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1년(현종 2)에 진산(珍山)에서 유황광을 처음 발견하게 되자, 조정에서는 유황광의 적극적인 개발 정책을 펴는 한편 광산을 발견, 보고하는 자에 대해서는 큰상을 내리는 시상법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활동적인 기술자들의 요행심을 자극했고, 발견자는 동시에 유황점의 실질적인 경영자인 감관(監官)으로 차정(差定)되는 것이 통례가 되었다. 마침내 광산 개발에 전력을 투구하는 자들이 속출함으로써 1661(현종 2)∼1712년(숙종 38) 간에 발굴한 전국의 유황 산지는 20여 곳에 이르렀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유황점(硫黃店))]
첫댓글 규모가 작아서? 아닐까요
스웨덴 유황광산도 생략되어 있는 걸로 봐서 어느정도 규모 인증해서 제안해야 할듯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입증이 쉬운 것은 금이 아닐까 해요.
역설국마저도 생략되었다면 ㄹㅇ 그렇겠네요
일본을 침략하라는 역설신의 계시입니다
???: 일본을 공격한다
좀 있긴 있었는데 채산성 등의 문제로 18세기에 들어 많이 쇠퇴해서 국가적으로 개발하는 건 거의 관뒀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금광도 없네요… ㅠ
혹시 채산성 있는 곳 발견해도.... 특산물 발견하면 소작, 소시민들 등골 휘잖아요.
그래서 있는 특산물도 싹 없애버릴 마당에....ㅋㅋㅋ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