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천정배 가족의 세상사는 법 & 자녀교육법 월간잡지 Queen 2월호에 천정배 의원님 가족들과의 인터뷰가 실렸네요
열린우리당 천정배 의원이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오붓한 자리를 마련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해 얼마 있으면 사법연수원에 가게 될 후배 법조인인 큰딸 지성에게 여러 가지 당부를 한다. 그건 다름 아닌 천 의원의 일관된 자녀교육론이다. 명랑하게 친구들하고 잘 지내라는, 그리고 즐겁게 살라는 조언이었다.
사실은, 큰딸 지성(26)이 사법시험 2차에 합격했고 막내딸 미성(24)이도 외무고시에 합격했다. 천정배(51)의원 역시 목포에서 소문난 수재로 젊은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는데, 두 딸이 고시에 합격해 경사가 겹친 것이다. 하지만 막내딸은 '1차에 합격했을 뿐'이라며 인터뷰 자리에 나오지 않았다. 아직 대학생인 막내딸은 그런 핑계를 둘러대고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러 갔을 것'이라고 가족들은 추측한다. 워낙 이것저것에 관심이 많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격의 딸이란다. 한때는 교내 밴드에서 드럼을 열심히 쳤다고 하니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바쁜 의정활동으로 평소 주말에도 집에 있는 적이 거의 없는 천정배 의원이 인터뷰 때문에 토요일 오후 일찍 귀가했다. 아이들이 큰 이후로는 거의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비록 막내딸이 빠지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가족이 거실에 함께 앉아 본다고 했다. 과일과 케이크도 내오고 탁자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얘기를 시작했다. 대를 이어 사법고시에 합격했으니, 집안에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는지가 제일 먼저 궁금했다. 하지만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전 딸들이 법률 공부를 하지 않기를 바랬어요. 그런데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니 자녀교육엔 실패한 것 아닌가요? 허허허.'
아빠는 딸이 법률 공부보다는 철학, 수학, 문학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를 바랐다. 천 의원이 자녀들을 키우던 시대 상황이 군사정권 시절인 탓에, 법률이라는 제도적인 학문보다는 자유롭게 자신의 뜻을 펼쳐가길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인권 변호사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딸들은 자연스레 법과 친해질 수 있었다. 변호사 사무실이 놀이터였고 두꺼운 민법 책이 장난감이었기 때문이다. 원하진 않았지만 딸들은 일찍부터 법에 대한 조기교육을 받은 셈이었다. '아빠가 어렸을 때 '미란다 원칙'에 대해 설명해주시고 판사나 변호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얘기해주셨어요. 또 아빠가 임수경 씨 변호를 맡았을 때 감옥으로 위문 편지를 쓰기도 했었죠.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법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된 것 같아요.'
아빠와 선생님의 의견이 상반될 때 아빠를 따른 큰딸
천정배 의원 자신의 자녀교육론은 당시의 시대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전했다. 80년대 유년기를 보내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군사 정권에서 설파하는 제도권 교육은 거짓이다'라고 가르친 것. '군사 독재 시절의 잘못된 권위주의 교육을 받지 않았으면 했죠. 아이들하고 TV를 같이 보다 대통령이 반인권적이고 반민주적인 얘기를 할 때는 아이들한테 '저건 거짓말이니까 믿어서는 안 된다'라고 했어요. 그걸 보고 있던 아내와 논쟁을 벌였던 기억도 나네요.'
처음엔 남편의 '운동권 교육'에 못마땅해하던 아내 서의숙(50)씨는 '참교육학부모회'활동을 하면서는 달라졌다. 큰딸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교조가 활발하게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는데 '애들도 다 키웠는데 사회활동 한번 해보지 않겠냐'는 남편의 설득에 넘어가 시작한 일이었다. 아내는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잠시 교편을 잡은 적이 있기도 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아내는 참교육학부모회 활동에 매우 열심이었다. 마치 집안에만 들어앉아 있던 세월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열성이었다. 특히 '돈 봉투 없애기 운동'에는 전념을 다했다. 아내 역시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입장이다 보니, 늘 돈 봉투에 얽힌 감정이 많았었다. 그렇게 집안에서 마지막 남은 '중도 보수'였던 아내마저 참교육활동을 하자 집안에는 반정부적인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휴일에 열리는 집회는 우리 가족의 나들이 코스가 되었고 가족 애창곡은 운동권 노래로 바뀌었어요. 말하자면 가족 전체가 '운동권'이 된 셈이죠.'
그런 덕에 큰딸 지성이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집안의 분위기와 학교에서 배운 것이 다르다는 점 때문에 적지 않게 고민을 했다고 한다. 특히 임수경 방북사건 후에 북한에 관한 문제가 나오면 학교에서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학교생활에도 곤란을 겪을 때가 많았다. 선생님이나 다른 아이들과 생각이 전혀 달랐기 때문에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 큰딸은 그런 힘든 상황을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 방법'으로 모면했고 막내딸은 선생님이 묻지도 않아도 '우리 엄마는 참교육학부모회에서 활동하세요'라며 당돌하게 대응했다. '부모의 사회활동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까 걱정한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성이는 초등학교 시절에 어린이 학생회장을 했을 정도로 학교에서 잘 지냈어요. 부모와 학교의 의견이 각각 상반되는 상황 속에서 혼란스러웠을 텐데…. 다른 부모도 자기 아이가 학생회장을 했다면 좋아했겠지만 전 특별히 더 기뻐했습니다.' 큰딸을 키우면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는 아빠의 말에 큰딸 지성은 겸손해 하면서 아빠를 언제나 지지했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엔 다소 혼란스러운 면도 있었지만, 아빠가 말씀하시는 게 다 옳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려하는 것만큼 많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전 언제나 아빠를 믿었어요.'
집에서나 밖에서도 거짓을 모르는 남편이자 아빠
천 의원은 주입식 학교 교육에도 아이들이 물들지 않았으면 했다고 한다. 주인 의식을 갖고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학교 교육 외에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주곤 했다. '아이들한테 아주 일찍부터 수학을 가르쳤어요. 학교에서 숙제로 내주는 문제 풀이를 한 것이 아니라 제가 일부러 짬을 내서 수학의 원리를 가르쳤지요. 말하자면 일종의 논리 학습과 비슷한 내용이었어요.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는 학교 공부와는 거의 무관한 경제학 원론이나 철학 입문서를 공부하게 했어요.'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천 의원은 조기 교육론자에 가깝다. 주입식 교육이 아닌 사물의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 논리적인 사고의 습득, 세상을 폭넓게 보는 눈을 일찍 키울수록 더 크고 넓게 자란다는 것이 그의 교육론의 핵심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두 딸은 비교적 논리적인 사고에 익숙하면서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노는 데도 빠지지 않으면서 공부도 썩 잘하는 편이라고 한다. 두 딸은 서울대 법대와 경제학과를 다니면서도 노는 것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였다. 특히 막내딸은 청소년 시절 농구선수 문경은과 댄스그룹 듀스의 열렬한 팬이었다. 농구시합을 보러 수업을 빼먹기도 하고 저년 7시에 시작하는 콘서트에 새벽 5시에 간 적도 있을 정도다.
'아이들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의견을 존중해왔습니다. 놀고 싶을 때 억지로 공부하면 아이들 마음씨만 나빠진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그래서 억지로 공부시키는 일에는 끝까지 반대합니다.' 정치인 천정배에 대한 가족들의 생각은 우선 솔직하다는 점이다. 요즘 정치인들 말을 누가 믿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지만 남편만큼은 거짓됨이 없다는 게 아내의 평가다. '집에서나 밖에서도 항상 솔직하세요.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게 다르지 않구요. 가끔 제가 일기장을 훔쳐보는데, 그걸 볼 때마다 정말 이 사람은 진실된 사람이구나 하고 느끼죠.'
큰딸의 평가 역시 이에 뒤지지 않는다. '아빠는 멀리 내다보는 능력이 있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해요. 요즘 저의 세대 사람들은 정치인들을 싫어하는데, 제 친구들은 아빠만큼은 좋게 평가하더라구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정치인하고는 다르게 깨끗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정치인답지 않다고 할까요?(웃음).'
하지만 아빠가 정치인이라는 사실은 여러모로 불편한 점도 많다. 이번 사법시험 합격 역시 자신이 최고령자도 아닌데 신문에 나오는 것이 다소 스트레스가 된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도 그랬지만 앞으로 사회생활을 할 때 '국회의원 천정배의 큰딸'이라는 얘기를 종종 듣게 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아빠가 정치하시길 좋아했고 무척 바랬어요. 어린 마음에도 아빠는 큰일을 해야 할 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아빠 때문에 얼굴이 알려지는 게 좀 부담스러워요. 조용히 제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데…. 아빠 딸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제 자신을 평가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구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는 판사가 되거라
아내는 처음 남편이 정치를 하겠다고 했을 때 적지 않게 반대를 했다. 정치인의 아내로서의 삶이 쉽지 않다는 걸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를 시작한 후에는 집안 일을 온전히 제가 떠맡게 되었어요.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저 혼자 해결해야 했죠. 시댁어른들이나 집안 일에 관한 것도 제가 생각하고 제가 결정을 내렸으니까요. 하지만 남편은 정치를 하기 전에도 개인적인 삶이 아닌 사회를 위한 삶을 사는 분이었어요. 정치를 시작한 것도 개인이 원했다기보다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시대적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이었죠. 말하자면 그런 생활에 숙달된 거죠. 그래서 요즘은 크게 불만스럽다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오히려 아내는 집안 일뿐 아니라 남편의 바깥일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천 의원이 의정활동에 대해 아내의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아내는 남편이 간과하기 쉬운 일반 국민의 입장에 서서 얘기를 전해준다. 그런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남편인 것이다.
아버지에 이어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역시 대를 이어 정치를 해보지 않겠냐는 질문에 큰딸 지성은 고개를 흔든다. '학교에서 판례를 공부할 때부터 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지금도 변함없어요. 아까도 말했듯이 전 조용히 제 일을 하고 살고 싶어서 정치는 하지 않을 겁니다.' 반면 아빠는 딸이 만약 정치를 하겠다면 '적극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이제는 저처럼 시대적 명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선택을 해서 정치를 하는 사회잖아요. 물론 억지로 할 필요는 없지만 전 변호사로 있을 때보다 정치를 하면서 개인적인 삶의 지평이 훨씬 넓어졌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대중 속으로 들어가서 호흡을 같이 하는 것은 아무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건 귀중하고 값진 것이기 때문에 딸에게도 적극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선배 법조인으로서 후배인 딸에게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있는 판사가 되라'고 당부한다. 단순히 법률지식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있어야 훌륭한 판결을 내릴 수 있다는 게 선배인 아빠의 조언이다. 또 판사라는 직업은 전형적인 공인이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개인적인 즐거움보다는 희생하면서 봉사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큰딸 지성은 3월이면 경기도 일산에 오피스텔을 얻고 사법연수원으로 출근하게 된다. 이제 본격적으로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되는 셈이다. 이에 아빠 천 의원은 한 가지 얘기를 더 전한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 홀로서기를 하게 되는 딸인지라 이것저것 당부할 게 많은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이들한테 바라는 건 딱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친구들하고 잘 지내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쓰러트리는 경쟁을 하지 말고 배려하면서 함께 화합하고 동고동락하라는 얘기죠. 또 하나는 명랑하게 지내라는 것입니다.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지향적으로, 말하자면 Have a nice day!라는 얘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