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因緣
<제7편 피안(彼岸)>
①어느 날갯짓-35
천복은 그가 바로 흔히 말하는 군자라는 인물일 거라 여기어지었다. 군자는 다투지 않는다고, 하였다. 혹시라도 언짢은 일이 있을지라도, 아귀다툼하거나, 폭력을 써서 난폭한 행동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점생서당의 창운 이옥구 훈장께서 가르치던 말씀이 되살아나는 거였다.
또 훈장께서는 오륜(五倫)을 가르치면서 붕우유신(朋友有信)이란 벗과 사귀는 데에서는 신의(信義)를 지키어야한다고도 하시었다.
그런데 유남이 그러한 윤리도덕의 덕목을 아는지 알 수 없으되, 그 말만은 똑똑히 배운 천복보다도, 더욱 신의를 행동으로 지키어 모범을 보이어주는 데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서당에서 창운 훈장어른께서는 인간이 지키어야할 도리로서 오륜을 말하였고, 그 가운데 한 덕목으로 곱히는 붕우유신은 벗끼리 믿음의 의리를 지키어야한다고, 가르치던 말씀이, 유남을 보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거였다.
천복은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 서당으로 달리어가서 삼강오륜을 배웠지만, 유남은 그러한 걸 배우지 않았을 게 분명하였다. 그러한 데에도, 천복이 유희와의 일을 발설할까 두려워 그를 이끌어다 술자리를 벌이면서 허둥지둥하던 방금 일을 되살리면, 되레 부끄러움만 사고 말았다.
하기에 앞으로 유남은 믿을 만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비단 친구사이의 믿음과 의리도 그렇거니와, 직접 누이동생이기에 그가 그 일을 차마 남들에게 발설할 까닭은 없는 거였다. 다만, 그의 아내 연화의 입만 단속하면, 일단 그 일은 차단되리라고 믿어지었다. 하지만, 천복이 연화를 일부러 만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떠한 계제에 마주치게 된다면, 그 이야기를 꼭 부탁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천복은 유남과 헤어진 뒤에 집으로 돌아와 경산이 있는 안방으로 들어가려고, 미닫이 문고리를 잡으려는데 보니, 마침 손님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었다.
그래서 그는 멈칫하고는 뒷방으로 들어가 귀를 기울이어보았다. 그런데 안방에는 다름 아니라 바우네가 와있었던 거였다.
“저번이 울 언니랑 왔을 때, 그 딸내미가 무당이 될 팔자라고 허셨잖어유?”
바우네가 묻는 말이었다.
“어엉, 그 새터말 산다는?”
경산은 바우네가 언제인가 함께 왔던 언니가 막내딸의 사주를 보았을 때에 무당이 될 팔자라고, 말하여주었던 일을 기억할 수 있었나보았다.
“야! 근디 걔가 요새 바짝 야위어가고, 어깨와 팔이 쩌릿쩌릿 아파서 꼼짝을 못헌대요. 언니가 걔럴 데꼬 한의원으로, 한약방으로 돌아 다닌다는디, 병세는 하루하루 더혀만 간다는규. 아마 언니가 메칠 안이 수영(수양)엄니, 뵈러 올 거유.”
바우네는 자기할 이야기는 다하고, 여담으로 하는 말 같았다. 그나저나, 그녀가 말하는 언니의 딸이라면, 혜영과 그녀의 어머니를 말하는 거 같았다. 게다가 바우네가 혜영의 어머니와 자매사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자 경산이 심드렁하게 내뱉고 있었다.
“으-음, 신이 솟는데 그깐, 한의원 한약방은 뭐하누?”
“그럼언 수영(수양)엄니, 딴 방법이 있으시단 말씀여유?”
바우네가 경산의 말에 혹하여서 얼굴을 들이밀며, 묻고 있었다.
“영신이 되려면, 정성을 들여야 하고, 병을 고치려면, 신병(神病)이라, 방액(防厄)을 해야 하오.”
“수영(수양)엄니, 잘 알었어유. 메칠 안이 언니랑 같이 올 거유. 그때 자시허기 좀 일러주셔유. 그럼은 안녕히 계셔유.”
“알았소. 잘 가오.”
바우네가 서둘러 일어서고, 작별인사를 나눈 뒤는 그녀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아가는 소리가 나는 거였다.
워낙 때는 해가 서산에 걸리어있는지, 사위가 노을빛을 따라서 온통 붉게 물들어있었다.
천복은 그녀가 점포를 빠지어 나아가자, 아랫방으로 내리어갔다.
“어제 말씀 드렸듯 태수아버지한테, 헛간 허는 일을 맡겼어요. 요새 한가하다며, 곧바로 내일부터 일을 잡아들겠답니다. 그래서 알아서 하라고, 했거든요. 내일 일을 시작해도, 괜찮을까요? 할머니.”
“내일?”
“예!”
“거기 달력에 내일 일진(日辰)이 뭔가 보아라!”
경산은 내일 일진이 무엇인가, 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천복이 얼른 벽에 붙이어놓은 달력의 잔글씨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할머니, 내일 일진이 병술(丙戌)날이네요.”
천복이 달력을 보고, 일진을 말하자, 경산은 손가락으로 간지(干支)를 곱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이었다.
“공망일이군. 손도 없고, 바르지 않는 날이구나. 일을 시작해도 좋겠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천복이 경산에게 고개를 조아리었다.
“그렇지만, 네가 사진 찍기나 시계고치기를 할 수나 있겠느냐?”
경산은 비슷이 웃음을 띈 얼굴로 묻는 거였다. 말하면, 괜스레 기술능력도 없으면서 돈만 들이면, 헛일이라는 생각을 하였나보았다.
첫댓글 이제 헛간을 헐면서 본격적으로 사업 시작입니다.
서울 도심지에는 사진관이나 예식장이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넓은 면적을 차지하기에 집세가 엄청나지요.
그렇지만 천복이 지금 지으려는 사진관은 다섯 평도
못되는 좁다란 터전에다 보잘 거 없는 사진관이겠지요.
누구처럼 유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움말을 주는 사람도
없이 먹고 살겠다고 창업(?)할 발판을 마련하는군요. 남의
일이지만 어찌보면 눈물겨운 일이기도 합니다. 경산 말마따나
기술이나 좋아서 인기를 얻어야 돈도 벌 수 있을 터인데 그게
잘 되어나갈는지 모르겠군요???????
천복은 하늘의 복을 타고 났고 인덕이 있고주위에 귀인이 많으니 뭘 해도 잘되리라 봅니다^^
천복이 천복을 타고 났는지 매사 순조롭게 진행이 되네요.
더욱이 유남이가 유희문제로 얼마든지 천복을 끄슬를 수 있었는데
잠자코 있는 것도 복이지요. 무엇이 잘 안 될 때는 잘 안되는 일들이
겹쳐서 실패하는 거거든요.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바람(?)을 펴도
속썩이는 여자도 없으니 확실히 만복을 탔나봐요. 오히려 그런
여자들이 돕고 오지 않는다고 탈잡는 여자가 없으니 얼마나
태평한가요? ㅎ