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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왜 타서는 안 될 배가 출항했는가?
4월 15일 오후 9시, 악천후로 당시 인천항의 가시거리는 단 800미터였습니다.
출항이 불가능한 날씨였지만, 세월호 단 한 척만이 출항했습니다.
게다가 세월호는 사고가 예견될 수밖에 없는 선박이었습니다.
평균 수명인 20년이 다 된 노후선박인데다, 불법 증·개축되었고,
물량은 과적되었고, 배의 균형을 잡는 평형수는 절반 이상 빠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인천항 운항관리자는 제대로 된 안전 점검도 없이 출항 허가를 내줬습니다.
출항해서는 안 될 배가 출항했습니다. 이 무리한 출항의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지 밝혀야 합니다.
② 왜 갑자기 배가 침몰했는가?
검찰은 침몰 원인으로 "급변침"을 지목하며 ‘조타 미숙으로 선체가 크게 기울었으며,
과적 및 고정 불량과 평형수 부족으로 복원력을 상실해 침몰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급변침은 사고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닙니다.
JTBC는 레이더 영상을 통해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어진 시간에
50~100미터에 달하는 물체가 갑자기 나타난 후 약 10분 만에 사라졌다고 보도했으며,
CNN도 해양 전문가 말을 인용해 “물속에 있는 어떤 물체를 들이받은 것 같다”고 보도했습니다.
반면 검찰이 증거로 삼은 항적 기록은 핵심 증거도 아닐뿐더러
급변침 직전 항적 기록이 빠져있고, 나머지 기록도 조작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세월호를 온전하게 인양해서 선체에 어떤 흔적이 있는지를 조사해야 합니다.
③ 왜 단 한 명도 구조하지 않았는가?
8시 55분에 신고가 접수됐지만, 9시 30분이 되어서야 도착한 해경은
47분 뒤 10시 17분에 해경 헬기와 선박, 잠수부 모두 일시에 철수했습니다.
명백한 구조 방치였습니다. 해경은 전적으로 민간 구난업체 ‘언딘’에 구조를 맡겼습니다.
언딘의 김윤상 대표는 해경의 통제를 받는 해양구조협회 부총재로,
‘해경-해양구조협회-언딘’의 유착관계가 추정됩니다.
또한 해경은 구조를 돕고자 했던 해군 고속함, 미군 헬기, 일본 해상보안청 등을 막았습니다.
한국군 지휘부 결정에 따라 미군함정은 회항했으며,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은
최신 구조함인 통영함의 현장 투입 지시를 두 차례 내렸으나 막혔습니다.
해군참모총장의 명령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합참의장, 국방장관, 대통령 정도입니다.
누가 어떤 의도로 구조를 적극적으로 막은 것인지 밝혀내야만 합니다.
④ 왜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가?
정부가 재난 대응 최고기관으로 규정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사고 후 약 20분이 지나서야 사고 소식을 ‘속보를 보고 알았다’고 했습니다.
중대본은 구조자와 실종자 수를 하루종일 틀리게 발표했고, 구조인력은 계속 부풀리다
사고 4일만에 결국 구조 지휘에서 손을 놓게 되었습니다.
국가적 재난 앞에 대통령은 사고 1시간 만에 보고를 받고서
이후 7시간 동안 어떤 대면 보고를 받지도, 대면 지시를 내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청와대를 수사 대상에서 제외했고,
대통령 최측근 중 참사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인사는 없었습니다.
정부는 구조 지휘를 못 한 것인지, 아니면 하지 않은 것인지 밝혀져야 합니다.
⑤ 왜 언론보도는 통제됐는가?
사고 발생 당시 ‘전원 구조’ 오보가 났습니다. 현장기자들이 구조 활동이 없음을
데스크에 보고했으나 마치 필사적 구조가 이뤄지는 것처럼 보도됐습니다.
세월호 문제를 제기해온 전문가들은 어느 순간부터 인터뷰에 응하지 않기 시작했고,
방송통신위원회는 ‘세월호 관련 재난상황반 운영계획’이라는 문건으로
방송사 조정 통제 및 대응 임무를 하달했습니다. 청와대가 직접 KBS에
사건 무마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정부는 어떤 지침으로 왜 언론을 통제했는지 밝혀져야 합니다.
⑥ 왜 국정원은 거듭 등장하는가?
세월호에서 발견된 노트북에는 <국정원 지적사항>이라는 문서파일이 있었습니다.
세월호는 국내 여객선 중 유일하게 해양 사고 발생 시 국정원에 보고하게 되어있었습니다.
실제로 국정원은 청해진해운 사장 등에게 사고 문자 메시지를 받았지만,
그동안 언론보도를 보고 사고 사실을 알았다고 거짓말을 해왔습니다.
최소 3천억 자산 규모의 국정원 상조회 ‘양우공제회’는 선박 투자를 했습니다.
검찰과 국정원은 ‘국정원의 세월호 소유’ 의혹에 관한 사실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이중에서도 나는 3번 항목, 왜 단 한명도 구조하지 않았는가? 에 대한 분노를 많이 느꼈고 자세히 알아본 결과
선원들의 탈출 8시 50분경, 배가 갑자기 기울자 운항을 책임지던 선장과 선원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 외에는 아무 조취도 취하지 않았다. 사고 1시간 후, 선장과 일부 선원들은 가장 먼저 탈출했다.
무능한 초기대응 8시 52분부터 9시 26분까지 119와 해경에 37건의 구조요청 전화가 쏟아졌다. 신고 접수 후 35분이 지난 9시 30분, 현장에 도착한 배는 해경 123정 뿐. 123정은 세월호로 향하던 27분간 구조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구조 요청 묵살 침몰 당시 아이들은 유리창을 두드리며 구조요청을 했지만, 해경은 아이들이 갇혀 있던 선실의 유리창을 깨지 않았고, 탈출 안내도 하지 않았다. 승객들이 난간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오전 10시 17분, 현장에 있던 해경 헬기와 선박, 잠수부는 돌연, 일시에 철수했다.(도대체 사건현장와서 뭘한거죠..?ㅋ)
민간업체와의 유착관계 해경은 전적으로 민간 구난업체 ‘언딘’에 구조를 맡겼다. 그러나 언딘은 구조가 아닌 인양과 수중공사 전문업체이다. 언딘의 김윤상 대표는 해경의 통제를 받는 해양구조협회 부총재로, ‘해경-해양구조협회-언딘’의 유착관계를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해경의 철저한 현장통제 및 구조방해 해경 123정 다음으로 일찍 도착한 해군의 고속함은 해경의 요청에 따라 아무런 구조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뒤에 도착한 119 구조단과 미군 헬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일 오후 7시 50분에 도착한 문화재청 소속의 아시아 최대 수중발굴 인양선 씨뮤즈호와 사고 다음날 도착한 인양선 누리안호 역시 구조 작업에 투입될수 없었다. 민군을 통틀어 최고의 해난구조 장비와 경험을 가진 UDT와 SSU 대원들과 현장조류에 밝은 민간 구조대원들도 제대로 투입되지 못했다.
협조 거부 경찰청과 일본 해상보안청은 해경에 구조 협조 의사를 밝혔지만 해경은 이를 거부했다. 미군은 사고 해역 근처에 있던 4만 톤급 ‘본험리차드함’을 통해 구조협조를 하려 했으나, 한국군 지휘부는 이 또한 거부했다.
구조를 막은 ‘누군가’가 있다? 해경의 구조 방해는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한국군 지휘부 결정에 따라 미군 함정은 회항했으며,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은 최신 구조함인 통영함의 현장 투입 지시를 두차례 내렸으나 막혔다. 해군참모총장의 명령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하참의장, 국방장관, 대통령 정도이다. 누가 어떤 의도로 구조를 적극적으로 막은것인가? 검찰은 총체적 구조 실패의 책임을 가장 일찍 도착한 해경 123정에만 묻고 있다. 전형적 ‘꼬리 자르기’ 수사가 아닐 수 없다.
충분히 살릴 수 있었던 사람들
선장의 퇴선 명령이 있었을 시: 5분만에 전원 탈출
해경의 구조 활동이 있었을 시: 10분에 전원 탈출
-박형주 가천대 초고층방재융합연구소장의 시뮬레이션 결과
그날 새벽이후 울지 않았습니다
"조명탄이고 뭐고 뉴스에 나온 이야기가 모두 거짓말인 걸 눈으로 봤어요. 사고 해역에 해수부 배 타고 들어갔어요. 둘째 날 이었나... 너무 차더라구요. 힘들다는 걸 꺠달았어요. 차가운데서 아이를 꺼내주는게 내 역할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돌아와서 우리 큰애하고 애 엄마한테 거짓말을 했죠. 에어포켓 얘기까지 해가며.. 큰 걱정 하지 마라. 당연히 살려 모여 있을 꺼다... 아마 대합실에서 였을 거에요. 그리고 나와서... 2시부터 동틀 떄, 새벽 6시까지 담배 5갑을 다 피웠어요. 그날 많이 울었어요. 그러고 나서 일을 했어요. 그 후로 지금까지 울어 본적 없었어요.
.....(중략) 제대로 울어보지 못한게 너무 억울하잖아요. 정리되면 술도 먹고, 울고싶어요."
4.16 가족 협의회 운영위원장 박 진 인터뷰 중 일부
세월호 참사 주요 지휘라인 근황
123정장 김경일: 구치소 재감
목포해양경찰서장 김문홍: 서해경찰청으로 발령
해양경찰차장 최상환: 직위해제
해양경찰청장 김석균: 정년퇴임
서해해양경찰청장 김수현: 정년퇴임
해양수산부 장관 이주영: 국회의원
안전행정부 장관 유정복: 인천시장
국가안보실장 김장수: 주중대사
사건이 501일 이나 지난 지금, 정부는 저 모든 항목에 대한 단 하나의 진상규명도 해주지 않고 있어
아직도 차가운 바다속에 있는 9명의 미수습 가족들이 있어. 유가족이 되고 싶으시데.
내년 여름쯤이나 되야 선체 인양이 가능하실 것 같다고 하시더라
마지막으로 어제 추모문화제에서 여동생을 잃은 언니의 편지야.
쩌리 첫글이라...8ㅅ8.. 문제시 바로 고치겠습니다
첫댓글 아 세상에...
세월호 관련 글은 읽으면 읽을 수록 의혹이 증폭되고 진상규명이 철저해야함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정부는 귀를 막고 국민들은 무관심이니...
이제 잊으라고 하지말았으면..끝날때까지 끝난게아닌데
두고두고보면서 잊지않을거야 고마워 여시 ..너무화가나고 슬프다
정리 잘 읽었어!!
볼수록 답답하다 여시야좋은글고마워!
고마워ㅜ 그리고 요번에 배상금판결 난것도 말많던데ㅠ글빨좋은 여시잇음 가독성 좋게 해서 올려줬음 좋겠다. 일베충들 논리에 속지 말구 제발..
보관해둘게!! 도대체 그 일곱시간 동안 뭘한건지 왜 안구했는지 아직까지도 제대로 밝혀진게 하나도 없으니 진짜 답답하다
마지막 언니의 글 보면서 정말 내 동생이 죽었다면 딱 저런 마음일 거 같아서.. 눈물났어
언제 다 밝혀질까...
이 글 꼭 간직해놓고 있을게 절대 잊지않을거야.. 정리해줘서 고마워!!
정리 고마워 잘읽었어!!!! 하 정말 너무너무 답답하다...
여시야 잘 정리해줘서 고마워 내가 몰랐던것도 많이 있어 부끄럽다ㅠ
잊지않을게
씨팔개새키들 얼마나 구린일을 벌려놓은거냐
[ 세월호 ] 고마워 여시야
고마워 여시야... 답답하다 새벽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