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살던 뒤안에/정양
참새떼가 요란스럽게 지저귀고 있었다
아이들이 모여들고 감꽃들이
새소리처럼 깔려 있었다
아이들의 손가락질 사이로
숨죽이는 환성들이 부딪치고
감나무 가지 끝에서 구렁이가
햇빛을 감고 있었다
아이들이 팔매질이 날고
새소리가 감꽃처럼 털리고 있었다
햇빛이 치잉칭 풀리고 있었다
햇살 같은 환성들이
비늘마다 부서지고 있었다
아아, 그 때 나는 두근거리며
팔매질당하는 한 마리
구렁이가 되고 싶었던가
꿈자리마다 사나운 몰매 내리던 내 청춘을
몰매 속 몰매 속 눈 감는 틈을
구렁이가 사라지고 있었다
햇살이, 빛나는 머언 실개울이 환성들이
감꽃처럼 털리고 있었다
햇빛이 익는 흙담을 끼고
구렁이가 사라지고 있었다
가뭄 타는 보리밭 둔덕길을 허물며
팔매질하며 아이들이 따라가고 있었다
감나무 푸른 잎새 사이로
두근거리며 감꽃들이 피어 있었다
<시 읽기> 내 살던 뒤안에/정양
한 편의 시에 전율과 감동이 한꺼번에 올 수 있을까. 정서적 충격과 경이감을 뚫고 역사처럼 생명력을 가짐과 동시에 사실과 행위의 인간적 형상화를 토대로 시는 삶의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 정양 시인의 「내 살던 뒤안에」는 수준 높은 언어 감각이 삶에 대한 통찰력으로 확산되면서 비상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의 울림을 얻는다.
뒤안에 “감꽃들이/새소리처럼 깔려 이”다는 비유는 생생하다. 구렁이에 놀란 아이들 손가락질 사이로 “숨죽이는 환성들이 부딪”치고, “새소리가 감꽃처럼 털리”는 눈부심을 지나 구렁이 몸에서 “햇빛이 치잉칭 풀리”는 데로 닿는 경이로운 활력은 언어 미학이란 말 한참 위에서 반짝인다.
새소리와 팔매질, 감꽃과 손가락질과 햇빛이 구렁이에 맞물려 “햇살 같은 환성들이/비늘마다 부서지”는 정황은 차라리 전율이다. 살아서 못된 짓을 일삼는 자가 구렁이로 환생한다는 속설을 믿었을 사람들, 순박하달 수밖에 없는, 누군가에게 이용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저주가 구렁이 몸에 몰매처럼 감기는 것을 보면서 화자는 “아아, 그 때 나는 두근거리며 팔매질당하는 한 마리/구렁이가 되고 싶었던가”라고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시인의 연보를 읽어본 독자는 알겠지만 이날은 6·25전쟁 초에 행방불명된 줄로 알았던 아버지가 집에 돌아온다고 점쟁이가 예언한 날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 동족상잔만큼은 막아보자고 사회 운동을 하다가 암살당한 여운형 선생의 최측근이었다. 집안의 전답까지 팔아가면서 동족 간의 전쟁은 막아보고자 전력을 기울였다는 사회 운동가, 그런 시인의 아버지가 집에 돌아온다던 날 구렁이가 나타난 것이다. 시인의 꿈속에까지 따라와 “몰매 속 몰매 속 눈 감는 틈”으로 사라지는 실체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가슴 두근거리며 “한 마리/구렁이가 되고 싶었”다는 서늘한 고백이 왜 현재로 재생되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시가 역사의 숨통을 푸고 풀어야 할 과제이다.
저주의 대상이 된 구렁이는 생물이 아니라 부도덕한 집권 세력이 만든 불순한 상징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정양 시인이 『백수광부의 꿈』에서 밝힌 것처럼 김유신 김춘추 부대에 짓밟힌 백제의 아녀자는 궁녀였고, 갑오농민군은 화적패였으며, 왜정 때 독립군은 비적 또는 마적 떼였고, 제주도에서 거창에서 지리산에서 횡성에서 골령골에서 노근리에서 떼죽음당한 양민들은 빨갱이였으며. 광주항쟁을 주도하다가 죽어간 여사들은 폭도였다는―기득권 세력이 조작해낸 기막힌 왜곡을 모르는 이도 없다.
―이병초, 『우연히 마주친 한 편의 시』, 형설출판사,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