로운 계시처럼 들릴 것이며, 마침내는 귀를 막아 버리고 말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의 진리들은 저들이 이해하고, 소화시키는 것에 비례해서 가르칠 것이며, 그렇게 할 때에 비록 이상스럽고 놀라게 하는듯한 문제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비췬 새로운 빛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저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분량의 진리를 가르친다면 어떤 사람들은 물러가서, 다시는 결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들은 진리를, 그릇되게 전할 우려가 있다.(Ev 201.1)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교훈과 모본으로 교육을 받아 온 사람들은, 목사들이나 교회신자들의 성경해석에 의해서만 성경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성경의 진리를 마치 전설이나 꾸며낸 이야기처럼 받아들인, 다른 사람들에게 큰 관용의 정신을 보여 주어야 한다. 저들은 진리의 증거를 듣고 놀라게 되며, 그것은 마치 저들에게 새로운 계시처럼 생각되고, 처음부터 가장 놀라게 하는 방법으로, 저들에게 진리를 증거 할 때에 모든 진리를 감당할 수 없게 된다.
모든 것이 새롭고 이상스럽게만 느껴지며, 저희 목사들에게서 전해 듣던 말과는 전혀 다르게 들린다. 뿐만 아니라 어떤 목사들이 말한 것처럼, 제 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은 신앙심이 없는 자들이며, 성경을 믿지 않는 자들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진리를 증거 하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고,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가르치라.(Ev 201.2)
한 번에 한 가지씩만을 가르치고, 그 한 가지라도 밝히 설명해 주고, 분명한 음성으로 천천히 말해 주라. 또한 사람들의 한 가지 진리와 다른 중대한 진리와의 관련성이, 어떠한지 깨달을 수 있도록 말해 주라. 만일 진리를 증거 하는 자가 그리스도 안에, 자기 자신을 숨기고 자기를 나타내는 대신에, 그리스도만을 증거 하게 되면, 진리를 마치 숨은 보화처럼 찾은 자들의 마음에, 편견이 생기기란 좀처럼 힘든 일일 것이다. (Ev 201.3)
긍정적인 진리에 대하여 가르치라— 부정적인 문제들을 다루지 말고, 오직 긍정적인 진리만을 모아들여, 많은 연구와 열렬한 기도와 헌신의 정신으로, 그 진리들을 든든히 동여 매 두어야 할 것이다. 등잔의 심지를 잘 다듬어서, 불이 잘 붙게 하고 밝은 빛이 환하게 비쳐 사람들이, 그대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할 것이다.(Ev 202.1)
위대한 교사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진리의, 전판도(全版圖:진리의 영원한 복음의 완전한 지도)를 손에 쥐고 계셨으나, 한꺼번에 그분의 제자들에게 펼쳐 보이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오직 하늘로 가는 저희 길에, 꼭 필요한 문제들만을 가르쳐주셨다. 그분의 영원하신 지혜로 침묵 속에, 감추어 두신 많은 사물들이 있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첫 제자들에게, 많은 것들을 보류해두신 까닭은 저들이, 도저히 이해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것들을 보류해 두시는 까닭은, 우리의 이해력의 한계를 잘 아시기 때문이다.(Ev 202.2)
진리를 가르치기 위한 도구들- 눈을 성소에 고정시킴— 우리는 남은 백성으로서 예언을 열심히 연구하는, 학도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다니엘”과 “요한”에게 보여 준 계시 가운데 나타난, 성소의 문제에 관하여 똑똑히 알 때까지, 연구를 그쳐서는 안 된다. 이 문제는 우리의 현재입장과 우리가 하는 사업에, 큰 빛을 비쳐 주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과거의 경험에서, 우리를 인도하셨다는 확실한 증거를 주고 있다.
첫째와 둘째와 셋째천사의 기별에 관한, 우리의 신앙은 정확한 것이었다. 우리가 통과한 큰 노정 표들은 확고부동한 것이다. 비록 지옥의 사자들이 그 노정 표들을, 무너뜨리려 하고 저들 생각에 성공하리라고 볼는지 모르나, 저들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이 진리의 기둥들은 마치 영원한 산들처럼, 견고히 서 있으며 사단과 그의 부하들의 힘을 합한, 모든 인간의 노력을 기울일지라도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며, 그것들이 과연 그러한가 하여 성경의 말씀을, 계속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주님께서 조사심판을 하시며, 마지막 봉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하늘성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제 그들의 눈을 고정시켜야 한다. 주님께서는 하늘지성소에서 그분의 백성을 위하여 중보의 사업을 하고 계신다.(Ev 223.1)
성령께서 보증하신 성소교리를 설교하라— 지난 반세기 동안에 현대진리에 대한, 여러 가지 다른 견해들이 의심을 받고, 반대를 받아왔다. 새로운 이론들이 마치 진리인 것처럼 제시되었으나, 실제에 있어서 진리가 아니었으며, 하나님의 영께서는 그 모순성을 밝히셨다. 우리 신앙의 큰 기둥들이 증거 되었을 때, 성령께서 입증하였으며 특별히, 성소문제의 진리에 관하여 확증하셨다.
성령께서는 거듭 거듭 반복하여, 뚜렷한 방법으로 이 교리의 전할 것을 인정하셨다. 그러나 오늘날 과거 역사에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자들은 새로운 이론들을 꾸미는 일에 미혹될 것이며, 성령께서 인정하신 진리를 부인하기에 이를 것이다.(Ev 224.2)
성소에 관한 거짓교리— 장차 온갖 종류의 속임수가 일어날 것이며, 우리는 든든히 설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이 요구된다. 또한 우리는 건물을 위하여, 튼튼한 기둥들을 원한다. 주님께서 세우신 것은, 단 한 가지도 옮길 수 없다. 영혼의 원수는 성소가 없다는 교리와 같은, 거짓교리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성소 문제는 믿음에서 이탈하는 자들이, 따지는 문제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주님께서 지난 50여 년 동안 우리에게 주신 진리가 아니고서야, 우리가 어디서 안전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Ev 224.3)
뚜렷한 진리에 관하여 논쟁함— 사단의 대리자들이 사용하는 기만적인 세력이, 완전히 그 기세를 떨칠 때가 가까웠다. 한편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신, 그리스도께서 계시다. 또 다른 한편에는 강신술적인 강력한 궤변으로, 미혹하고 속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차지하고 계셔야 할, 하나님을 그 자리에서 몰아내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자기의 세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단이 있다.(Ev 224.4)
사단은 신자들의 마음에서, 진리의 지배적인 세력을 제거하려고 하며, 진리 대신에 속죄의 진리를 무효케 하는 새로 꾸며낸, 공상적인 교리들을 대치시키려고 하며, 셋째천사의 기별을 처음으로 받은 이래로 우리가 신령하게, 여겨 온 교리에 대한 우리의 신뢰심을, 파괴시키려 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우리를 구별된 백성으로 만들고, 우리사업의 특성과 힘이 되어 온 바로 그 기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빼앗으려고 한다.(Ev 225.1)
율법과 안식일을 증거 함- 우리의 특별한 기별— 주님께서는 그분의 대사들이 전해야 할, 특별한 기별을 가지고 계시다. 저들은 사람들에게 경고해야 하며, 법왕이 하나님의 율법을 훼손시킨 것을, 수보(修補:보수)하도록 저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안식일은 하나의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취급되어 왔으며, 인간의 권위로 쉽사리 제거해 버릴 수 있는, 하나의 불필요한 요구처럼 인정되어 왔다. 주님의 거룩한 날이, 평범하게 일하는 날로 바뀌어졌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기념일을 헐어버리고, 그 대신에 거짓휴일을 제정하였다.(Ev 225.2) 세상에 전할 마지막 기별— 세상에 경고하여야 할 마지막 기별은, 사람들로 하나님께서 중히 여기시는, 율법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분명하게 소개하여 줌으로, 그것을 듣고 아무도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여야 할,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였노라고 핑계하는, 범법자가 없도록 할 것이다.(Ev 225.3)
나는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거룩히 구별하신, 증거들을 성경에서 찾아 무리 앞에서 낭독해 주어야 한다는, 말을 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아직 진리를 듣지 못한 자들에게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을, 도외[제외 소흘]시한 모든 자들은 누구나 반드시, 그 보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야 한다. 각 시대를 통하여 안식일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시험하는 시금석이 되어 왔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이는 나와 이스라엘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출31:17)이라고 하셨다.(Ev 226.1)
전 세계를 위한 결정적인 문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의무적인 주장에, 관하여 주신 빛은 어느 곳에서든지, 증거 하여야 한다. 이것은 결정적인, 문제가 되어야 한다. 이 문제는 세상을 시험할 것이며, 입증할 것이다.(Ev 226.2) 새로운 지역에서 사업을 증강시킴— 나는 어떤 형제와 면접시간을 갖기 위하여, 편지 쓰는 일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어떤 문제로 번민 가운데 있었다....
그는 새로운 지역에서 안식일 문제를 맨 처음에, 증거 해야 할 것인지 새로운 지역에서 진리를, 증거 하는 방법을 알기 원하였다.(Ev 226.3) 나는 그에게 가장 현명한 최선의 계획은, 양심을 각성시키는 문제들을 다루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는 실제적인 경건에 대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며, 헌신과 경건, 그리고 우리의 모본이 되시는 예수님의, 극기와 자아희생의 생애를 증거 하므로, 저들이 저희 자신의 방종 된 생애와 대조해 보고, 저희 자신의 비 그리스도인적 생애를, 불만스럽게 여기도록 해 줄 것이다.(Ev 226.4)
그 다음에 예언에 관한 문제들을 증거 해 주고, 하나님의 말씀의 순수성과 의무적인 주장들을, 나타내 보여 주어야 한다. 이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그 효력이, 상실되어서는 안 되며 율법의 의무적인 요구는, 마지막 때까지 모든 영혼에게 적용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폐하고 그리스도교계가 가톨릭교와 세속적인 세력에 연합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효력이 없는 것으로 만들 때,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은 분명히 일어나, 여호와의 율법을 옹호해야 한다.(Ev 226.5)
이것이 “바울”이 사용한 지혜이며 뱀같이 지혜롭고, 순하기를 비둘기같이 하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신앙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지역에 갔을 때는, 이러한 조심스런 방법을 따를 필요가 없다. 그러나 개인적인 노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접근할 수 있는 특별한 노력을 모든 경우에 기울여야 할 것이다. 교회들을 비방하는 방법을 피하라.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사업을 허물어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요 세우려 하는 것이며,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진리를 증거 하는, 일이라는 인상을 받게 할 것이다. 활기찬 경건의 필요성에 관하여, 시간을 많이 쓰도록 하라.(Ev 227.1)
일요일 문제를 증거 할 때 조심해야 함—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 대신에, 이 가짜안식일을 받아들인 자들을, 공연히 자극해서는 안 된다. 저들의 입장을 유리하게 해 주는, 성경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저들을 더욱 분노하게 하고, 저희 자신의 권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에도 없는, 논증들을 가지고 철저히 대들게 만들 뿐이다. 그렇게 되면 핍박의 세력이, 용[사단마귀의 미혹]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미를 건드리는 불필요한 자극을 주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Ev 235.4)
진리의 옹호자들을 대적하려는 사단의 끈질긴 노력은, 마지막 순간까지 더욱 격렬해 질 것이며, 결정적인 것으로 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시대에 대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주님을 대적하도록 백성들을 선동한 것처럼, 오늘날에도 그와 꼭 같이 종교지도자들은,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대적하기 위하여 악독과 편견을 자극시킬 것이다. 사람들은 난폭한 행동과 대적하는 행위에, 이끌릴 것이며 이런 일들은 저들이 진리를 대적하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의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지 않는 한,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들이다.(Ev 236.1)
사업을 하기 위한 우리들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목사로서 또는 민병(民兵:성도들의 군사들)이 되게 할 백성으로서 부르신다. 뱀처럼 지혜로워야 하고 비둘기처럼 순해야 할, 교사들은 주님을 돕기 위하여 나서야 하며, 원수를 대적하고 있는 주님을 도와야 한다. 이 마지막 날에 관련된 예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이 있으며, 저들은 깨우침을 받아야 한다.(Ev 237.1)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에 대한 방법-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까닭이 없음— 때때로 우리 사역자들이 시험하는 안식일 진리를, 사람들에게 증거 하면 어떤 사람들은 저들 자신과 가족에게, 이를 궁핍과 어려움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주저한다. 저들은 진리가 옳다고 인정은 하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제 칠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에 관하여, 저에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안식일을 지키므로 저의 직장을, 잃어버리게 되고 저의 가족을 부양할 수 없게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이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지위를 보존하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한다. 그러나 이 성경절들(눅12:1-7)은 주님께서 우리 인간의 모든 경험들을, 잘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불편한 점들에 대하여, 잘 이해하고 있으며 주님을 알기 위하여 따르는, 모든 자들을 돌보아 주신다. 주님께서는 결코 그분의 자녀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 이상으로 시험당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실 것이다.(Ev 237.2)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하므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눅12:22-26).(Ev 237.3) 사람은 이 같은 소송을, 스스로의 힘으로 막을 수 없다. 그는 죄로 더럽혀진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서서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그러나 우리의 대언자 예수님께서는 회개와 믿음으로, 그들의 영혼을 지켜 주시도록 그분께 맡긴,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변호해 주신다. 그분은 그들의 사건을 변호해 주시고, 강력한 갈바리의 논증으로 그들을, 참소하는 자를 추방해 버리신다.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되,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 순종함으로써,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가 그분께 주어졌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죄 많은 인류를 위하여, 그분의 아버지께 자비와 화목을 요구하신다. 그분은 그분의 백성들을 참소하는 자에게,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 사람들은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슥3:2)라고 말씀하신다. 믿음으로 그분을 신뢰하는 자들은,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슥3:4)는 위로의 보증을 받는다.(2TT 173.3)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은 모든 사람은, 택함 받은 성실하고 진실한 자로, 그분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사단은 그들을 그리스도의 손에서 빼앗을 능력이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회개와 믿음으로 그분의 보호를 요구하는 영혼은, 하나도 원수의 세력 아래 놓이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의 말씀은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고 보증한다(사 27:5).
여호수아에게 하신 약속, “네가 만일 ... 내 율례를 지키면 ... 내가 너로 여기 서있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슥3:7)는 약속은, 모든 사람에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이 세상에서도, 그들 곁에 다닌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있는, 천사들과 함께 서게 될 것이다.(2TT 174.1)
하나님의 인정받은 백성들이 더러운 옷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서 있는 것으로 나타난 사실을 볼 때, 그분의 이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은, 겸비해지고 마음을 깊이 살펴야 한다. 진리를 순종함으로 심령을 진정으로 순결케 하는 자들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가장 겸손한 견해를 갖게 될 것이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흠 없는 품성을, 더욱 자세히 보면 볼수록 그분의, 모습과 같아지고자 하는 욕망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우리는 승리하기 위하여, 심령의 모든 힘을 다 발휘해야 하고, 우리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기 위한 힘을 얻고자,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2TT 175.1) 흰 옷을 입은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죄도 용납될 수 없다. 더러운 옷은 벗겨지고, 그리스도의 의의 옷이 우리에게 입혀져야 한다. 우리는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순종할 수 있게 되고, 그분 앞에서 책망할 것이 없는 상태가 된다.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자들은, 오늘날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하고,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그들의 중보자 예수님을 통하여 용서를 받고자, 열렬히 탄원하고 있다. 그들의 주의력은 그분께 집중되어 있고, 그들의 소망과 믿음은, 그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아름다운 옷을 입히라,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라”(슥3:4)는 명령이 주어지면, 그들은 그들의 구원에 속한 모든 영광을, 그분에게 돌릴 준비가 이루어진다.(2TT 175.2)
남은 교회- “여호수아”와 사자에 대한 “스가랴”의 이상은, 대 속죄일의 마지막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특별히 적용된다. 남은 교회는 큰 시련과 고통 가운데, 빠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은, 용과 그의 군대의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다. 사단은 세상 사람들을 자기 백성으로 간주하고, 배교한 교회들을 지배해 왔다. 그러나 여기에 그의 지배권을 저항하는, 적은 무리가 있다. 만일 그가 그들을 지상에서, 제거해 버릴 수 있다면, 그의 승리는 이루어질 것이다.
마치 그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이교국들을 충동했던 것처럼, 가까운 장래에 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세상의 악한 세력들을 충동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인간의 법령에, 따르도록 강요당할 것이다. 하나님과 의무에 성실한 자들은 위협을 받고, 비난을 받고 법률의 보호를 상실할 것이다. 그들은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눅21:16)에게 배척당할 것이다.(2TT 175.3)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의 자비가 되고, 그들의 유일한 방패는 기도가 될 것이다. "여호수아"가 사자 앞에서 탄원한 것처럼, 남은 교회도 통회하는 마음과 진지한 믿음으로, 그들의 중보자 예수님에 의한 용서와 구원을 간원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생활에 나타난, 죄악 적 형편을 완전히 깨닫고, 그들의 연약함과 무가치함을 안다. 그러므로 그들이 스스로를 바라볼 때, 실망할 수밖에 없다. 유혹자는 마치 “여호수아”를 대적하기 위하여, 그의 곁에 서 있던 것처럼 그들을 대적하기 위하여 서 있다.
그는 그들의 더러운 옷과, 그들의 결함 많은 품성을 지적한다. 그들은 그들의 구속주를 욕되게 한 그들의 약점과 어리석음, 그들의 배은망덕한 죄,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점 등을 제시한다. 그는 그들의 경우가 소망이 없다는 것과, 그들의 더럽혀진 오점이 결코 씻겨 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심령을 위협하고자 노력한다. 그는 그들의 믿음을 파괴해 버림으로써, 그들이 그의 유혹에 굴복당하고,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버리고, 짐승의 표를 받게 되기를 바란다.(2TT 176.1)
사단은 그들이 죄를 지었으므로, 하나님의 보호를 잃어버렸다고 말하고, 그들의 범죄로 그들을 죽일 권리가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그들을 대적하는 항의를 하나님 앞에 강력히 제시한다. 그는 그들 역시 자기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총을, 잃어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말한다.
“이 사람들이 하늘에서 나의 위치와, 나와 연합한 천사들의 위치를 차지한 사람들인가?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노라고 공언하면서, 그 율법을 그대로 지켰는가? 그들은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자들이 아니었는가?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을, 더 중하게 여기지 않았는가? 그들은 세상의 사물들을, 사랑하지 않았는가? 그들의 생애를 특징지었던 죄들을 보라. 그들의 이기심, 그들의 적의(敵意:적대적 의지), 피차간의 증오심 등을 보라.”(2TT 176.2)
하나님의 백성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결함이 많았다. 사단은 그들을 유혹하여 범하게 한 죄들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므로, 그 죄들을 가장 크게 과장하여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께서 나와 나의 사자들을 그분 앞에서 쫓아내면서, 동일한 죄를 범한 그들에게는 상급을 주실 것인가? 오, 주님, 공의로운 입장에서, 그렇게 하실 수 없습니다. 그분의 보좌는 의와 공의로 세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공의는 그들에게 내린 것과는 반대의 선고를 요구합니다.”(2TT 177.1)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때는 밤중이다. 악인들이 성도들을 둘러싸고 조롱하고 있을 때, 갑자기 태양이 나타나 환히 비추고, 달이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악인들은 그 광경을 보고 놀랄 것이다. 반대로 성도들은 기뻐하며, 그들의 구원의 증거를 보았다. 표적과 기사가 연달아 일어난다. 모든 만물이 본 궤도를 벗어난 것처럼 보였고, 냇물은 흐르기를 그친다. 먹장구름들이 일어나 서로 맞부딪친다.
그러나 영광이 머무는 한 맑은 곳이 있었는데, 거기로부터 많은 물소리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흘러나와, 하늘과 땅을 뒤흔들었다. 큰 지진이 일어났고, 무덤들이 열리고, 셋째천사의 기별을 믿고, 안식일을 지키다가 죽은 자들이, 하나님께서 그의 율법을 지킨 자들과, 맺은 평화의 언약을 듣기 위하여, 티끌 가운데서 일어나,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되었다.(EW 285.1)
나는 예수께서 그의 백성들을, 생명나무로 인도하시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는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자비로운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이 나무의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생시키기 위하여 있느니라. 너희들은 모든 과일을 먹으라.”(계22:2).
생명나무에는 아름다운 과실들이 열려 있었는데, 성도들이 그것을 자유롭게 따 먹을 수 있었다. 도성 가운데 영광스러운 보좌가 있었고, 거기서부터 수정처럼 맑은, 생명 강이 흘러나왔다. 이 강의 양쪽에는 생명나무가 있었고, 강의 양쪽 둑에는 먹음직스러운 과일들이, 열려있는 아름다운 나무들이 있었다.(EW 2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