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은 귀중한 승리와 시즌 최다 관중의 두마리 토끼를 잡았다 (사진=수원삼성) |
개막전 승리 후 3경기 연속 무승(1무 2패)의 부진. 급기야 시민구단으로 전환된 성남FC의 첫 승 제물까지. 수원삼성의 2014시즌은 어느 시즌보다 고됐다. 순위가 11위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30일 수원이 만난 것은 하필 윤성효 감독이 이끄는 부산아이파크였다. 수원의 전임 감독이기도 한 윤성효 감독은 포항, 서울을 연파하며 이른 바 ‘부적돌풍’의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벼랑 끝에 몰린 수원의 서정원 감독은 과감한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수원에게 반전의 기회를 선사했다. 올 시즌 K리그 최다 관중 기록도 이 경기에서 나왔다.
유쾌했던 윤성효, 비장했던 서정원
경기 전 만난 수원과 부산, 양 감독의 표정은 정반대였다. 원정팀인 부산의 윤성효 감독은 여유만만이었다. 평소에는 할 말만 짧게 하고 끝내는 경상도 사나이가 최근의 호성적 때문인지 말문이 트인 모습이었다. 그는 2012년까지 이끌었던 수원이 부진한 데 대해 “모르겠습니더. 은자 내 일도 아이고요”라며 답을 회피했다. 예의를 차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승부에선 지지 않겠다는 듯 수원에 칼날을 들이밀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수원에서 영입한 신연수를 과감하게 선발 투입시켰다. 수원 유스 출신인 신연수는 프로 입단 후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하다 윤성효 감독의 러브콜을 받고 부산 유니폼을 입은 상황이었다. 윤성효 감독은 “내년에 AFC 챔피언스리그 준비하려면 선수도 키워야 하고요, 전 소속팀이니까 심리적으로 잘 무장 안하겠습니꺼?”라고 답했다. 챔피언스리그 출전에 대한 의지를 거듭 강조하는 모습을 주목하자 그는 “와예? 어렸을 때 다들 꿈이 대통령 아니었습니꺼? 꿈은 크야지예”라며 화통하게 웃었다.
홈팀 수원의 서정원 감독은 배수의 진을 치고 나왔다. 그는 앞선 포항전, 성남전과 비교해 무려 6명이 바뀐 선발라인업을 들고 나왔다. 정성룡, 조성진, 오장은, 김두현, 염기훈을 제외하고 모두 교체했다. 그나마도 오장은은 팀의 취약점인 오른쪽 풀백으로 자리를 옮겨 나왔다. 서정원 감독은 “오늘 경기는 기술보다는 정신력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전 인터뷰 내내 정신적 무장을 강조했다. 원정에서의 2연패는 용인할 수 있지만 홈에서마저 승리하지 못하면 자칫 자신도, 팀도 벼랑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성남전에서 드러난 공격진의 부진을 지적한 그는 최전방과 2선 공격수 4명 중 3명을 교체했다. 염기훈만이 자리를 왼쪽에서 중앙으로 옮겼고, 정대세 대신 브라질 공격수 로저가 선발로 나섰다. 좌우 날개도 서정진과 배기종이 나왔다. 더 이상 선수들을 신뢰하기보다는 강한 경쟁 심리와 동기부여 제공으로 부진에서 탈출하겠다는 뜻이었다. 2년 전까지 수석코치로서 모셨던 윤성효 감독과의 대결이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엔 “감독님의 스타일을 그만큼 알고 있단 뜻이다”고 답했다. 올 시즌도 변함 없이 화제인 윤성효 감독의 부적에 대해선 “미신과 징크스는 선수 시절부터 믿어본 적이 없다. 스스로 무너지는 지름길이다”라며 신경쓰지 않겠다고 했다.
부산의 강력한 수비는 수원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사진=수원삼성) |
부산의 성효산성에 막힌 수원의 양날개
수원은 공격진을 대폭 교체했음에도 시원한 플레이를 보여주진 못했다. 부산은 최근 물 오른 골키퍼 이범영에 두 명의 강력한 센터백 이원영과 김찬영을 앞세워 수원의 공격을 저지했다. 로저가 와일드한 플레이로 이원영을 무너트리려고 했지만 번번히 호각 소리가 나왔다. 염기훈이 활발히 움직이며 활로를 찾았지만 서정진과 배기종의 움직임이 그렇게 인상적이지 못했다. 불운도 따랐다. 전반 15분 배기종이 페널티박스에서 시도한 시저스킥이 부산 수비수의 손을 맞았지만 이동준 주심이 파울로 선언하지 않았다. 서정원 감독과 수원 코치진의 강한 항의가 이어졌다. 전반 21분에는 부산에게 불운이 왔다. 프리킥 상황에서 공격에 가담한 이원영의 헤딩이 골로 연결했지만 오프사이드 파울이 선언됐다. 양 감독이 내세운 비장의 카드도 돋보였다. 수원과의 허리 싸움에서 밀리지 않겠다며 윤성효 감독이 투입한 신연수는 수원 시절과는 달리 파이터로 변신해 과감한 플레이를 펼쳤다. 경고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서정원 감독은 김신욱 다음으로 현재 K리그에서 골 감각이 좋은 부산의 양동현을 막기 위해 센터백 구자룡을 선발로 내세웠다. 지난 시즌까지 경찰청(현 안산)에서 한솥밥을 먹은 탓에 양동현의 스타일을 누구보다 잘 안다는 차원에서의 투입이었다. 구자룡은 양동현을 밀착마크하며 전반 동안 단 하나의 슈팅도 허용하지 않았다.
후반 들어서는 양팀 모두 적극적인 공세를 취했다. 수원은 후반 16분과 17분에 서정진, 로저를 빼고 홍철, 정대세를 넣었다. 부산은 허리 싸움을 지키기 위해 김익현, 신연수를 빼고 정석화, 홍동현을 넣었다. 수원은 정대세와 홍철, 염기훈이 공격을 이끌었다. 하지만 크로스를 통한 공격은 부산에게 늘 좌절됐다. 부산의 수비벽은 마치 거대한 산성처럼 높았다. 수원은 김은선이 맞은 기회가 결정적이었다. 오른쪽 측면에서 올라온 패스를 받아 이범영과 1대1 상황을 맞이한 김은선의 슛은 이범영의 손을 맞고 골대 옆으로 나갔다. 부산도 임상협이 한지호의 패스를 받아 단독 찬스를 자았지만 슛은 골대 옆으로 나갔다. 수원은 후반 27분 오장은을 빼고 조지훈까지 투입하며 골을 향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그 와중에도 부산 수비진은 큰 실수 없이 단단한 방어로 0-0 상황을 지켰다. 최근 수원 원정에서 5연패를 당했던 부산으로선 무실점 무승부도 나쁘지 않을 결과였다. 윤성효 감독은 자신이 수원 감독 시절 만든 징크스를 무승부로 일단 끊을 수도 있었다.
앞선 4경기에서 침묵했던 정대세가 골이 가장 필요하던 순간 살아났다 (사진=수원삼성) |
수원을 구한 정대세, "나도, 팀도 간절했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 속에서도 득점이 나지 않던 경기는 후반 41분에야 승패가 갈렸다. 후방에서 길게 넘어온 공을 부산 수비진이 우왕좌왕하며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이범영까지 지나치게 전진한 상황이었다. 장학영이 헤딩으로 걷어냈지만 달려든 정대세가 다시 헤딩슛을 날렸다. 이범영이 몸을 던져 막아냈지만 공은 옆으로 흘렀고 쫓아간 정대세가 오른발 강슛으로 빈 골대 안으로 차 넣었다. 공이 골대 안으로 향하는 것을 본 정대세는 곧바로 양팔을 들어올리며 감격적인 자세로 골 세리머니를 했다. 벤치에서 초조하게 경기를 지켜보던 서정원 감독과 코칭스태프는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눴다. 세차게 두드려도 열리지 않던 철문을 부순듯한 분위기였다.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채운 2만 3,767명의 관중도 함께 환호했다. 수원은 남은 시간 동안 이 리드를 지켰고 3경기 연속 무승의 부진을 끊는 귀중한 승점 3점을 챙겼다. 2승 1무 2패, 승점 7점을 기록한 수원은 11위에서 단숨에 5위로 올라섰다.
경기 후 서정원 감독은 “여전히 기술적으로는 아쉬웠지만 강한 정신력으로 준비한 게 승리의 요인이다”라며 한숨 돌린 모습이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은 선수들의 절박함이 후반 막판 결승골로 이어졌음을 인정했다. 결승골을 넣은 정대세에 대해서는 칭찬을 하면서도 “주전도 컨디션이 안 좋으면 벤치로 가야 하고, 벤치에서 잘 준비하면 다시 주목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냉정한 시선을 유지했다. 투지로 얻은 귀중한 승리가 무의미해지지 않게 연승으로 이어가겠다는 뜻을 보였다. 결승골의 주인공 정대세는 “11위라는 순위가 부끄러웠다. 오늘 경기는 내가 뛰고 못 뛰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팀이 이기는 게 가장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스트라이커는 첫 골이 언제 터지느냐가 중요하다. 전지훈련 때 몸이 좋았지만 공식전에서 골이 터지지 않아 감각이 떨어진 상태였다”며 그 동안의 부진의 이유를 밝혔다. “투입되면 무조건 골을 넣어서 팀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강한 마음가짐이 있었고 그것이 결과로 나왔다. 바닥으로 추락하기 전에 올라왔다”고 말한 그는 “긴 부진에도 초조해하지 않고 조용히 내 뒤를 지켜 준 아내에게 고맙다”며 지난해 말 결혼한 반려자에게 첫 골의 영광을 돌렸다. 아쉽게 패배한 윤성효 감독은 “우리 의도대로 잘한 경기였지만 마지막 실수 하나에 승부가 갈렸다. 중요한 찬스에서 선제골을 넣지 못해 아쉽다. 다시 팀을 정비하겠다”며 경기 소감을 밝혔다.
프로야구 개막으로 인해 미디어의 관심이 야구에 집중된 상황에서 수원은 의미 있는 관중 수를 기록했다 (사진=연합뉴스) |
빅버드를 채운 2만3,767명의 의미
빅버드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수원월드컵경기장은 국내에서 가장 뜨거운 열기와 두터운 팬층을 자랑한다. 수원의 별칭이 축구수도인 이유다. 시즌 초반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이날 경기장을 찾은 관중은 2만 3,767명으로 오히려 수원의 홈 개막전이었던 상주전 관중(2만 2,185명)보다 더 많았다. 올 시즌 K리그 최다 관중 기록이기도 하다. 경기력 부진에 대한 질타는 있을 수 있지만 팀에 대한 애정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 기록이었다. 한창 때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이날의 관중 기록은 프로야구 개막에 온통 집중돼 있던 3월 마지막 주말에 나왔다는 데 의미가 있다. 미디어의 관심이 축구가 아닌 야구에 몰린 상황에서 수원은 오히려 더 많은 관중을 경기장으로 이끌었다. 최근 고조되는 K리그에 대한 위기론, 그리고 모기업 전환으로 인한 수원을 향한 불안한 시선을 날리는 성과였다.
이런 상황에서 패했다면 수원은 단순히 순위 뿐만이 아니라 흥행 면에서도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그러나 선수들이 경기장을 채운 관중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정신력으로 덤벼 들었고 결국 정대세의 결승골로 승리로 팬들의 열정에 보답할 수 있었다. 서정원 감독은 “우리가 가진 경기력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경기를 거듭했다. 홈에서만큼은 이걸 털고 싶었다. 부진 속에도 경기장을 찾아 준 많은 관중을 보며 선수들의 마음가짐과 정신력이 강해졌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는 “홈에서는 우리 팬들이 즐거운 경기를 볼 수 있게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수들이 잘 받아들여줬고 준비를 했다. 그런 결과가 오늘 이렇게 나왔다”며 기쁨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