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선 장소로 전국적인 명성을 가진 롯데호텔 부산본점 로비 라운지. 지난 25일 오전 8시. 이른 아침부터 로비 라운지에서 맞선을 보는 커플이 있다. 근데 화기애애해야 할 맞선 분위기가 이상하다. 심드렁하게 앉아 있는 여자의 모습이 '부모님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왔나보다'라는 추측을 들게 한다. 심상치 않은 이 커플, 역시나 사고가 났다.
갑자기 한 여자가 로비 라운지로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남자를 끌어 당긴다. "일어나"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남자는 꼼짝도 안한다. 눈치를 보니 남자의 전 애인인가보다. 로비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려서 이 커플의 기싸움을 구경한다.
따지러 들어온 여자가 테이블 앞에 놓인 토마토 쥬스를 들고 남자에게 뿌릴 기세이다. 여자 관중들은 "그래, 본때를 보여줘라"고 응원한다. 순간 붉은 색의 토마토 쥬스를 자기 머리 위로 쏟아버린다. '헉!'. 구경꾼이 탄식을 한다. 이어서 맞선녀는 맞선남에게 오렌지 쥬스를 확 뿌리고 나가버린다. 토마토 쥬스를 뒤짚어 쓴 여자와 오렌지 쥬스를 뒤집어쓴 남자. 얼어붙은 것처럼 그 자리에 서 있는다.
민망한 상황! 누구라도 말려줘야 할 것 같다. 다행히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그들에게 뛰어간다. "컷! 좋았어요. 감정을 조금 더 끌어 올려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한 번 더 해 볼까?"
이 무슨 상황인가. 뭔가 이상하다. 실제 같은 이 상황은 드라마 속 한 장면이다. MBC가 오는 2월 12일부터 '글로리아' 후속으로 방영하는 새 주말드라마 '반짝 반짝 빛나는'의 촬영 현장이다. 드라마 제작진은 자신들이 원하는 그림을 찾기 위해 40여 명의 스태프, 배우를 데리고 부산까지 내려와 롯데호텔에서 사흘째 촬영 중이라고 전했다.
열연을 펼쳤던 이들, 다가가서 보니 김현주와 이유리, 정태우다. "오랜만에 하는 드라마 촬영이라 그런지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되요. 근데 이런 긴장감, 좋네요." 1년반 만에 드라마로 얼굴을 보이는 김현주는 의욕이 넘친다고 했다.
얼굴과 옷에 묻은 토마토 쥬스가 찜찜할 것 같은데 다음 장면을 위해 닦지도 않는 여자는 '국민 며느리'로 알려진 탤런트 이유리다. 인사라도 하려는데 한창 감정이 올라 있어 말 붙이기가 민망하다.
"유리 씨가 연기를 할 때는 푹 빠지는 스타일이예요. 저희들도 유리 씨 스타일을 아니까 다가가지 않죠. 데뷔 이래 처음으로 하는 악역이라 유리 씨에겐 이 드라마가 굉장히 특별해요."
이유리 매니저가 지금은 이야기를 나눌 상황이 아닌 것 같다며 근황을 대신 소개해준다. 가난한 시절 함께 고생했던 연인을 버리고 재벌집 여자를 잡으려는 남자로 탤런트 정태우가 열연중이다. 며칠 전 PD가 지질한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보철같은 걸 해도 재미있겠다며 지나가는 말로 했는데 당장 보철장치를 하고 와 스태프들을 감동시켰다. 더군다나 일회용이 아니라 한 달 이상은 뺄 수 없는 진짜 보철이란다. 그만큼 이 드라마에 대한 열정이 강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랑했어! 무지하게 사랑했다고! 그렇게 사랑했기 때문에 이렇게 헤어지는 게 힘드는 거 아냐. 근데 나도 이제 명품 인생 살아보고 싶다고…." 자기를 버리고 맞선을 볼 수 있냐는 이유리의 다그침에 정태우가 폭풍 대사를 퍼붓고 있다. 똑같은 장면, 똑같은 대사를 카메라의 각도에 따라 10여 차례 넘게 한다. 3시간이 넘게 한 장면을 찍고 있다. 이토록 꼼꼼하게 장면을 만드는 이는 주말 드라마에 처음 도전하는 노도철 PD.
"주말드라마 PD로는 제가 젊어요. 젊은 감각의 주말극을 기대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6개월 전부터 작가와 만나 이 드라마를 준비했죠. 경쾌하고 통통 튀는 밝은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제가 가장 잘 하는 분야니까요."
앞서 노 PD가 연출했던 '종합병원2'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보여준 유쾌하고 따뜻한 느낌을 이번 주말극에서 제대로 꽃피워보겠단다. 노 PD는 배우들과 촬영 중간에 자주 대화를 하며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데 애쓰는 모습이었다.
1년 반 만에 드라마를 다시 한다는 탤런트 김석훈도 이날 자신의 촬영분이 몇 개 없는데도 하루 종일 현장을 떠나지 않고 진지하게 드라마 분위기를 익히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은 출생의 비밀로 인해 한순간에 인생이 뒤바뀐 여자의 성공스토리이다. 김현주가 워커홀릭 커리어우먼인 한정원으로 출연하며 이유리가 그와 인생이 바뀌는 악역으로 연기를 한다. 김석훈은 기자 출신의 까칠한 편집장으로 두 여자와 얽힌다. 고두심, 장용, 박정수 등 중견 연기파 배우들도 함께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