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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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을 깨서 유리잔에 넣을 때였다. 달걀을 가득 담아 테이블에 유리잔을 내려치면 그 잔이 자신만의 달걀을 낳을 것 같아서. 하지만 내려치니 깨지는 건 내 앞의 창문이었고 깨진 창문 사이로 여름밤과 그 밤의 소리들과 새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밤보다 어두운 새들이 부리로 별을 나르고 있었다. 방은 이제 별빛으로 가득했고 별을 나르던 새들은 테이블 위에 앉아 있었다. 새들을 만져보니 쉽게 구겨졌다. 누군가가 종이로 접어놓은 새였다. 실수로 새들을 바닥에 떨어뜨리니 쨍 소리를 내며 완전히 부서졌다. 내 방에 들어와 점점 퍼져가던 여름밤도 새들이 부서지는 소리에 놀란 듯 창문 밖으로 빠져나갔다. 한순간, 여름밤의 소리가 사라졌고 빛을 내던 별들도 껍데기만 남아서 나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에서 사람의 그림자를 보았다. 손을 뻗으면 그 그림자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아 눈을 감은 채로 손을 펼치자 손가락 사이로 그림자는 빠져나가고 방 안엔 오직 깨진 창문과 테이블 밑으로 흘러내리는 달걀만이
서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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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을 하나 장만했어요
바닥에 내려놓는
희고 네모난 것입니다
무엇을 넣어야 할까
넣으려 다짐한 것들은
들어가지 않아서
요즘엔 그래서
서랍에 저를 넣어두고 다니며
서랍만큼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랬더니 모두들
사람되었다며
칭찬해
줍니다
빛바랜 야광별 대신
파리 내장이 무수히 박혀 있는 천장을
바라보며
파리가 아무리 성가시게 굴어도
나는 이제
아무렇지 않게
잘
잡니다
그런데
어떤 커다란 흰 새는
여전히 창공에서
날고 있고
그럴 때
아주 가끔
서랍에 대하여
다시
대신
무엇을 넣어야만 하는 걸까
하는
명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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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일을 말해도
사람들이 웃었다
아무래도 이상하잖아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이상한 일들이 매번
일어나는 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네 인생은 시트콤과 같구나
울적한 얼굴도 예쁘구나
하면서 웃었다
사람들 말이 너무 많아요
하루 정도는 세상의 모든 인간이
입을 열지 못하면 좋겠어요
입을 여는 대신
주변에 있는 문을
열고 닫았으면
문을 열고 닫는 것에
지친 사람들이
그대로 안에 들어가
영영 나오지 않는다면
그러면 나는 그 문을 꼭 잠그고
나와서 산과 들을
쏘다녀야지
궤도 연습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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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가장 많이 출입문이랑 플랫폼 사이에 걸려 있는 게 뭐야? 회수 및 배출 다 했어?
아, 대표적인 것들 보고 올리겠습니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참 많이들 두고 갔더라고요.
바다, 휴가, 바다라고 엄청 조용하게 중얼거리는 반투명 납작인간(비고: 바다가 어느 방향인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앞으로 가려 하는 특성이 있음)
어제의 사랑(비고: 기운 없어서 잘 잡힘. 재활용이 불가하기 때문에 따로 묶어서 버릴 것!)
미래(비고: 엄청 눈부심)
기대(비고: 3번이랑 같이 붙어 다님)
무선 이어폰 한짝 다수
신용·체크카드
버섯(비고: 저녁 찬거리)
돌려줄 수 있는 건 늘 그렇듯이 담당자에게 맡겨놨고요.
재활용되는 것도 따로 묶어서 배출 담당자에게 전달드렸습니다.
이상입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VO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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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큰 공간은 우리의
것이에요.
수평으로 함께 잠겨보려고, 강지이 시집
첫댓글 좋은 글 가져와줘서 고맙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