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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항산 산행기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은 언제나 그렇듯이 흥분과 설레임이 동반된다. 등산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나로서는
처음으로 나선 해외산행이라 더욱 그러하다. 계절의 여왕 5월에 떠나는 오랜만의 해외 원정산행을 위해 입산회
회원들은 아침 일찍 인천국제공항에 모였다. 목적지는 중국의 중부 내륙에 위치한 태항산(太行山)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전설이 서려있는 태항산은 산서성 북부에서 시작해 하북성, 하남성과 산동성의 4개
성에 걸쳐있다. 태항산을 기준으로 동쪽은 山東省, 서쪽은 山西省으로 구분된다. 정확히 말하면 태항산은
태항산맥으로 부르는 것이 맞는데 편의상 그렇게 부르는 것 같다. 태항산맥의 총길이가 남북으로 600km,
동서로 250km에 이르는 넓은 지역으로 오랜 세월 침식과정을 거쳐 형성된 대협곡과 폭포 등이 웅장함과
절경을 자랑한다.
(관심있는 사진 크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종국)
중국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날아 청도에 도착하였다. 우리의 첫 목적지인 정주(鄭州)에 가기 위해서는
청도에서 야간기차를 타야한다. 점심 후 기차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일부는 청도 시내를 관광하고 일부는
찌모루시장에 들렀다. 일명 짝퉁시장이라 불리우는 그곳은 외국 유명 브랜드를 그대로 베껴 만든 제품으로
가득하다. 부르는 값의 삼분의 일에 살 수 있다는 가이드의 정보가 있었다. 부르는 가격에서 값을 깎아 최종
가격까지 가는 흥정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나도 그렇게 흥정하여 가이드의 말대로 거의 삼분의 일 가격으로
가방을 하나 샀다. 예전의 남대문 시장에서 물건 살 때와 흡사한 광경이다.
5시가 넘어 河南省의 성도인 정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는 6인 1실이었고 침대는 3층으로 되어 있다.
기차에서 우리들은 역에서 산 저녁거리를 안주삼아 맥주파티를 열었다. 준상이는 목이 말라 스프라이트를
마셨더니 누군가가 그 속에 白酒를 넣어 놓았다고 난리를 쳤다. 차창너머로 보이는 중국의 농촌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몇 시간을 가도 끊없이 이어지는 평야가 눈앞에 전개되었다. 대부분 밀밭이었는데
밀밭의 밀이 마치 못자리의 볏모처럼 촘촘히 심어져 있다. 땅이 기름져서일까 아니면 비료를 많이 주어서일까
궁금했다. 곳곳에 백양나무 종류의 나무들로 이루어진 방풍림들이 너른 평야의 단조로움을 달래주는 것 같다.
야간열차에서 장장 14시간을 기차에서 지내야 했다. 특히 3층에서 잠을 잔 회원들의 불평이 많았다.
그러나 불편한 것도 인내하는 것도 여행의 일부인 것을 어쩌랴. 정주역에 도착하니 아침이 되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가이드에게 이곳은 항상 이렇게 날씨가 좋으냐고 물었더니 그는 정주에 10번 넘게 왔으나
이렇게 좋은 날씨는 처음이란다. 비 아니면 안개에 스모그까지 겹쳐 맑은 날씨 보기가 어렵단다.
어제 밤사이 내린 비로 인해 시야는 어느 때보다 탁 트였다.
우리의 첫 관광지 九蓮山에 도착했다. 구련산은 하남성 휘현시에 소재하고 9개의 산봉우리가 연꽃 모양을 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웅장한 산세를 감상하며 얼마간 걸어가니 절벽에 높다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블로그에서 본 것이라 반갑기도 하였다. 165미터의 엘리베이터는 어느 한국 관광객이 제안하여 설치하였다고
한다. 나와 몇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기존의 계단으로 된 길로 걸어갔다. 30분을 걸어가면서 경치를
감상하고 배경이 좋아 사진도 많이 찍었다.
얼마간 걸어가니 서련사가 나타났다. 절에는 불공을 드리는 중국인들이 많이 있었고 그들이 붙인 향불이 코를
찌른다. 절을 지나가니 우리의 숙소가 나타났다. 나와 거의 동시에 도착한 상일이와 룸메이트 하기로 하였다.
방을 찾아 여장을 풀었다. 화장실에 휴지도 비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실망하는 빛이 역력했다. 알고 보니
그는 중국에 자주 왔었고 항상 최고급 호텔에만 숙박을 하였다고 한다. 나는 그에게 배낭 여행의 참맛은 이런
불편함을 겪는 것이라고 말했다. 샤워를 하려고 했으나 더운 물이 나오지 않았다. 저녁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숙소 뒤편에 있는 산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다음 날 우리는 숙소를 나와 각자 점심으로 먹을 것을 사가지고 트레킹을 시작하였다. 이 트레킹 코스는 이번
여행을 주선한 투어인케이씨에서 개발한 것으로 일반 여행사에서는 여행 코스에 들어있지 않다고 한다.
가이드는 트레킹을 할 때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하였다. 절대로 말하면서 둘이 걷지 말고 한 줄로 걸어야 하는
것과 될 수 있으면 왼쪽으로 붙어서 가라는 것이었다. 그 말이 헛말이 아니라는 것이 얼마 안가 증명되었다.
좁은 잔도에 풀이 나있는데 그 풀이 낭떠러지의 경계선이었다. 멋모르고 얘기하다 걷다가는 천길 절벽으로
직행할 수 있는 것이다. 밑을 내려다보니 현기증이 나며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느낌이다. 협곡 저 넘어로
깎아지른 듯 한 절벽이 계속 이어진다. 미국의 그랜드 캐년 같은 모습이지만 웅장한 점에서는 같지만 다른
점은 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태항산이 단조로운 그랜드 캐년보다 더 아름답고 다채로운 풍광이다.
가는 길에 유일하게 만난 사람은 젊은 중국인 부부였는데 차림새를 보니 트레킹 하는 것은 아니고 절이나
친척 집에 가는 모습이었다. 길을 따라 염소 똥이 군데군데 보였다. 누군가가 염소를 기르는 것 같았다.
두어 시간을 걸어가니 일군의 염소떼가 산기슭에 여기저기 포진해 있다. 이런 외진 산속에서 동물을 만나니
반가워 인사를 건넸다. 그들도 우리들에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파노라마처럼 변하는 웅장한 산세와 풍광을
즐기는 다섯 시간의 행군은 스릴과 긴장감이 넘쳤고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힐링의 시간이었다.
첫날의 미션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행복감을 만끽하기 위하여 마을의 음식점에서 맥주 한잔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나타난 마을의 노인이 마을을 지난 통행료를 내라고 가이드에게 항의하고 나중에는
행패까지 부리는 것이었다. 억지에는 당할 길이 없었다. 결국 일인당 5유안씩 115유안을 내고 무마되었다.
여행에는 항시 그 여행을 잊지 않게 하는 해프닝이 있게 마련이다.
가이드는 다음 목적지는 왕망령(王莽嶺) 정상에 있는 숙소라고 말하면서 가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다고 하였다.
빵차(소형버스)로 가는 방법과 왕망령까지 세 시간 정도 걸리는 등산길을 따라 걸어가는 방법이라고 제안하였다.
다섯 시간을 걸었으니 대부분 타고 가는 것을 선호하였으나 나와 김종국 부부 그리고 미국에서 온 선우창근은
걸어가겠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지원한 것에 대해 다들 놀라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산에
갈 때마다 제일 후미에서 따라갔었으니까. 하여튼 가이드를 포함한 다섯 명은 왕망령 입장권을 사가지고
등산을 시작했다. 유방이 세운 한나라(전한)시대에 왕망(王莽)이 난을 일으켜 새나라를 세웠는데 이곳에서
유방의 후손인 유주를 절벽으로 밀어버렸다는 고사가 전해진다.
왕망령 정상에 도착하여 숙소에 들었다. 산위에 세워진 호텔은 사방이 확 튀어있고 전망이 기막히다.
앞에는 산책 코스가 있고 뒤에는 일출 전망대가 있으며 옆에는 커다란 돔형의 식당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밤을 보냈던 숙소와는 비교가 안 될정도로 좋았다. 사흘만에 샤워를 하고나니 몸이 날아갈 것 같다.
저녁은 널따란 식당에서 거의 전세내다시피 우리팀이 차지하고 식사를 했다. 생각보다 호텔을 이용하는
손님이 적었다. 식사 중에 원재가 마술쇼를 펼쳐 웃음꽃을 피어내고 활기 넘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일출이 기막히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나는 며칠만의 숙면으로 놓치고 말았지만 부지런한 사람들은 일출의
아름다운 장면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왕망령과 만선산을 잇는 트레킹 코스를 시작했다.
萬仙山은 만명의 신선이 산다고 이름이 붙여졌다. 깃발을 든 중국인들도 만났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호의를 표시했다. 그런데 내려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었다. 돌로 만들어진 2700여 개의
계단은 가파른 길이었고 내려오는데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상일이는 내려올 때 아찔한 순간이
있었다며 긴장됐던 순간을 떠올리기도 했다.
다 내려와 맥주로 갈증을 달래며 다음 행선지에 대해 의논하였다. 가이드는 남평으로 가는 길을 제안했으나
종국이는 단분구로 가자고 하였다. 결국 전기차로 단분구로 가는 것으로 정해졌다. 전기차 운전사는 젊은
중국인이었는데 커브길을 어찌나 급하게 몰아대는지 넘어지지 않으려고 의자를 꼭 잡고 기를 썼다.
운 좋게 입장료도 안 내고 단분구를 구경하였다. 작은 협곡에 아기자기한 풍경이 이채로웠다.
구경을 마친 다음 시내버스를 타고 곽량촌(郭亮村)으로 이동하였다. 이동하는 길에 유명한 산중턱의 바위를
뚫어 만든 터널길을 지나왔다. 절벽장랑(絶壁長廊)이라 부르는 이 길은 미국·일본 등의 매스콤에서 소개해
유명해졌는데 세계 8대 불가사의라고 불린다고 한다. 그 단단한 바위 덩어리를 깎아내고 잘라내는 일을
13명의 장사(壯士)가 1972년부터 5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1250미터의 암석 터널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곽량촌은 경치가 좋아 수많은 화가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우리들은 여기저기 캔버스에 경치를 담느라 바쁜
예비 화가들(미대생)을 볼 수 있었다. 3년 전에 이곳에 왔던 종국이는 그때 찍은 사진을 인화해 가지고 와서
같은 장소에서 노점상을 하는 중국인들에게 선물하였다. 그들의 환한 웃음을 보니 내 마음이 흐뭇하다.
저녁 식사 후 꼬치구이(양고기)와 맥주로 곽량촌의 밤을 즐겼다. 다음 날 주변의 둘레길을 돌아보고 林州로
향했다. 마지막 방문지인 ‘태항대협곡(太行大峽谷)’을 가기 위함이다. 네 대의 빵차에 나눠 타고 시내 중심가에
있는 호텔에 오후 늦게 도착하였다. 저녁 식사 후에 호텔 근처에서 발마사지를 받았다. 그간의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아침 일찍 호텔을 출발하여 태항대협곡에 도착하니 벌써 관광객들이 많이 와 있는데 대부분이 한국 사람인 것
같다. 입장료가 160위안 (3만원)이나 되었다. 대협곡은 도화곡(桃花谷)부터 시작된다. 도화곡은 한 겨울철에도
복숭아꽃이 피어난다는 곳인데 기암괴석과 물이 합작으로 이루어내는 협곡의 경치는 가히 비경이라 할만 했다.
아름다운 경치를 담아가지고 가려고 삼삼오오 사진 찍느라 모두들 바쁘다.
도화곡이 끝나가는 곳에 이르러 종국이가 우리를 안내한 곳은 일반 관광객이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3년 전에 왔을 때는 눈까지 있었다는 높은 폭포(도화담폭포)가 있는 곳이다. 폭포가 시작되는 산 위에는
출렁다리(구름다리)가 협곡 사이로 걸쳐 있다. 밑에서 보면 까마득하다. 몇 명을 제외하고 전원이 위험하기까지
한 잔도를 지나 구름다리에 갔다 왔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준상이와 김영은 기어서 그곳을 통과했다고
고백하였다.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점심을 먹고 우리들은 왕상암(王相岩)으로 가기 위해 국립공원을 순행하는 전동차를 탔다. 도화곡에서
왕상암으로 이어지는 길을 태행천로(太行天路)라고 하는데 길이가 25km이다. 산허리를 끼고 도는 환상선으로
경치가 좋은 곳마다 정류장을 만들어 관광객들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름도 근사한
몽환지곡(夢幻之谷), 릉운랑(凌云廊), 천경(天境), 평보청운유리잔도(平步靑云琉璃棧道)등이다.
전동차를 타고 가는 내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거대한 협곡, 환상적인 바위절벽과 산봉우리는 몽환에 이르게
할 만하다. 협곡의 바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유리 스카이워크 전망대에서 느끼는 스릴도 빼놓을 수 없다.
태행천로의 종점에서 왕상암으로 내려왔다. 왕상암 풍경구로 내려가는 길에 있는 나선형계단을 타고 내려온
사람도 있고 짚라인을 타본 사람도 있다. 태항산대협곡의 마무리 산행하기에는 아주 좋은 코스였다.
왕상암 입구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우리의 태항산대협곡 관광뿐 아니라 태항산 트레킹 전체가 마무리
되었다. 모두들 흡족해 했고 무언가 이루었다는 성취감에 생기가 넘치는 표정이었다. 태항산의 기를 듬뿍 받은
입산회원들의 건강과 행운이 가득할 것이다.
이번 태행산 산행을 위하여 프로그램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준비를 작년부터 하고 트레킹 내내 회원들의
성공적인 여행을 위해 애쓴 김종국 부부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또한 이번 해외 원정 산행 행사를 입산회
행사에서 격상시켜 20회 총동창회 행사로 만들고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김웅배 회장 부부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멀리 미국에서 태항산 산행에 참가해주어 이번 행사를 국제적 행사로 격상시켜 의미를 더해준
선우창근 부부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연일 계속되는 트레킹에 영양을 보충해 주기 위해 저녁을 호스트한 조철식 회장과 이상일 회원에게 감사를
드리며 간간히 마술과 초상화로 우리들을 즐겁게 해준 유원재 회원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우리들의 추억을 오래 간직하라고 사진 찍느라 고생 많았던 박승훈 회원과 김준호 회원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적지 않은 인원인 23명으로 구성된 팀이 여행 내내 한마디 불평이나 트러블 없이
성공적인 여행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구성원 모두의 양보와 배려때문이었다.
여러분 모두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참가자 : 김웅배부부 김준호부부 석해호부부 선우창근부부 임동철부부 김종국부부
조철식 이상일 김성민 김성진 김영 박승훈 박준상 유원재 우제룡 임영빈 김풍오(23명)
첫댓글 입산회원 모두 사랑과 배려로 무사히 완주한것을 다시한번 자축하고, 총무의 총평을 읽고 나니 감회가 새롭고 총무 역시 고생 많았습니다!
언제 다시 한번 이런 여행을 할수 있을까!!
우리 더 늙기 전에 다시 한번 추진합시다. 짜이치엔(再見)!!!
역시 총무의 글이 간결하고 명쾌하게 정리해 주는 듯! 수고들 많었습니다.
멋진 산행기를 읽으니 태항산 산행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고 새로이 떠오르네요.
총무님 자료 정리와 글 쓰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역시 종국이가 사진을 적절하게 배치해 넣으니 글이 사는군.
산행기를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태항산 산행의 완결편...
이렇게 맛깔진 문장, 현장감이 살아 꿈틀되는 어휘력...
단숨에 읽고나니, 지난 여행 일정이 생생합니다. 많은 수고에 감사합니다.......
우성이산의 적나나한 여행기를 보고 또 보니, 산행을 동반했던 21명의 친구들 (5명의 어부인님들 포함하여)과 함꼐 했던 7박 8일의
추억이 주마등이 스쳐 가듯 생생하게 그 날로 돌아가는듯 하오. 5시간의 아찔했뎐 절벽을 걸으며 생명(?) 을 같이 했던 서연사-석애구천 트랙킹, 왕망령의 일출과 일몰, 2700 여개의 계단을 하강후 잃어 버린 발톱, 단분구의 아름다운 흑룡담폭포, 도화곡 폭포의 출렁다리까지 zig-zag 절벽 잔로를, 고소공포증으로 2층 유리 바닥을 못지나가던 집사람이 도리어 나를 앞세우며 40여년 결혼에도 못 보았던 집사람 용기에 감탄 또 감탄,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네.
(계속) 100(?)여 마일로 달리는 용감한 언니가 운전한 Tram 으로 태항천로을 거쳐 왕상암으로 내려 와 모두 안도의 숨을 쉬며 즐거워 했던 모습, 이젠 모든 체력을 다 소비한듯 더 이상 갈수 없는 지경에 닿은것 같았다. 다음날 또 산행이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ㅎ 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