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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부패 없는 정부는 불가능한가?
2011년 2월부터 3월까지 두 달 간 딸네 집에 머물렀고,
2012년 11월부터 2013년 1월까지 석 달 동안 또 딸네 집에 머물렀다.
현역시절 출장 다닐 때는 공항-호텔-오피스 왕복뿐으로 싱가포르라는 국가에 대하여 살펴 볼 시간이 전혀 없었다.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은퇴 후라서 호텔투숙 대신에 현지의 딸네 집에 머물렀던 것이다.
볼일이라고는 현지 일본인 회에서 강연 한 번 한 것이 전부다.
나머지 시간은 전부 자유 시간이었다.
외손녀, 외손자가 다니는 학교에도 가보고, 집사람을 따라 재래시장에도 가보고, 싱가포르에서 유명하다는 명소는 거의 다 가보았다. 알지 못해서 못 가본 곳도 있겠지만...
주로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택시 타고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날씨는 덥고.. 매일 비는 내리고..
한 달쯤 지나니까 답답하고 지루해졌다.
하여,
심심풀이로 박물관과 도서관을 다니다가 싱가포르에 관한 공부를 좀 귀동냥 하게 되었다.
<장면 1>
싱가포르 최대 번화가인 ‘오챠드’의 고급쇼핑센터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고 나오는데 청소원 할아버지 (70대로 보였다)가 내게 말을 걸었다. 주위에 나 이외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청소원: 일본인이요?
나: 아니요.
청소원: 그럼 중국인이요?
나: 아니요.
청소원: 오, 싱가폴리언?
나: 노.
청소원: 말레이 사람?
나: 아니.
청소원: 인도사람?
나: 아니.
청소원: 오, 노 피플?
나: 나는 한국인이요.
청소원: 와우!!!(놀라는 표정)
나: 짜이 짼. (청소원이 중국인으로 보였기에 ‘또 봅시다’라고 인사말을 하고 나왔다.)
나의 외양을 보고 처음에 ‘일본인’으로 자신했을 청소원 노인이 자신의 예견이 빗나간 것을 알았을 때 ‘한국인’이냐고 물었으면 금방 끝났을 대화가 위와 같이 길어 진 것은, 청소원 노인의 한계일수도 있고, 코리아의 한계일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풀장에서 만난 대학생은 나를 금방 ‘코리언’으로 알아보았다. 그는 ‘강남스타일’을 아느냐면서 먼저 말을 걸어왔었다.
<장면 2>
콘도에서 열린 주말 파티에 참석했다.
라오스 왕족이라는 이웃주민의 초청이었다. 그는 곧 이곳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이주한다고 했다. 이른바 송별파티였다.
라오스는 오랫동안 프랑스 식민지였고 그의 가족은 불어에 능통했다.
물론 그날 파티의 대화는 영어였다. 모두 자기 식 영어였지만 통했다.
초청된 가족은
카나다 1가족
호주 1가족
프랑스 1가족
말레시아 1가족
태국 1가족
일본 1가족
한국 1가족
그리고 라오스 1가족으로 모두 8개 국가의 가족이 자기 먹거리를 들고 모였었다.
아이들이 모두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기에 같은 학교의 학부모들이라 친분이 있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 신분인 우리 노부부만 좀 서먹했다.
이곳 콘도에 58개 국가에서 온 다른 국적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학교(CIS)에 가보니까 이 학교 역시 외국인 자녀들이 꽉 차 있는 학교로 60여 개국의 국기가 걸려 있었고, 정문 벽에는 “환영합니다”라고 하는 한글을 비롯하여 48개국 문자로 같은 뜻을 가진 글이 적혀있었다.
국가의 수와 문자의 수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영어, 아랍어,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복수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싱가포르는 그 자체가 다민족 국가인데, 그래서 그런지 외국인이 많이 살고 있는 나라다.
금융허브, 해운허브, 물류허브, 정유허브, 선박허브, 교육허브의 역할이 특히 돋보이는 나라다.
싱가포르는 매년 변신한다.
2010년에는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샌즈가 새롭게 오픈했다.
샌즈호텔의 위용은 가관이다. 이곳 주변에 24개의 컨벤션 센터와 250개의 미팅 룸이 갖춰졌다. 국제적 규모의 대 회의가 물밀 듯 몰려오는 곳이다. 이곳이 문을 연후 싱가폴 관광산업 매출이 41% 늘었다. 싱가폴 경제성장률은 14.7%로 급등했다. 내수가 늘어나고 일자리도 3만3천여 개가 늘었다.
2012년에는 세계최대의 아쿠아리움이 새롭게 오픈했다. 해마다 2천만 명의 관광객이 싱가포르를 찾는다.
싱가포르의 인구는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사람이 많이 꾀이는 곳에 경기가 살아난다고 하지만, 싱가포르는 불경기가 없어 보이는 나라다.
<장면 3>
거리를 다니면서 알게 된 싱가포르 사회의 단면을 소개한다.
-싱가포르는 껌이 없는 나라다. (편의점에서 껌을 사려고 했다가 망신만 당했다.)
-싱가포르는 벌금이 너무 많은 나라다.
예를 들면, 금연구역에서 흡연하면 천 싱달러. (단위: 1싱달러=0.9미달러)
침, 가래, 휴지 투기하면 오백 싱달러.
금지구역(지하철, 공원, 거리 등)에서 음식물 섭취하면 오백 싱달러.
낙서, 구걸, 주정행위 하면 태형 및 구류.
특히 마약거래, 마약휴대하면 사형.
-싱가포르는 사전신고 없이 투표에 한 번 빠지면 평생선거권 박탈하는 나라다.
-싱가포르는 외국인 노동자 전원(가사도우미 포함)을 노동청에서 직접 관리하는 나라다.
<장면 4>
<싱가포르 공부>
싱가포르는 말레이 반도 끝자락에 붙어있는 작은 섬이다.
섬의 면적은 544km² 로 서울 면적 605km² 보다 조금 작다.
하지만 싱가포르 주변에 있는 60여 개의 작은 섬들을 합하면
싱가포르 전체 국토면적은 685km² 가 되어 서울보다 넓은 면적이 된다.
오늘날 싱가포르는 말레이 반도와는 도로, 철도로 연결되어 있는 섬이다.
싱가포르가 도시국가로 독립할 때까지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1819년 영국 상선의 선장이 싱가포르 섬에 상륙.
1826년 영국 해군이 싱가포르에 해군기지 진출. 이후 영국의 식민지.
1954년 영국 식민지 자치령 공포. 리콴유가 인민행동당 창당.
1959년 영국 식민지 입법의회 직접선거 실시. 인민행동당이 총 43석 중 41석 당선으로 집권하여 리콴유는 자치정부의 초대 수반인 총리가 됨. 리콴유의 나이 35세 때임.
1961년 말레시아 연방에 가입.
1965년 말레시아정부의 연방추방결정으로 말레시아 연방 탈퇴. 싱가포르 독립정부 수립.
한편, 싱가포르 인구의 변동은
1819년 약 천명 거주.
1840년 약 3만 5천명 거주.
1965년 약 백 만 명 거주.
2010년 약 4백4십 만 명 거주.
싱가포르는 1826년부터 1965년 까지 약 140년 간 영국의 식민지였으나, 1941년부터 1945년 까지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싱가포르가 말레시아로부터 떨어져 나왔을 때 인구는 고작 백만 명에 불과했고, 인구 구성은 중국계 75%, 말레이계 14%, 인도계10% 기타 1%였다.
싱가포르는 하나의 독립국가로서의 생존여부가 불투명했다. 특히 독자적으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리콴유는 싱가포르가 독립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재빨리 외교력을 발휘했다.
1965년 9월 유엔에 가입.
1965년 10월 영국연방에 가입.
1965년 12월 헌법을 개정하여 국가이름을 ‘싱가포르공화국’으로 선포.
이렇게 하여 국가로서의 외양은 갖추었으나, 독립국가로서 스스로 국토를 방위할 수 있는 군대가 없었다.
리콴유는 먼저 군대를 만들어서 나라를 지켜야 하다고 생각했다.
주위를 돌아보니,
위로는 말레이시아라는 큰 나라가 기회만 있으면 잡아먹으려고 국경지대에 군대를 증파하고 있고, 밑으로는 인도네시아라는 큰 나라가 완전히 싱가포르를 포위하고 있는 꼴이었다.
더구나 싱가포르에는 그때까지 말레이시아 연방군이 주둔하고 있는 상태에서 영국군은 1971년까지 모두 철수할 계획을 싱가포르에 통보한 상태였다.
영국군이 철수하고 나면 싱가포르는 스스로 군대를 만들어 자기나라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리콴유 정부는 국군을 창설할 ‘노하우’도 ‘자금’도 없었다.
또 군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리콴유 총리는 정부의 손이 닿는 모든 나라에 군대창설을 위한 돈을 긴급지원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리콴유 총리는 멀리 있는 이스라엘에 까지 간곡히 요청했다.
이스라엘은 싱가포르를 도와주기로 결정하고 군사사절단을 보내왔다.
국군창설은 국가통합의 상징이다.
군대에서는 누구나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리콴유는 ‘국가병역제도’를 만들었다.
싱가포르의 모든 남자는 군복무를 하도록 법을 만들고 아무리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도, 또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도 반드시 병역의무를 치르도록 했다.
한편 다양한 민족, 다양한 언어, 다양한 종교로 구성된 사람들을 모집하여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는 의사소통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군대의 공식언어로 ‘영어’를 채택했다.
이로 인해서 영어는 싱가포르의 공용어로 안착하는 기반이 조성됐다.
리콴유 총리는 자원이 부족한 싱가포르에서는 오직 사람만이 재산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며, 자원은 사람이 하는 일을 도와주는 도구 일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장면 5>
리콴유 총리는 인재유치와 인재양성에 국운을 걸었다.
인재유치를 위해서 세계의 선진국 8개 국가에서 대학졸업이상의 학력을 가진 젊은이들에게 모조건 6개월짜리 취업비자를 발급해 주기로 결정했다. 대상국가는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홍콩이었다.
인재양성을 위해서는 싱가포르의 독자적 교육제도를 완벽하게 만들었다.
싱가포르의 교육은 노력과 실력이 철저하게 적용되는 적자생존의 법칙을 기초로 짰다.
이것은 평등주의 교육과는 다르다. 철저하게 능력에 따라 구분하고, 능력이 되지 않으면 어릴 때부터 아예 직업학교로 보내는 교육시스템을 만들었다.
한편,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전문직업인이 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정부는 제공해야 한다.”라는 원칙을 세웠다.
싱가포르는 유아교육부터 대학까지 철저하게 정부가 관리한다.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모든 과정에서 영어가 중심이 되며, 베이징을 중심으로 사용되는 중국표준어 만다린, 말레인이 쓰는 말레이어, 인도인이 쓰는 타밀어도 정규수업에서 배운다.
리콴유 총리는 특히 각 민족은 자기민족의 언어와 영어를 똑같이 능통하게 할 수 있도록 교육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우수한 인력은 우수한 대로,
열등한 인력은 열등한 대로,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가려서 자신에게 맞는 길로 가도록 해야, 인력의 낭비가 없게 된다고 강조했다.
실력이 되던 실력이 되지 않던,
적성이 있든 적성이 없든,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3학년까지 획일교육으로 무조건 버티게 하고 80% 이상이 대학에 들어가도록 하고 있는 한국식 교육은 국가적 낭비가 엄청 발생하는 시스템이다.
지구촌 선진국 중에서 대학진학률 50% 이상인 국가는 3개 국가뿐이다.
독일 51%, 일본 52% 그리고 한국 83% 라고 유네스코 통계는 말한다.
싱가포르 교육은 모든 대상자에게 공평하고 평등한 기회는 주지만 능력, 적성, 노력에 따라 걸러내어서 각자의 능력, 적성, 노력에 맞는 일자리를 찾아 주는데 목적이 있다.
국민에게 맞춤 식 알맞은 일자리를 찾아주는 것은 정부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사람의 자질과 능력은 획일적이지 않다. 다양하다.
다양한 능력은 다양한 직업에 충실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청소를 하는 직업이나 총리를 하는 직업이나 다 같이 중요하다. 청소를 하고 공사를 하는 직업이 있어야 관리를 하고 총리를 하는 직업이 존재할 수 있다. ‘용접공’이나 ‘배관공’이 없으면 산업이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직업에 관한 적성을 조기에 파악하는 것이 ‘적성 찾기’ 맞춤교육의 핵심이다. 개인의 적성을 찾아내기 위해 모든 교육은 ‘걸러내기’가 먼저 이루어진다.
초등학교는 기본과정 4년, 적응과정 2년으로 구분된다.
초등학생은 4학년말에 모두 국가시험을 치른다.
시험결과에 따라 3등급으로 구분된다.
상위 60%: 우수학급으로 이동하여 2년 뒤에 졸업시험을 보고 여기에 합격해야 중학교에 진학한다.
중위 20%: 상급학급으로 이동하여 2년 뒤에 졸업시험을 보고 여기에 합격하면 중학교 진학권을 준다.
하위 20%: 직업학급으로 이동하여 예외 없이 4년(2년 + 2년) 더 공부한다. 졸업시험에 합격하면 직업훈련원 입학권을 준다.
직업훈련원은 전문 과정에 따라 3년제 또는 4년제가 있다.
우수학급, 상급학급, 직업학급은 동등한 취급을 받는다.
직업훈련을 받는다고 해서 사회에서 왕따가 되거나 문제아 취급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보다 먼저 ‘전문직업인’이 될 수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게 된다.
사회생활을 위하여 다양한 직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철저한 교육을 받고, 자신이 무슨 일을 담당하든지 그것은 사회와 국가발전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직업관을 분명하게 배우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
자기 직업에 관한 헌신, 윤리의식을 철저하게 교육시킨다. 인성교육, 도덕교육도 병행한다.
초, 중, 고 와 직업훈련 코스에서 체육교육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체육시간은 첫째 시간에 배정되어 있다. 육체가 활성화 되고 난 뒤에 하는 지식교육은 효과가 배가된다는 것이 싱가포르 교육청의 주장이다.
리콴유 총리는 국민 개개인을 모두 쓸모 있는 국민으로 육성하여 국가사회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을 교육의 최종목표로 설정했다.
쓸모 없는 국민이 단 한 사람도 없는 사회가 가장 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리콴유 총리(1959 - 1991년 재임)의 후계자인
고척동 총리(1991 - 2004년 재임)
그리고 그의 후계자인
리센룽 총리(2004 - 현재까지/ 리콴유 총리의 아들)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일관성 있는 교육정책과 노동정책이 50년 넘게 지속되어 싱가포르 국민의 국가관, 직업관은 확고하게 수립되었다.
싱가포르 교육은 수업방식도 개혁했다.
외우기 중심의 일방적 주입방식을 지양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탐구하는 것을 중점으로 하는 그룹중심학습으로 과감하게 바꿨다.
2003년부터는 싱가포르를 ‘국제교육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해외유명교육기관을 유치 해왔다.
2009년부터는 영재교육제도가 확충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말에 국가시험을 두 번 치러 전국 5% 안에 들어가면 국가영재로 선발된다. 이후 국가장학생으로 엘리트코스를 밟는다.
사람은 3세에서 10세까지 두뇌의 ‘스폰지 능력’이 최대치를 나타낸다고 한다. 10세 전후에 일제고사를 치러 걸러내기를 하는 제도는 지식이 최대로 입력될 수 있는 기간에 면학분위기를 확립시키는 시스템이다.
리콴유 총리는 일본의 잔악한 점령정치를 비난했지만 일본인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회고록에서 밝혔다. 그는 영국인으로부터 배웠고 일본인으로부터도 배웠다. 그는 생존을 위해서는 누구로부터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이런 생각은 결국 옳은 결과를 가져왔다.
더구나 리콴유 총리는 약소국가였던 이스라엘의 생존방식을 배워서 싱가포르에 적용했다. 특히 강한 군대를 소유한 이스라엘의 장점을 연구했다. 오늘날 싱가포르는 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 상공을 매일 훈련하고 있는 공군은 싱가포르의 자랑이다.
리콴유는 제일먼저 국가의 생존을 내세웠고 국가가 살아야 국민이 살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삶은 국가이익과 사회의 공동선 실현으로 연결돼야만 의미가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그의 생각이 바로 싱가포르 스타일의 ‘싱가포르 민주주의’ 방식으로 탄생된 것이다.
<장면 6>
[부정부패를 척결한 리콴유의 솔선수범 정신]
리콴유 총리는 부정부패 추방에 누구보다 앞장섰다.
싱가포르 정부부터 ‘부패제로’의 시스템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배층이 청렴해야 사회의 모든 부문이 깨끗이 된다고 강조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라는 경구를 실천에 옮겼다.
자신의 최 측근이라도 비리에 연루되면 가차 없이 법의 심판을 받도록 했다.
아주 가까운 친척이라도 법과 원칙을 지키지 못한 사람은 가차 없이 처벌했다.
법에 저촉이 되지 않더라도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수 있는 인물에게는 관료자리를 박탈했다.
그래서 싱가포르 정부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정부가 되었다.
리콴유 총리는 사회의 공공질서 유지정책에 중점을 두었다.
예를 들어 껌을 사서 씹는 것은 개인의 자유에 속하지만, 씹은 껌을 아무데나 버리면 환경오염이 되고 도시미관에 오점을 남기게 된다. 이런 점에서 껌을 씹는 행위는 공공의 문제가 된다.
싱가포르는 공공을 위해서 개인이 껌을 사서 씹을 수 있는 선택권 자체를 박탈해버렸다.
껌으로 인한 공해를 원천봉쇄하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현재 싱가포르에서는 껌을 팔지도 못하고 사지도 못한다.
이렇게 해서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가 된 것이다.
오늘날
싱가포르는 세계의 초일류국가로 발전했다.
이렇게 발전한 원동력은 초대총리였던 리콴유 총리의 강력한 리더십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리콴유의 강력한 리더십은
아주 작은 나라, 부존자원이 없는 나라,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수도 전량 수입하지 않으면 먹을 물도 없는 나라에서 아세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풍족한 나라로 성장하여 국민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국가를 건설한 것이다. 현재 싱가포르 국민소득은 한국인 보다 약 2.5배정도 높다.
리콴유 총리가 잘 사는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부패척결을 위한 ‘솔선수범 정신’이 전체국민의 모범이 되었기 때문이다.
‘솔선수범’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첫댓글 정말로 Fine Country네요!! 벌금!!원천봉쇄!!전체를 위한 어느정도의 자유권리 박탈은 필요악이지 않습니까?
정말로 좋은 글, 잘 읽고 배웠네요!
역시 和元의 글은 동서고금을 드나더는 해박한 지식과 역사를 꿰뚫어보는 혜안으로 가득 찬 글이외다.
오랫동안 여기서 만나지 못했는데, 열흘 전에 올린 글과 이름을 보고 반가웠고,
그간 어부인 뫼시고 자녀들 집으로 다니며 효도 받었구먼~
앞으로 인생과 역사에 관한 깊이 있는 글로, 친구들의 마음과 생각을 시원하게 해주이소!
형의 글을 읽고다시 한번 싱가포르에 대해서 알게되었소,
출장갈때 트란짓 하거나 전시회가 있을때 이삼일 머물렀던 기억 뿐이었는데 부러워만 했어요.
짧은 역사속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선 이유를 알게 되니 우리들의 현실이 좀 처량해 보이네요.
우리도 합심하면 될것같은데 오랜 타성이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것 같아요.
좋은글은 언제나 읽어도 머리에 속속 들어 옵니다.
감사 합니다.
8월 21일에 올린 ㅡ"중국밖에 없다" 와 ㅡ 여기의 ㅡ"부정부패없는 정부는 불가능한가" ----- 모두 다 名文이외다----
저역시 그동안 올려주신 글 모두 읽고 또 읽으면서
많이 배웠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십시요..
和元 學友가 2013년 4월22일 초판한 -"선비자본주의와 훈민정음의 세계화" - 발간을 늦게나마 축하합니다~ ~ ~ ~ ~ ~ ~ ~ ~ ~ ~ ~ ~和元 金鎭秀의 저서로는 ---"국가경쟁시대 기업격차시대" ㅡ "이것이 일본이다" ㅡ "열린학습 강한 기업(공저)" ㅡ "일류의 조건(역서)" ㅡ "선비리더십 1" ㅡ "선비리더십 2 : 클린 리더십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ㅡ "선비리더십 3 : 동양 고전에서 리더십을 만나다" ㅡ "웰 다잉 : 인생 멋지게 내려놓는 방법' ㅡ "한국 기업문화의 비밀" ㅡ이---있습니다
和元 金鎭秀 는 현재 :
글로벌 리더 육성교육<선비리더십 아카데미> 회장
한국형'선비리더십' 창안자(특허청 등록 제41-0177663)
작가,사상가, 선비정신 전도사 로 불림
삐아프게 가난했든 기억은 없었는가 보다.
부정을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