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시자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의 흠을 잡아 죽이려고 혈안(血眼)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셔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이 성전 안에서 매매하고, 환전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소동을 벌이셨으니, 성전의 최고권위를 갖고 있는 제사장들이나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고깝게 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트집을 잡으려고 하는데, 이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트집을 잡으려고 해보는데, 오히려 말문이 막히는 상황만 반복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공격은 쉼이 없었습니다. 이제 바리새인과 헤롯당 사람들이 사람을 예수님께 보내어 예수님을 공격하려고 합니다(13절). 바리새인과 헤롯당은 서로 견해가 달라 적대적인 관계라고 봐도 되는데, 예수님을 공격하기 위해서 이들이 함께 뭉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찾아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 묻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로마에 세금을 내는 것을 반대하는 편이었고, 헤롯당은 로마를 우호적으로 대하며 정치적인 위치를 확보하려고 하는 자들이기에 로마에 내는 세금에 충실하게 납부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물론 이 세금 내는 문제를 예수님께 가지고 나와서 예수님의 의견을 묻고자 하는 것도 있었겠지만, 예수님께서 어떤 편을 지지하더라도 결국 예수님은 한쪽의 공격을 받아 어려움을 당하게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치켜세우는 듯한 발언으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참되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다고 치켜세우면서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신다고 높여줍니다(14절). 이 말은 ‘그러니 속 시원하게 네 마음 속에 있는 말을 해 봐라’라는 의도입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이야기해달라고 치켜세운 것입니다. 그래야 어느 한 편의 견해를 지지하는 말씀을 할 수 있고, 그러면 예수님이 올무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혜롭게 대응하십니다. 그들에게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라고 하셨고, 그들은 데나리온을 가지고 옵니다(15절, 16절). 일 데나리온은 그 당시 일반 노동자들의 하루 품삯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는데, 유대인들도 매년 성인 한 사람이 일 데나리온씩 로마에 세금을 내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 데나리온에는 그 당시 로마 황제는 카이사르 티베리우스(Tiberius Julius Caesar Augustus)였는데, 이 티베리우스의 얼굴이 새겨져 있었고, 동전 앞면에는 “존엄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인 티베리우스 케자르”라는 문구가, 뒷면에는 “최고의 제사장”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화폐를 사용한다는 것은 그 통치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동전에 있는 형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으셨고, 그들은 가이사의 것이라고 대답합니다(16절). 그러자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말씀하십니다(17절). 그 당시 성전에 내는 헌금이나 성전세는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세겔로만 받았던 것을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답변은 지혜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세상에서의 납세 의무를 다해야 하겠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면 하나님의 것에 대해서 그 의무를 잊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기도 합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의 대답에 놀라워하며 물러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기다렸다는 듯이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또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18절). 사두개인은 다윗 시대의 제사장이었던 사독의 후손들을 일컫는 말로, 사두개인들은 제사장직을 맡고 있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율법(모세오경)에 나오는 문자적인 내용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하는 이들이고, 육신의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부활”이란 주제로 예수님께 토론을 벌입니다. 이들은 신명기 25:5, 6의 말씀을 근거로 한 “계대결혼법”(繼代結婚法) 혹은 “형사취수법”(兄死取嫂法)이라고 불리는 율법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일곱 명의 형제가 있는데, 맏형이 결혼하여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어서, 계대결혼법에 의거하여 둘째가 그 형수를 취하여 결혼하였고, 그런데 그 둘째도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어서 다시 셋째가 그 형수를 취하여 결혼하였고, 그런식으로 일곱째까지 그 형수와 결혼하였고 자식이 없이 죽었다면, 나중에 부활하였을 때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19절~23절). 이들은 이런 문제를 보았을 때 부활이란 것은 매우 상식적이지 않다고 물은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24절)라고 답하십니다. 구약성경에서도 부활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욥 19:25, 26; 시 73:25; 겔 37:1~14; 단 12:2).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을 때, 하나님 자신을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상기(想起)시키시며(26절),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미 죽은 자를 일컬어서 “누구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고 하시며,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살아있다는 것의 표현이라고 말씀하십니다(27절).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창조주이십니다. 생명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 후에 누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과는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25절). 부활하면 천사들과 같다는 말씀은 우리가 천사의 지위를 얻는다는 말씀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과는 다른 존재로 살아가게 된다는 표현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유한(有限)한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영생(永生)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니 이 땅의 제도와는 다른 하나님 나라의 체계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가 될 것이기에,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법칙에 따르게 될 것이기에 이 땅의 제도로 하나님의 나라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우리가 경험한 것만으로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과는 아주 많이 다른, 거의 새로운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예수님을 판단하려고 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거부하거나 비난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유한(有限)한 존재이기에 전지(全知)하지 않은 존재임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복된 삶이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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