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성탄 팔일 축제 제6일) 오늘을 그날처럼 아침부터 이유 없이 몸에 기운이 없고 마음도 우울했는데 이웃 동네 공항에서 큰 사고가 나서 많은 무고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정말 청천벽력 같은 사고를 당하고 하느님 앞에 서게 된 이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주님,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가뜩이나 나라도 어수선해서 마음이 불안한데 이런 큰 사고까지 터지니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땀 내며 운동을 해도 마음은 여전히 어둡고, TV를 켜도 눈만 그곳을 향해 있지 마음은 허공에 떠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누구 때문에 그런 건지 알고 싶고 그에게 벌을 주고 싶은 모양이다. 세월호, 이태원, 그리고 이번 사건까지 보수라고 하는 이들이 정권을 잡으면 이런 대형 인명사고가 난다는 미신적인 생각까지 하게 된다. 답답하고 불안하고 조급하니 그러는 거다. 내 무의식은 그 원인을 알면 그런 사고를 당하지 않을 거라고 여기는 거 같다.
어제는 정기 희년 개막 미사를 봉헌했고, 이번 희년의 주제는 ‘희망의 순례자’이고 우리의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을 거라고,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이라고(로마 5,5) 말했는데,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은 그런 말들을 별나라 이야기처럼 만드는 거 같다. 어두우니 빛을, 절망스러우니 희망을 말한다. 멋진 말인데 그것에 마음이 쉽게 동의 되지 않는다. 하늘나라만 생각하며 세상사에 무관심할 수도 없고, 깊은 관심을 가져봐야 이 엄청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 이도 저도 아니고 이것이고 동시에 저것인 길, 제3의 길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예수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대하는 게 쉽지 않다. 제자들은 그분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고, 성모님조차 당신 아들이 미쳤다고(마르 3,21.31) 생각하셨던 거 같은데 나 같은 죄인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제자들이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을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루카 13,2-3).” 불의의 사고는 하느님의 심판이 아니다. 그 사람처럼 경고하려고 그러신 건 더더욱 아니다. 누구나 그리고 언제나 그런 일을 당할 수 있고, 불의의 사고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하느님 앞에 서게 된다. 평소에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그때 황망하게 된다. 그 사고와 나라의 우환을 내 일처럼 여기되 그것에 내 일상이 짓눌리지 않게 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나와 함께 하시고 큰 십자가를 지고 앞장서 가시는 주님을 바라본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 나는 희망이 아니다.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다. 주님이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어, 그분의 부르심으로 우리가 지니게 된 희망이 어떠한 것인지, 성도들 사이에서 받게 될 그분 상속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게 되기를 바란다(에페 1,18).’
예수님, 한나 예언자는 주님이 아기였을 때 맏아들로서 성전에 봉헌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유명한 가문 출신도 아니고 나이도 여든네 살이었습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구원을 본 겁니다. 갓 태어난 주님을 보았던 그 목동들은 젊었고 들판에서 들짐승처럼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원을 체험하는 건 나이, 출신, 학력과 무관한 거 같습니다. 오늘이 그날인 거처럼, 하지만 죽어서도 하느님께 돌아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희망으로 오늘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오늘도 그리고 끝까지 저를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