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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3년간 주요 K리그 팀 감독들이 기자들로부터 각오나 시즌 구상 혹은 축구철학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스페인 대표팀 같은, 바르샤 같은, 아스날 같은 축구를 목표로 한다!”가 그것이다. 이 말은 즉, 짧고 정교한 패스의 연속과 이것을 가능케 하는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을 장착해 궁극적으론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축구를 지향하겠다는 뜻이다. 왕선재, 최순호 감독의 경우 높은 이상을 충족시키기엔 팀의 현실이 너무나 시궁창이었기에 실패하고 중도 하차했다. 반면 대전, 강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현실은 받쳐주는 편이었으나 지도력 자체에 하자가 발견돼 낙마한 황보관 전(前)서울 감독의 경우가 있다. 서울처럼 현실은 받쳐주는 편이지만 실상 패싱축구와는 거리가 멀고 이름값 있는 주요 선수 몇몇의 개인능력과 이젠 팀의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국면전환용 깜짝 영입에 의지해 이제 겨우 6강권에 진입한 수원 윤성효 감독도 있다.
지난해 패싱축구로 제주 돌풍을 이끌었던 박경훈 감독은 경기력 자체는 이번 시즌도 준수하지만 정작 6강 진입이 불투명해 고민이다. 그나마 포항 황선홍 감독이 현재까지 내용과 성적 두 마리 토끼를 훌륭하게 쫓고 있다지만 리그 후반기 들어선 꾸역꾸역 쌓는 승점과는 별도로 경기 내용면에서 황감독 본인도 인정했듯 스페인이나 바르샤, 아스날 축구를 말하긴 부끄러운 수준이다. 이렇게 정교하고 물 흐르듯 한 패스워크를 팀 전술의 기본으로 삼는 감독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요즘, 내용과 성적 모두가 좋아 콧노래 흥얼대는 감독이 한 명 있다. 바로 전북 최강희 감독이다. 그런데 그는 혹 지금처럼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데 실패했거나 어려움을 겪더라도 자신이 내뱉은 말 때문에 외부의 비판을 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 최강희 감독은 전북축구를 말 할 때 스페인, 바르샤, 아스날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이다. 지금 세계축구의 흐름을 선도하는 스페인 대표팀, FC바르셀로나를 많은 K리그 감독들은 선망하며 연구하고 자신의 팀에 이식시키려 애쓰는 것과 달리 최강희 감독은 기존 한국형 축구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최전방부터 시작돼 그라운드 곳곳에서 상대방을 질식시키기 충분할 정도로 이뤄지는 강력한 압박. 바람 같은 스피드로 양 측면을 허물어뜨린 후 다양한 높낮이의 크로스를 통해 상대 수비 조직력을 와해시키는 공격 전술. 이것들은 전통적인 한국축구의 색채이자 강점이었고 2002년 월드컵을 통해 보다 체력과 경기 운영능력이 좋아지면서 한층 세련되게 탈바꿈 했다. 반면 막강한 양 측면에 비해 이렇다 할 창의적인 플레이메이커가 없기에 중앙에서 풀어나가는 건 좀 약하다는 것, 그리고 수비 조직력이 엉성해 전체적인 팀의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단점까지 기존 한국축구의 문제점을 그대로 닮은 게 현재의 전북축구다.
특히 간판 스트라이커 이동국을 활용하는 측면이야말로 최강희 감독의 전북축구를 잘 설명하며 또한 이것은 현 국가대표팀 조광래 감독의 전술 운용과는 정면으로 배치되기에 흥미롭다. 최감독은 이동국이 동료들의 플레이를 살려주기 위해 전후좌우 가리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할라치면 정색하고 불필요한 체력소모 줄이라며 꼭 필요한 무브먼트를 제외하곤 주로 중앙에서의 플레이 즉, PK박스 안에서의 싸움과 해결에 집중해 줄 것을 주문한다. 반면 조감독 체제 하의 A대표팀에서 최전방의 꼭지점에 위치한 선수는 90분 간 스트라이커이자 윙어이고 미드필더이기도 해야 한다. 골은 누가 넣던 상관없이 말이다. 이렇게 K리그와 대표팀까지 몰아닥친 세계축구의 트렌드를 거부(?)하고 전통적인 한국축구의 강점을 그대로 계승-발전시킨 전북축구가 이번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8강전서 J리그 세레소 오사카를 만났고 두 경기를 통해 나타난 결과와 내용은 우리에게 많은 걸 시사한다.
일본축구 때려잡는 법은 이미 나와 있다. 하지만...
이번 ACL 8강전 두 경기 포함 조별예선에서의 만남까지 총 4차례 전북-세레소의 맞대결을 보고 개인적으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한국대표팀의 전력을 100으로 환산했을 때 전북은 80-85정도의 팀이라면 역시 일본대표팀을 100으로 봤을 때 세레소는 70-75정도 되는 팀이라는 것. 주요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도 전북이 세레소에 비해 앞서 있었다. 때문에 같은 선상에서 전북과 세레소를 놓고 보기엔 전북이 손해 보는 건 맞다. 하지만 굳이 이런 비교를 하는 것은 무게감에선 차이가 있더라도 일본대표팀과 세레소의 일치하는 그 축구 스타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가장 정점에 있다는 성인 국가대표팀이 추구하는 방향에 맞춰 J리그 클럽들은 물론 초-중-고-대학교 축구팀 모두 일사분란 하게 움직이는 건 이미 90년대 초중반부터 보여준 일본축구의 전형적인 모습 아닌가. 때문에 4차례 맞대결을 통해 ‘전북의 한국축구’가 ‘세레소의 일본축구’ 잡는 방식은 조광래호 출범 이후 유독 일본만 만나면 고전을 면치 못하는 대표팀 축구와 맞물려 국내 축구팬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더불어 ACL 무대에서 전체적으로 K리그가 J리그를 사냥 혹은 학살하는 분위기임에도 이에 편승하지 못하는 조광래호의 행보는 또한 리그팬들의 불만을 사기 충분하다.
물론 전북과 세레소는 2승 2패씩 나눠가졌다. 하지만 세밀하게 파고 들어가면 양 팀이 최정예멤버로 맞불을 놓은 것은 세 차례였고 거기서 전북은 2승 1패를 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건 3경기 모두 경기 내용에서 전북이 우세(홈 2경기)하거나 대등(어웨이 1경기)했다는 점이다. 홈-어웨이 가리지 않고 고유의 팀 컬러인 ‘한국형 축구’를 들고 나왔고 놀랍게도 오사카 원정에서마저 지극히 공격적인 축구를 펼쳤다. 최전방부터 강력하게 프레싱을 걸었고 모든 포지션에서 일본 선수들과 일대 일로 맞서는 상황을 자주 연출했다. 바로 이게 핵심이다. 대표급이건 리그용이건 전반적으로 한국 선수들에 비해 개개인의 역량이 떨어지기에 조직력에 목숨을 거는 일본 선수들에겐 일대 일의 대결은 쥐약과도 같은 상황이다. 게다가 양쪽 박스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터프하지만 정상적인 몸싸움과 명백한 거친 파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한국 공격수, 수비수들의 신체접촉은 일본 선수들의 육체적-정신적 피로감을 가중시킨다.
즉, 한일전에선 우리의 장점을 살리는 동시에 상대의 장점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속된 말로 ‘장땡’인데 가장 최근에 이 두 가지 요소의 조화에 성공한 사람은 허정무 전(前)대표팀 감독이었고, 이 조화가 빛을 발한 경기가 작년 5월 말 사이타마에서 열렸던 한일전이었다. 반면 조광래 감독 취임 이후 한국대표팀이 치른 총 3차례의 한일전을 돌이켜보면 우리 고유의 색깔을 감독이 추구하는 색깔로 바꾸는 시도까지는 괜찮은데 정작 상대의 장점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대표적인 게 혼다 게이스케다. 허정무 체제 하에선 지극히 한심해 보이던 존재가 조광래 체제 하에선 펄펄 날고 있다. 오죽하면 국내 축구팬들이 “조광래가 혼다 빅리그 보내려고 안달하는 모양!”이라 푸념할까. 자신의 패싱축구 철학을 주입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나머지 상대에 강점에 대한 대비를 안 하는 인상을 주는 현재의 조광래 감독이다. 특히 한일전이 심하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아시아를 벗어나 세계무대에 섰을 때 마주할 수밖에 없는 전통적 ‘한국형 축구’의 한계에 대한 고민도 동시에 해야 한다. 우월한 피지컬을 전제로 한 강력한 전(全)방위적 압박, 호쾌한 양 측면 돌파 위주의 스피디한 공격, 그리고 각 포지션별 일대 일 싸움에서의 우위 혹은 대등함이 아시아에선 경쟁력이 월등하다지만 과연 세계무대서도 그럴까? 월드컵에서 8강급 전력이 되는 팀들만 하더라도 한국의 그 압박을 무난히 헤쳐 나온다. 양 측면 공격은 스피디한 맛은 있지만 결정적인 순간 돌파가 되지 않고 크로스의 정확도는 속된 말로 ‘안습’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수 개개인의 역량이 전반적으로 한 수 아래인지라 8강급 정도 되는 팀의 선수들과 일대 일로 맞서는 상황은 한국선수들에겐 쥐약이다. 일대 일에서 공격수들은 좀처럼 상대를 뚫지 못하고 수비수들은 상대에게 쉽게 뚫린다.
때문에 일본축구가 한국축구를 상대할 때 그러하듯 이번엔 우리가 세계무대에선 그런 팀들을 상대로 철저히 조직력으로 맞서야 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상황에 이르면 일대 일에서 밀리니 고배를 드는 건 매번 우리다. 아직까지 각 연령별 세계대회에서 한국축구가 보여주는 명백한 한계다. 때문에 조광래 감독은 현재 한국축구가 보여줄 수 있는 전력의 최대치인 원정 월드컵에서의 16강 전력을 8강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물리력으로 대표되는 한국축구 전통의 장점을 어느 정도(혹은 상당 부분) 포기하면서까지 패싱력과 창의력을 주입하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포지션 파괴, 한층 더해진 무브먼트의 양과 질에 대한 부담감 등이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고 수많은 선수들이 감독 입맛에 따라 대거 대표팀에 들어왔다 나갔다를 소집 때마다 반복하니 전체적으로 팀에 짜임새가 없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고 내가 조광래 감독이 지금 보여주는 대표팀 축구를 완전 지지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감독의 새로운 시도와 그를 위한 실험 자체는 존경하고 지지하지만 실험을 한다면서 정작 국내파 재목들에 대한 기회 부여에 인색한 반쪽짜리 실험으로 일관하는 모습, 경기 중 그리고 경기장 밖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이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한 모습 등은 매번 대표팀 경기를 접할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든다. 하지만 긴 호흡으로 돌아봤을 때 조광래호가 현재까지 걸어온 길이 전체적으론 나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대표팀이 고유의 팀 컬러를 바꾸는 커다란 진통을 겪으면서 유독 문제가 되었던 상대는 일본 하나였을 뿐 나머지 상대들과의 대결에선 한창 새롭게 입히는 색깔로도 그럭저럭 괜찮은 모습을 보였던 점은 아직 우리가 조광래 감독에 인내심을 가져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본다.
동시에 이번 시즌 ACL 무대에서도 J리그 팀들을 확실하게 때려잡은 전북, 수원, 서울 중 전통적 ‘한국형 축구’의 완성형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전북이 개인적으론 이번 ACL에서 우승을 차지해 연말 세계 클럽선수권 참가 자격을 획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체적인 수비 조직력은 불안하다는 게 흠이지만 강력하고 호쾌하면서도 중앙 미드필더들의 정교한 패싱력의 부재를 에닝요와 루이스의 발재간과 창의력으로 절묘하게 상쇄시킨 전북의 스피디한 공격축구가 과연 유럽의 바르샤나 남미의 산토스를 만났을 때 승패를 떠나 얼마만큼 보여줄 수 있는지 정말 보고 싶기 때문이다. 여기서 전북이 어느 정도 하느냐에 따라 대표팀 조광래 감독이 진행 중인 실험의 폭과 깊이에 대한 반발이 더 해지거나 덜 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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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전북이 플레이메이커가 없다라...;
그러게요. 루이스는 폼으로 있나
전북이 수비조직력이 약한대 전남에 이어 실점 2위
큰 줄기에서 동의합니다. 대한민국이 일본 상대로 최대 장점은 하드웨어(높이, 파워)죠.
바르샤 축구를 하려면 일단 무게중심이 낮은 선수들이 많아야함. 키가 커면 불리한것인데 신체적특성도 고려해야한다고 봅니다. 순간반응속도가 더 빨라야되고 민첩성이 중요한데 무게중심이 낮은 선수들이 아무래도 더 쉽습니다. 대표팀의 고질적인 문제가 스트라이커가 측면을 오가면서 움직여야되는데 맨유나 바르샤가 왜 각각 벨바 대신에 치차리토를 그리고 이브라히모비치를 버리고 비야나 페드로를 중용하는지 생각해볼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