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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귀한 은혜의 찬양 감사합니다.
무더운 7월 8월을 잘 보내고 제법 날씨가 시원한 9월 오늘 둘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2층에 조금 우리 자모실을 올라가셔서 조금 조용히 시키면 좋겠습니다.
우리 층에 자모실에도 조용 좀 시켜주세요.
오늘 말씀의 제목은 변질되지 않는 처음 사랑으로라는 말씀의 제목입니다. 변질되지 않는 처음 무엇으로 사랑으로라는 제목입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읽다 보면 한편으로는 굉장히 두려운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온통 알아듣지 못한 얘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해 달 별, 일곱 별, 흰말, 붉은 말, 재앙, 심판, 이상한 이름들, 이상한 짐승들, 종말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무섭고 두려운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요한계시록을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우리 성도들을 무섭게 하거나 두렵게 하려고 쓴 심판의 책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책에 기록될 당시에는 초대 교회 성도들이 로마 제국의 극심한 박해 핍박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단지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은 직장을 잃어야만 했고, 또 감옥에 갇히기도 했고, 또 수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던 때로는 죽음까지도 당해야만 했던 그런 엄청난 고난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고통에 빠져 있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이 편지를 그들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조금만 더 참고 인내하라. 내가 너희를 지키고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위로와 소망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은 오래전에 남의 얘기가 아닌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 즉 우리는 좋은 신앙의 본보기를 가지고 살아가라는 그러한 말씀입니다.
오늘 에베소 교회를 주신 말씀의 첫 번째 얘기는 끝까지 겸손하라는 말씀입니다. 끝까지 뭐 하라고요?
겸손하라
이 에베소 교회는 이 장점 칭찬이 아주 많은 교회입니다. 오늘 성경에 잘 나타냈는데요. 2절 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2절 3절 시작
아멘 자 보시면 내가 내 행위와 수고와 내 인내를 뭐 하고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니가 드러낸 것과 또 니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뭐 한다고요?
아노라 이렇게 우리 주님도 에베소 교회에 이런 참된 정말 헌신자로서 예배자로서 이렇게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에베소 교회가 잘한 점이 있다면 그들은 밤낮으로 수고하고 인내했다는 것입니다.
또 세상의 죄악에 빠지지 않고 정결한 삶을 살았다는 겁니다. 또 진리를 어지럽히는 거짓 사도들 이단들을 철저하게 분별해 낼 수 있는 그 분별력을 가지고 살았다는 겁니다. 그러니 주님은 이 교회 에베소 교회를 굉장히 칭찬해 주셨습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새벽 기도 빠지지 않고 봉사도 열심히 하고 신학적으로도 건강하게 신앙생활하는 그런 교회의 모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이런 교회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 위대한 칭찬에 이어서 책망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책망의 말씀이 바로 4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4절 말씀 시작
아멘 그러나 너를 뭐 할 것이 있다고요?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무엇을 버렸다고요?
사랑을 버렸다.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는 교회 같은데 가장 중요한 사랑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가장 중요한 알맹이가 빠져버렸습니다. 무엇이 빠져버렸다고요?
사랑에 빠져버렸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처음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여러분들 모두가 예수를 믿으면서 정말 그 처음 은혜 처음 사랑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 에베소 교회가 이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대요. 이 처음 사랑이란 정말 내가 아무런 조건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구원받았다는 그 은혜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고 오직 예수님 한 분으로만 만족하고 그래서 내가 주님만을 신뢰하고 주님만을 의지했던 그 처음 사랑, 그 고백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하지만 에베소 교회는 이 거리 가르침 또 그저 거짓 교리와 싸우다 보니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차갑고 냉랭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사장에 이 사랑에 빠진 채 그런 분석 판단 비판만 늘어놓고 신앙의 의무감만 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랑이 변질이 되었다는 겁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신천지로 인해서 굉장히 영적 침체기를 겪은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계속적으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만 신천지로부터 한국 교회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 당시 교회가 얼마나 애쓰고 힘써 왔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각 교회마다 신천지 주의해라, 신천지 경계해라 그런 강령이 내려졌습니다. 그래서 새 가족이 등록을 하더라도 제일 먼저 해야 될 것이 있었습니다. 신천지인지 아닌지 구별을 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이 신천지 명단을 확보하는 치밀한 계획까지도 세웠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합니다. 그 순수한 교인들조차도 색안경을 끼고 바라봐야 했던 일들이 있었던 겁니다.
물론 신천지로부터 교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그 분별 분석 판단은 잘하였지는 몰라도 잘하였는지 몰라도 정말 주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교회가 그 순수한 마음으로 그 사명을 실천하는 일에는 굉장히 약해졌습니다. 교회가 판단하고 분석하는 일에는 잘했을지는 몰라도 가장 중요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이 교회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원하는 교회로 세워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에베소 교회의 부족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나름 이단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려고 하고 분별하는 능력은 있었지만 더 큰 것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변질된 사랑에는 두 가지로 크게 나타납니다. 영적인 감각, 영적인 감사가 사라진 채 남들의 시선이나 형식적이고 의무감으로 하는 종교 활동으로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마음에 깊은 감사는 없고 껍데기만 남아 있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오래 믿다 보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요령만 늘어갈 뿐입니다. 이것이 오래 지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습관처럼 내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기복적인 신앙으로 빠질 수가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손이익을 계산할 조건의 사랑을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할 사람이 사람을 의식하기 시작합니다.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하나님 앞에 내가 예배를 어떻게 잘 드릴 것인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주보에 내가 낸 헌금이 잘 기록되어 나와 있는지, 내 이름이 잘 기록되어 있는지, 내가 지금 잘하고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이 알고 있는지, 내 신앙의 경력, 직분, 내 수고에 더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순수했던 주 하나님을 바라보고 봉사하는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의식하다 보면 사람을 바라보다 보면 결국은 우리가 적당하게 적당주의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교돈을 할 때 이 부부가 처음 결혼할 때 한번 생각해 보시면 신혼시절에는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행복합니다. 퇴근길에 남편이 사온 붕어빵 한 봉지에도 아내는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하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고 사랑의 감격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그저 집안일은 의무가 될 것이고, 대화 속에는 서로를 향한 따뜻한 관심보다는 잘잘못을 따지고자 하는 비판과 판단만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에베소 교회의 안타까운 문제였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을 잃어버려 차갑게 식어버린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다시 회복하고 어떻게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오늘 5절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5절 말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아멘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뭐 하고 뭐 하고 생각하고 뭐 하여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내게 가서 내 촛대를 그 자리에서 뭐 한다고요?
옮기리라. 제일 먼저 해야 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뭐 해라 생각해 보라. 생각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생각이 나야만 새로운 출발을 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감사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고 고백합니다만 그래 뭘 감사하느냐 뭘 감싸 하느냐 하는 것은 생각이 나야 이게 참 감사합니다. 저것도 감사합니다. 이 감사의 고백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생각이 안 나는데 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그건 때로는 위선이 될 수가 있고 가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조금 있으면 추수 감사절이 다가옵니다. 추수 감사절은 땡스기빙 데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땡스기빙 데이 이 땡스기빙 데이에게 원어가 있습니다. 그 원어가 싱크 생각하다로부터 출발이 됩니다. 생각하다. 즉 사나 감사가 뭐냐 생각으로부터 시작이 된다는 겁니다. 생각해 보니까 참 이것도 감사하고요. 저것도 감사하고요. 이 생각이 되니까 감사가 감사로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결단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 출발점이 어디인지 아십니까?
바로 생각입니다. 생각이 나야 무엇을 시작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이 나야지 잘못했습니다는 고백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조차 안 나는데 회개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생각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언제부터인지 내가 언제부터인지 하나님과의 관계가 서먹서먹해졌는가 언제부터인가 내가 예배의 감격도 없고 감사도 없고 왜 내 입에서 자꾸만 불평이 나오고 원망이 나오는지 그걸 생각을 할 수가 있어야 됩니다. 내 마음의 사랑이 짖기 시작한 그 원인을 정직하게 돌아보는 것이 바로 회복의 첫걸음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어디서 떨어졌는가를 생각해 보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생각이 들었다면 그 원인을 알았다면 겸손히 회개해야 합니다.
겸손히 뭐 해야 된다고요?
회개해야 된다. 여러분 회계도요. 누가 회개하라고 해서 하는 회계는 진정한 회계가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순수한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당신 잘못했으니 그 회개해야 돼. 그런다고 회개가 되는 것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반발만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내가 정말 잘못했구나 그렇게 깨닫게 될 때 불 같은 회개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회개는 단순히 내가 잘못 살아왔구나 후회가 아니라 그 방향을 완전히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처음 행위를 가져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순수한 마음, 그 뜨거운 마음, 그 간절한 마음,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는데 그저 내 입에서도 찬송이 울러 퍼지고 그저 주님 앞에 예배드리기만 하면 왠지 기쁨이 있고 감사가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그것이 바로 처음 사랑으로 회복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만약 회개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참 두려운 말씀이 나옵니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촛대가 옮겨진다는 것은 어떤 웬 건물 틀은 남아 있을지 몰라도 성령님의 역사, 은혜 마음, 감동의 역사는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에베소 지역을 살펴보면 참으로 놀라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과거 에베소는 이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고 항구에 도시로 아시아 최고의 도시였습니다. 또 에베서 교회는 당시에 교회의 중심지 역할을 감당했던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그 경고의 말씀을 무시하고 가볍게 여기고, 그러자 세월이 흐르게 될 때 항구가 흙모래가 쌓여서 배가 들어오지 못하게 되면서 도시가 완전히 폐허로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그 화려했던 에베소 교회는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그냥 기도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주님의 경고대로 촛대가 옮겨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역사적 사실 앞에 겸손히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몇 년 전에 유럽의 종교개혁 유적지를 탐방한 적이 있었습니다. 종교 개혁의 지역을 탐방하고 공부한다는 것은 굉장히 나름 도움이 되었습니다만 정말 아쉬운 것은 그 후손들이 종교 개혁을 끝까지 완수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그 지역에 보면 위대한 종교 개혁자들이 참 많이 있었습니다. 루터나 칼빈, 쩌빙글리 같은 걸출한 종교개혁자들을 많이 배출을 했습니다만, 그 믿음의 후손들이 그것을 이어가지 못할 때 너무나 영적으로 타락한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신앙의 부흥을 이루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금 유럽 교회가 어떻습니까? 유럽 교회를 가보면 그 거창한 화려한 예배당이 완전히 폐허가 되거나 그냥 유적지로만 문화 유적지로만 겨우 남아 있을 뿐입니다. 저도 당시에 몇 곳을 둘러보았는데, 학교 강의실로 사용이 되거나 영화관으로 운영이 되는 곳도 보았습니다. 제가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술집으로 운영이 되는 곳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화려한 그 예배당들이 다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곳에 예배하는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곳에 예배를 드리다 나이 드신 몇 사람은 겨우 남아 있을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화려하게 출발했다고 할지라도 지금 현재 그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냥 아 옛날이요. 그때가 좋았지 그때가 부흥했지 그때가 잘 나갔지 그렇게 말한들 그렇게 그것이 자랑이 되겠습니까? 오히려 부끄럽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과거에 잘 나갔던 시절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내가 지금도 잘하고 있는지 나를 돌아보는 사람이 정말 지혜로운 성도가 아니겠습니까? 지금 내가 하나님 앞에 변함없이 그 열정을 가지고 잘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 성도는 정말 복이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지만 과거에는 정말 화려하게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달려왔는데 지금은 다 식어버려서 은혜도 없고 감사도 없고 그냥 불평 원망만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으로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해 보면 신앙은 아무리 훌륭한 봉사, 섬김을 잘했다 할지라도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알맹이가 빠진 껍데기에 불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서 내 사랑이 식었는지를 생각하고 종교적인 행위가 아니라 회개하며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 앞으로 돌아와야 될 줄을 믿습니다.
그리고 7절 말씀 한번 보겠습니다. 7절의 말씀 시작
아멘 귀 있는 자는 성령의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에 무엇을 주어 먹게 하리라.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을 가진다고 한다면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성공했느냐, 어떻게 잘 살고 있느냐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만족하고 감사하고 그 순수한 신앙을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가장 귀하고 소중한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 주님 안에 차갑게 식어 있던 예배의 감격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내가 다른 것은 복을 받지 못했다 할지라도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 그 공로가 가장 크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처음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성도 여러분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