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
해변 버스킹 무대
해운대
10월 둘째 주말을 맞아 밝은 달빛 아래 해운대가 들썩였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하얀 파도가 달빛에 부서지고 사막처럼 드넓은 백사장은 이국적인 풍광을 연출했다. 이어령 선생이 말했던가. 우린 흥과 끼가 많은 민족이라고. 오랜 세월 해운대 백사장은 바닷물에 모래가 쓸려나가 해마다 복원하느라 골치를 앓았는데 기존 면적보다 엄청 크게 백사장을 넓히면서 수중에 방파제까지 설치해 큰 성공을 거둔 후 백사장은 이제 끄떡없게 됐다.
해변산책로도 배로 넓혀 백사장과 균형을 맞추자 그 풍광이 확 달라졌다. 내외국인 숫자가 거의 반반일 정도로 해운대는 외국인이 많이 찾는다. 그만큼 매력적인 곳이란 얘기다. 10여 곳 버스킹 무대는 바닥만 깔았고 객석은 산책로에서 백사장으로 내려서는 계단을 이용했다. 관중과 가수의 거리라야 불과 3~4미터밖에 안 된다. 청중이 많이 몰린 곳은 200~300명을 넘었고 그들은 가수에 몰입해 응원하면서 국내 으뜸 관광명소 해운대의 밤을 즐겼다.
취했는지 자신도 한 곡 불러보겠다고 나서는 중년남자도 있었다. 버스커로선 난감한 일이겠지만 그는 노천 노래방으로 착각한 것 같았다. 중년의 버스커는 혼자서만 노랠 부르다가 내가 그 앞을 지나자 반가웠던지 말을 걸어왔다. 자신도 젊었을 땐 노래를 잘했다는 푸념이었다. 옆 무대에서 신나게 노래하며 관객과 호흡하는 가수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 무대에서 희망곡을 묻는 버스커에게 내가 먼저 "아파트!'라고 답했더니 바로 아파트가 흘러나왔다.
20여 년 전, 와이키키 해변로에서 목격한 버스킹 무대는 구경꾼이 많아야 10여 명 붙어섰다가 한 곡 끝나면 우르르 흩어지곤 했다. 그것도 딱 한 곳밖에 없었다. 해운대 버스킹 무대가 많아서 자랑하는 게 아니다. 서로 옆에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무대간 거리를 좀 더 넓혔으면 좋겠다. 그러고 심사를 거쳐 버스커를 뽑았으면. 한두 명 관중 앞에서, 아예 관객 없이 홀로 쓸쓸하게 노래하는 버스커는 그 앞을 지나는 사람이 민망한 때문이다.
지하철 해운대역에서 만난 아래 독일인 남녀는 내가 찍어준 두 사람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짧은 영어라 소통이 제대로 되진 않았지만 나의 명함을 주면서 본인의 메일주소를 알려주면 오늘 해운대 풍광을 담은 사진을 몇 장 보내주겠노라 했다. 8년 전 여름, 처가 형제들 4부부가 보름 동안 자유여행으로 다녀온 독일 얘길 두서 없이 전했고 남자 휴대폰 카메라 화면 비율을 1:1에서 9:16으로 바꿔주었더니 엄지척으로 화답했다. 둘은 서면역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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