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등아 날아라
기찻길 위로 바람이 지나갔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상점의 작은 종소리, 오래된 목조 건물의 그림자가 한데 섞이며 오후의 하늘은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대만의 산골 마을 스펀(十分). 좁은 철길 사이로 사람들은 소망을 적은 풍등을 들고 서 있었다.
그날 나는 문득 깨달았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쯤 날리지 못한 풍등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을.
붉은 풍등 하나가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안에는 아직 말이 되지 못한 바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사랑하고 싶은 마음, 오래 아팠던 시간, 지나간 후회, 그리고 늦게라도 행복해지고 싶은 간절함 같은 것들.
함께 여행 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두 손으로 풍등의 아랫부분을 붙잡고 있었고, 누군가는 넘어질까 조심스레 철길 위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그 모습은 꼭 어린 시절로 돌아간 사람들 같았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은 소망을 숨기는 법부터 배운다.
괜히 말하면 이루어지지 않을까 두려워지고, 누군가 비웃을까 마음을 접어 버린다. 그래서 어른들은 꿈을 말할 때조차 조용히 웃는다. 그러나 풍등 앞에서는 달랐다. 모두가 아이처럼 두 눈을 반짝이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소원을 적으셨어요?”
누군가의 물음에 한 여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행복하게 살고 싶지요.”
참 단순한 말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먹먹해졌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말.
그 쉬운 문장을 이루기 위해 사람은 얼마나 먼 길을 걸어야 하는가.
풍등은 바람을 먹으며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
처음에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 흔들렸지만, 따뜻한 열기를 품자 천천히 몸을 세웠다. 꼭 사람의 삶 같았다. 누군가의 위로와 사랑, 작은 희망 하나가 마음속에 들어오면 사람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풍등은 말없이 보여 주고 있었다.
나는 철길 아래 자갈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돌들이 서로 부딪히며 기차를 견뎌 내듯, 사람의 삶도 그렇게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어떤 날은 비가 오고, 어떤 날은 눈물이 흐르고, 어떤 날은 아무 이유 없이 외롭다. 그래도 우리는 다시 길 위에 선다.
풍등을 든 사람들의 손끝에는 설렘이 있었다.
바람이 조금 세게 불 때마다 모두가 동시에 웃었다. 풍등이 찢어질까 조심하면서도, 더 높이 날기를 바라는 마음이 얼굴마다 번져 있었다.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가난했던 시절, 마음껏 꿈꾸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던 날들. 그러나 사람은 이상하게도 가장 어두운 밤에 가장 밝은 별을 바라본다. 힘들었기에 더 간절히 행복을 원했고, 외로웠기에 더 따뜻한 세상을 꿈꾸었다.
풍등은 그런 마음의 모양인지도 모른다.
손으로는 붙잡고 있지만 결국은 놓아주어야 하는 것.
내 것이지만 영원히 품고 있을 수는 없는 것.
그래서 소망은 하늘로 보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긴다.
하늘은 조금씩 푸르러지고 있었다.
붉은 풍등은 사람들의 손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변 관광객들도 하나둘 휴대폰을 들어 그 순간을 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환하게 웃었고, 누군가는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 속에서 이상한 평화를 느꼈다.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고 삶은 여전히 버겁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나, 둘, 셋!”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손이 놓였다.
풍등은 천천히 떠올랐다.
마치 망설임이 많은 사람처럼 몇 번 흔들리더니 이내 하늘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고, 철길 위에는 잠시 박수소리가 퍼졌다.
나는 그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왜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내 마음속에도 아직 날리지 못한 풍등 하나가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살다 보면 사람은 많은 것을 잃는다.
젊음도 잃고, 사랑도 잃고, 때로는 가장 소중한 사람마저 떠나보낸다. 그러나 끝내 잃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면 아마 희망일 것이다.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 사람의 마음도 어둠 속으로 가라앉기 때문이다.
풍등은 높이 올라갈수록 점점 작아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표정은 더 환해졌다.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오히려 행복해하는 마음. 그것이 어른의 사랑인지도 모른다.
나는 하늘 끝으로 사라지는 붉은 빛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말했다.
“풍등아, 내 그리움도 함께 데려가렴.”
세월 속에는 말하지 못한 슬픔들이 있다.
가슴속 깊이 접어 둔 외로움과 미처 건네지 못한 사랑의 말들. 우리는 괜찮은 척 살아가지만 사실은 누군가에게 오래 위로받고 싶어 한다.
풍등은 그런 마음을 대신 품어 하늘로 날아가는 작은 새 같았다.
철길 위로 다시 기차가 지나갈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를 비켜 주었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하늘을 올려다보던 그 표정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누군가는 사진을 확인하며 웃었고, 누군가는 아직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마 저마다의 소원이 아직 구름 사이를 날고 있다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
여행은 결국 풍경을 보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만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낯선 나라의 골목에서, 오래된 철길 위에서, 붉은 풍등 하나를 날리며 사람은 비로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날 스펀의 하늘 아래에서 나는 알았다.
행복은 거창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웃으며 작은 소망 하나를 하늘로 띄워 보내는 순간 속에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인생도 결국 하나의 풍등이라는 것을.
잠시 빛나다가,
누군가의 바람을 품고,
하늘 어딘가로 조용히 날아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