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는 어떻게 현재가 되는가
― 프랑수아 줄리앙의 탈합치와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시학으로 읽는 송정자의 「하심주」(Ⅰ)
권대근
문학박사, 중국 하북미술대 객좌교수
"삶은 익숙함과의 일치 속에서가 아니라, 그 일치가 흔들리는 순간 다시 시작된다."
— 프랑수아 줄리앙
Ⅰ. 로그인
풍류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삶이다. 문학은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예술이 아니라, 오래된 것을 현재로 되살리는 예술이다. 역사는 과거를 기록하지만 문학은 과거를 현재의 감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수필은 단순한 체험의 기록이나 교양의 전달을 넘어, 지나간 시간과 현재의 삶을 연결하는 가장 인간적인 문학 장르라 할 수 있다. 좋은 수필은 독자로 하여금 "그때 그랬다."라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금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겠다."라는 존재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만든다.
송정자는 기존의 수필에 대한 인식을 극복하고 본격수필의 새로운 지평을 모색하는 작가다. 문학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진신을 재구성하는 작가, 신춘문예 출신, 제3회 권대근문학상 수상작가 송정자의 「하심주」는 바로 이러한 문학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겉으로 보면 이 작품은 절기와 다산 정약용의 풍류, 연잎의 효능, 복날 삼계탕, 친구와의 추억을 엮은 생활수필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품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생활정보나 역사적 교양을 전달하는 글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풍류를 오늘의 삶 속으로 불러내는 '감각의 문학'임을 알 수 있다.
이 수필은 정독수필반에서 합평을 하면서 가장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이 수필의 중심에는 '하심주(荷心酒)'가 있다. 연잎을 타고 줄기 속으로 흘러내리는 술을 받아 마시는 선비들의 풍류는 단순한 음주 문화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의 태도이며, 절기를 따라 살아가는 시간의 철학이고, 벗과 더불어 세계를 음미하는 공동체의 미학이다. 작가는 이러한 풍류를 역사 속 이야기로 남겨두지 않는다. 친구가 건네준 연잎 한 장과 삼계탕을 끓이는 자신의 부엌으로 가져와 현재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과거의 풍류가 현재의 식탁으로 이어지는 순간, 문학은 시간의 간극을 넘어선다.
이러한 작품의 성격을 가장 잘 설명하는 철학이 프랑수아 줄리앙의 '탈합치(Dé-coïncidence)'이다. 줄리앙은 인간이 세계와 완전히 일치한 상태에서는 새로운 삶이 시작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익숙한 생활방식, 반복되는 사고, 굳어진 감각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합치(coïncidence)'는 안정감을 주지만, 동시에 삶의 가능성을 닫아버린다. 탈합치는 바로 그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순간이다. 늘 보던 풍경이 어느 날 갑자기 낯설게 다가오고, 평범한 일상이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는 순간, 삶은 다시 생성된다.
추상적인 현실을 보다 심미적인 가치를 지닌 삶의 실상으로 구현하는 송정자의 「하심주」는 이러한 탈합치의 구조를 매우 자연스럽게 구현한다. 현대인의 복날은 대개 삼계탕을 먹고 더위를 견디는 날이다. 그러나 작가는 복날을 이야기하면서 곧장 다산의 죽란시사와 하심주를 불러낸다. 독자는 익숙한 복날의 풍경에서 벗어나 조선 선비들의 연못가로 옮겨 간다. 절기는 더 이상 달력 속 날짜가 아니라 풍류를 실천하는 시간이 되고, 복달임은 단순한 보양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는 문화적 의식으로 변모한다. 이러한 감각의 이동이야말로 줄리앙이 말하는 탈합치의 문학적 구현이다.
그러나 「하심주」의 성취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작품에는 독자의 감각을 머물게 하는 공간들이 있다. 죽란, 서련지, 연밭, 친구의 집, 부엌 등은 단순한 사건의 배경이 아니다. 각각의 공간은 기억을 품고, 상상력을 길러내며, 존재를 성찰하게 만드는 시적 장소로 기능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의 시학』을 떠올리게 된다. 바슐라르는 집, 다락방, 서랍, 물, 숲과 같은 공간을 단순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인간의 기억과 상상력이 거주하는 장소로 이해하였다. 공간은 삶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삶을 생성하는 존재의 터전이다. 인간은 공간 안에서 꿈꾸고, 기억하며, 자기 존재를 형성한다.
나름의 고유한 미적 향기를 담고 있는 작가 송정자의 「하심주」에서 연못은 단순히 연꽃이 피는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풍류가 탄생하는 장소이며, 자연과 인간이 서로 귀를 기울이는 공간이다. 부엌 역시 단순한 조리 공간이 아니라 친구의 마음이 다시 살아나는 기억의 장소가 된다. 연잎은 삼계탕의 향을 더하는 식재료가 아니라 우정을 품은 상징으로 변한다. 이처럼 공간과 사물이 현실적 기능을 넘어 시적 존재로 변모하는 과정은 바슐라르의 공간시학이 설명하는 상상력의 본질과 깊이 맞닿아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역사와 체험을 절묘하게 결합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은 수필이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는 데 머물거나, 반대로 개인적 체험만을 나열하는 한계를 보인다. 그러나 「하심주」는 다산의 풍류를 자신의 경험과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역사적 사실은 교양이 아니라 체험의 배경이 되고, 체험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문화적 기억으로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조선 선비들의 연못과 현대인의 식탁을 하나의 시간으로 경험하게 된다. 과거와 현재는 병렬되지 않고 서로 스며든다. 이 작품이 좋은 수필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좋은 수필은 사실을 많이 알려주는 글이 아니라, 삶을 다르게 바라보게 만드는 글이다. 독자가 작품을 덮은 뒤에도 연잎 하나를 보며 친구를 떠올리고, 절기가 바뀔 때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나누고 싶어진다면, 그 문학은 이미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을 획득한 것이다.
따라서 「하심주」는 연잎의 효능을 말하는 글도, 다산의 풍류를 소개하는 글도 아니다. 그것은 잊혀가는 풍류를 오늘의 삶으로 다시 불러오는 감각의 문학이며, 과거를 현재의 시간 속에서 다시 피워내는 존재론적 수필이다. 이 평론은 이러한 관점에서 프랑수아 줄리앙의 탈합치와 가스통 바슐라르의 공간시학을 방법론으로 삼아 독자를 깊은 산속으로 끌고 들어가서 스스로 깨끗한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작가 송정자의 「하심주」의 문학적 구조와 미학적 성취를 분석하고, 왜 이 작품이 현대수필의 중요한 성과로 평가될 수 있는지를 현미경을 들고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