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일년 363일 영업하는 N아울렛.
어제부터 직원들은 고향으로 향하고 몇 일간은 꼼짝없이 홀로 매장을 지켜야하는 상황이 벌써 4년째 접어들었다.
그래서, 지난 주 해운대를 다녀왔고, 신불산 간월재로 비박을 다녀왔다.
아침 출근길에 올려다 본 하늘은 낯선 타인의 도시처럼 냉정했다.
잠시 기분이 내려 앉으려했다.
단골 가게에 들러 진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책상앞에 앉으니 명절 근무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내일이 명절인데, 아녀자들이 일 제쳐두고 백화점에 나올 일 없으니 당연히 한산하다.
그 간 사는 일에 바빠 사놓고 감상하지 못했던 dvd들을 챙긴다.
서점과 레코드 가게에 가면 알수 없는 충만감으로 안 읽던 책도 더 읽고 싶어지고, 잊고 지냈던 음원들과 연주가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 충동구매의 유혹과 늘 맞닥들이고는 했다.
몸이 가야 마음도 따라 가는건데, 내 마음은 몸 어디쯤에 숨어있는 걸까?
그렇게해서 들여온 비닐도 뜯지 않아 숨통이 답답했을 나의 아기들의 숨길을 열어주었다.
지난 주. 주문해 놓은지 오래된 말러의 음반들을 찾으러 풍월당에 들렀다.
왠지 휑하고 덤성덤성해진 진열대의 빈 공간을 보니, 가슴이 헛헛해졌다.
레코드샵의 본질은 음반으로 꽉 차야하는 것인데, 혹시 너마저....
이내 도리질하며 풍월당은 영원히 계속되어야 한다며 마음속으로 되뇌였다.
이전에는 음악관련 정보를 레코드 가게나 음악감상실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지만,
근자에는 FM 음악방송을 통해 듣게 되었다.
레코드가게에서는 진열된 음반들을 보며 내가 주도적인 선택을 하지만,
방송의 정보에 집중하다보며, 놓치는 것들도 생겨나고, 다양성이 좁아지지 않을까 가끔 생각해보기도 했다.
오늘의 첫 곡은 지난 20일 세상을 타계한 claudio Abbado를 추모하며 말러의 9번을 선택했다.
혹자들은 내게 요즈음 세상에 누가 cd내지는 dvd로 음악을 듣냐고들 하지만,
그 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음악은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다.
우선, 표지에 세계적인 명화 내지는 작곡가,지휘자,연주가들의 사진들이 시선을 잡아끈다.
미술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거의 접할 기회가 없던 명화에 끌려, 음반을 선택했던 일도 다반사였음을
고백한다. 그렇게 끌려 들어간 음악의 세계와 그림은 묘한 조화를 이루며 각인된다.
대표적인 작품이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일 것이다.
한 번 상상을 해보라!
레코드 가게에 들어서면 나의 간택을 기다리는 수많은 음반들을 접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침묵의 아우성이다.
나의 시선을 잡았던 음반.
호숫가의 커다란 느티나무아래 그늘진 여름을 한가로이 즐기며 누운 남녀.
과연 그 들은 어떤 음악과 연결되어 있을까 호기심이 무릇무릇 올라 올때, 난 실타래의 끝을 놓치지 않으려 가슴 조리는 사람처럼 오디오에 전원을 넣고 두근거렸던 그 잠깐의 설레임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 맥락이라면 LP시절이 훨씬 좋았다.
3만원이면 LP음반 10장에, 주인 할머니께서 한 장 더 골라보라시던 너그러움에 감복하며 가슴에 11장의 음반을 안고 집으로 뛸듯이 돌아와 방안 벽에 둘러 세워놓고 밤새 표지의 그림을, 내가 좋아하는 연주가들의 새로운 사진을 감상하며 밤을 지세우던 그 시절이 훨씬 좋았다.
눈이 음반을 읽어들이고, 손의 촉감이 음반을 느끼는 사이 고조된 감성이 봄빛 아래 꽃을 피우는 벚나무처럼 팽창하고,
자라는 쑥처럼 그렇게 성큼성큼 내 마음 안에서 초록쑥물되어 번져갔다.
음악은 그래야한다고 믿고 있다.
산 정상에 오르면 절대 늙지 않는 황금샘이 있다하더라도 나의 두 발로 직접 걷지 않고서는 저절로 도달할 수 없듯이,
좀 둘러가더라도 더 민감해야하고, 더 깊이감이 있어야한다고.
강과 산이 몇 번을 변해 기억으로만으로 찾아갈수 없어도, 체화된 본능으로, 강을, 산을,
그 강의 깊이만큼 그 산의 울창함만큼 그렇게 깊어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음악이라 할 수 있겠다.
난 그렇게 살 거다.
세상이 변하여 MP3음원이 난무한다하여도 난 여전히 음반가게 곁을 맴돌것이고,
CD가, LP가,DVD가 무거워도 눈으로 느끼며, 손으로 매만지며, 난 이고지고 살 거다.
말러 9번 마지막 4악장 연주를 끝낸 아바도는 포디엄에서 지휘봉을 손에 꼭 쥐고 남은 숨을 나누어 내쉬었다.
맨 앞자리의 비올리스트는 흐르는 땀을 닦아내지도 못하고 숨을 되받아 쉬는 듯 했다.
아바도도, 관객도, 단원들도 숨을 죽이며 감동적인 순간이 그 들의 곁에 다가온 것을 허락했다.
아마도 이 순간, 말러가 뒷짐지고 그 들사이를 잠시 걷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뒤돌아 미소지으며.
난 여전히 말러리안이다.
` After the last note, Abbado and his musicans remained motionless for the three minutes.
The audience joined them in this reinvention of silence before exploding into a standing ovation that went on and on, while the orchestra was bombarded by roses from the rows above the stage.`
첫댓글 CD가, LP가,DVD가 무거워도 눈으로 느끼며, 손으로 매만지며, 난 이고지고 살 거다....저도 그럴겁니다...ㅎㅎ...
어제 풍월당에서 카라얀70과 헤블러 박스를 정말 싼가격에 업어왔는데 이번 설연휴에는 음악에 취해 지내보려 합니다.
저도 지금 카라얀70과 헤블러 놓고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다른 싸이트보다 아주 저렴하게 구매했네요.^^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주 잘 나타났네요.
작년 12월부터 전집으로는 카라얀 70, 줄리니, 아바도 교향곡 전집을 구입했답니다.
아바도 음반은 설 지나 배송한다고 하구요.
이것 말고도 들을 것은 엄청(?) 많아 날마다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지요. ㅎㅎ
음악 좋아하는 사람은 혼자서도 완전 잘지낼수 있죠. 요즘은 캠핑장에 혼자, LP player는 갖고 오시는 분들도 봤어요. 급관심갔지만 방해될까 눈으로만 열심히 관찰했어요.
오랫만입니다
잘지내시죠~~?^^
진해 처가에 가려고 나섰는데 집앞 부터 막히네요
오늘중에 들어는 갈려나 모르겠네요....,
네. 지난 2년간 비박하느라 외도 좀 했습니다. 그래도 마음만은 늘 음악과 함께였죠.
진해면 많이 가셔야할텐데,
안전하게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연초부터 마음에 위로가 되는 글...잘 읽었습니다.^^
위로가 되셨다니 부끄럽습니다.^^
물푸레나무님..이제 얼굴좀 뵈야죠?? 예당에서요...ㅎㅎ
브람스님, 여전히 왕성하게 음악듣기 하시죠? 보고싶으네요. 예당에서 커피 한잔 해요.음악회때 갈께요.
요즘 캠핑하시느라 ... 얼굴도 안보여주시고 예당 뒷산엔 캠핑 안오시나요.
하늘나리님, 먼 길 마다않고 음악들으러 예당까지 다니시는 열정은 늘 부러움의 대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