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동파의 운명/ 박 찬 란 ＜수필가＞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하는 것일까? 육지에 살 때와 다르게 바다에 가면 가슴이 젖는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영문도 모른 채 그리움에 젖는 한 마리 물새가 되니, 이 노릇을 어이할까.   등대 위에 앉은 물새 한 마리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약 없이 기다린다. 그런 마음이 들 때는 나는 원죄처럼 바다로 내달리곤 한다.   서해는 '여유의 문학'처럼 바람의 언덕 같은 곳이다. 특히 변산반도를 이웃한 이곳은 내 영혼의 고향인 듯 무한한 그리움과 동경 그리고 끝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소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바다 여행은 내겐 여물지 못한 영혼의 참 스승을 찾아 헤매는 순례의 길이자 삶의 이정표로 자리한다.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적벽강 앞에 서 있다. 사자머리를 한 붉은 절벽 위에 나는 한 마리 물새가 되어 가없는 바다를 조망하고 있다.    끝을 알 수 없는 머나먼 수평선, 한순간도 쉬지 않고 출렁이는 파도, 그리고 7천만 년 전부터 파도로 옷을 입은 빗살무늬의 바윗돌. 수 천 년 바다와 생사고락을 함께한 몽돌들. 그 모두가 예사롭지 않다. 그런 역사를 체득한 몽돌 하나를 주워든다.   그에게도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영웅의 삶도 분명히 기억할 것이다. 인간이나 자연도 유유상종으로 그 존재의 맥을 이어가는 것이기에, 수어지교(水魚之交) 같은 친구 몇몇은 존재하지 않겠는가.    그게 대자연의 순환법칙이자 우리 인생의 질서인 것을 안다면, 내 인생도 지금보다는 훨씬 순한 양이 되지 않겠는가.   우리 역사는 예부터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인지 지명조차 같은 곳이 많다. 이곳은 중국 양쯔강 상류에 있는 천의 절경인 적벽강과 닮았다 하여, 적벽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름난 명소는 큰 인물과의 인연이 깊어 보석으로 자리매김하곤 한다.   이처럼 신이 뛰어난 인물을 통해 역사하는 깊은 뜻을 우리는 이해해야 하리라.  적벽강에는 중국 북송 때 한 시대를 풍미한 소동파의 운명을 통해 현대인이,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삶을 이해하며 살아야 하는지 등대 불빛처럼 선명하게 길을 보여준다.   소식(蘇軾)은 북송 때 태어난(1101년) 인물로, 아버지 소순, 동생 소철과 함께 '3 소(蘇)'라고 일컬어진다. 하물며 이들은 모두 당송 8대가에 속한다.  삼부자(三夫子)가 문장가 집안이니 말이다.   소동파는 조정의 정치를 비방하는 내용의 시를 썼다는 죄로 황주로 유형되었다. 그때 농사를 짓던 땅이 동쪽 언덕에 있었기에 그는 이를 '동파'로 이름 짓고, 스스로 호(號)로 삼았다.   소동파는 구양수 ‧ 매요 신 등에 의해서 기틀이 마련된 송시를 더욱더 발전시켰다. 그 시대의 시가 편안하고 고요한 심정을 주로 읊었다면,동파는 이에서 벗어나 훨씬 적극적이고‧ 자각적인 관점을 취했다.   동파는 작가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작품에서 묻어나와야만 훌륭한 문장이 된다는, 청년기의 생각을 평생토록 일관했다.       아버지 소순은 8세 때부터 아들 소식( 일명 소동파)을 메이산의 도인(道人)이라 불리던 장역 간의 문하에서 공부하게 사다리를 놓았다. 그 스승의 영향을 받아 도가, 특히 장자(莊子)의 제물 철학(齊物哲學)을 접하게 되었다.   21세에 그의 아버지 소순은 형제를 데리고 상경하여 이들의 시를 구양수에게 보여주고 격찬을 받았다. 자신감을 얻은 형제는 그해 가을 진사가 되었고, 이듬해 예부 시험에 동시 합격한다. 하지만 모친상을 당해 고향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복상(服喪)을 마치고 수도로 돌아온 소동파는 관리 임용 특별 시험인 제과(制科)급제 하여 벼슬 생활을 시작한다. 신종이 즉위한 해로참지, 청사 왕안석을 중심으로 한 개혁파와 신법으로 갈등한다.   일명 균륜 법으로 농민에게 저리자금을 융통하여 빈농을 보호하려는 청묘법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나쁜 신법이었다.    중앙집권제를 강화할 목적으로 국민 착취의 법이기에 반대하는 시를 쓰면서, 그는 필화 사건에 휘말렸다. 조정 정치를 비방한다는 죄목으로 어사대로 끌려가 심한 고문을 당하면서, 100여 일간의 옥살이를 해야만 했다.   그러고 나서 황강현 단련 부사로 좌천된다. 그 이후로는 그는 정치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황주에 거주할 의무가 지워진 일종의 유형(유배)이 시작되었다.   후베이성 황주에서의 4년 2개월의 생활은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비참했다. 부인은 양잠을 치고, 그는 본래 병영이었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이 땅을 동파(동쪽 언덕)라 이름 짓고, 스스로 동파거사라 칭했다.   동파의 그 유명한 <적벽부>가 여기 황주 땅에서 생활할 때 지어진 것이다. 소동파는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서 생활했는지, 이 한 편의 시 안에 그의 사상과 철학이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적벽부』는 어느 날 찾아온 손님과 함께 적벽강 강가에서, 뱃놀이하면서 아침 동녘이 밝아 올 때까지, 그 과정을 사실적이고 서정적으로 그린 장 시(작품)이다.     그 당시 동파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이 한 편의 시에 모두 다 나타나 있으니, 그 시를 음미해 보는 것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한다.  맑은 바람은 천천히 불어오고물결은 일지도 않으니술잔을 들어 손님에게 권하면서시경의 명월 편을 읊조리고요조 장을 노래하네 조금 있으니 달이 동산 위로 떠 올라북두성과 견우성 사이를 서성이는데흰 이슬이 강을 가로질러 내리고물빛은 하늘에 닿았구나 한 조각 갈대 같은 배가 가는 대로 맡겨아득하기 그지없는 물결을 헤쳐나가니넓고도 넓도다 허공에 의지하여 바람을 탄 듯하니머물 곳을 알 수 없고훨훨 나부끼니 인간 세상을 버리고 홀로 서서날개가 돋아나서 신선이 되어 오르는 것 같구나 일엽편주를 타고서 표주박 잔을 들어 서로 권하며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천지에 맡기니아득히 넓고 푸른 바다에 뜬한 알의 좁쌀과도 같소이다 우리의 삶이 잠깐임을 슬퍼하고장강(長江)의 무궁함을 부러워하며하늘을 나는 신선(神仙)을 끼고 즐겁게 놀고밝은 달을 끌어안고 오래도록 살아보려 하나불현듯 그리될 수는 없음을 알아그 여운을 슬픈 바람에 맡겨 남긴 것이라오 그대도 저 물과 달을 알고 있소흘러가는 것은 이와 같지만끝내 줄고 늘지도 않는구려그것이 변한다 하고 보게 되면천지도 한순간이나마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오 변하지 않는다 하고 보게 되면만물과 나는 모두 다 함이 없으니또 무엇을 부러워하리오 게다가 하늘과 땅 사이의 사물에는저마다 따로 임자가 있으니진실로 나의 것이 아니면비록 털끝 하나라도 취하지 마오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은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눈에 뜨이면 빛을 이루나니이를 가져도 금(禁)할 리  없고써도 다함이 없으매이는 조물주의 다함 없는 덕이니나와 그대가 함께 누릴 바로다     소동파는 시 약 2,400수, 사(詞) 300수가 현존한다. 비애를 극복한 낙천적이며 삶에 유유자적하는 철저한 생활인으로서뿐 아니라, 이지적인 시의 세계를 목표로 하여 송시(宋詩)의 작풍을 확립한 시인이었다.   그가 추구한 시 세계의 참모습은 형식이 자유로운 고시(古詩)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송시가 지닌 산문성의 극치를 보여 준다. 또한 절구(絶句)의 자유분방함은 이백(李白)에 필적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그의 벼슬살이는 인종, 신종, 철종, 휘종이 즉위하면서 제거옥국관이라는 명예직에 봉해져, 황주에서 4년 2개월 생활을 접고 상경하던 중 큰 병을 얻어, 상주에서 66세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뜻이 맞아 중앙에서 부르면 나아가 인본 정치를 펼쳤고,  또 그러다 자신을 시기하면 좌천과 유배 생활을 하는 일로 생을 일관했다.   하지만 누구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고, 가는 길목마다 글을 쓰며, 그곳 생활에 맞게 가족과 함께 지혜로운 생활을 유지했다.     부인은 모두  3명을 얻었다. 첫 번째 부인인 왕버가 죽은 뒤 그는 3만 그루의 소나무 묘목을 심어 상사(喪思)의 슬픔을 만고(萬古)의 푸른 소나무 숲으로 표현하여 명복을 빌지 않았는가.   두 번째 부인인 왕윤지는 동파와 함께한 지 25년 만에 병사하였다. 조강지처처럼 산 그녀를 일러 지음(持音) 같은 사람이라며 아꼈으며, 한방에서 살고 죽어서도 동혈(同穴) 하기로 맹세했다.   하지만 세 번째 부인과는 잘 맞지 않았다고 술회한다. 모두 사별이었지만, 그는 부인으로서 예를 다 갖추었다고 하며 그 뒤론 쭉 혼자 살았다고 한다.       그의 성격은 매우 낙천적이며 책임감도 강하며 아이처럼 장난도 잘 치는 사람으로 순수한 사람이었다. 또한, 아무리 힘들어도 자족하는 생활로 일관하였다. 그의 능력은 한 마디로 팔방미인이었다.   동파육이라는 요리책도 냈으며, 술도 잘 빚었으며, 시· 산문· 서예 ·문인화뿐 아니라 가족의 병도 간단한 것은 고치는 의사였으며, 생활에 필요한 것은 못 하는 것이 없었다.   농사도 물론 잘 지어서 자급자족하는 동파거사이지 않았는가. <한식첩>과 <보월첩서>의 서예 집 원본은, 현재는 우여곡절 끝에 타이베이 고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어느 날 저녁 무렵 동파가 한적한 시골길을 걷고 있는데, 어떤 노파가 다 쓰러져 가는 마당 가에서 소반을 차려놓고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그 집으로 무심코 들어갔다.     "할머니, 추운데 마당에서 무얼 하세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노파는 "오늘이 내 딸년이 죽은 날이라서, 지금 제사 지내는 중이라오!"라고 한다. 이어 제를 지낸 할머니가 울적도 하니 방으로 들어가서 딸 이야기라도 하잖다.    무엇인지 모를 기운에 이끌려 방으로 들어가니 "스물다섯 난 딸이 시집도 못 가고 죽었다오!" 라고 한다. 그런 불쌍한 딸이 평소 글을 많이 써서 저 나무 궤짝에 담아 두었는데 열쇠가 어디 있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 나는 까막눈이라서 글은 잘 모르지만, 딸이 글 쓰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오." 라고 한다. 그 말을 듣자 소동파는 자신이 느낌 가는 곳이 있어 찾았더니 거짓말처럼 그곳에 열쇠가 있었다.   노파도 놀라고 동파도 놀랐다. 이어 궤짝을 열어 쓴 글을 읽어보다가 그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자신이 쓰던 초기 문체의 글이 아니겠는가.      너무나도 신기하여 노파의 허락을 받고 그녀가  쓴 글을 얻은 다음, 노파에게 정중하게 예를 표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꼼꼼히 다시 읽어보니, 자신이 쓴 초기 작품과 너무나 흡사하였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며칠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의문 끝에 안국사 스님을 찾아갔다.    자초지종을 스님께 얘기하니, 그 젊은 나이에 죽은 처녀가 바로 동파의 전생이라고 한다. 꿈을 이루지 못한 처녀가 죽어서 다시 동파로 환생했다고 한다. 그러니 동파가 처음 가보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처녀가 감춰 둔 열쇠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찾을 수 있었다.    소동파를 오늘날 있게 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황주에서의 4년 2개월이 대문호의 산실이 아니었나 싶다. 처한 상 유배 생활이니 곤궁한 삶이었지만, 격정적인 창작 활동의 주 무대는 그곳의 시간이었다.   황주는 산수풍경이 수려하며 인적이 닿지 않는 곳이라, 신선이 선유(仙遊) 하기가 아주 좋은 곳이다. 어떤 이가 동파에 인생 물길을 물으니, "물은 흐르도록 물길을 터주고 물은 맑아야 한다"라고 했다.    그의 삶도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벼슬살이 부르면 진정으로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임했다. 백성에게 천년만년 이익이 되는 상수도 관련 사업 일을 하였으며, 실제로도 물에 빠진 아이까지 건지는 일도 있었다 하니 삶 자체가 곧 자연이었다.   그의 시풍은 새로운 삶, 새로운 의경, 새로운 정취, 새로운 이미지를 가진 예술 세계의 물길을 창조하였다.    문학의 울타리를 과감히 깨고, 시· 서예· 가사· 부· 문이 현실을 반영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서, 그의 일생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과 빛나는 성과를 낳았고, 그의 창작 활동이 이곳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하겠다.   양적으로도 어마어마한 작품을 썼다. 753편의 시와 24의 곡, 산문 457편, 부 3편으로 하루 평균 3.3 편씩 썼다. 또한, 질적으로도 매우 우수해 소동파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적벽부>도 이곳이 창작 산실이지 않았는가.       그의 삶은 한 마디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그런 초자연적인 삶이었다. 그가 어디에 있든 주인으로 매 순간 살았고, 환경에 순응하면서 남을 미워하거나 시기하지 않았다.    또한, 항상 주어진 대로 즐기는 도인처럼 자연을 벗하면서, 그 경치에 취해 감사하는 아이처럼,  맑은 정신으로 사는 신선이었다.      임어당은 "소동파 같은 인물은 인간으로서 둘 다 있을 수 없다."라고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소동파를 '이해하는 사람은 있어도 그를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욕심 없이 산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또 다른 역설이 아닌가 한다.    1100년 전 동파의 삶이, 현대인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하겠다. 초자연적인 삶의 자세와 모든 사물을 긍정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현대인의 정신적 스승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달관적인 자세 덕분일까.   2000년 프랑스 르 몽드는 서기 1101~ 2000년 사이의 '천년의 영웅"이 이제까지 12명이 지구상에 탄생했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소동파라고 한다. 그는 유일하게 중국인이었다. 그는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아시아의 진정한 영웅이지 싶다.    그렇다면 영웅은 살다가 죽었다고 해서 진정 죽은 것일까.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썩었었다. 과거에도 썩었고 현재도 썩으며, 앞으로도 썩을 것이다.   그 가운데서 영웅은 천년 만에 한 번 왔다가 죽지만, 오늘날  우리가 단지 모를 뿐,  세상 어느 곳에 어떤 모습으로 다시 와서 또 살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몸만 바꿀 뿐 끝없이 윤회하는 것이 생의 수레 바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한다.    소동파가 현대인에게 지혜의 갈증을 해결해 주듯, 내 배우자도 소동파 같은 말을 가끔 하는 것을 보면 어느 한 생 같은 도반이었나 싶다.   어느 봄날 안국사를 찾아가 스님과 다도를 즐겼다는 것을 보면, 전혀 비껴간 인연은 아닌 듯싶다.   배우자도 풍수를 완성 못 한 7대조 할아버지의 환생인지 현재까지 수백 기(期) 묘를 쓴 것을 보면, 윤회 사상이 아니고는 도무지 설명할 방법이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모든 인연이 인과의 법칙 속에서 오고 가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오차 없는 법칙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한다면  참으로 홀가분한 인생 바다 여행이 될 텐데―． 하지만 한 발 짝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나의 내공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저 바다와 나는 무슨 질긴 인연으로 이렇게 이어졌을까. 수평선을 바라볼 때마다 겨드랑이에서 알 수 없는 애수의 날개가 펼쳐진다. 떠나간 임을 그리워하듯 눈길을 거둘 수 없다.  그 쉼 없이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고 있노라면, 심연의 실체인 그리움과 안식(安息)이 가슴 연못에 고인다.     물새가 하염없이 기다리는 그가 누군지 나도 잘 모른다.    미지의 스승인지, 아니면 떠나간 연인인지, 머나먼 어느 전생에 이역만리 장삿길을 떠났다 오지 않은 남편의 소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의식 저편에서 피어나는 그리움이 완전히 소멸하는 그날까지는 나는 바다를 쉼 없이 찾을 것만 같다.   그 바다에 마음이 빚이 남아 있는 한 그 원초적 그리움을 풀어내기 위해, 나는 오늘도 천형(天刑) 같은 글 쓰기를 멈추지 않는지 모르겠다.          소동파의 운명을 통해 세상에는 그 사람만이 구원할 사명(使命)이 있는 듯하다. 그 사명을 위해 우리는 이 세상에 소풍을 왔고, 그 일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관계를 이루면서 자신의 사업을 이루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이 궁극적으로 성숙하는 매개체는 바로 사랑이란 효소뿐이지 않겠는가.  지자(智者)는 바다를 좋아한다고 했다. 나도 그 부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넘실대는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멈추지 않는 무극의 에너지가 아련한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나의 원천적인 그리움은 수평선 너머 그 무엇, 과거 전생부터 이어져 온 머나먼 한 생과 깊이 연결되어 있지 않나 싶다.   내 생이 다 가기 전에 그 무의식의 세계(해원:解寃)에서 작용하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를 나는 풀고 갈 수 있을는지. 바다가 이생에서 풀어가야 할 형이상학의 운명이라면 나는 과연 그 숙제를 마칠 수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